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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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주선장
작품등록일 :
2023.03.31 22:19
최근연재일 :
2023.04.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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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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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1

DUMMY

하루 종일 찌는 듯한 여름날 오후 갑자기 하늘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곧이어 장대 같은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상훈이 사무실 벽의 시계를 바라본 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 다섯 시까지 약속 장소에 도착하려면 지금 회사를 나가야 하는데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훈의 입장으로서는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하루의 시간을 쪼개어 관리하며 움직이는 상훈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기상이변 이라 고나 해야 할 까, 아무튼 이렇게 되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도리밖에 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짙은 갈색의 서류 가방을 낚아 채듯 들고는 사무실 입구 쪽으로 걸어나가 출입구 옆에 놓인 파란 색 플라스틱 통에 넣어져 있는 여러 개의 우산 중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검은 색 우산이었는데 비가 올 때 쓰는 상훈의 우산이었다. 사무실 출입구를 지나 복도를 걸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선 상훈이 숫자 1을 누른 후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25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상무로 재직하고 있는 상훈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32세의 청년으로 그의 아버지는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소유주였다.


상훈이 급한 걸음으로 건물을 막 나서려 할 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김 노인이 상훈을 먼저 알아보곤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상훈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김 노인을 바라보았다. 짙은 회색 우비를 걸친 김 노인의 손에 상당한 부피의 내용물이 담긴 검은 비닐 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약속이 있어서요."


상훈이 짧게 말을 마친 후 김 노인이 옆에 서 있는 한 젊은 여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선영아 인사 드려 상무님이셔."


김 노인의 말에 선영이 상훈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선영의 맑은 눈 빛이 상훈의 두 눈에 들어왔다.


"할애비를 돕는다고 나왔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네요."


김 노인의 말에 상훈이 웃음을 지었다. 상훈이 김 노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가지고 있던 검정 우산을 펼친 후 처마 밑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차에 오른 상훈이 시동 버튼을 누른 후 천천히 주차장을 벗어나려 할 때 처마 밑에서 아직 비를 피하고 있는 김 노인과 선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날 여섯 시가 훨씬 넘은 시간까지 장대 같은 빗줄기가 끊임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거래처와의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상훈이 밤 늦은 시간까지 미루었던 일을 마치고, 주차장 한 곳에 자리 잡고 장사를 하는 김 노인의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근이 있는 날이면 사무실 옆의 숙직실에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잠을 자곤 하는데 그럴 때면 가끔 주차장에 한 곳을 빌려 장사를 하는 김 노인의 포장마차를 찾아가 좋아하는 소주며 맥주를 마시곤 했다.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기던 상훈이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것이 또 다시 비가 쏟아 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포장마차의 허름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탁자를 닦고 있던 김 노인이 환하게 웃음을 보이며 상훈을 맞이했다.


"오늘 일은 다 마치셨나 봐요."

"내일 계약서를 쓰기로 했는데 잘 될 것 같아요."


상훈이 의자에 앉으며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몇 달 간을 고생하며 공들인 계약이기에 상훈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은 싱싱한 해물로 안주를 삼아야겠는데 뭐가 있어요?"

"장어가 있는데 그 것으로 드릴까요? 오징어 회도 있고요."


김 노인의 말에 상훈이 장어로 달라고 말했다. 이 때 밖에서 '후두둑'하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가 나자 김 노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낮에 시장을 봐왔지만 몇 가지가 빠져 선영이를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상무님 죄송하지만 잠깐만 기다리겠어요? 선영이가 물건을 사러 슈퍼에 갔는데 우산을 안 가져가서요."


김 노인의 말에 상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어 구우셔야죠. 우산은 제가 갖고 갈 게요. 요 사거리에 있는 대농마트로 갔죠?"


상훈의 말에 김 노인이 약간 당황스럽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막 올려놓은 장어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옆의 통에서 우산 두 개를 꺼내어 상훈에게 넘겨주었다. 우산 하나를 펴서 쓰고는 포장마차를 벗어나 대농마트가 있는 사거리로 향했다. 하늘에선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포장 마차를 벗어난 채 오 분도 안되어 앞에서 누군가가 급히 비를 맞으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선영이었다.


"아가씨 여기 이 우산 받아요."


뛰어오는 선영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우산을 건네자 선영이 상훈의 뜻 밖의 출현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지금 바쁘시거든요."


선영이 상훈이 건네어준 우산을 받아들이고는 미안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상무님."


선영이 목례로서 상훈에게 인사를 한 후 포장마차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영과 같이 걸으면서 상훈이 이상하리 만큼의 어색함을 발견하곤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지금의 모습을 누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상훈이 애써 그런 생각을 지웠다.


옆에서 걷고 있는 선영을 바라보다가 상훈이 일부러 조금 발걸음을 늦추었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선영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 상훈과 선영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앞에서 걷던 선영이 고개를 돌려 상훈을 바라보았다.


"먼저 가세요. 걸음이 엄청 빠르시네요."


상훈의 말에 선영이 상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은 후 빠른 걸음으로 상훈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상훈이 선영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일부러 발걸음을 늦춘 것을 선영은 알고 있을까? 선영의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상훈은 갑자기 그 어떤 알 수 없는 가녀린 슬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건 무슨 느낌이지?'


잠시 동안 이지만 상훈의 이 느낌은 상훈이 포장마차에 도착할 때 까지 지워지지 않았다.


포장마차에 들어서자 김 노인이 상훈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잘 구워진 장어를 알맞게 자른 후 접시에 담아 내왔다.


"상무님 덕분에 선영이가 비를 덜 맞았네요."


"별 말씀을요."


상훈이 같이 내온 소주병의 뚜껑을 연 후, 병을 기울여 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오늘 숙직이고 내일은 일요일이니 한 번 맘껏 마셔보기로 하겠습니다.."


상훈이 김 노인의 옆에서 다른 안주를 요리하고 있는 선영을 힐끗 바라본 후, 잔을 들어 그 안의 소주를 자신의 입에 털어내었다.


상훈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무로 재직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상훈의 아버지인 지역구 국회의원 정창원 덕분이었다. 25층이나 되는 지역에서 제일 큰 상가의 소유자인 창원은 현재는 국회의원 신분이라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표면적이었을 뿐 창원은 여전히 '대성아이앤지'라는 회사의 실질적 대표였다.


국회의원에 당선 된 후 창원은 자신의 첫째 아들에게 상무라는 직함을 주고 회사의 모든 관리를 맡게 했는데 미국의 하버드를 나온 영재인지는 몰라도 상훈은 창원의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너무도 어렸던 상훈을 보고는 뒤에서는 상훈이 순전히 아버지 덕에 상무가 되었다는 뒷말이 간간히 들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까 상훈은 자신이 누리는 이 모든 물질적 풍요로움이 항상 기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 풍요 속에서 상훈은 그 어떤 죄 의식을 느끼지 까지 했다.


언제였을까....상훈이 초등학교 오 학년으로 기억된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로 접어들었을 때에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차동수였는데 중 키의 마른 체형을 가진 내성적인 아이였다. 말 수가 적은 동수는 편부 밑에서 자랐는데 당시 동수의 아버지는 지방을 떠돌아 다니며 노동을 하는 일명 노가다 꾼이었다.


먹을 것도 손수 마련하여 먹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밖으로만 돌고 있으니 동수의 영양 상태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동수가 사는 집은 다 쓰러져 가는 폐가 수준의 집이었는데 동수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사는 집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수는 갑자기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간 동수에 대해 상훈은 아무런 궁금증도 갖지 않았다. 상훈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 아이와 교류가 없었던 탓에 그럴 궁금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들었을 때 동수가 왜 전학을 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상훈아 너 그 소문 들었니?"


동수가 전학을 가고 며칠이 지났을 때 같은 반 친구인 성희가 상훈에게 동수에 대한 소문을 아느냐고 물어왔다.


"무슨 소문?"


동수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접하지 못한 상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성희를 바라보았다.


"너 동수 아버지가 혼자인 거는 알고 있지?"

"알고 있지. 소문이 그렇게 났으니. 동수 엄마는 평택에 사신다며."


상훈의 말에 성희가 잠시 숨을 몰아쉰 후 말을 이어나갔다.


"동수 아버지가 지난 주에 자살하셨대."

"자살? 아니 왜?"


상훈이 어린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동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에 다소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동수가 평택에 간 일 때문에 자살을 하였다고."

"이사를 한 일로 자살을?"

"우린 전에 동수네 집이 어디인지 몰랐잖아. 동수가 자기네 집이 어디인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으니 누구도 걔네 집이 어딘 줄 몰랐었지."


성희가 잠시 말을 끊더니 상훈을 바라보았다.


"너도 걔네 집이 어딘 줄 모르잖아."

"모르지 걔 하고는 친하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과도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 동수의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어느 날인가 동수를 아는 애들이 어느 허름한 집 근처에서 동수를 봤는데 거기에 산다는 게 들킨 것이 된 거지."


"동수가 평택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울고 불며 여기서 살기 싫다고 했는데 갑자기 전학을 간 것이 이 이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동수 엄마가 동수 아버지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며 동수를 데려갔는데 그 후 얼마 안 가 동수 아버지가 자살을 한 것이지."


성희의 말을 전해 들은 상훈이 갑자기 동수의 그 삐쩍 마른 몸 하며 핏기 없는 듯 창백했던 얼굴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 것보다는 동수의 평소 그 우수에 찬 눈빛이 더 생각났다.


그러다 기어코 더 큰 일이 동수에게 생겼다. 평택으로 전한 간 동수가 동수 엄마와 동거를 하던 남자에게 맞아 죽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문이며 방송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보도 되었는데 상훈이 그 뉴스를 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지는 그런 감정에 휩싸여 한동안 울음을 삼켜야 했다. 동수가 전학 가지 전에 좀 더 잘해 주지 못함에 대한 후회의 생각이 물 밀 듯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 후 상훈은 자신이 아버지 덕에 물질적으로 아무런 어려움을 격지 않음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끔 어른 거리는 동수의 그 우수에 찬 눈 빛이 상훈으로 하여금 더욱 그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오늘 선영의 그 눈 빛에서, 그리고 뒷모습에서 옛날의 동수라는 아이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동정의 마음이 아닌 그저 선영의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며칠 동안 포장마차의 문이 닫혀있는 것이 아무래도 김 노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포장마차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일을 보고 온 사이 포장 마차가 자취를 감추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물주인 아버지께서 주차장 한 곳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김 노인을 평소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자신의 아버지와 동향 사람인 지라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게 해 준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의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창원이 이때다 싶어 일사천리로 김 노인에게 포장마차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고지하였고, 김 노인은 어쩔 수 없이 포장마차를 옮길 장소를 구하기 위해 여러 날 동안 문을 닫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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