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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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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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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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왕 크사이(2)

DUMMY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사라위는 아슬라프가 자신을 즉시 체포하지 않자, 의도를 궁금해했다.


“무기는 내려놓고 얘기를 하자.”


아슬라프의 말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품에 있던 칼과 단도를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그가 의자에 앉자 아슬라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언제까지 남의 것을 빼앗는 해적질을 하고 살 텐가?”


“그건 내게 물을 게 아니지. 제국이 우리를 해적으로 몰았잖나.”


“크사이는 알렉세이1세에게 부역했다는 죄로 체포될 뻔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지만, 너는 아니잖나? 너는 자의로 해적 노릇을 하는 거지.”


“우리 가족은 크사이 전하께서 베풀어주신 식량 덕분에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분을 따르는 것 뿐이다.”


“해적이 되지 않고서는 은혜를 갚을 수 없나?”


“그분이 제국의 부자들의 물건을 훔쳐서 가난한 내게 시혜를 베풀었듯이, 나도 제국의 부자들의 돈을 마라 섬의 가난한 자들에게 분배하는 거다.”


“그건 지난 일이지. 요즘 크사이는 백성에겐 관심이 없고 측근들에게만 장물을 나눠준다던데?”


“전하께서는 측근을 챙기기도 바쁘시니까, 가난한 백성은 우리가 챙겨야 한다.”


아슬라프의 설득에도 사라위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어린 시절에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크사이 덕분에 살아났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남 말할 때가 아니지.’


아슬라프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크사이와의 전생의 인연 때문에 차마 공격하지 못하고 자꾸 기회를 주려는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위도 아슬라프도, 크사이와의 과거 온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있었다.


“오래전 일 때문에 앞으로 평생 그에게 충성한다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아슬라프는 사라위에게 과거보다 미래를 보라고 충고했다.


“네가 크사이에게 받은 은혜는 수년간 그의 밑에서 일하면서 충분히 갚았다.”


사라위는 고개를 저으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굶어 죽었을 거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크사이 전하 덕분이다. 그런데 어찌 배신하겠나.”


“과거에 그가 네 목숨을 살려줬다고, 인생을 모두 그에게 송두리째 바쳐야 하나?”


아슬라프는 그에게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크사이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키운 자식같은 크사이지만, 전생의 인연으로 봐주는 건 여기까지다.’


아슬라프는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그르치는 사라위를 보면서,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정말로 크사이에게 은혜를 갚고 싶은가? 그가 잘못된 길을 가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옆에서 진언하고 인도하는 게 은혜를 갚는 것이다.”


아슬라프의 말에 사라위는 고민스러운 듯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 보면 사라위도 마음 한 켠에 크사이의 행보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국의 부를 빼앗아서 마라 섬 주민들에게 나눠주는데, 어째서 주민들은 점점 가난해지는가? 자기 생산수단을 버리고 해적질에만 몰두해서 그런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해적을 그만두고 이전처럼 고기잡이와 농사로 살도록 하는 게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사라위는 수긍이 가는지 반박하지 않고 아슬라프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사라위는 말이 좀 통하네.’


아슬라프는 그의 심경의 변화를 눈치채고 말을 이었다.


“전에는 제국이 전쟁 때문에 피폐했지만, 지금은 변방이 안정되고 상업이 발달해서 열심히 일하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마라 섬도 지금처럼 고립되어서는 계속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둑질은 그만두고 제국과 정상 교역을 해야 식량 가격이 떨어지지, 지금처럼 밀매에 의존해서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야.”


생각에 잠겨있던 사라위는 고개를 떨구더니,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크사이와 해적들이 제국에 항복하도록 설득해라.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고, 약탈한 재물을 내놓고, 다시는 해적질을 안 하겠다고 서약하면 지금까지의 죄는 면해주겠다.”


아슬라프의 편지를 씹은 걸로 봐서 해적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사라위와 같이 생각하는 해적들을 크사이에게서 떼어놓아 적의 규모를 줄이기만 해도 큰 성과였다.


“언제까지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제국으로 밀항할 텐가? 어머니를 의원 가까이에서 떳떳하게 모시고 살려면 해적 노릇을 그만두는 게 낫잖아?”


아슬라프의 말에 사라위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어머니와 크사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이었다.


아슬라프는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어머니는 여기 머무는 편이 치료받기에 나을 테니, 너만 마라 섬으로 돌아가라. 어머니를 해치지 않고 보살펴드릴 테니, 네 힘 닿는 한 해적들을 항복하도록 설득해봐라.”


그를 풀어주겠다는 의미였다. 사라위는 못 믿겠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 했다.


“나를 돌려보내 주겠다고? 어머니는 남겨두고?”


“그래. 나를 못 믿겠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가도 좋다.”


파격적인 제안에 사라위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민에 빠졌다.

아슬라프의 말대로 그의 어머니는 먼 길을 배를 타고 오가는 것보다 포르디스에서 안정을 취하며 꾸준히 치료받는 편이 나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아슬라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슬라프 대공. 당신을 믿겠소.”


마침내 사라위는 결단을 내렸다.

아슬라프가 자신과 아무 관련없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을 보았기에 힘없는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지 않으리란 걸 믿었다.

포르디스에서 의원 옆에 사는 편이 그의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서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크사이 전하와 해적들을 설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소.”


그는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겠다며 의원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 돌아온 그는 아슬라프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설득에 실패한다면 나는 크사이 전하 옆에서 싸울 것이오. 내가 은혜를 입은 사람을 가장 위급할 때 떠날 수는 없소.”


고민 끝에 사라위는 착잡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아슬라프는 동요하지 않고 팔짱을 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니, 크사이의 옆에서 죽든 살아남아 어머니와 함께하든, 그건 너의 선택이다. 너의 선택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돌봐드리겠다.”


“고맙소.”


그는 울컥한 듯 목이 메어서 감사 인사를 중얼거리더니, 몸을 돌려 마라 섬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은쿤은 입을 헤 벌렸다.


“사라위를 잡았는데 풀어줬다고? 왜?”


“크사이를 설득해보라고.”


“그게 되겠어?”


“뭐 안 되어도 그만이고.”


아슬라프는 뭔가 결심한 듯이 단호하게 입술을 다물었다.


“말을 안 들으면 내가 직접 크사이를 잡아서 교수형에 처할 거니까.”


“드디어 공격할 마음이 생겼어?”


“우리도 충분히 훈련해서 준비되었으니까. 이젠 싸울 수 있지.”


사라위와 이야기하면서 아슬라프는 자신도 마음의 정리를 했다.


‘기욤을 보고 전생의 적에게 편견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찬가지로 전생의 친구의 인연도 놓아줄 필요가 있지.’


과거의 인정 때문에 미래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크사이를 놓지 못하는 사라위를 옆에서 보니, 자신도 크사이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것이 옳다는 게 명확하게 보였다.


“크사이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사흘 안에 항복하지 않겠다면 마라 섬의 해적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바다에 수장될 거라고.”


아슬라프의 최후통첩을 받은 해적들은 모여서 저마다 자기 생각을 떠들었다.


“사흘 안에 항복하라고? 최후통첩?”

“그냥 허풍 아닌가? 지금까지도 계속 편지를 보내서 항복하라고 했잖아.”

“싸우기는 겁나니까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거지.”

“이번에도 그냥 무시하면 돼.”

“계속 항구에 눌러앉아서 편지나 쓰라지.”


해적들은 낄낄거리며 아슬라프의 말이 허언이라고 조롱했다.


사라위는 그들에게 아슬라프가 빈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경고했다.


“내가 지난번에 포르디스에 갔을 때, 배에 식량을 싣는 걸 봤어. 그렇게 많은 식량을 싣는다면 곧 출정할 거야.”


그러나, 해적들은 아슬라프를 만만하게 보았다.


“그러면 우리도 싸우면 되지.”

“아슬라프 대공이라는 자는 육지에서는 명장이라지만, 해전은 처음이라던데? 초짜 선장은 마라 섬까지 항해해서 오지도 못해.”

“맞아. 아마 배의 절반은 길을 잃고 남쪽으로 떠내려갈걸.”

“나머지 절반은 태풍에 돛대가 부러져서 가라앉겠지.”


사라위는 고개를 저었다.


“노련한 선원과 병사를 모아서 반년 가까이 훈련했다던데. 쉽게 보면 안 돼.”


군터와 친분이 있는 해적 트셰니는 코웃음을 치며 사라위의 말을 반박했다.


“반년 가지고 되겠어? 우리는 바다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그는 비밀리에 군터로부터 아슬라프를 해치워달라는 부탁을 받았기에 전투에 적극적이었다.


“아슬라프 대공이 마라 섬으로 와준다면 고맙지. 배와 포로를 잔뜩 잡아서 몸값으로 한 몫 두둑히 챙겨보자고.”


트셰니의 말에 해적들은 싸우자고 소리쳤다.


“그래. 붙어보자! 마라 섬까지 오기도 힘들뿐더러 와도 지쳐서 기진맥진일 거야. 우리가 쉽게 이길 수 있어.”


“제발 싸우러 마라 섬으로 와달라고 우리가 아슬라프 대공에게 편지를 쓰자. 크하하핫.”


해적들이 기고만장해서 아슬라프를 비웃을 때 크사이는 팔짱을 끼고 말없이 있었다.

그는 포르디스의 정보원을 통해서 아슬라프의 해군이 훈련을 통해서 해전능력이 빠르게 향상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항해실력은 해적들이 우위였지만, 배 위에 올라탄 후, 백병전을 하게 되면 정규군 병사인 아슬라프의 해병의 무술 실력을 얕볼 수만은 없었다.


“사라위. 네가 보기엔 제국의 해군이 어느 정도 강한가?”


크사이의 물음에 사라위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저도 그들을 대단치 않게 보았습니다. 분명히 몇 달 전에는 배를 다루는 것도 서툴고, 신호 전달 체계도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포르디스에 가보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군선을 새로 건조해서 숫자가 늘었고, 대장선의 신호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숫자는 우리가 여전히 많지만, 저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에 임한다면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트셰니가 일어나서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거칠게 소리쳤다.


“그래서 항복이라도 하자는 건가? 제국과 내통이라도 한 거냐?”


사라위는 침착하게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군터 수상의 배를 호위해주더군. 제국인과 친하게 지내는 건 자네 아닌가?”


“뭐가 어째? 그건 정식 용병 계약을 맺은 거였다고.”


트셰니가 흥분해서 사라위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감히 나를 음해하다니!”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크사이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만해!”


그러자, 트셰니가 움찔하며 멈췄다.


“지금 이럴 때냐? 마라 공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 우리 마라 족이 제국에 짓밟힐 위기에 처했는데 우리끼리 분열해서야 되겠느냐?”


크사이는 해적들을 꾸짖으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너희들이 굶주릴 때 식량을 나눠줘서 자식같이 키웠거늘, 너희들은 서로 헐뜯고 싸우기나 하고. 너희들이 아버지같은 나한테 이러면 되느냐?”


그러자 해적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은 모두 크사이가 어려서부터 발탁해서 키운 자들이었다. 굶어 죽어가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서 해적으로 키웠고, 그래서 그들은 크사이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고 그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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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약스 도시연합 23.06.02 24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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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이달고의 오산 23.05.29 255 9 12쪽
154 마약상 딩기스 23.05.28 259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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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코카나무 농장 23.05.25 275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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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군터의 모함 23.05.22 280 9 13쪽
147 태풍(2) 23.05.21 276 10 12쪽
146 태풍 23.05.20 26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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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왕 크사이(2) 23.05.18 277 7 12쪽
143 해적왕 크사이 +2 23.05.17 29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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