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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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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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01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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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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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잡는 소리 그만 하고. 가이잘모도 이칼롯도 아니라고? 게다가 여자?'

그러자 알룬도는 와인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말했다.

'당신은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못 봐서 그래.'

*******************************************





일단 정전이 맺어지자 정국은 이전보다 훨씬 분주하게 돌아갔다. 전후 협상에 관한 문제, 훼창기사단이 점령한 라키시아 일대의 반환, 흑연기사단 점령지의 탈환 논의, 양국 간의 포로교환을 비롯하여 전선의 재배치와 보급 등등. 란도스 국왕을 비롯한 소위 ‘높으신 분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매일같이 집무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루도는 위첼과의 일전 이후 자력으로 마르테너스로 복귀했다. 위첼은 임무가 실패한 직후 달아났다. 더 싸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루도와의 대결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테너스에 도착하자마자 루도는 탈진해 쓰러졌다. 펠아람의 힘을 개방한 것을 포함해 요 며칠 사이 몸을 너무 혹사시킨 탓이었다.

란돌을 비롯한 별동대 역시 무사히 본대로 귀환했다. 그들은 영웅대접을 받으며 당당하게 성내로 입성했다. 시민들은 성벽 위에 올라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장미꽃잎을 뿌려댔다. 들것에 실려가던 알룬도는 덕분에 입 안에 꽃잎이 수십 장은 들어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꽃과 음악과 박수가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유독 한 사람만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말이 없었다. 유미르네 발렌스. 그녀는 정전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어린 소녀 하나가 봄꽃을 건네주려 다가오다 모자 속 그녀의 표정을 보곤 기겁하여 물러났다. 단순히 눈을 마주친 것뿐인데도 소녀는 창백하게 질려 달아났다.


“유미르네! 무사했구나.”


군중 사이를 비집고 마리네가 다가왔다. 그는 유미르네가 돌아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중이었다. 모자 속 입술이 씰룩 움직였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이내 평소의 사근사근한 얼굴이 되어 마리네를 반겼다.


“요! 마리. 별 일 없었고? 오늘도 여전히 이쁘구나.”


“다친 데는 없어? 맹수에게 습격당했었다면서.”


“내가 뭐 그런 고양이한테 당할 레벨이니? 그보다 며칠 못 잤더니 좀 피곤하네. 난 먼저 숙소로 갈게. 보고는 따로 안 해도 되겠지?”


“그래. 푹 쉬어. 아참, 내일 루도랑 디리터랑 공주님까지 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려고 하거든. 너도 올 수 있지?”


“물론 가야지. 내일 봐.”


그녀는 살갑게 손을 흔들고는 개인숙소를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지켜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표정은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이마가 가려질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음습한 골목을 가로질러갔다. 양지바른 대로와 달리 골목은 물이끼와 곰팡이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장소라고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마르테너스는 각지에서 모여든 피난민으로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중 숙박비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이들은 이런 골목가에 친 천막에 의지해 추운 밤을 보내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장소가 건강에 좋을 리는 없었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 못해 쇠약해진 난민들은 크고 작은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 전염병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폐렴이나 독감으로 사망한 자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검사님, 부디 한 푼만..”


거리에 자리를 튼 걸인은 셀 수 없이 많았으나 그중 유미르네에게 말을 걸어온 이는 한 명 뿐이었다. 그마저도 모자챙에 가려진 그녀의 싸늘한 눈빛을 접하곤 황급히 입을 닫아버렸다. 소문에 밝은 자들은 그녀가 최근 이름을 떨치고 있는 로샤단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 허리춤에 꽂힌 그녀의 에스터크가 자신에게 향하진 않을까싶어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 더럽고 냄새나는 난민굴 틈바구니에서, 유미르네는 그를 발견했다. 카이안 루시올라. 이제는 그와의 만남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카이안은 쇠약해진 난민들을 위해 간단한 수프를 끓여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역시 이내 그녀를 발견하곤 인상을 구겼다. 저렇게나 경멸하는 얼굴이라니, 참으로 표정관리가 안 되는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전하시군. 적이 잠입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홀로 무방비하게. 그날 죽어간 호위병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네.”


“...가던 길 마저 가시죠. 당신과 할 얘기 없어요.”


물론 완전히 무방비하지는 않았다. 정체를 숨긴 기사 몇몇이 카이안의 주위를 배회하는 게 느껴졌다. 카이안은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수프를 끓이는 데에 집중했다. 평소 같았으면 유미르네도 이쯤에서 본래의 용무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그에게 볼일이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갈구하는 돈이나 복수가 아닌, 그야말로 사심으로 가득 찬 일그러진 욕망이.


“궁금하지 않아? 왜 그렇게 많은 인간들이 네 목숨을 지키려 하는지. 또 그렇게 많은 작자들이 널 죽이려 하는지.”


카이안의 미간에 긴 주름이 졌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갈퀴가 되어 옷깃을 잡아끌었다. 아무리 외면하려 애써도 무의식적으로 목이 움직였다. 궁금하지 않을 리가 있는가. 그것은 현재 카이안이 겪는 고뇌의 근원이었다. 자신은 누구인가, 왜 자신에게만 기형적인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가.

루도와 디리터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들은 그저 로샤단을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그들을 신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뭐라고...”


하지만 정체성의 갈망을 어찌 누그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특히 그것이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면 더욱. 그런데 그녀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해답을 마치 선심 쓰듯 끄집어냈다.


“알려줄게. 네가 원한다면.”


“또, 또 무슨 거짓말을.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거 같아요?”


“싫으면 말고. 하지만 장담하는데,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걸?”


카이안은 침묵했다. 단순히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것뿐인데도 호흡이 가빠지고 입 안이 바짝바짝 탔다. 동공은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유미르네는 그의 침묵을 긍정이라 받아들이고는 히죽 미소 지었다.


“단 조건이 있어. 차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를 원망하지 않기. 어렵진 않지?”


그녀는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반으로 접고는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카이안은 경직된 자세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미 시선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펜과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윽고 메모를 다 적은 유미르네는 양피지를 다시 한 번 접어 카이안에게 건넸다. 그는 얼떨떨한 얼굴로 메모를 받아들었다. 양피지에서는 비릿한 피냄새가 났다. 떠나기 전 유미르네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각오가 됐으면 읽어봐.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시궁창에서 국자나 휘젓고 있든지. 아하하!”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볍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사라져갔다. 허리에 두른 망토가 발걸음에 맞춰 흥겹게 흩날렸다. 카이안은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양피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메모에는 어떤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



이튿날이 되자 레미나를 필두로 로샤단 멤버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루도와 마리네, 디리터와 레미나, 유미르네까지. 이칼롯이 빠지긴 했으나 길드원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겨울 라키시아 함락 이후로 처음이었다. 회의 장소는 란도스가 일행을 위해 마련해준 로샤단 전용 건물이었다. 길드 전용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숙소와 식당, 화장실 등이 딸린 어찌 보면 여관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법했다.

유미르네는 평소와 달리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가장 먼저 온 레미나가 그녀를 보곤 생긋 인사를 건넸다.


“푹 쉬셨나요? 덕분에 정전이 무사히 체결됐네요. 정말 고마워요.”


“후후. 고용주는 쉽게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얕보일 수 있거든.”


유미르네는 탁자에 턱을 괴고는 다른 손으로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메이드 하나가 곧 다과를 가져와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레미나는 서빙하려는 메이드를 끝끝내 돌려보내고는 직접 차를 따라 유미르네에게 대접했다. 조로록, 하는 기분 좋은 음향이 귀를 간질였다. 두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방 안은 고요했다.

차를 반쯤 비우자 마리네가 들어왔다. 그다음으로 디리터가 왔고 루도는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그는 아직도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좀 더 자고 싶은데.”


레미나가 허우적대는 그를 의자에 앉히며 웃었다.


“이그! 좀 있으면 점심이야. 이제 정신 차려야지.”


일행은 회의에 앞서 가볍게 다과를 즐겼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기웃거렸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내려앉은 아침이었다. 물론 일행이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여태까지 일이 계획대로, 아니 어쩌면 계획보다 더 좋게 풀렸기 때문이었다.

루도는 펠아람의 저주가 아니었고, 자신의 의식을 유지한 채 신의 아이 제오프와도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의 정전협정은 디리터의 무식한 시간 끌기에 힘입어 무사히 성사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올해 로샤단의 행보는 승승장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칼롯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잘 있겠지?”


“얌마, 누가 누굴 걱정하냐. 그 인간은 텔슈피드가 있는 한 무적이야.”


“혼자서야 알아서 잘 해내겠지만 드뷔사랑 같이 있다며. 위험한 거 아니야? 그래도 민간인인데.”


“위험하긴 하지. 어쩌면 셋이 돼서 돌아올 지도 모르지. 낄낄낄..”


“푸흐흡! 하여간.”


디리터가 목덜미에 감긴 붕대를 어루만지며 키득거렸다. 이번 활약으로 일약 이칼롯을 능가하는 유명세를 타게 된 그지만 이렇게 마주앉고 보니 역시 모자란 동네 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실없는 농담이 계속되자 레미나가 적당히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녀는 리크나이츠 북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며 말했다.


“자아, 오늘 모인 이유는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서예요. 지금까지는 루도가 펠아람의 저주인지를 밝히는 게 최우선이었죠.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다음 목표를 설정할 때에요. 아, 혹시 예전에도 이런 회의가 있었나요? 결정은 누가 내렸죠?”


루도가 콧잔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딱히 회의 같은 거 한 적 없는데. 그냥 각자 의견을 내면 다수결로 결정하는 거지. 너도 봤잖아 예전에. 방법론에 관한 건 대개 이칼롯이나 제리온이 제시했었고.”


“이 자리에 둘 다 없잖아. 중요한 얘기니까 건성건성 답하면 안 돼 루도.”


“음. 이칼롯이 없으면 디리터가 대장이야.”


레미나가 디리터를 향해 휙 시선을 돌렸다. 디리터는 한가롭게 귓밥을 파는 중이었다. 영 믿음이 안 가지만, 하여간 이 자리에서는 최고참이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디리터, 대장 대리로서의 의견을 묻고 싶어요. 앞으로 로샤단의 행동방침을 정했으면 하는데요.”


그러자 디리터는 능청스럽게 손사래를 쳤다.


“어어, 잠깐. 나 그런 거에 약한 거 알잖아. 난 말 그대로 일자무식 칼잡이라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공주가 정하지그래. 난 두말 않고 따를게.”


“아으으...그런 문제가 아니라..아, 이래선 뱅뱅 돌기만 할 뿐인데.”


그때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마리네가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회의에 참가한 뒤로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였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논의할 게 따로 있을까? 우리 목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데. 레이시와 안개송곳니를 남김없이 쓸어버리는 거.”


화사하던 분위기가 그의 발언에 제법 무거워졌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레미나는 찻잔을 다시 채우는 한편 루도와 마리네의 표정을 살폈다. 두 사람 다 평온한 모습이지만 이따금 어깨가 경직되는 것은 레미나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회의에 참가한 사람은 다섯이지만 실제로는 두 명이 더 있었다. 펠아람의 아이 제오프와 성검 에리안델. 각각의 목소리는 오직 루도와 마리네만이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무어라 속삭이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 길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이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알면서도 레미나는 자못 신경이 쓰였다.

디리터가 말했다.


“그야 그런데...막상 아는 게 없단 말이지. 본거지는 어디인지 자금줄은 무엇인지. 지금 카잘산맥을 넘어 브리토리스로 진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의 말대로 공세로 나가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여태까지의 양상은 일행을 노리고 오는 안개송곳니 전력을 어찌어찌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막상 레이시를 치자니 그가 어디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루도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굳이 찾으러 갈 필요 없어. 이번에도 알아서 올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아반케즈의 아이를.”


루도는 얼마 전 맞닥뜨렸던 맹수군단에 대해 설명했다. 동물들이 보여줬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성언전 자연의 군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아반케즈의 아이는 완벽하게 각성하여 레이시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과연 신의 아이가 정면으로 공격해 온다면 일반 정규군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루도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제오프가 언제나처럼 자신은 상관없다는 식의 말을 꺼낸 까닭이었다.

그때까지 턱을 괸 채 관망하던 유미르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바람을 쐬기 위해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 그녀는 방구석에 위치한 옷장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는 워낙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녀는 창틀에 기대어 선 채 말했다.


“그럼 이제 전면전이네? 우리 쪽에는 용맹한 천정기사단과 왕실기사단이 있잖아. 어때?”


루도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군대로 상대할만한 게 아니야. 아반케즈의 아이가 정말로 자연의 군대를 완성했다면...”


그는 말끝을 흐렸다. 만약 성언전에 보았던 자연의 군대, 그 반의 반이라도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천정기사단은커녕 리크나이츠와 아스트리카의 모든 군대를 끌어와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현시점에서 아반케즈의 아이는 무소불위의 무력이었다.

마리네가 말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아. 자연의 군대든 뭐든 권능에는 에센스가 필요해. 레이시가 공들여 전쟁을 조작한 것도 에센스를 최대한 아끼려는 심산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에센스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버틴다면..”


그러자 레미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말이 안 돼. 에센스가 바닥날 때까지 군인들을 사지로 내몰자는 말과 뭐가 달라? 몇 명이나 더 죽으면 되는데? 천 명? 아니면 만 명?”


“으음...그건 또 그러네. 내 생각이 짧았어.”


물론 가장 현실적인, 그러나 아무도 쉽사리 꺼내지 않는 방비책이 있었다. 다름 아닌 루도다. 적이 신의 아이를 내세운다면, 이쪽도 신의 아이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맹점이 존재했다. 우선 제오프가 에센스의 사용을 극히 꺼리고 있고, 설령 사용하더라도 펠아람의 에센스가 바닥을 보이는 지금 아반케즈의 아이를 당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또한 제오프가 각성하면 그 순간 루도는 육체의 소유권을 영영 잃고 말 테니 로샤단으로서는 결코 채택할 수 없는 작전인 셈이었다.

그때 유미르네가 마치 흘러간 기억을 되새기듯 건조하게, 한 문장을 입에 올렸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일행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루프리모의 아이는 어때?”


머릿속에 경종이 크게 한 번 치고 간 것만 같았다. 유미르네는 루도의 부릅뜬 시선을 능글맞게 넘겼다. 그녀는 어쩌면 펠아람의 아이보다도 불문율이라 할 수 있는 단어를 입에 담은 셈이었다. 마리네가 입술을 쓰게 핥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너도 알잖아. 우리에게는 람의 유지를 이어받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거.”


“아아...그 독수리는 없다? 글쎄,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이미 죽은 사람의 이상론이 아니라.”


루도와 마리네가 발끈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태양을 등지고 서자 날카로운 후광이 그녀의 실루엣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만큼 그녀의 상반신은 그림자에 가려 음울하게만 보였다. 루도는 짧은 순간 그녀의 동공이 약에 취한 듯 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멈추었어야 했다.

도발적으로 입술을 한 번 핥고서 유미르네는 말했다.


“인간이니 인생이니 하는 거 다 던져놓고 보자고. 솔직히 류이너스 교단이 람의 사상에 동조하는 이유는 뻔하잖아. 펠아람의 저주.”


“그야...”


“그런데 봐봐. 아반케즈의 아이는 저주가 아니랬지? 루도도 아니지? 어머나 세상에, 벌써 둘이나 꽝이 나왔네. 그럼 나머지 셋 중 하나가 당첨이라는 건데...그거 알아? 도박에서 33%는 무지무지하게 높은 확률에 속한다는 거.”


회의 초반의 화기애애함은 이미 짓밟힌 지 오래였다. 회의장에 모인 누구든 유미르네가 뿜어내는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연회가 끝나고 숙소에서 과거사를 토해내던 그날 이후로.

루도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름 차분한 어조였으나 그 역시 차츰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유미르네는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20%였을 때는, 뭐 좋아. 리스크를 감내할 만 했다고 치자고. 이제 33%인데? 펠아람의 저주 그거 무지막지하게 위험한 거라며. 그런데 왜 아무도 셋 다 ‘처분’하자는 말을 안 꺼내는 거야? 지금이야말로 그람이 필요한 시기 아닌가? 아니면 뭐야. 루도가 꽝이니까, 루프리모의 아이도 꽝일 거라는 뭐 그런 장밋빛 환상? 세상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틀린 말 했니? 우리 계산 잘 하는 공주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모두의 이목이 레미나에게 쏠렸다. 그런데 루도의 기대와는 달리 레미나는 착잡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빈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루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레미나...”


실제로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런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나머지 신의 아이는 발견되는 즉시 처리하자.’ ‘애초에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결국 류이너스 교단은 틀렸다. 어찌 신의 아이를 영원히 숨길 수 있단 말인가.’

그 중심에는 로드웰 후작을 중심으로 한 남진파 귀족이 있었다. 물론 레미나가 그들의 꿍꿍이를 모를 리 없었다. 류이너스 교단과 왕실을 비난함으로서 전쟁으로 실추된 자신들의 입지를 회복하고, 나아가 후환이 될 수 있는 신의 아이를 모두 처리하려는 것이다. 특히 로드웰 후작은 한 술 더 떠서 저주가 아닌 루도까지도 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암암리에 퍼뜨리고 다녔다.

문제는 이런 의견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었다. 레미나로서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애써 초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칼롯을 믿어봐야죠. 정보대로라면 펠아람의 저주는 베릴의 아이라잖아요.”


그러자 유미르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더 주저할 이유가 없지! 저주가 아니면 활용해야지. 지금 당장 아반케즈의 아이가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면서. 좀 맞서 싸워달라고 부탁하면 안 돼?”


타앙! 마리네가 거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이는 단지 약간의 주의를 끌었을 뿐, 유미르네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까지 우리가 한 고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왜 루도는 그래도 되고 걔는 안 돼? 왜 루도만 항상 개고생을 해야 되는데? 싸움 좀 할 줄 알아서? 람카디스의 계승자라서? 아니면, 펠아람의 아이는 이미 틀렸으니 가는 데까지 굴려보자 뭐 그런 심산인가?”


“비약하지 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 자꾸 너 혼자만 열을 올리는 건데!”


“그래야 공평하니까. 그동안 곱게 자라왔으니 이제 분담할 때도 됐잖아?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루도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어왔는지를 생각해봐. 진정한 친구라면 함께 해야지. 슬픔도, 고통도.”


참다못한 마리네가 의자를 박차며 소리쳤다.


“카이안은 우리와는 달라!”


그 한 마디가 날카로운 쐐기가 되어 심장에 꽂혔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현기증에 상반신이 앞으로 쏠려 벽에 부딪쳤다.

그 정도의 인기척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디리터는 둔감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옷장은 잠겨 있음을 확인하자 그는 완력으로 경첩을 뜯어냈다. 문을 열자 불청객의 정체가 밝혀졌다.

순간 일행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행여 소리가 새어나갈까 손과 발, 허리를 옷장 벽에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다. 이러니 루도나 디리터가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경악으로 부릅뜬 눈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 창백하게 질린 낯빛까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버린 소년의 얼굴과 마주하자 자리에 모인 전원이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오직, 유미르네만을 제외하고.


“카, 카이안...이건 그러니까...”


마리네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이것저것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듣고서도 진실을 외면할 정도로 카이안은 멍청하지 않았다.


“내가...루프리모의 아이라고?”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로샤단이 지키고자 했던 하나의 가치가 지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카이안은 ‘자각’했고, 이는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이었다. 바람이 불자 커튼이 스산하게 춤사위를 벌였다. 그에 따라 일행의 얼굴에 비친 음영이 시시각각 바뀌어갔다. 혼돈의 중심에서 유미르네는 웃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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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3) +15 15.08.20 1,068 26 20쪽
343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2) +11 15.08.09 1,070 35 23쪽
342 람의 계승자 - ep.7 - 바이올렛(1) +11 15.07.26 1,186 39 22쪽
34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4) +23 15.07.20 1,228 40 11쪽
34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3) +26 15.07.13 1,137 53 16쪽
33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2) +35 15.06.12 1,409 51 11쪽
338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1) +11 15.06.10 1,025 42 11쪽
337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0) +12 15.06.03 1,024 36 19쪽
336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9) +6 15.06.02 1,101 32 17쪽
335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8) +6 15.06.02 960 31 15쪽
334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7) +2 15.06.02 977 27 16쪽
333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6) +3 15.06.02 983 28 20쪽
332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5) +2 15.06.02 933 25 15쪽
331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4) +3 15.06.02 999 25 19쪽
330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3) +7 15.06.01 925 33 18쪽
329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2) +2 15.06.01 940 27 22쪽
» 람의 계승자 - ep.7 - 이 추하고 아름다운 세상(1) +3 15.06.01 886 26 23쪽
327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5) +6 15.05.31 941 29 13쪽
326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4) +1 15.05.31 860 23 19쪽
325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3) +2 15.05.31 928 25 22쪽
324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2) +2 15.05.31 956 24 19쪽
323 람의 계승자 - ep.7 - 후회없는(1) +1 15.05.31 788 21 20쪽
322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5) +10 15.05.30 986 34 21쪽
321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4) +5 15.05.30 884 26 19쪽
320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3) +6 15.05.27 1,028 30 18쪽
319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2) +2 15.05.27 756 28 15쪽
318 람의 계승자 - ep.6 - 사자의 심장(1) +3 15.05.27 779 29 14쪽
317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4) +1 15.05.27 907 26 18쪽
316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3) +8 15.05.26 907 23 27쪽
315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2) +2 15.05.26 778 24 23쪽
314 람의 계승자 - ep.6 - 시간싸움(1) +3 15.05.26 877 20 28쪽
313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5) +2 15.05.26 855 26 21쪽
312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4) +1 15.05.26 902 25 18쪽
311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3) +3 15.05.26 1,100 24 25쪽
310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2) +3 15.05.25 880 25 28쪽
309 람의 계승자 - ep.6 - 세실(1) +2 15.05.25 981 22 18쪽
30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1) +2 15.05.25 729 26 23쪽
307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0) +1 15.05.25 760 20 22쪽
306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9) +1 15.05.25 776 20 14쪽
305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8) +4 15.05.25 817 27 17쪽
304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7) +2 15.05.24 945 26 19쪽
303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6) +3 15.05.24 877 22 13쪽
302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5) +2 15.05.24 955 28 19쪽
301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4) +1 15.05.24 850 21 16쪽
300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3) +2 15.05.24 894 23 24쪽
299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2) +2 15.05.24 1,045 29 18쪽
298 람의 계승자 - ep.6 - 봄은 기다리지 않는다(1) +2 15.05.24 915 25 21쪽
297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5) +6 15.05.23 1,116 21 29쪽
296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4) +1 15.05.23 852 23 20쪽
295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3) +1 15.05.23 960 22 20쪽
294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2) +3 15.05.23 1,143 20 21쪽
293 람의 계승자 - ep.6 - 남매(1) +2 15.05.23 1,085 27 17쪽
292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3) +3 15.05.23 1,155 25 19쪽
291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2) +10 15.05.21 1,059 28 22쪽
290 람의 계승자 - ep.6 -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1) +2 15.05.21 1,121 26 19쪽
289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6) +2 15.05.21 1,088 26 25쪽
288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6) +3 15.05.21 948 24 27쪽
287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5) +1 15.05.21 1,009 26 25쪽
286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4) +5 15.05.20 1,024 29 21쪽
285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5) +3 15.05.20 942 27 21쪽
284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4) +3 15.05.20 919 24 14쪽
283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3) +1 15.05.20 1,056 27 24쪽
282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2) +3 15.05.20 759 23 19쪽
281 람의 계승자 - ep.6 - 토벌(1) +1 15.05.20 1,003 28 22쪽
280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3) +11 15.05.19 1,017 31 30쪽
279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2) +3 15.05.19 1,229 28 17쪽
278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5) +9 15.05.18 1,143 24 18쪽
277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4) +2 15.05.18 820 24 17쪽
276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3) +4 15.05.18 950 22 24쪽
275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2) +3 15.05.18 940 23 23쪽
274 람의 계승자 - ep.6 - 삼파전(1) +2 15.05.18 1,036 25 19쪽
273 람의 계승자 - ep.6 - 겨울, 설산, 그리고..(1) +2 15.05.18 983 22 19쪽
27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3) +1 15.05.18 1,232 25 25쪽
27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2) +2 15.05.17 1,022 29 25쪽
27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1) +1 15.05.17 877 20 22쪽
269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0) +1 15.05.17 978 23 23쪽
268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9) +1 15.05.17 1,051 24 20쪽
267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8) +6 15.05.17 923 26 22쪽
266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7) +5 15.05.16 1,001 27 22쪽
265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6) +1 15.05.16 897 23 26쪽
264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5) +2 15.05.16 1,038 30 26쪽
263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4) +1 15.05.16 1,014 25 24쪽
262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3) +3 15.05.16 871 24 25쪽
261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2) +2 15.05.16 937 24 26쪽
260 람의 계승자 - ep.6 - 갈림길(1) +3 15.05.16 1,074 32 31쪽
259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6) +8 15.05.14 1,076 30 22쪽
258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5) +7 15.05.14 922 23 11쪽
257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4) +4 15.05.14 1,043 22 20쪽
256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3) +3 15.05.14 905 23 31쪽
255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2) +5 15.05.14 1,009 25 27쪽
254 람의 계승자 - ep.6 - 제리온이 있음이라(1) +6 15.05.13 914 25 30쪽
253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10) +3 15.05.13 957 23 24쪽
252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9) +1 15.05.13 1,010 22 27쪽
251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8) +1 15.05.13 907 19 27쪽
250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7) +4 15.05.12 1,097 27 27쪽
249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6) +5 15.05.12 1,005 26 27쪽
248 람의 계승자 - ep.6 - 레인스터 방어전(5) +3 15.05.12 1,118 26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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