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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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핥기
작품등록일 :
2023.05.0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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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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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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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귀환 (11)

DUMMY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인도 캘커타 지역에 처음으로 던전이 생겨난 이후.

각국에선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국제헌터협회.

“어? 정석이 형!”

현재 삼성동 테헤란로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한국헌터협회의 건물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각성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아, 경준아. 오랜만이다.”

짧게 깎은 머리를 젤로 바짝 세운 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남자.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다가왔다.

“던전 들어가려고요?”

“길드장님 지시라서.”

“어딘데요?”

“석촌.”

“어? 거기 C급 아닌가? 형 레벨로는 낮은데···. 거길 왜?”

“모르지. 길드장님이 생각하시는 게 있겠지.”

“팀은요? 구성했어요?”

“파티원들이야 뻔하지.”

“아! 그럼 희수 누나도 오겠네요?”

갑자기 눈을 빛내는 김경준을 보며 박정석은 웃어 보였다.

벌써 3년째.

김경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헌터로 각성하면서 첫 레이드를 뛸 때 함께 했던 이들 중 하나가 최희수였다.

그때, 첫눈에 반했네 뭐네 하더니. 아직도 저런다.

풋풋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어느 쪽이든 보기 싫지만은 않았다.

박정석의 눈에는 김경준은 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순정을 간직한 남자였으니까.

“김경준!”

그때, 저만치서 누군가 부르고.

“아, 갈게요! 형, 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 다음에 보자.”

돌아서며 손이 떨어져 나가라 흔드는 김경준을 한차례 보곤 돌아서는 박정석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파티원이야 문제 될 게 없는데···.’

몇 년이나 함께 손발을 맞춰온 팀이니까.

‘짐꾼이라···.’

길드 차원에서 나가는 거라 필요하긴 한데. 그래도 생판 모르는 남을 데리고 가도 되나 싶어서.

겨우 C급 던전에 불과하지만, 팀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입장에선 살짝 부담이 된다고나 할까.

“뭐, 상관없으려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겨우 짐이나 좀 들어주는 정도인데.

그것도 던전 입구 초입에서 바로 돌려보낼 테니, 괜찮겠지 싶었던 것이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어느새 자신의 차례가 되어 접수처 안내원의 음성이 들려와 더 이상의 상념은 이어지지 않았다.

“레이드 신청하려고요.”

“길드에서 나오신 거죠? 여기, 서류 작성해주시고요. 저쪽 창구에 가셔서 인지세 내시고, 영수증 첨부해주시면 됩니다.”

수십 번 해본 일인지라, 박정석은 곧바로 서류를 받아들곤 같은 층에 있는 은행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말로 해도 되는 사람.

그리고···.

“뭐, 뭐야! 너! 네가 여길 어떻게?”

꼭 처맞아야만 말을 들어 먹는 새끼.

지금 눈앞에 있는 새끼는 후자다.

탓!

바닥을 가볍게 디디며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러곤, 온 힘을 담아 풀스윙.

퍼-억!

“크헉!”

공기를 가르며 휘두른 주먹에 놈. 서유성이 얼굴을 처맞고는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우당탕탕!

집기와 가구들이 부서지고.

그걸 보지도 않은 채로 한 놈이 말했다.

“듣기랑은 좀 다른데?”

더럽게 무게 잡긴.

픽하고 웃고는 그쪽으로 돌아섰다.

“깡패냐? 후까는.”

이마에서부터 눈 밑까지 사선으로 길게 흉터를 매달고 있는 놈. 딱 봐도 일반인은 아니다.

아무래도 각성자 같은데···.

그 옆에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는 놈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얼굴을 확인해두었고.

최일성. 고려일보 기자···같은 소리하네. 펜대를 지 좇인양 마음대로 휘두르는 개새끼가 무슨.

“애송이군.”

최일성 옆에서 무게란 무게는 다 잡고 있던 남자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제대로 된 남자들이라면 이럴 때조차도 지켜야 할 예의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대꾸하지 않고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런 내게서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는 듯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난 오철···.”

놈이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더 들어줄 이유 따윈 없었다.

비겁하게 습격하는 모양새긴 하다만.

각성자 대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는 괜찮잖아?

파밧!

연달아 바닥을 차올리며 공간을 건너뛰었다.

그러곤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쐐액!

뒤로 젖혀졌다가 뒤늦게 딸려온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파공성을 흘리는 순간.

놈이 홱! 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반응속도는 나쁘지 않다만.

팟!

그럴 줄 알고 미리 차올린 니킥이 놈의 복부를 노리고 치솟았다.

그 순간, 놈의 눈빛이 변했다.

탁!

두 손으로 내 무릎을 막고.

이어 현란한 움직임으로 두 손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리를 휘감아 잡는다.

“무례한 놈이군.”

하아···. 이래서 말 많은 것들은 일단 한 대 패고 봐야 하는 건데.

아직까지도 자기가 내 윗줄에 있다고 확신한다는 듯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걸 또 봐주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가 나란 놈이고.

씨익.

웃으면서 왼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놈으로선 선택해야 할 테지.

내 다리를 놓고 막던가.

아니면 서로 한 대씩 주고받던가.

그리고 놈처럼 기고만장한 경우엔···.

휘익!

다리를 놓고 주먹을 막아온다.

그 순간, 내 손목이 교묘한 방향으로 꺾였다.

“······!”

그래, 놀랐을 거다.

설마하니, 이미 타점까지 다다라있는 상태에서 주먹의 방향이 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말아쥐었던 손을 활짝 펴곤 놈의 가슴팍을 일단 한 대 후려쳤다.

퍽!

그때부터였다.

파바바바바박!

저쪽 세상에서도 대인 격투술에 한정한다면 각성자들조차 어쩌지 못한 속도였다.

수치로 말하자면, 초당 열 번을 가격하는 연타. 그걸 피한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파앙!

마지막으로 놈의 안면부를 힘껏 후려갈겼다.

빡!

어딘가의 뼈가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놈이 주룩 뒤로 밀려났다.

그걸 보며 난 웃지 않는다.

소리만 그럴 듯했을 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 날 보고 있는 남자.

그에 비해서 난···.

“하, 씨발.”

스윽.

역시 각성자란 말이지?

신체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싸웠음에도 제대로 된 치명타를 넣지 못하고.

반면 내 얼굴과 온몸에선 놈이 내지른 주먹질에 살이 터지고 피가 맺히면서 끔찍한 통증이 올라고 있었다.

뭐, 그거야 이미 예상했던 바지만.

그렇다곤 해도 기분 참 더럽달까.

“내가 샌드백도 아니고 진짜.”

게다가 이제 더 이상 선빵도 통하지 않는 상황.

놈이 여전히 거드름을 피우면 모를까.

더는 웃지 않고서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훔쳐내며 날 노려보고 있는 남자를 이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더욱이···.


타다다다다다닷!


어느샌가 뒤쪽. 그러니까 문 쪽에서 십수 명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어? 저거! 깡패들 아닙니까?”

우르르 몰려서 건물로 들어서고 있는 남자들을 보며.

“중령님! 우리도 올라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부하의 물음에도 김경철 중령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대신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며 말했을 뿐이다.

“잠시 대기.”

자신과 같은 판단을 했는지, 다른 곳에서 파견된 이들. 이를테면 국정원이라든가 길드 소속의 헌터들 역시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아마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알게 되기 전까진 함부로 나서지 않을 생각들인 거겠지.

그때였다.

쨍그랑!

···하며 건물 창문이 깨져나가는 게 보였다.

동시에 남자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김경철 중령은 이미 차 문을 열고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걸 본 부하들 역시 밖으로 뛰어나갔고.

그와 동시에 건물을 둘러싼 채 감시를 이어가고 있던 이들 역시 모조리 뛰어나와 건물 쪽으로 달려 나가는 게 보였다.



***



타다다다닥!


“어? 이건···!”

“팀장님!”

“뭐야, 저 새끼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기척만 봐서는 열 명이 조금 넘으려나?

다들 각성자인 거 같고.

“하아, 이게 문제라니까.”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때, 최일성이 소리쳤다.

“뭣들 해! 저 새끼 죽여버려! 어서!”

한껏 움츠려있다가 이제야 살아났다는 듯 기고만장해서 소리치는 모습이라니.

하도 같잖아서 한숨을 흘리고 말았을 때, 앞쪽에서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남자가 내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직까지도 일대일 따위의 로망을 꿈꾸긴 지금 상황이 더럽게 거지 같달까.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두한과 같은 일세대 주먹들이 낭만으로 똘똘 뭉쳐서 서로 치고받던 일제강점기도 아니니까.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는데, 혼자서 용쓸 이유가 없다는 거지.

봐라, 저 거들먹거리는 꼬라지를.

“주먹 좀 쓰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혼자 온건 좀 무모한 거 같은데.”

놈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서 나는 바지 주머니에 욱여넣고 있던 플라스틱병을 꺼냈다.

약국에서 흔히 내주는 용기.

항생제 따위를 아이들에게 손쉽게 먹이기 위해 쓰이는 반투명한 재질의 플라스틱병을 들어 올리곤.

“지랄 맞은 몸뚱이 같으니라고.”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저으며···.

곰돌이 모양의 병뚜껑을 돌려 열었다.

그러면서 떠올렸다.

박정식과 만났을 때, 짐꾼이라도 좋으니 던전에 들어갈 순 없겠냐고 물은 뒤에 물었던 일을.


“혹시 말입니다. 마석···. 하나 남은 거 있으면 파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얻어낸 마석이었다.

제길.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급해서 일단 구하긴 했다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달까.

그렇다고 그 비싼 돈을 주고 매번 사는 것도 문제고.

아무튼, 지금 상황은 어떻게 봐도···.

유도제 없인 힘들다는 건데.

쯧, 되도록 서유성을 비롯한 주모자들만 작살내고 빠졌으면 했지만, 역시 이렇게밖엔 안 되는 거겠지.

“후우!”

이거 먹으면 또 한동안 침대 신세를 면치 못할 텐데.

손에 쥐고 있는 플라스틱병. 정확히는 그 안에서 젤리 형태로 담겨 있는 붉은색 유도제를 보며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놈이 말했다.

“후회하게 될 거다. 생각 없이 여길 찾아온걸.”

그러더니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낸다.

하아. 역시나인가.

“썅!”

“씨발 새끼가!”

“죽여!”

각성자들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입이 지저분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하기야···.

저런 놈들이니, 제대로 헌터로 살지 못하고 이런 뒷골목에서 양아치로 전전하는 거겠지.

팟!

내게 처음으로 덤벼든 놈 하나를 그대로 매쳐서 내던지는 순간, 약병을 입에 물었다.

쨍그랑!

방금 던져버린 새끼가 창문을 깨고 떨어졌는지, 꽤나 요란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쭈-욱!

대신, 입에 물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 약병 안에 든 유도제를 쭉쭉 빨아먹기 시작했다.

쐐-액!

그러는 동안, 놈들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덤벼들었고.

휙! 휘익! 휘익!

놈들의 주먹과 발길질. 개중에 간간이 섞여 있는 짧은 날의 칼이라든가 하는 무기들을 피해내며 말했다.

“새끼드리 지짜! 씨바롬드라, 머글땐 개도 앙겅드리느거 모라?”

입에 병을 물고 있어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되고 말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놈들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도 아닌데.

쭈읍···쭙···.

쭈쭈바라도 빨 듯 계속해서 약병을 입에 물고 빨고 있는 동안에도 놈들은 날 봐줄 생각 따윈 없는 듯했다.

특히 보스. 처음 맞짱을 떴던 개새끼는 이제 인정사정 안 봐주겠다는 듯 펀지와 킥을 연달아 날리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려 각성자들이 떼로 덤벼서 쳐대는 다구리임만큼 아무리 내가 잽싸게 움직이며 대응한들 한 대도 허용하지 않을 순 없었다.

아니, 1분도 안 되는 사이 수십 대는 처맞은 거 같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그렇게 한참 동안 맞으면서도, 기어코 약병을 비워냈다.

툭.

빈 플라스틱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고.

“끄으···.”

몸을 웅크린 채로 신음을 흘리다가···.

후우우우웅!

온몸에서 힘이 느껴지는 순간, 기파를 터뜨렸다.


파-앙!


폭풍 같은 기세에 놈들이 나가떨어지는 순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슥.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훑어내면서 말했다.

“개새끼들이! 감히 다구리를 쳐?”


후---웅!


혈관 안에 흐르는 마나를 온몸으로 퍼뜨리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도망갈 생각 따윈 하지 마라. 이제부턴 내 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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