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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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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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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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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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2)

DUMMY

아슬라프의 병사들이 다리를 건너 성문으로 들어갔다.


“혹시 함정은 아니겠지?”


앞에서 들어가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은쿤이 뒤에서 속삭였다.


“다 같이 죽자는 미친놈들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 없지.”


아슬라프도 말을 탄 채 다리를 건너서 성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표정의 주민들이 나와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모두 굶주림에 지쳐 눈이 퀭하고 유령과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눈빛이 나가서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거리에 쓰러져서 죽어가는 자도 있었다. 며칠만 더 지났으면 다수의 주민이 굶어죽었을 것이다.


광장에는 상점도 문을 닫고, 깃발도 모두 내려갔다. 모두 잡아먹었는지 길에는 개나 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썰렁한 광장에 도달한 아슬라프는 주민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슬라프 렌케 스타로비치 대공이다. 노헨그라드 공국과 스타로비치 공국의 영주이다. 이제 너희들도 내 백성이니 나를 따르면 평화롭고 안정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말을 할 기운도, 정신도 없을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증오할 힘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에는 각자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가 있고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는 잊고, 왕당파니 공화파니 싸우기 전에 먹고사는 문제부터 힘을 합쳐 해결하자.”


그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아슬라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를 따르면 굶주리지 않고 배불리 먹으며 살 수 있게 해주겠다.”


아슬라프의 말에 그제야 주민들은 귀가 쫑긋하며 반응을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식량을 판매할 테니, 필요한 사람은 사고, 돈이 없는 자는 빌려줄 테니 그것으로 식량을 사먹고 나중에 갚도록 하라.”


병사들이 싣고 들어온 수레의 포장을 걷자, 그 아래에는 빵과 밀과 보리 자루가 그득했다.


“빵이다!”

“먹을 거다!”

“설탕도 있어!”


아사 직전의 주민들은 눈이 홱 돌아가서 입에서 침을 흘리며 앞으로 몰려들었다.


“줄 서, 줄!”


은쿤이 도끼를 들어 밧줄을 깃대에 묶어 만들어놓은 줄을 가리켰다.

주민들은 우르르 줄로 몰려가서 돈이 든 주머니를 저마다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요!”

“이거 받으세요!”

“여기 돈 있어요!”


병사들이 돈을 받고 빵과 곡식과 설탕을 나눠주자, 받자마자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으음, 이거야.”

“살 것 같아.”

“아, 맛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빵과 설탕의 맛에 굶주린 시민들은 몸서리치며 행복해했다.


“천천히 먹어요. 빵은 많으니까.”


이완이 급하게 빵을 먹고 켁켁거리는 사람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광장이 빵을 나눠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저마다 입을 우물거리며 고소한 빵의 맛에 신음했다.


“으으, 너무 맛있어.”

“아, 너무 좋다.”


뇌에 포도당이 공급되고 급격하게 치솟은 혈당에 주민들은 모두 눈빛이 풀렸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슬라프 대공 만세!”


그러자, 다른 사람도 소리쳤다.


“아슬라프 대공 만세!”


모두가 리베루스 성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아슬라프가 식량을 거저 준 것도 아니고 판매했는데도, 돈을 빌려주고 비싼 값에 팔아 이득을 취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만세!”

“아슬라프 대공 만세!”


언제 싸웠냐는 듯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환영 인사에 아슬라프의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리베루스 시민들은 아슬라프와 전쟁을 했던 것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아슬라프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아슬라프는 환호하는 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시청으로 들어갔다.


리베루스의 영주로 취임한 아슬라프는 시정을 살펴서 급한 일들을 처리했다. 행정과 치안을 정상화하고, 전쟁으로 중단된 주민들의 생산활동을 재개하도록 도울 방법을 마련했다.


리베루스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스틴에 관한 일이었다.


황제는 그를 수도로 압송해서 공개 교수형에 처하고자했다. 빌헬름 백작을 그들이 처형했으니, 주동자를 똑같이 처형해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귀족들의 중론이었다.


아슬라프는 저스틴을 제국의 수도로 이송했다.

저스틴은 재판 끝에 교수형이 선고되었다.

저스틴은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한 듯이 담담했다. 귀족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호통을 치고 허세를 부릴 수도 있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형집행일 전날에 감옥으로 저스틴을 면회 온 사람이 있었다. 헤이즐이었다.


“헤이즐?”


저스틴은 깜짝 놀라서 창살로 다가왔다.


“당신이 올 줄이야.”


죽음을 앞둔 저스틴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분노에 찬 눈빛이 수그러들고 한결 차분해졌다.


“보고 싶었소.”

“나도요.”


그들은 창살 사이로 손을 잡았다. 저스틴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당신과 결혼하고 싶소.”


헤이즐은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생에요? 지금 결혼하면 안 되나요?”

“그건... 당신만 좋다면야.”


그들은 수도사의 입회 아래 창살을 사이에 두고 결혼서약을 했다.


“저스틴과 헤이즐은 부부가 되어 평생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신께 서약합니다.”


결혼 예물로 저스틴은 헤이즐에게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했고, 헤이즐은 그에게 작은 약병 모양의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선물했다.


다음날, 저스틴은 광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저스틴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병사들에게 양팔을 잡혀 거의 질질 끌려오다시피 해서 목이 매달렸다.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목격했다.


사형집행인은 저스틴의 시신을 내려서 관에 담았고, 군중은 해산했다.

장례업자가 관을 공동묘지로 실어가는 수레를 가져와서 사형집행인으로부터 관을 넘겨받아 실었다.


장례업자는 수레를 몰고 출발했다. 그런데 수레는 묘지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곳은 헤이즐의 병원이었다.


“말씀하신 사형수의 시신입니다.”


장례업자는 헤이즐에게 관을 넘겼다. 헤이즐이 특별히 조사할 것이 있으니 꼭 시신을 넘겨 받아오라고 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수고했어요.”


돈을 받은 장례업자가 떠나고, 헤이즐은 관 뚜껑을 열어서 저스틴을 살폈다.


“어때요? 숨 쉬고 있습니까?”


옆방에 있던 아슬라프가 들어왔다.


“아직 마취상태에요.”


헤이즐은 정신이 들게 하는 각성제를 저스틴의 입에 부었다.


그녀가 결혼 예물로 준 약병 목걸이 팬던트에는 일시적으로 몸을 차갑게 하고 숨을 멎게 하는 강력한 마취제가 들어있었다.

저스틴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처형장으로 나가기 전에 팬던트에 든 약을 마셨다.

아슬라프는 미리 사형집행인을 매수해서 정신을 잃고 몸이 차가워진 저스틴의 목을 맨 줄을 최대한 빨리 풀어서 관에 넣도록 했다.


“몸을 따듯하게 하면, 이제 곧 정신이 들 거예요.”


담요를 두른 저스틴은 얼마 후에 스르르 눈을 떴다.


“저스틴. 괜찮아요?”

“헤이즐.”


저스틴은 고개를 돌려서 두리번거리다가 아슬라프와 눈이 마주쳤다.


“왜 또 나를 살려준 거요?”


아슬라프는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레지스탄에서 나한테 언젠가 살려준 은혜를 갚겠다고 했지. 그 은혜를 갚아줬으면 한다.”


“그렇잖아도 리베루스에서 전쟁하면서 왜 내게 전에 살려준 은혜를 갚으란 소리를 하지 않는지 의문이었소.”


“은혜같은 걸 들먹이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니까.”


아슬라프는 그에게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제 남은 여생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할 생각 말고, 조용히 사는 것으로 은혜를 갚아주길 바란다.”


저스틴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당신 말대로 이제 정말로 조용히 살겠소.”


그는 아슬라프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얼굴은 아버지를 닮았지만, 성격은 딴판이군. 올레그 렌케 남작은 고지식한 양반이었는데. 당신은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사람이로군.”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나?”


아슬라프는 저스틴이 어떻게 렌케 남작을 아는지 궁금했다.


“어릴 때 만난 적이 있지. 우리 둘 다 알렉세이1세의 아주르 성에서 기사 연습생으로 무술 공부를 했거든.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땐 내가 귀족일 때라, 올레그 렌케를 평민 출신이라고 무시했거든.”


전생의 아버지와 현생의 아버지가 알렉세이1세의 아주르 성에서 함께 공부했다니.


“그럼 알렉세이1세도 만난 적이 있나?”


“당연하지. 그의 아들 레오하고도 친했지.”


이럴 수가. 저스틴이 레오하고도 친분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 알렉세이1세였을 때, 저스틴의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아주르 성에 기사 연습생으로 유학 온 귀족 자제가 많아서 모두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저스틴은 기억났다. 고집스럽고 반항적인 눈빛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지만, 어쩌면 아버지 줄리어스 백작의 환생이어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알렉세이1세가 살아남았다면 그에게 봉신했겠군.”

“아마 그랬겠지.”

“그러면 공화주의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아슬라프는 기막힌 인연에 할 말을 잃고 그를 쳐다보았다.

저스틴은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게오르그 후작이 당신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이 시원하더군. 사실 내가 그 자식을 해치웠어야 하는데. 대신 복수를 해줘서 고맙소.”


저스틴의 아버지 크로스 자작은 알렉세이1세의 봉신이었고, 알렉세이1세가 죽은 후 게오르그의 영지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게오르그는 알렉세이1세의 충신이었던 크로스 자작을 내심 못마땅해했다. 크로스빌에 이웃한 다른 영주가 크로스빌을 쳐들어왔고, 게오르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벌어진 전쟁이니 중재해야 마땅하지만, 모른 체했다. 오히려 크로스 자작과 그의 아들 저스틴에게 반역의 누명을 씌워서 영지와 작위를 몰수했다. 게오르그의 성격상 계획적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슬라프 대공. 당신은 적으로 만났지만, 내 목숨을 두 번 살려줬고 내 아버지의 원수를 대신 갚아줬소. 당신과 나의 인연이 보통은 아닌 것 같소.”


저스틴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슬라프가 그보다 우위에 있고, 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조차 포용하고 따르게 만드는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오. 고맙소.”


전생에는 아버지 줄리어스 백작에게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환생인 저스틴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으니 이유없이 가슴이 뜨거워졌다.


“벌써 담요를 벗으면 안 돼요. 몸이 다시 차가워지면 회복이 더디다고요.”


약을 정리하러 나갔던 헤이즐이 들어와서 저스틴에게 잔소리했다. 저스틴은 벗었던 담요를 다시 어깨에 둘렀다.


“이러고 있으면 내가 환자같단 말이오.”


“그래도 오늘 하루는 그러고 있어야 해요.”


헤이즐의 말대로 순순이 따르는 저스틴을 보면서 아슬라프는 예전의 부모였던 줄리어스 백작과 헬레나 백작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은 정략결혼을 했고,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했지만,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고집 센 줄리어스 백작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헬레나뿐이었다.

헬레나가 떠난 후, 줄리어스 백작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알렉세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재혼도 하지 않았고,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의 방도 그대로 놔두었다.


“내 말은 죽어라 안 들으면서, 헤이즐 말은 잘 듣는군.”


아슬라프가 저스틴을 놀리자, 그는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의사잖소.”


“그리고 아내잖아요.”


헤이즐이 행복하게 웃으며 저스틴의 어깨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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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제국의 전쟁 23.06.10 258 9 12쪽
166 종교개혁 23.06.09 229 10 12쪽
165 노헨그라드 제국의 황제가 되다 23.06.08 244 10 13쪽
164 비요른의 반란 +1 23.06.07 225 9 13쪽
» 저스틴(2) 23.06.06 217 10 12쪽
162 저스틴 23.06.05 216 9 12쪽
161 리베루스 포위전 23.06.04 221 9 12쪽
160 약스 도시연합(2) 23.06.03 234 10 12쪽
159 약스 도시연합 23.06.02 241 8 12쪽
158 혁명(2) 23.06.01 260 8 12쪽
157 혁명 +1 23.05.31 270 9 12쪽
156 이달고의 오산(2) 23.05.30 255 9 12쪽
155 이달고의 오산 23.05.29 255 9 12쪽
154 마약상 딩기스 23.05.28 259 10 13쪽
153 포획 작전 23.05.27 260 9 12쪽
152 의사 헤이즐 23.05.26 270 8 13쪽
151 코카나무 농장 23.05.25 275 9 13쪽
150 환관 이달고의 제안 23.05.24 277 9 12쪽
149 모함의 결과 23.05.23 280 10 13쪽
148 군터의 모함 23.05.22 280 9 13쪽
147 태풍(2) 23.05.21 276 10 12쪽
146 태풍 23.05.20 268 10 12쪽
145 해적왕 크사이(3) 23.05.19 270 10 13쪽
144 해적왕 크사이(2) 23.05.18 276 7 12쪽
143 해적왕 크사이 +2 23.05.17 299 10 12쪽
142 마라 섬의 해적(3) 23.05.16 30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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