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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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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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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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하다(3)

DUMMY

시야에 허공을 수놓는 검붉은 핏물이 가득 담겼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왜?”

“흑랑님께서 당신을 도우라 하셨소.”


한쪽 어깨가 완전히 날아간 노인이었다. 온몸에 공력을 둘렀음에도 팔이 뜯겨나간 것이다. 그 뒤편으로 신체가 날아가고 관통된 무영방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혈사가 발출되는 순간, 자신의 앞에 뛰어들어 몸으로 가로막은 것이다.


“......겨우 그것 때문에?”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했을 뿐이오. 우리 그림자들의 무위로는 저 혈사귀(血社鬼)를 벨 수 없으니.”

“멍청한 선택입니다.”

“당신이 온전히 공력을 보존하는게 더 낫소.”


노인의 표정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팔이 통째로 뜯겨나간 격통이 심할 텐데도 얼굴을 찡그리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미 싸우면서 보았을테지만, 혈사귀는 피로 만들어진 실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오.”

“그럼 지금이 더 문제 아닙니까?”


주변을 힐끗 하자 바닥을 타고 줄줄 흐르는 핏물이 보였다. 적지 않은 양이다. 저것마저 혈사귀가 조종할 수 있다면, 피를 흘리는 것 자체가 커다란 손해이다. 상대에게 힘을 더해주는 꼴이니.


“괜찮소. 저자는 진정한 혈귀가 아니니. 도령귀(刀靈鬼)가 취한 피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오. 혈령쌍귀를 떨어뜨려 놔야 하는 이유지.”

“......뭐, 대충 이해했습니다.”


검을 고쳐쥐고 노인의 뒤편을 응시한다. 방금 전 발출되어 무영방도들의 몸을 꿰뚫은 혈사는 어느새 회수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강력한 일격이었다. 직접 막았더라면 큰 부상을 각오해야 했을 만큼.

그 부상은 자신이 아닌 무영방도들이 대신 짊어졌다.


“지금 움직일 수 있습니까?”

“무리없소.”

“제가 돌진하면, 양측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혈사를 막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오.”


두 번 되묻지 않았다. 기운을 끌어올리며 온몸에 진기를 순환시킨다. 지금이 기회였다.

무영방도들이 한번 몸을 던져 좁혀준 격차. 분명 혈사귀는 자신보다 강했지만, 방금의 일격에 적잖은 힘을 소모했다.

낭비할 수는 없었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눈에 밟혀서라도.


“지금.”


중얼거림과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길쭉하게 늘어났다. 쾌속의 보법. 검귀의 보법을 단 한걸음 만큼만 빌려온다. 허벅다리와 종아리의 세맥을 타고 기운이 거칠게 휘돌았다.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근육이 찢어지며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투가 끝나면 한동안 걸어다니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다지 비싼 대가는 아니었다.


쿵.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백연의 신형이 가속했다. 여태껏 보여준 적 없던 속도로.


“......!”


눈앞에 혈사귀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표정한 얼굴에 미미하게 경악이 서리는 것이 보였다.

감정의 변동. 백연을 자신보다 하수로 판단하고 있었기에 생긴 빈틈이었다. 백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매끄럽게 뻗어 나가는 검격. 몸의 가속에 더해 검이 반원을 그리며 힘이 배가 됐다.

찰나에 혈사귀가 반응해 혈사를 발출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서걱.


귀를 에는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혈사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다음 순간.


“크아아악!”


붉은 실이 칭칭 감긴 팔 한짝이 허공을 날았다.



※※※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쿵쿵 울려대는 소리가 기의 격렬한 충돌을 알려오고 있었다. 당장 뒤돌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러 가고 싶었지만, 소홍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후우.”


자신은 너무 약했다. 방주 대리와 백연이 전투하는 장소에 있으면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소홍은 달렸다.


아까 전 내려오며 구경했던 옥수의 거리 군데 군데가 불타고 있었다.

어둠을 따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요란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교차로에 멈춰선 소홍이 멈칫했다.


‘살문.’


가야하나? 분명 그자들은 강했다. 하지만 자신이 도움을 청하러 간다 해도, 그들이 도움을 줄 것인가.

잠시 입술을 짓씹으며 고민 하던 소홍은 이윽고 한 방향을 택했다.


곤륜산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믿어.’


백연이 이길 것이다.

믿어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 불러와야 할 사람들은 살문의 살수같은 작자들이 아니었다.

이 일이 끝나고 뒷수습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또는 적어도 한 손을 보태줄 수 있는 사람.


‘장문인.’


마음을 굳힌 소홍이 재차 달리기 시작했다.

구름 위의 곤륜을 향해서.



※※※



챙, 채앵!


쉬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검격이 공간을 점하며 혈사귀를 몰아붙였다.

기습적인 공격에 한쪽 팔이 잘린 혈사귀. 하지만 그럼에도 강했다.

혈사 수십 가닥을 뻗어 자신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면서도, 틈틈히 혈사를 뿌려 사방에서 역공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혈사들이 백연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흐읍!”


노인의 기합성. 동시에 허공에서 수많은 불티가 휘날렸다. 짧은 비도 하나로 백연의 좌측에서 날아오는 혈사를 전부 쳐낸 것이었다.


눈앞의 혈사귀가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좁혔다.


“날파리들이.”


중얼거리는 모습. 그와 함께 몸에서 강한 기파가 일렁였다. 혈사의 발출. 시작되기 전에 알 수 있었다. 귀찮게 하는 무영방도들을 한번에 쓸어버리려는 심산이다.


그러나 허공을 짓쳐 들어오는 은빛 검신이 먼저였다.


‘삼원검.’


곤륜의 잃어버린 검은 강했다.

자신이 예측했던 것 보다도 더욱.


새로이 창안해낸 검격과, 기존의 검격이 어우러져 허공을 수놓았다. 새로이 짜낸 구결들이 몸을 타고 돌며 검격에 맺힌 힘을 중첩시킨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에 운연동공으로 끌어올린 내력이 가득 담기고.


카앙!


쾌속의 검격이 혈사귀를 양단할 듯이 내리쳐졌다.

아슬아슬하게 모아낸 혈사로 검격을 간신히 막아낸 혈사귀. 무영방도들을 처리하기 위해 모으던 기파가 흩어졌다. 눈앞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너는, 뭐냐.”


잇새로 짓씹듯이 내뱉는 말. 무시했다. 대화에 호흡을 소모할 여력도 없었다.

손에 쥔 검을 그대로 옆으로 미끄러뜨린다. 혈사의 궤적을 따라 흘리듯이. 검에 담긴 힘이 채 소모되지 않은 상태다.

동시에 걸음을 내딛으며 몸을 회전시킨다. 검이 허공을 횡으로 갈랐다. 혈사로 보호되지 않은 옆구리. 부드러운 연격이었다.


“크윽!”


퉁.


순간 일어난 공력이 반발하며 자신을 밀어냈다.

혈사귀가 끌어올린 기파였다. 그 찰나 뒤로 훌쩍 거리를 벌린 혈사귀가 옆구리를 쥐고 흉흉한 눈빛을 일으켰다.


‘닿았는데.’


검이 닿는 순간 거리를 벌려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아쉬움을 삼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손에 쥔 검의 감각.


방금 전 일격을 내칠때 느껴진게 있었다.


‘아직 부족해.’


삼원검의 한계. 이 정도가 아니다. 더 나아갈 길이 분명 존재했다.


‘조금만 더.’


아슬하게 손에 잡힐 것 같은 심상. 아직까지는 완벽히 깨닫지 못했다.


검을 고쳐쥔 백연이 비척거리며 몸을 가다듬는 혈사귀를 응시했다.


“너, 너. 대체 뭐냐. 하오문에 이런 놈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혈사귀가 말끝을 흐리는 순간. 놈의 손이 움직이는게 보였다.

즉시 검을 뒤로 내치며 낮게 돌았다.


카각!


어느새 등 뒤를 점한 혈사가 수십 가닥이었다. 검으로 맞받아치자 불티가 흩날렸다.

쾌속하게 날아오는 혈사 가닥가닥이 검으로 내리치는 강격과도 같았다.


백연은 속으로 욕을 뱉었다.


말을 걸며 공격하는 것은 흔한 속임수이거늘. 저만한 고수가 쓸거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그때 눈앞으로 검은 형체들이 끼어들었다.


“가시오.”


카가가각!


그의 앞을 점한 무영방도 셋이 비도를 휘둘러 혈사를 막아주었다.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동시에 검을 거둔 백연이 즉시 뒤편의 혈사귀를 향해 도약했다.


“젠장, 젠장!”


혈사귀가 욕을 뱉어내며 하나 남은 손을 펼쳤다. 그 위에서 엄청난 양의 혈사가 발출되며 백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파바바박!


쏟아지는 혈사 다발이 전장의 화살 세례마냥 내렸다.

허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궤적은 아니었다. 땅을 짓밟으며 보법을 내딛자 산들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전신 혈도에 담긴 기운. 바람처럼 가벼웠다.


혈사의 비를 하나 하나 피해내며 달린다. 신기하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전부터 느껴왔던 감각. 몸이 가벼웠다.


‘운연동공의 효능인가.’


바람을 탄 것 같았다. 혈사의 연격이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 퍼부어내는데도.


“무슨 걸음이......!”


혈사귀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곧장 내리친 검격이 강맹했다.

처음 보았던 삼원검의 동작. 신웅이 선보였던 검격이다.


카앙!


그러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막혀들었다. 검날을 가로막은 혈사가 단단했다. 그렇게 힘을 빼놓았음에도, 기본적인 축기량의 차이가 심했다.

곧장 검을 연격으로 이어나갔다. 하나 하나 펼쳐지는 삼원검의 연격.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혈사귀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하, 하하핫!”


혈사 다발을 쥐고 조종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혈사귀.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만들어 주고 싶을 만큼.


“아직 그 검법, 완전히 익히지 못했군. 생각이 많아!”


대답하지 않고 검을 내쳤다. 허나 허공에 튀는 불티만 점점 늘어날 뿐이었다.

더불어 혈사귀가 그의 검을 점점 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지쳤나.’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점차 읽히고 있었다. 삼원검의 검격이.


“그만, 죽어라!”


쿵.


주변을 울리는 기파. 동시에 혈사귀의 움직임이 수세에서 공세로 바뀐다. 손에서 뻗어나오는 혈사 다발이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사방 공간을 점했다.

일련의 연결이 부드러웠다.


백연은 즉시 검을 내쳤다.

사방을 감싸오는 혈사를 쳐내 공간을 만든다. 이 안에 잡히면 위험하다.

허나 아까 전과는 달리 혈사는 그를 직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뱀처럼 주위를 움직이며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때 시야 저편에 그림자가 보였다.


쉼없이 허공을 격하는 거대한 도와, 그림자를 몸에 감싼채 비도로 도를 물 흐르듯 튕겨내는 흑랑.

그 순간, 머릿속에 불꽃이 스쳤다.


“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힐끗한 혈사귀가 뱀처럼 웃었다.


“방주 대리? 저놈은 너를 구해주지 못한다. 본인도 곧 목이 떨어져 나가게 생겼군 그래.”

“......아니. 그게 아니야.”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놓치고 있었던게 무엇인지.

흑랑의 싸움은 자유로웠다. 흑랑 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혈사귀도, 비도를 휘두르는 무영방도들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구결이 해체되고 합쳐진다.

삼원검. 구결과 초식이라는 것에 깊게 얽매일 필요가 없는데.

애초에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하지 않았나. 이건 검법이라기 보단, 검을 쓰는 묘리 자체에 가깝다고.


‘검법의 복원에 너무 집착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검을 느슨하게 내려잡는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삼원검의 검격을 전부 지워버린다.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것을 몸에 맡긴다.


검법을 펼치는게 아닌,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


“헛소리 말고 죽어라!”


혈사귀가 손을 움켜쥐는 순간, 검이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서걱.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수백 가닥의 혈사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혈사귀의 남은 한쪽 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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