이기적 과학자-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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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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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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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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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년 7개월차 조선 -7-

DUMMY

“옛날의 학자는 벼슬을 구한 것이 아니고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천거하여 등용되었으며, 대개 벼슬을 한 사람은 남을 위했고 자신를 위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렇지가 않고 과거로 사람을 뽑으니,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는 학문이 있고 남보다 썩 뛰어난 행실이 있다 할지라도 과거가 아니면 도를 행할 자리로 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아들을 가르치고 형이 그 아우를 권면하는 것이 과거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선비가 벼슬을 탐내는 풍습은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지금 선비된 사람들은 많이들 부모의 희망과 문중의 계책을 위하여 과거 공부에 힘쓰는 일을 벗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재능을 갈고 닦아서 그 때를 기다리고 성공과 실패를 천명에 맡길 일이지, 벼슬을 탐내어 조급하고 열중하여 이것으로써 그 뜻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이이, 격몽요결


사영이 조선의 조정에게 선비들을 많이 달라고 한 이유는, 그들이 공부에는 이골이 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자원을 모으고 식량을 보급하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하는 이유는 결국 기술 수준을 빠르게 올려 그의 배를 수리하고, 그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함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결국 기술을 개발하고 과학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는 본래 생물학자였고, 생물학의 특성상 양질의 화학제품과 각종 광학, 기계공학, 물리학 제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들 중 상당수는 사영도 그 기반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다 기본적인 글자와 숫자부터 가르치던 것이 있었는데, 1년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조선 조정의 토벌덕분에 다 어그러져버렸다. 그나마 희망을 가질 만 했던 것은, 정약용이나 박규수와 같은 선비들의 경우,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는 점이었다.


1년 남짓한 기간동안 그들이 배우고 익힌 기초과학의 수준은 물리의 경우 어지간한 고등학생 수준은 되었고 생물학이나 화학의 경우에는 대학교 일반생물학이나 일반화학을 배우는 수준이었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고 쓰는 것 외에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익종(효명세자)께서 붕어하신 후 할 것이라고는 조선 팔도를 돌면서 새로운 것을 보고, 익히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영이 본 선비는 그들을 포함하여 몇 명 되지 않았고, 그들이 선비들 중에서도 규격 외의 괴물이라는 것은 이번에 잡혀온 자들을 보고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야 비교 대상을 다산이나 환재로 치니까 그렇지 않소?”


잡혀 온 선비들의 분류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온, 이제는 백수 상태가 된 홍희근이 껄껄 웃으며 이야기해주었다.


“애초에 대과에 실력으로 합격하는 자들은 괴물들이오.”

“무슨 뜻입니까?”

“3년에 한번 보는 소과는 조선 팔도에서 몇 명이나 뽑을 것 같소?”

“한 천명쯤 뽑습니까?”

“딱 이백 명이오. 그렇게 소과에라도 합격해야 성균관 입학 자격이 나오고 그렇지.”

“3년에 2백여명...그럼 저들 중 소과에라도 합격한 자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직접 알아보셔야지.”

“그럼 대과는 소과에 합격한 사람들만 봅니까?”

“그건 아니지만 소과에 합격하지 못한 자들이 대과에 합격하기란 더욱 어렵소.”

“그렇군요. 그럼 대과는 어떻게 치러집니까?”

“초시에서 240명을 뽑고, 이들 중 33명을 복시로 다시 끊소. 복시까지 합격하면 일단은 벼슬자리 하나 맡아놓은 셈이 되지. 그 다음 그 33명을 대상으로 다시 순위를 나누는 시험을 벌이오. 장원은 종6품, 갑과는 정 7픔 이런 식으로..”

“엄청나군요.”

“해서 보통 네다섯살부터 공부를 한다손 치면, 30년쯤 학문에 힘쓰면 대과까지 합격하는 편이외다.”

“30년....”

“그동안 오만가지 서적을 읽고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네. 대과까지 노려본다면 말일세.”

“주로 사서오경과 같은 유교 경전이겠지요?”

“소과만 노린다면 그게 맞는데, 대과까지 본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네.”

“왜 그렇습니까?”

“보자...내가 전시때 봤던 문제가...남령초(담배)에 관한 것이었으니, 유교 경전만 읽었더라면 저 말석으로 합격했겠지.”

“남령초요?”


‘이건 왠 뜬금없는 소리인가. 과거시험에 남령초가 왜 나오지?’


“시험 문제 전문이 이것이었네. ‘온갖 식물 가운데 이롭게 쓰이고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으로 남령초(담배)보다 나은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모든 백성이 남령초를 피우게 할 것인지 대책을 말해 보라.’”

“모든 백성이 남령초를?”

“재밌지 아니한가?”

“유교 경전만 읽어서는 도저히 답을 쓸 수가 없겠군요.”

“그렇지 그렇지. 물론 저 해의 책문(왕이 직접 내는 시험 문제)이 좀 특이하긴 했으니, 좀 더 그럴듯한 책문들도 많았다네.”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어떤 것들이라...그래, 이건 어떠한가? ‘해와 달이 떴다 지는데 어떤 때는 낮이 길고 어떤 땐 밤이 긴데 왜 그런가? 일식과 월식은 왜 생기나? 밤하늘의 보통 별과 행성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별이나 혜성은 어떤 때에 보이는가?’”

“오.”

갑자기 천문학인가. 확실히 이 쪽은 뭔가 입맛에 좀 더 맞는 책문이었다.

“그래서 답은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전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만... 기(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靜)하면 음(陰)이 되나,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는 것은 기요,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이다. 천지의 사이에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오행의 정기가 모여서 된 것도 있고, 천지의 괴기(乖氣)를 받은 것도 있고, 음양이 서로 격동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고, 음양 이기(二氣)가 발산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비·눈·서리·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 바람·구름이 일어나는 것, 우뢰·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기가 아님이 없으며, 하늘에 걸려 있는 까닭, 땅에 내리는 까닭,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까닭, 우뢰와 번개가 일어나는 까닭은 모두 이가 아님이 없다.” 이이, 천도책 [天道策]중 일부


“이기론이군요.”

생각했던 답과는 꽤 거리가 있었으나, 이 곳에 와서 이기론을 겉핥기로나마 여러 번 들어본 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이들도 최소한 책 읽고 배우는 데는 이골이 난 자들이라..그럼 되었습니다.”


사영이 조선으로부터 넘겨받은 반란에 연루된 수백여 명의 선비들은 처음 보는 형태의 건물에서 머무르며 서책을 읽고 있었다. 겉으로 얼핏 봐서는 그냥 길다란 한옥 같았으나, 좌우 어디를 봐도 마루가 없었고 문도 양 쪽에 하나씩 있는 것을 제외하면 높은 곳에 창문만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그 진가는 내부에 있었다.


가운데 길게 이어진 복도를 기준으로 침상이 무릎 높이로 양쪽에 있었고, 벽면으로는 나무로 만들어 진 관물대가 있었다. 그 관물대 아래쪽으로는 딱 한사람이 누워 잘 수 있을 만큼의 너비를 가진 요와 이불, 그리고 작은 상이 놓여있었다. 그런 것이 좌, 우측에 각각 15개씩, 도합 30명이 자거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었다.


“석반집합하시랍니다!”

“석반집합하시랍니다!”


곧 종소리가 크게 울리고, 각 내무반(?)내지는 수용소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선비가 저녁때를 알렸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잡혀온 지 보름에서 두어달 남짓인 그들은 이제 이 생활에도 익숙해졌는지 각자 목제 식판을 꺼내들고 시시덕거리면서 밥을 먹으러 가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뭐냐?”

“잘..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면 이 생활이 끝나냐?”

“아닙니다!”

“여기가 안이냐? 밖이지?”


그들은 배식을 받으며 오늘도 탄식을 내뱉었다.


“오늘도 미역똥국에 말린 버러지튀김인가.”

“어쩌겠나. 주는 대로 먹어야지.”

“이런 밥은 처음 보네. 쌀이 이렇게 긴 것이 있던가?”

“저 서역 오랑캐놈들이 보내준 쌀이라던데.”


밀웜 튀긴것에 미역 똥국, 그리고 백김치와 안남미가 섞인 밥이 저녁이었다. 그들은 그런 밥을 먹고 다시 그 숙소로 돌아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은 “정음, 어떻게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 “산수”, “기초과학입문”이었다. 그들은 여기 온 이후 매일 수업과 시험이 반복되는 나날을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


“과락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던가?”

“셋 다 과락이면 그대로 조선으로 신병을 넘겨서 유예해두었던 형을 집행한다고 하였고... 한 과목이라도 과락이면 작업조로 끌려간다고 하더만.”

“작업조?”

“왜 저기서 밥해주고 배식해주던 놈들 못 보았는가?”

“그게 상놈이 아니고 양반이었는가?”

“그나마 거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매일 수백명분 밥을 하는 것도 보통 중노동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조선으로 다시 끌려가면 그대로 목이 떨어지네.”

“어이쿠 저런...”


“그리고 이걸 빨리 다 떼고 다음 책까지 다 익히는 자들은 4인실로 옮겨준다고 하더만.”

“그건 좋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성과를 내면 무슨 프로젝트인가? 거기에 껴 주고 거기서 성과를 내면 졸업이라고 하더라구.”

“졸업?”

“그래 졸업.”

“여기가 무슨 학교였는가? 아, 배움을 주니 학교는 학교인게로군.”

“여기에 눌러앉아 교관을 해도 식솔들 배는 곯지 않을 정도로 챙겨준다고 하더라구. 저기 저 다산 선생이나 환재 선생을 봐. 조정에서 역적으로 찍었는데도 여기서 훈장하면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하긴 딴은 그렇구만.”

“아, 점호청소시간이네. 일단 들어가세나.”



그렇게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체조와 구보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수업을 듣고, 자기들끼리 배운 바 토론을 하며, 밤에는 복습하는 생활을 반복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서원에 이름만 올리고 놀던 자들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취사반이나 작업반으로 끌려갔으며, 그 중에서도 작업도 못하고 공부도 못 따라가는 자들은 그대로 조선으로 다시 신병이 넘겨졌다.


“거 제대로 된 선비를 보내지 않아 돌려보내오. 제대로 된 자를 보내주기 바라오.”


조선 또한 새로 대여한 무기의 성능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것을 복제하려는 시도를 계속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망가뜨린 총기가 한두정이 아니었기에, 그들 또한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도 다소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 희생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역모라니 무슨 소리오이까?”

“형은 니가 역모를 꿈꿨는지 아닌지 다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다시 숨 죽이고 살던 서원에 있던 선비들도 잡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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