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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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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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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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0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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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DUMMY

마리네의 상처는 전부 회복되었다. 하지만 가슴이 뚫렸을 때의 육체적인 쇼크는 남아있는 것인지 그는 자정이 넘어가도록 깨어나지 못했다. 이칼롯은 그가 누운 침소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을 나섰다. 여관 안은 조용했다. 이미 다른 기사단원들도 전부 곯아떨어진 시간이었다.

이칼롯은 건물의 3층, 정확히는 다락방으로 쓰이는 곳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곧 안쪽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루치페리아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락문을 열자 겨울밤의 달빛이 눈이 시릴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루치페리아와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사다리를 올라갔다. 방 자체가 그리 넓지 않아 딱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앉을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루치페리아는 창밖을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레벨러를 처리한 뒤 그녀는 경계 역을 자처했고, 그 후로 반나절이 지나기까지 쭉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생텀가드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아무 근심 없이 휴식을 취해도 될 테지만, 이칼롯이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에리안델 크류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루치페리아는 요청을 받고 몇 초 뒤에 에리안델을 넘겼다. 그 몇 초라는 시간이 이칼롯에게는 의혹의 무게로 다가왔다. 달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시간은 경직되어 있었다. 이칼롯은 검의 손잡이를 정중하게 쥐고는, 수직이 되게 세워 칼등과 시선을 마주쳤다.



“일단 오늘 마리네를 살려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응답하는 에리안델의 어조는 루치페리아의 그것과 놀랄 정도로 흡사했다. 평소 다정다감한 말투를 사용하는 그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냉랭함이었다. 아마 이칼롯이 찾아온 이유를 알기 때문이리라. 이칼롯도 그녀의 태도를 눈치채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선대 루프리모의 아이였다는 것을 압니다. 펠아람의 저주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 성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말이죠.”


「맞아요.」


“그럼 당신은 아직도 루프리모의 아이입니까? 제 말은, 당신이 수정에 담긴 에센스를 사용할 수 있냐는 겁니다.”


에리안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건 당황했다기보다는,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건넨 이칼롯을 향한 감탄의 표시였다. 이칼롯은 짧은 순간이나마 에리안델과 루치페리아가 어떤 경로로든 ‘교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게 좋은 의도이든 나쁜 의도이든 무언가를 숨긴다는 사실 자체가 그로서는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가 오늘 캄블러군을 치유한 일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녹색의 오오라, 그리고 치명상조차도 간단히 회복시키는 급속치유. 어느 누구라도 루프리모의 권능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비가 그친 뒤의 밤 공기는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게다가 창을 활짝 열어놓은 지라 바람은 아무런 여과 없이 다락 안으로 들이닥쳤다. 목석처럼 굳어있는 루치페리아나 에리안델과 달리 이칼롯이 숨을 내쉴 때마다 뿌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가 석상과 검을 상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고 혀를 찼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합니다. 수정에 담긴 에센스는, 오로지 니암만이 사용 가능한 것이죠.」


예상한 답변이었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이칼롯은 곧장 그녀의 해명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다면 오늘 보여준 그건 대체 뭡니까.”


「이칼롯, 에센스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음, 그건...”


단순히 화제를 바꾸려는 의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칼롯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리안델의 꿍꿍이를 파악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의 말마따나 에센스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에리안델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에센스란 상념(想念)의 결집체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할 때 인간은 신을 찾죠. 신을 향한 기도는 곧 에센스가 되어 신의 능력을 이루는 근간이 됩니다. 흔히 신성력이라고도 부르죠.」


경청하는 와중에 이칼롯은 슬쩍 눈을 돌려 루치페리아의 표정을 살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그녀의 머리카락이 왠지 바람에 흩날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루의 수정은 그런 에센스를 신의 아이가 사용할 수 있게 규격화한 겁니다. 하지만 이칼롯, 상념이라는 게 늘 신만을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오래된 성화를 보고, 또 어떤 이는 조상의 유품을 보고 기도하기도 하죠. 그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숭배받는 객체로서, 그들 또한 에센스를 축적해나가지요. 어떤 성물을 만지니 행운이 찾아왔다, 이런 소문 많이 들어보셨지요? 그 성물 안에 수백 년에 걸쳐 쌓인 에센스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런 에센스와 수정에 담긴 에센스의 차이를 설명해 주실 차례로군요.”


에리안델이 싱그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칼롯의 표정은 한결같았지만, 막상 입을 열 때는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녀를 재촉하곤 했다. 그 모습이 에리안델에겐 귀엽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역시 이해가 빠르군요. 둘의 차이는 ‘용량’과 ‘제한’에 있답니다. 아무리 고귀한 성물이라 할지라도 아루의 수정에 담긴 그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오늘 저는 루치페리아가 지닌 에센스를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천 년이 넘게 존재해왔으니, 고유 에센스 보유량 면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 한 번의 권능으로 모아온 에센스의 상당량을 소모해 버렸답니다. 아루의 수정이 지닌 에센스와 비교하면 발끝에도 못 따라오는 양이죠.」


“제한은 무엇입니까?”


「법칙파괴를 말하는 겁니다.」


법칙파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펠아람의 절대소거였다.


“저는 악마들이 신의 아이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무언가’에는 원래 법칙파괴, 혹은 법칙무시 급의 권능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람과 에리안델이 해준 이야기로 볼 때 적어도 아루의 수정이 신의 아이가 아닌 자에게 휘둘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또한 악마들이 모으고 다닌다는 고유 에센스도 그리 큰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칼롯은 가설을 수정하는 한편, 재차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에센스를 사용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신의 아이 말고도 에센스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습니까?”


「에센스의 사용은, 글쎄요, 솔직히 지난 500년간 저 말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루프리모의 아이로서 공유했던 지식 때문이지요. 아, 권능이라고 해봤자 신의 아이를 흉내 내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에리안델은 애매하게 답을 얼버무렸다. 자신도 확답까지 해줄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이칼롯은 그녀와의 대화를 토대로 지금까지의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드라칸을 우두머리로 하는 악마집단이 아루의 수정을 포함해 고유 에센스를 모으고 있다. 그들은 아마 어떤 식으로든 에센스의 사용법을 가지고 있을 테고, 여기에는 안다바리엘 뷘더가 관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악마들의 목적은 독립된 영토의 확보. 혹은 그 이상의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안개송곳니와 협약을 맺은 상태지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만큼 신뢰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주도권은 명백히 안개송곳니 쪽에 있다. 어찌 되었든 그들에겐 아반케즈의 아이가 있으니까.


“그 외에 더 해주실 말씀은 없습니까?”


이칼롯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에리안델과 루치페리아도 질문의 의미를 파악한 것인지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이 내려앉자 바람 소리가 더욱 사납게 들려왔다. 그렇게 모으기 어렵다는 에센스를 왜 루치페리아는 거리낌 없이 내주었는가, 또 그녀와 에리안델이 줄곧 주고받던 대화는 무엇인가. 이칼롯은 그들이 아군이라기보다,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해 로샤단과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눈빛이나 표정의 변화로 어느 정도 속내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가 마주한 것은 검과 석고상이었다. 짧은 침묵 뒤에 에리안델이 말했다.


「없습니다.」


“그렇군요.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칼롯도 더는 캐묻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는 그에게 루치페리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응대해주었다. 에센스를 소비한 탓인지 그녀의 움직임이 평소보다도 둔하게 느껴졌다.

다락문을 나서며 이칼롯은 그녀의 은근한 시선을 감지했다. 적의도 호의도 아닌, 그래서 더욱 등을 돌리기가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1층 홀로 돌아오자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란돌이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는 이칼롯을 발견하곤 싱긋 미소를 건넸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루치페리아가 있으니 마음 놓고 쉬어도 될 텐데요.”


“동료들 시체가 아직 식지도 않은 터라 영 잠이 오지 않는군요.”


웃는 얼굴과 달리 그의 어투에는 제법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이칼롯은 마리네에게 정신이 팔려 무신경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오늘 있었던 소요사태로 또 다섯 명의 기사단원이 순직한 것이다. 기사의 숫자는 이제 처음 출발했을 때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하를 사지로 내모는 입장으로서, 란돌은 사라져간 절반의 기사가 단지 개죽음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았다. 그는 이칼롯의 허리춤에 메인 두툼한 주머니를 향해 잔을 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부디 그들의 죽음이 가치 있는 것이었기를.”


이칼롯은 의자를 빼고 란돌과 마주보게끔 앉았다. 란돌이 맥주를 권하는 것도 거절하고서 그는 주머니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을 응시했다. 소가죽을 몇 겹이나 싸 가렸는데도 어렴풋이 신록의 음영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맥주잔을 다 비운 란돌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랍니까? 에리안델이.”


그는 이칼롯이 에리안델을 만나고 왔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굳이 끼어들자면 끼어들 수 있었을 텐데도 호기심을 참고 여태까지 기다린 것은, 이칼롯을 향한 그 나름의 배려였다. 이칼롯은 주머니를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둥그런 구체의 감촉이 느껴져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빙그르 돌렸다.


“아루의 수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의 아이뿐이라더군요.”


그러자 란돌이 키득 실소를 터뜨렸다.


“그래요? 의외로 우리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것도 아주 유용하게.”


이칼롯도 란돌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곤 씨익 미소 지었다. 확실히 아루의 수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미끼’이다. 이것 하나를 얻기 위해 제르칸트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의 사용가치는 여전히 유용했다. 아마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개송곳니와 악마의 관심을 지대하게 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이쪽에서 떡밥을 던질 차례였다. 이칼롯은 주머니를 단단하게 묶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델키아를 떠나올 무렵부터,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던 악연을 그만 청산해야 할 시간이었다. 심증은 충분하다. 또한 물증은 아루의 수정이 가져다줄 것이다.

그가 말했다.


“류이덴사로 갑시다. 레밀리오 사제를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군요.”



***




결국 두 사람은 온천 안에서 몸을 맞댄 채로 밤을 지새웠다. 너무 오랫동안 유황천 속에 있어 몸이 퉁퉁 불었지만 그래도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한편 동이 트길 기다리면서 루도는 온천 곳곳을 조사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그는 발바닥에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감촉에 곧장 물속으로 잠수했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두툼한 식물 줄기를 들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어머, 그건 뭐야?”


줄기가 단단한 데다 삼각형 모양으로 뻗어있어 얼핏 보기에는 알로에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알로에와 달리 줄기 색깔이 짙은 보라색이고 줄기 끝자락엔 산딸기 모양의 열매가 점점이 열려 있었다. 레미나가 처음 보는 식물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생김새는 용설란 같은데...”


“용설란? 처음 듣는 이름인데.”


“나도 책에서밖에 본 적 없어. 줄기를 빻아 식용으로 먹거나 아니면 술을 담그는 데 쓴다고 들었는데.”


식용이란 말에 루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안 그래도 점점 줄어가는 식량에 걱정하고 있던 터라 그는 용설란을 가방에 있는 대로 구겨 넣었다.


“...가져가려고?”


“식용이라며. 있을 때 챙겨야지.”


레미나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건넸으나 루도는 개의치 않았다. 혹시 독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망설일 문제였다. 정말로 절망적인 상황이 오면, 굶어 죽든가 중독되어 죽든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자줏빛 용설란은, 말하자면 최후의 보루였다.

날이 밝자 그들은 옷을 챙겨 입고 다시 길을 떠났다. 예정지인 오두막까지는 정오가 조금 넘어서야 도착했다. 혹시 또 지붕이 무너져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위기는 한 번으로 끝이 났다. 사실 시간대로 따지면 다음 포인트까지도 행군할 수 있었지만 루도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장비와 보급품을 점검하고, 주변을 돌며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물론,

이것은 루도의 아주 그럴 듯한 자기 합리화였다. 어영부영 해가 지자 그와 레미나는 곧장 오두막에 틀어박혀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뜬 소년소녀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는 깊은 산중에 단둘이 있었으니까. 조금 더 가면 리크나이츠 주둔지가 나오고, 거기서부터는 이렇게 오붓하게 지내지도 못할 터였다. 때문에 그들은 여건이 허락할 때 최대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이윽고 이튿날이 밝자 루도는 카잘산맥의 마지막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는 리크나이츠 주둔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아침부터 레미나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전날까지 그렇게 살갑게 굴던 그녀가 짜증 섞인 얼굴을 한 채 루도와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루도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레미나, 뭔 일 있어?”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루도의 염려를 샐쭉하게 일축했다. 그 싸늘한 반응에 루도는 가벼운 상처를 받았다. 처음부터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면 모를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품에 꼭 안겨 떨어지지 않던 사람이 돌연 태도가 돌변해버린 것이다. 혹시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생각해보았으나 대충으로라도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이유를 모르니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왜 그러는 건데. 어디 아파?”


그러나 루도의 예상과 달리 레미나는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내며 그를 밀쳐냈다.


“그냥 좀...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루도는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렸다. 예전 제리온의 일로 다투었던 때가 생각나 그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레미나에게 접근했다. 이해가 안 가도 일단 잘못했다고 비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루도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저기압과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염려하는 자신의 태도가 그녀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야, 고민이 있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같이 좀 나누자. 우리가 남이야?”


“...아 좀...!”


레미나는 버럭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 채 루도를 타일렀다. 그러면서도 그와 5m 이상 거리를 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냥 아침 먹은 거 소화가 좀....안 돼서 그러니까 응? 루도, 나 정말 괜찮으니까 제발 신경 좀 쓰지 마.”


그녀의 정중한 협박에 루도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다 싶어 그도 곧 관심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오, 통재라! 그는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순진하다면 순진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너무 없는 거다. 게다가 오랜 레인저 생활로 단련된 후각이 그의 오지랖을 종용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에 그는 코를 킁킁대며(!) 레미나에게 다가갔다.


“야! 너 역시 어디 다친 거지? 아까부터 피냄새가 난다고.”


“아악!! 진짜!!”


결국 레미나는 참지 못하고 루도를 철썩 후려쳤다. 마침 두 사람은 비탈진 산길을 오르던 중이었는데, 루도는 그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경사면을 따라 굴러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련히 멀어져가는 그의 비명을 뒤로 한 채 레미나는 혼자 씩씩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주둔지까지는 비탈만 올라서면 금방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빨리 수건이든 뭐든 얻어낼 생각으로 힘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정상에 다다른 순간 그녀의 다리는 우뚝 굳어버리고 말았다.

한편 한참을 굴러가던 루도는 운 좋게 둔덕에 걸린 다음에야 길고 긴 회전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고는 하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그는 잔뜩 화가 나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이윽고 그녀의 뒤통수가 보이자 그는 냅다 소리쳤다.


“야 이 계집애야! 방금 건 너무 심하잖아.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루....루도....”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감히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제야 루도도 이변을 눈치챘다.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30m쯤 떨어진 지점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루도는 재빨리 검을 뽑고는 레미나의 앞을 막아섰다.


“내 뒤로 붙어. 어서!”


그러나 막상 늑대와 눈을 마주치자 루도 역시 숨이 턱 막혔다. 커도 너무 크다. 아니, 늑대가 맞긴 한 걸까? 불곰이나 호랑이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체구에, 털갈이를 끝내 순백색으로 흩날리는 털. 앞발은 한 번 휘두르면 사람의 목 같은 건 간단히 부러져 나갈 만큼 거대했다.

다이어 울프(dire wolf) 아종일까? 루도는 녀석과의 간격을 계산하며 검을 움켜잡았다. 지금껏 숱한 괴물과 싸워온 경험이 없었더라면 마주한 순간 오줌을 지려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늑대가 내뿜는 위용은 대단했다.


“쿠우우...”


늑대는 딱히 두 사람을 덮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녀석은 루도가 검을 빼드는 것을 보곤 의식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날붙이에 반응한다는 건 이미 사람과 싸워 본 전례가 있다는 뜻이다. 루도는 바짝 긴장하여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양자의 대치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늑대 쪽에서 먼저 물러난 것이다. 녀석은 루도를 향해 흘깃 눈짓을 보내고는, 이내 등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맹수가 싸워보지도 않고 사냥감을 포기하는 일은 흔치 않기에 루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후우, 진짜 위험했네. 여기가 다이어 울프의 영역권인가?”


그즈음 레미나가 낑낑대는 목소리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엑시온의 날개!”


퍼엉. 깃털 퍼지는 소리가 머쓱하리만치 크게 울려 퍼졌다. 한 박자는커녕 여서일곱 박자쯤 늦은 그녀의 타이밍에 루도는 혀를 끌끌 찼다.


“참 빨리도 터뜨린다.”


“시, 시끄러. 정신집중이 잘 안 된단 말야.”


상황이 정리되자 루도는 늑대가 남긴 흔적을 조사했다. 의아한 점은 분명 리크나이츠 주둔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일 텐데도 그런 거대한 늑대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시야가 트이는 지형인지라 그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군 막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두 사람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주둔지를 향해 이동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총 3개로 이루어진 주둔지 막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단체로 순찰을 나갔다고 하기에도 뭐한 게, 봉화대며 연무용 갑옷 등이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다 어디로 간 거지?”


원래대로라면 스물 남짓한 병사들이 막사를 지키고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막사 안에는 무구며 가재도구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천막을 걷자 텁텁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그때였다. 한창 예민하게 곤두세웠던 청각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반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루도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재빨리 달려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는 검집을 반쯤 열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


그러나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늑대도, 리크나이츠 병사도 아니었다.


“...누구?”


작은 얼굴만큼이나 가녀린 체구, 등까지 닿은 연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등장에 놀란 듯 살짝 벌어진 입술. 마치 다람쥐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소녀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루도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늘어뜨렸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 게 분명한데도, 그녀에게선 마치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아련함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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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101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60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7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83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33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8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25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40 27 22쪽
32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86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6 15.05.31 941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6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2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56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8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6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84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8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56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7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7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907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8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77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55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90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100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80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81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9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60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76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17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44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77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55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50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94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45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5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16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52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60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43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5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55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9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21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8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48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9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24 29 21쪽
»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42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1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56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5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1,00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7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9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43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20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50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40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36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82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32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22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7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78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51 24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22 26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1,001 27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97 23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8 30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13 25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71 24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37 24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74 32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75 30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22 23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43 22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904 23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9 25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14 25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57 23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1,010 22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907 19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96 27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1,005 26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18 26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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