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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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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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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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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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뒷수습 (2)

DUMMY

햇볕이 쨍쨍히 내리쬐는 거대한 연무장.

간만에 있는 합동훈련에서 하라는 훈련은 등한시한 채, 기사들은 각자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파견대 신입 기사단장이 글쎄...!”

“마법사 분들은 이걸 그냥 넘어가시는 건가?”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멈추지 않았고, 모였다 하면 제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프리지아의 파견대 소속 제 2기사단장 제이드 어셔는 디아나와 똑같은 컨티넌트의 일원이 되었다.

그의 소속을 유지하겠으나 제국에서 필요로 할 시, 프리지아는 순순히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카르타 제국의 부탁.


‘부탁은 무슨.’


기사단의 건물 안, 기사단장 브라이언이 코웃음 친다.

말이 부탁이지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프리지아가 거절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제이드가 그 제이드 어셔였다니...’


단번에 기사단장까지 차지한 망명기사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 정보를 들은 브라이언의 표정도 급격하게 굳어 있었다.


‘디아나도 알고 그를 따라다니는 건가?’


디아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 놈팽이와 어울리는 것일까.

브라이언은 적대국에 가까운 쾰른의 귀족이 기사단장의 자리에 올라간 것보다, 디아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원한을 가지고 있을 위험한 놈이다. 디아나의 목숨을 노릴지도 몰라.’


이제 디아나는 손짓만으로도 그를 박살 낼 수 있는 마법사가 되었지만.

사십 대에 진입한 브라이언의 눈에는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딸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쾰른에서도 지독한 범죄자라고 했지.’


디아나의 목을 노리던 그 사악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여태까지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생각되면서. 불과 수개월 전에 느꼈던 동정심이 싹 사라졌다.


“아놀드 경!”


브라이언은 최고기사 아놀드에게 주어진 개인 집무실로 찾아갔다.

평소 있으나 마나 한 공간이었지만, 저번 소동 이후 기사병력이 늘어나면서 최고기사인 그도 호위를 쉬는 기간이 생겼다.


“문 부서지겠다.”


잠을 자고 있었는지 소파에 누워있는 아놀드.

급하게 연 문이 안쪽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나자 눈을 찌푸리지만. 그와 브라이언은 이십 여년을 함께 지낸 가까운 사이.

그냥 한소리일 뿐, 별다른 감정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실 겁니까?”


물론 그와 달리 브라이언의 목소리에는 사심이 팍팍 묻어있었다.

주어도 없이 내뱉은 물음이지만 아놀드는 바로 짐작 가능했다.

여기 오는 이들의 질문 중 십중팔구는 제이드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


평탄한 어조로 오늘 내내 했던 말을 똑같이 중얼거린다.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렇게 따지러 온 기사들은 대부분이 납득하지 못한 채 나갔으니 말이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같이 지낸 시간이 있어서 일까. 브라이언은 아놀드의 낌새를 바로 알아챘다.


“제이드 어셔, 그 청년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건 맞습니까?”

“알아서들 판단해.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아놀드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주변에 적당한 책을 집어 펼쳐서 얼굴을 덮었다.


“저희들은 이 일 만큼은 조용히 수긍할 생각이 없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브라이언도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멍청한 녀석들. 중요한 건 제이드의 신분이 아니야.’


아놀드는 기사들의 편중된 시선이 너무 답답했다.

기사들은 앞으로 다가올 일은 예상치 못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때가 오면 중앙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프리지아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뭘 그리 유난을 떠는지. 참.”


아놀드는 이제 은퇴를 앞둔 기사.

그것은 지금의 기사들에게 맡겨진 시련이었고, 자신은 그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이렇듯 기사들은 온몸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고. 이어서 내려온 마탑의 공문조차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곧이어 프리지아의 사절단이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같이 오지 않는다고?”

“그냥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거 아니야?”


그 안에 제이드는 없었다.

컨티넌트의 요원들과 함께 쾰른의 수도, 톨레드에 도착하여 무사히 협상 중이라는데.

여왕이 실종하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권력다툼에 휘말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웃 나라의 일.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뿐이었고, 프리지아의 중축인 마법사들은 기사들과 그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나한테 계속 숨기고 있었냐.”


앙드레가 입술을 삐죽이며 티론에게 말을 건다.


“너도 대충 눈치까고 있었잖아.”


티론은 숨겼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없었는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수습기사 때 대결이나, 첩자 잡은거랑, 기사단장 먹은 거 보면 딱히 놀랄 건 않지.”


앙드레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하는 데, 확실히 그가 평범한 기사였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라며 수긍했다.


“다들 제이드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던데?”


대외 정보를 접하기 힘든 기사들과 달리 마법사들은 궁전 내의 소문에 빠삭한 편이다.

이전부터 파격적인 제이드의 행동은 그를 조심히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제이드의 정체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기사들은 조금 시끄럽다고 하더라.”


왕실기사 특유의 충성심이 제이드에 대한 우려를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 제이드에 대한 소문이 워낙 흉흉했던 탓도 컸다.


“지금 제이드 걱정을 하는 거냐?”

“그럴 리가.”


마주본 두 사람이 웃어넘긴다. 그도 그럴 것이 반발해봤자 안 좋은 건 기사 쪽이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제이드를 아놀드 경과 동급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결론 내렸다.


“동부 기사들 소식도 못 들었나?”


제이드를 의심하고 추궁하다가 하이웰 가문의 기사가 역으로 몰려서 물먹었다는 이야기는.

마탑에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상상만 해도 무섭네.’


파비앙은 제이드가 압박해오는 상상만으로도 중지가 욱신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한편 티론은 공문에 쓰여진 다른 문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복수는 성공한 걸까?’


디아나 덕분에 제이드의 인생사를 접한 그는 여왕의 실종이라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알면 안 되는 진실이겠지.’


티론은 언젠가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호기심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


*


시간은 흐르고 마침내 사절단이 수도로 돌아왔다.

겉으로는 수고했다며 환영해주었지만, 기사단 내부의 인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명예도 모르는 놈들.”

“그놈의 수하들 답구만.”

“하마터면 저기 들어갈 뻔했다는 거지? 으휴.”


연차가 높아 파견대에 배치되지 않은 선임기사들이 지나가며 빈정거린다.


“너희, 거기서 대접이라도 받았니?”

“야, 그래도 쾰른이다. 쟤들 실력에 대우받을 리가 없잖아. 큭큭.”


일부러 파견대 지정 연무장까지 찾아와 기사들의 속을 긁으려 했지만.

제이드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그들은 흘려들으며, 제이드의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해하고 있었다.


“다행이야. 단장님은 무사해서.”

“그래도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에도 기사들은 제이드에게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거짓말이다.’


길버트는 공문이 의도적으로 지어낸 것을 눈치챘다.

어셔 백작가의 영주의 행동을 보면 절대로 사전 협의가 된 상태가 아니었다.


‘제이드 단장님은 협상을 하러 간 게 아니야.’


기사단, 자신들을 제외하고 다른 임무를 하고 있었을 터.

그들에게 비밀로 한 이유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약해서겠지.’


첫 임무 때는 뒤를 받쳐주면서 같이 행동했었는데. 이번에는 불필요한 짐 덩어리였나 보다.

세실은 아주 살짝 처진 눈가를 보고 길버트가 의기소침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길버트 경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계속 훈련을 진행하도록.”


애써 괜찮은 척 기사들을 다독인다.

제이드의 부하로서 같은 전투에 나설 수 있도록, 적어도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만 했다.


“가자. 신입들은 못 따라오면 죽는다!”


파비앙의 거친 어투에 새로운 얼굴들이 샐쭉한 표정으로 뒤따른다.

교육이 끝난 열 명의 신입기사들이 이번에 이곳에 배치되었다.


제이드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도.

정작 소문의 주인공인 제이드는 로디니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제이드는 멍하니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채워진 방문 앞에 서 있있다.

창문 너머로 널따란 들판이 보였다.

이곳은 쾰른의 수도 톨레드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언덕에 위치한 어셔 백작의 별장이었다.


“마마.”

“엘린. 조심하렴.”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푹신푹신 한 장판 위.

앳돼 보이는 여인과 그녀와 똑 닮은 어린 아이가 서로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장면이지만.


‘형은 언제 올려나.’


제이드는 이 순간이 빠르게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하품을 하는 그와 달리 안나의 전속 시녀 벨리아는 모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똑.똑.


“도련님 잠시 나와주시겠습니까.”


포르테를 따라 수도까지 올라온 집사장, 제프리가 그를 불렀다.

가주인 포르테는 현재, 네 가문회의에 참석 중인 상태.

처치곤란한 일들은 그에게 우선적으로 보고를 했다.


“에카르트 공작가의 기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것들이 또 왔어요?”


제이드는 지루한 것도 싫지만, 일거리가 생기는 건 더 싫었다. 자신이 가주를 대신하는 것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도 없으며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도 없으니까.


“그리고 레사르. 저를 제이드 경이라고 부르세요.”


일부러 존댓말을 쓰면서 거리를 두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죄송합니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제프리는 매번 순순히 대답하지만 절대 호칭을 바꿔서 부른 적이 없었다.

제프리의 실눈과 제이드의 언짢은 눈빛이 부딪치지만.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제이드였다.


“뭣 때문에 왔다고 합니까.”

“안나 님의 신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안나 에카르트는 어셔 백작가의 구성원이 아니다.

벨리아의 도움을 받아 가출한 이후 엘린과 어셔 가문에 몸을 의탁한 손님이다. 애초에 손님이란 표현보다는.


‘나한텐 그냥 아는 동생이자 형의 내연녀지.’


하여튼 안나의 가족인 에카르트 공작은 그녀를 데려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그거 저번에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제이드도 직접 보았다.

안나는 이곳에서 지내길 원했고, 분명 포르테도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거부했던 걸로 기억한다.


“영주님은 확실히 그리 말씀하셨죠.”


하지만 녀석들은 포르테가 없을 때를 노려 다시 한번 찾아왔다.


‘지금 이것들이 장난하나.’


이는 명백히 포르테 백작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들어와서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문에서 정중히 대기하는 이유는.

세간의 눈치가 아닌 순전히 제이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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