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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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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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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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내다(5)

DUMMY

끼이익.

자그마한 객잔의 문이 열리고 흑색 장포를 걸친 인영이 밖으로 걸어나왔다.


“팔영(八影). 나와라.”


그의 뒤로 그림자가 훅 떨어져 내렸다.

객잔을 운영하던 노인이었다.

방주 대리를 향해 고개를 숙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얻고자 하신 것은 얻으셨습니까?”

“아니.”

“예? 혹 저들이 거짓을 고한......”

“그건 아니다. 다만, 거래를 좀 했지.”

“거래라 함은.”


방주 대리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재미있는 소년이었다. 그만한 외양의 연배에서 나올 언행이 아니다.

그의 안법으로 무공 수위를 살피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 하오문을 상대로 당당히 조건을 내걸고 가는 대담함. 자신이 지닌 패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모습.


하나같이 높이 평가할 만한 것들 뿐이었다. 하오문주의 직전제자(直傳弟子) 자리에 추천하고 싶을 만큼.


혹 반로환동이라도 이룬 것이 아닌지 잠시 의심할 정도였으나, 그 정도였다면 단신으로 옥수의 만금장 정도는 쓸어버렸을 테니 아닐 터였다.


“월영비도의 위치를 댓가로 세 가지 조건을 내걸더군.”

“......간이 크군요.”

“만금장을 옥수에서 몰아내는 것, 암야서고의 출입 자격, 그리고 곤륜파와 하오문의 동맹.”


노인, 팔영의 얼굴에 잠시 당황이 서렸다.


“말도 안되는 것을!”

“그래, 말도 안되지.”

“어찌하셨습니까? 혹 필요하다면 저들을 붙잡아서라도.”

“받아들였다.”

“위치를 캐낼테니......예?”


방주 대리의 시선이 잠시 객잔을 일별했다.

안에는 아직 소년 둘이 남아있을 터.

곤륜파의 제자들이라 했던가.


“어쩌면 곤륜에 교룡(蛟龍:이무기)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또 무슨 말씀인지......”

“팔영. 오늘따라 혀가 가볍군.”


노인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주제넘었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저들이 나오면 백야주루의 투기장으로 안내해주거라.”

“예.”

“저들이 거력부를 상대할 것이다.”

“......!”


방주 대리가 몸을 돌렸다.

그의 몸에서 천천히 기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반발로 장포가 거칠게 펄럭였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나는 지금 백야주루의 루주(樓主)를 만나러 갈 것이다. 네가 무영방도들을 준비시켜라. 계획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구나.”

“존명.”


웃음을 흘린 방주 대리가 가볍게 발을 툭 구르고.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녹아내리듯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



“백연.”


소홍의 표정이 전에 없이 단호했다.

졸려 보이던 눈이 정확히 백연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돼.”

“괜찮다니깐?”

“그래도 안돼.”


완강한 표정을 지은 사형이 손가락을 뻗어 스스로를 가리켰다.


“차라리 내가 해.”

“미안한데, 소홍 사형은 너무 약해서 안돼.”

“너도 마찬가지.”


소홍이 백연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검을.


“그거 써도 힘들어. 거력부는.”


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힘든거지, 못 이기는건 아니야.”


방주 대리의 발언으로 예측되는 거력부의 무력. 적어도 지금 백연 자신의 배는 될 것이다.

검을 쓴다 해도 격차는 크다.


그러나 싸움은 무공의 성취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백연은 그 사실을 지나치게 잘 알았다.


“걱정 마. 그리고 이게 최선인거 알잖아.”


백연이 방주 대리를 상대로 내건 세가지 조건.

겉으로는 세 조건 중 첫째가 가장 어려운 것처럼 군 방주 대리였지만, 두 사람 모두 조건의 핵심은 세 번째임을 알고 있었다.


‘만금장과의 전쟁은 어차피 늦으나 빠르나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조건에 내건것은 서로의 목표가 일치함을 보여주는 행위.

즉 표면적인 요구일 뿐이다.

시점을 앞당겨 곤륜파에 도움이 되게 하긴 하였으나, 하오문은 그 사실을 모를 터.


‘암야서고의 출입이야, 어렵긴 하지만 월영비도만큼 중요한건 아니고.’


하오문의 무공 서고인 암야서고.

하지만 그것은 타문파의 서고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험한 곳이라고 해야할까.


오랜 세월동안 하오문이 사들이고, 누군가가 팔아넘긴 세상의 수많은 무공에 관한 정보들.

그것들을 모아 분류해놓은 곳이 바로 암야서고이다.

다만, 그곳에 보관되는 무공 중에는 아무 쓸모 없는것도, 극히 위험한 것도, 구결을 일부러 꼬아놓아 함정을 파놓은 무공들도 존재했다.

그러하니, 어떤 무인이 그곳에 들어간다 하여 무언가를 쉬이 얻어내기란 어렵다.

그것을 방주 대리도 알기에 암야서고의 출입은 가능하다 한 것이고.


‘하지만 곤륜과 하오문의 동맹은 다르지.’


삼 년간 조건없는 동맹이라 하였다.

이 말은 곧 곤륜파가 하오문의 이름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곤륜파가 특정한 세력을 적으로 돌리면, 그 여파가 하오문에게도 미친다는 이야기.


‘위험 부담을 같이 짊어지는 것.’


거꾸로 하오문이 얻는 이득은 없다시피 한 거래다.

다 무너져가는 문파의 이름을 어디다가 쓰겠나.


그랬기에 백연은, 자신을 내건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라는 의미로.


그리고 방주 대리는 그것을 보고 백연에게 주문한 것이다.

백연에게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있는지 증명하라고.


“그래도 다행이야. 방주 대리여서.”


백연이 피식 웃음을 짓자 소홍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의미?”

“옛날마냥 노회한 너구리 한마리가 앉아 있었으면 협상하기 훨씬 어려웠을 텐데.”

“......너, 어리잖아.”


백연은 해명하지 않고 웃었다.


그가 아는 과거의 무영방주.

월영비도를 잃어버린 장본인.


‘그 늙은이였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마 협상이고 뭐고 탈탈 털려 이용해먹혔겠지.


월영비도의 위치에 대한 정보.

비싼 패였으나, 하오문과의 연을 만드는 것으로 쓰인다면 가치를 충분히 다하고도 남았다.


“가자, 사형.”


탁자에 놓인 가면을 들어올린 백연이 소홍을 불렀다.

한숨을 내쉰 소홍이 백연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이겨.”

“당연하지.”


가볍게 가면을 덮어쓰고 객잔 밖으로 걸음한다.

여전히 옥수의 밤거리는 더없이 화려했다.


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 앞에서 호법을 서듯 지키고 있던 노인이 뒤를 돌아본다.


“준비는 마쳤소?”

“뭐 준비할게 따로 있습니까.”


백연이 허리춤의 검을 가볍게 쥐었다.


“검 한자루면 그만이지요.”

“검객인가 보오.”

“검을 차고 다니잖습니까.”

“때때로 위장인 이들도 많아서 말이요. 젓가락 던지는 솜씨도 그렇고.”


노인의 눈길이 그를 힐끗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거력부를 상대한다 하던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신 있소?”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오?”

“이길 자신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지요. 왜냐하면......”


백연의 눈이 번뜩였다.

일순 가면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빛을 마주한 노인이 움찔했다.


“이겨야 하는 것이니까.”

“......무모하구려.”

“자주 듣는 소리입니다.”


백연이 웃었다.


걸음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백야주루가 객잔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탓이다.


화려한 주루가 눈앞에 가까워져 올 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밤중에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마침내 주루의 앞에 다다르자 노인이 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거력부는 두 자루의 도끼를 사용하오.”

“......그렇습니까?”

“하나는 손잡이가 길고, 하나는 짧지. 두개의 무게가 다른데, 대부분의 사람은 손잡이가 긴 도끼를 경계하지만 거력부의 진짜 무공은 전부 짧은 길이의 도끼로 펼쳐지오. 그쪽이 세 배는 더 무겁지. 검으로 받아낼 생각은 버리시오.”


백연이 노인을 쳐다보았다.


“이런걸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노부의 첫 제자는, 만금장과의 분쟁에 휘말려서 죽었소.”

“그랬습니까.”


충분한 이유였다.

백연은 가벼이 답했다.


“알려주신 것, 감사히 쓰겠습니다.”


노인은 더 이상의 말 없이 돌아섰다.

백야주루의 앞으로 다가간 노인이, 주루의 정문을 지키던 이들에게 뭐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 중 하나가 백연과 소홍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안으로 가시지요.”


가면을 한번 매만진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의 시간이었다.



※※※



투기장은 주루의 지하에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고강한 무인들이 싸울 수 있는 실내. 어려운 조건이다.

건물의 이, 삼층에서 싸우다가는 바닥이 허구한 날 부서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무공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렇다고 일 층에 투기장을 마련하면 일반적인 주루의 손님들을 놓치게 된다.

그러하니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단연코 지하였다.


‘그렇다곤 해도.’


땅을 파 그 속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공간이 크면 클수록 그렇다.


그리고, 지금 백연의 눈앞에 있는 공간은 상당히 컸다.


사각의 무대를 둘러싸고 배치된 자리들.

그곳에는 사람들이 물샐틈 없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가운데의 무대에선 두 무인이 살벌한 기세를 뿌리며 싸우는 중이었다.


“엄청 크네 진짜.”

“우리 수련장. 더 작아.”


소홍도 거들었다.

묘하게 올라간 목소리가 마찬가지로 놀란게 분명했다.


“확실히, 우리 문파 수련장보다 훨씬 큰데.”


백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그래도 지하에 만든 투기장보다 작은 수련장이라니.

돈이 생기면 전각 이전에 수련장부터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환경이 좋은 무공을 만드는 법. 암, 그렇지. 수련장의 크기는 곧 문파의 자존심이자 영혼......”

“백연, 긴장했어.”

“응? 아닌데?”

“헛소리, 많아.”


백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사람들이 바쁘게 눈앞을 오갔다.

한밤이 투기장이 가장 성행하는 시간이라 했던가.


‘그래보이네.’


눈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숫자만 어림잡아 기백여명에 달한다.

전부 투기장에 모여든 구경꾼, 도박꾼들이다.


하룻밤에 이곳에서 오가는 판돈만 은자로 수천 개.


‘이런 곳을 거력부가 틀어쥐고 있으니, 손해가 엄청나겠군.’


귀로 듣는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투기장에 내려오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만금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오문의 영역에 조금씩 밀고 들어오고 있었는지도 보였다.


“다음 차례에 곧바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를 아래로 안내해준 하오문의 무인이 다가와 속삭였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무대 위에서 벌어지던 전투도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격렬한 공방을 나누던 두 무인.

그러나 한쪽이 점차 속도가 느려지며 일방적인 공세를 받아내다가, 마침내 허벅지에 길다란 자상을 허용하고 말았다.


“크윽!”


신음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윽고 다리를 베인 사내가 완전히 쓰러지며 검을 땅에 꽂았다.


“내, 내가 졌소! 목숨만은!”

“죽여라!”

“죽여!”


이곳저곳에서 고함이 난무하고, 쓰러진 사내에게 다가간 승리자가 검을 휘둘렀다.

은광이 번쩍이고.


“내 봐드렸네.”

“......고맙소.”


한쪽 귀가 잘려나간 사내가 절뚝거리며 투기장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잠시 후 하오문의 사람들이 올라와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입을 열었다.

내력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재미있는 시간들 즐기셨습니까? 본디 다음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급하게 순서가 바뀌었다는 사실 알려드리려 합니다. 여러분, 드디어 이 주 만에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주만의 새로운 도전자.

현재 투기장의 가장 강한 이인 거력부에 도전한다는 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앉아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일었다.


“사형.”


무대 위에서 떠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백연이 소홍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형은 안법 쓸 줄 알지? 살수들도 안법을 배우니까.”

“응.”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싸우는 모습. 잘 봐둬.”


백연이 가면 사이로 소홍과 눈을 마주쳤다.


“이게 앞으로의, 곤륜의 검이 될테니까.”


소홍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력부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민 새로운 도전자는 바로, 가면의 검객!”

“그럼 갔다온다.”


중얼거린 백연이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호흡과 함께 그의 몸에서 내력이 풀려나왔다.

가벼운 발딛음으로 도약하자 순식간에 무대가 발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오, 보셨습니까? 경신법이 엄청나군요!”


환호와 소음이 귀를 어지럽게 채운다.

그 사이에서도 사회자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귀에 꽂힌다.

그도 상당한 고수인 듯 했다.


시야 저편에서는 소홍이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자, 그에 맞서는 것은 지난 반년간 모든 도전을 물리친 투기장의 괴물, 거력부!”


백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호흡을 내쉬는 순간, 시끄럽게 몰아치는 소음이 순식간에 의식 너머로 가라앉았다.


쉴새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지던 주변의 모든 정보가 지워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부 처리했다.

나머지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다시 눈을 뜬 순간, 무대의 반대편에 자리한 거인이 보인다.

한쪽 어깨 위로 걸쳐진 거대한 도끼와 허리춤에 매인 짧은 도끼.

거력부였다.


“너냐? 새로운 도전자가.”


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거력부가 비웃음 소리를 내었다.


“벌써 겁 먹은거냐? 난 또, 하오문이 쓸만한 대리자를 구한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아닌 멍청이가 돈에 혹해서 올라왔나 보군.”


백연은 조용히 호흡을 계산했다.

거력부의 숨소리, 말투, 근육의 수축과 팽창 정도.


‘호흡이 깊어.’


한번에 내력을 끌어올리는 형태.

근력을 믿고 몸에 쌓은 내력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가 내리는 형태의 무공인 듯 싶었다.

몸에 부하가 많이 가지만, 도끼라는 파괴적인 무기에 더없이 효과적인 전투 방식.


“자 그럼, 두 분 준비 되셨습니까?”

“난 준비 되었다. 더 볼것도 없으니 빨리 끝내고 가지.”

“검객 분은......?”


백연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하시고......시작!”


잠깐의 주저함도 없는 짧은 외침.


다음 순간, 백연의 머리 위에서 한줄기 벼락같은 그림자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력부가 코앞에 다다른 것이다.

길다란 도끼가 쾌속하게 떨어져 내리는 모습.


그 광경에 관객들은 동시에 탄식했다.

아직 검객은 검을 뽑지도 않은 것이다.


일초(一招)에 승부가 결정났다고 모두가 생각한 그 순간.


까앙!


쇳덩이가 부딪혀 울린 것 같은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수직으로 낙하하던 도끼의 궤적이 횡으로 꺾였다.


“......예의가 바닥이네. 요즘 사파 놈들은.”


백여년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

당황한 관객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느새 검을 뽑아든 가면 쓴 검객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것은 검을 뽑아든게 아니었다.


당연히 검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덮고 있는 뭉툭한 검은색 흑단목.


“......검집?”


빗겨나간 도끼를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 거력부.

이윽고 그가 백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놈......검을 뽑지 않는거냐?”

“아, 이거?”


검집이 씌워진 검을 힐끗한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잘 안뽑히네. 아쉬워라.”


모욕이었다.

검객이 검도 뽑지 않고 전투에 임하는 것.

명백히 거력부를 자신 아래로 낮잡아본다는 말투와 행동.


그에 분노한 거력부가 눈을 부릅떴다.


“벌레같은 새끼. 토막내 죽여주마!”

“어이쿠.”


중얼거린 백연이 길다란 도끼를 꼬나쥐고 달려오는 거력부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백연은 검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후우.”


짧게 내뱉는 호흡.

동시에 늘어뜨린 백연의 검끝은, 분명 땅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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