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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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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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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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곡(龍骸谷)(7)

DUMMY

※※※



발끝에 닿은 대지가 서서히 무르게 변한다. 혈마의 미궁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거한의 발치에 놓인 땅이 진탕 젖어버린 흙마냥 조금씩 가라앉는다.


화기(火氣).


불꽃을 다루는 존재.


천하에 가장 파괴적인 힘이다. 오로지 먹어치우고 불태우기를 반복하는 뜨거운 기운은 자칫하면 주인을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강대하고도 순수한 힘 그 자체.


쩌저적-


대지가 갈라진다. 우호법의 숨결에 피어오르는 열기가 허공에 짙은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이제는 머리칼과 수염마저 작열하는 화염으로 화해 있다.


검제에게 잘려 본래는 없어야 할 좌수(左手)마저 일렁이는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속에서 화염으로 이뤄진 손의 형상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런. 저건......”


풍백이 곤란하다는 듯 뇌까렸다. 어느새 흐릿하게 일어난 바람을 손에 쥐고서였다. 금방이라도 무형검의 폭풍을 일으킬 듯이.


“많이 강해졌습니다.”

“......며칠전에 성도에서 보았을때보다도 더 불이 붙었군.”


검왕이 말을 얹었다.


담담한 어조 속에 나직한 곤란함이 깃들어 있었다.


우호법 화천귀제의 염혈신공(炎血神功).


그 기반이 힘을 끝없이 부풀려 나가는 마공인데, 오랜 시간 불꽃을 일으킬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것을 불태워야 하는 까닭에 쉽지는 않은 일이나, 만약에 충분한 시간과 힘을 들여 화염을 한계치까지 부풀릴 수 있다면.


“예열이 거의 끝에 다다랐네.”


그 힘은 가히 초월적인 위에 오르는 바.


예열하기 전의 우호법과는 천양지차다. 과거 현천검제와 우호법이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신공의 힘에 있으니.


“이 이상 가면 저 불꽃이 완성되네. 그리 되면 노부의 검으로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군.”


그때부턴 인세의 재앙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검성 또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끊어내고 감이 옳겠습니다.”

“......종리군이 이곳에 있다 했지?”

“예. 검왕께서는 우선은 힘을 아껴주십시오.”

“알겠네.”


쿠구궁-


화천귀제가 한걸음을 내딛었다. 두 검객을 마주본 거한이 씩 이를 드러내었다.


“전력(全力)을 다해봐라. 그러지 않고서는, 잠시도 버틸 수 없을테니.”


찰나가 수천으로 쪼개졌다. 타오르는 손을 내미는 화천귀제. 동시에 그의 육신을 따라 거친 화염의 폭풍이 삽시간에 태양처럼 타오르고, 작열하는 열기가 사방 모든것을 녹여내리기 시작했고.


[수라겁화(修羅劫火).]


화르르르르르륵!


거대한 육합전성이 울림과 동시에 먹먹한 화염의 소리가 귓가를 휩쓴다. 한순간 시야 전체를 가득 채우는 강대한 화염의 폭풍.


이 미궁 전체를 녹이고 불태울 것만 같은 파괴적인 화염의 파도가 끝없이 몰아친다. 두터운 벽처럼 겹겹이 쌓인 화염의 진기가 미친듯이 날뛰며 미궁의 공동을 가득 채우고 부풀어 오르는 것이 찰나.


별안간 화염의 벽 한켠이 큼직하게 일렁였다.


“조금 덥군 그래. 이만 불을 좀 꺼주지 않겠는고.”


동시에 태연한 중얼거림이 화염의 폭풍을 찢고 더없이 선명하게 사방에 틀어박힌다. 가히 초월적인 육성에 담긴 태연한 어조와 함께 돌연 시야에 푸른 빛살이 명멸했고.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짙푸른 검기가 단 한번의 검로로 화염의 폭풍을 양단했다. 한손은 여상히 뒷짐을 진 채로 푸른 검을 그어올린 검왕(劍王)이 뇌까렸다.


“이제 좀 낫도다.”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남궁의 절기가 어떤 전조도 없이 솟아났다. 단번에 삼장(三丈:9m)이 넘는 길이를 베어버린 괴이한 검격. 그와 함께 찢어진 화염의 폭풍 사이로 흐릿한 검의 형상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폭풍같은 바람과 함께였다. 한자루 무형검을 쥔 풍백이 가벼이 전진 보법을 내딛었고.


[풍신(風神).]


콰아아아아아아앙!


화염의 폭풍을 후욱 찢으며 솟구친 화천귀제의 작열하는 권격과 풍백의 무형검이 충돌했다.



※※※



파앙!


곧장 절세 보법이었다. 땅을 박차는 속도가 극도로 쾌속했는데, 악예린이 내딛은 보법 여파로 대지를 따라 둥글게 옅은 파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찰나에 십여장이 넘는 거리를 벌렸다. 즉각적으로 흑의(黑衣)의 사내에게서 멀어진 악예린이 창을 꼬나쥐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


흑색 장포를 걸치고 장궁을 든 사내는 악예린을 쫓지 않았다. 명백히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잠깐 훌쩍 물러난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더니, 이내 거대한 장궁을 등에 메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뿐.


그 광경에 악예린이 미간을 좁혔다.


몹시 기이했다. 절세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악가의 뇌룡이라고 칭했다. 그리고는 이곳이 그녀가 발을 들여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대체 누구지?’


소녀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허나 사내는 이미 이쪽에서 관심을 끈 듯이 공동의 가운데로 거침없이 걸어갈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악예린이 묘한 기시감을 느낀 것도 찰나.


공동 중앙의 석좌에 다다른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


악예린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몰라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이 미궁을 만든 혈마 본인의 육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저자가 입고 있는 것이 백연이 찾는 적혈보의라는 사실 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악예린은 물론이고, 이 미궁과 저 활을 쏘는 사내까지 포함헤도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과 영성을 흩뿌리고 있는 옷자락이었으니까.


쉬이 넘겨줄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때문에 악예린은 즉각적으로 창격 구결을 끌어올렸으나, 그것을 쏘아내지는 못했다.


“후회할 짓은 말도록.”


쩌적-!


찰나였다.


그녀를 향해 힐끗 고개를 돌린 사내가 가면 아래로 낮은 시선을 던졌는데, 삽시간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감각이 일었다. 동시에 악예린은 곧바로 깨달았다.


‘괴물.’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의 격차.


지금의 그녀로써도 어찌 해볼 방법이 아예 없는 괴물이다. 창을 던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히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


이곳의 모든 영역이, 저 사내의 범위 안이다.


‘대체 어디까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창사로써 악예린은 간합을 조절하는 것에 탁월한 자질이 있었고, 그만큼 상대방의 공격권을 파악하는 것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떠한 가늠도 되질 않는다. 그녀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공동 안에서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사실 뿐.


그녀의 감각이 쉴새없이 경종을 울린다. 눈앞의 저 사내에게 사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저 궁격의 범위는, 작게 잡아도 여기를 비롯한 산맥 전체를 가뿐히 아우를 터.


무결(無缺)에 가까운 초월적인 무인이다.


동시에 악예린의 머릿속에서 두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첫째는 군문 악가로써 당연히 알아야 하는, 당금 무림에 알려진 유일한 활의 괴물. 천뢰시 종리군의 이름.


그리고 두번째는 비무제전의 마지막 날, 신개를 쫓아 날아오다가 신승의 진기에 막힌 강대한 검은 궁격.


그 두가지 기억이 악예린의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진동에 대기가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번쩍 시선을 들어올린 악예린의 눈에 움직이는 궁귀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석좌의 코앞에서 손을 뻗고 있는 모습.


동시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반발력으로 인해 대기가 떨려오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궁귀의 손이 혈마의 시체 가까이에 다가갈수록 점차로 느려진다. 그와 함께 어느 순간 사내의 손 전체를 따라 검푸른 호신강기가 물결처럼 일었고.


쿠르르르르르르릉!


궁귀의 호신강기와 혈마의 시체 주변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힘의 잔재가 일으킨 마찰에 투명한 벼락줄기 수십가닥이 무채색으로 명멸한다. 가히 초월적인 반발력이 공동 전체를 무너뜨릴 듯이 울리는 것이 찰나.


별안간 궁귀의 손을 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쩌억 깨져나가며 그 왼손이 점차로 붉은 기운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혈마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간 길다란 손가락은 옷자락에서 한자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우뚝 멈춰섰고.


쩌저저저저저정-!


무언가 박살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궁귀의 손이 시뻘건 기운에 휩싸였다. 악예린조차 놀라 숨을 훅 들이키는 사이 고개를 살풋 저은 사내가 한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공동 전체를 울려대던 거대한 진동이 즉각적으로 멈추었다.


남은것은 느릿하게 대기를 따라 퍼지는 반발의 잔향뿐.


혈마의 시체는 이전과 같았다. 검은 화살이 가슴팍에 틀어박힌채로 가만히 석좌에 앉아있는 풍경.


허나 궁귀는 아니었다. 천천히 치켜올린 그의 왼손은 이전과 전혀 다른 행색이었다.


본래 거칠지만 커다란 흉은 없던 손 전체가 시뻘건 진기 여파로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핏물이 새어나오다 못해 다 멎어버린 형상. 왼손부터 팔목까지가 반쯤 불타버린 듯이 일그러져 있었는데, 혈마의 시체 주위로 둘러쳐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일으킨 격렬한 반발 때문인 듯 했다.


‘보호되고 있어.’


어떤 원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랬다.


적어도 이 무덤의 주인은 누구에게도 쉬이 적혈보의를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것은 눈앞의 무결하다 느껴질 정도로 초월적인 사내마저도 예외가 아닌 듯 했다.


악예린은 속으로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머릿속으로 하나의 검격을 떠올렸다. 희게 떨어지는 백연의 일검이라면, 저 보이지 않는 장막마저 갈라낼 수 있을까.


“아직은 때가 아니군.”


한편 홀로 선 궁귀는 나직히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는데, 어느새 치켜든 손 위로 진기가 휘돌며 빠른 재생이 이뤄지고 있었다. 천하 일절의 회복 속도. 초월에 이른 무인들은 베어도 쉬이 죽지 않는다. 찰나의 틈만 주어진다면 무사하게 회복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들이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은 흔치 않은 것이다. 물론 수라궁주쯤 되면 가장 압도적인 재생의 공능을 지니지만, 초월에 이를 정도의 무인이라면 대부분 저 정도의 재생력은 지니고 있으니.


저벅.


삽시간이었다. 금새 궁귀의 왼손 형상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을 되찾았고, 다음 순간 그는 다시금 악예린의 앞에 서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악예린도 후퇴보법을 밟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리를 벌려도 의미가 없었다.


단순히 보신경만 따져도 그녀가 명백히 압도당한다. 간합조차 전부 눈앞의 사내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거리를 좁히고 벌리는 것도 사내의 마음이었는데, 멀어지든, 가까워지든 몇합이나 겨룰 수 있을지 예상조차 어려웠다.


‘아마 멀어지면 세 합 정도까지. 가까우면......그래도 십여합일까.’


궁격을 두번 까지는 어찌 쳐낼 수 있을것 같다는 소리였다. 반면 근접전은 좀 더 나았다. 차라리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것이 악예린에게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다.


허나 궁귀 또한 그녀에게 손을 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변을 스윽 살피더니, 그대로 바닥에 가죽신의 앞코를 툭 내리찍는 동작이 가벼웠다.


쿠궁-


그와 함께 가히 신기에 달한 발경력 여파가 대지를 파고들었다. 돌바닥이 저절로 쩌적 갈라지더니, 지반의 일부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솟아오르며 평평한 바윗덩이가 대지 위에 생겨났다.


눈으로 보고도 당황스러운 진기 운용이었으나 사내는 그 바윗덩이 위에 자연스레 툭 걸터앉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입을 열어 툭 던지듯 말한다.


“악가의 여식. 왜 작금의 세태에 북방에 와 있는 것이지?”

“......”

“황실의 명 아래 군문 악가는 북경을 수호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무심히 묻는 음성.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정론을 툭 뱉는 듯한 어조였는데, 의문이나 궁금증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말 그대로 그녀의 행적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다.


“지금 북경의 상황을 아나?”

“......누구인가요? 당신은.”


악예린이 되물었으나 가면을 눌러쓴 사내의 시선은 더욱 깊게 침잠할 따름이었다.


“팽가주가 죽고, 팽가의 남은 가솔들과 악가의 신창이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북방의 기마군세가 강대한데, 혹 검은 성도의 아륵탄을 암살해 북방과의 전쟁을 끝내려는 목적으로 왔나?”


그녀의 질문이 들리지도 않았다는 듯이 할 말만을 늘어놓는 모습.


“네가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으나, 만일 그렇다면 허무맹랑한 꿈은 깨라고 말해주고 싶군. 황실에서도 수십년 넘게 이룩하지 못한 일이니.”

“황실의 일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은......대체.”

“뇌룡 악예린. 네가 무엇을 좇아 북방에 왔는지는 묻지 않겠다. 또한 네 가문에 호의를 지니고 있으니 말해주도록 하마.”


턱.


사내가 손을 뻗어 쓰고있던 가면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태연한 손짓으로 벗어내기까지, 악예린은 미동도 할 수 없었다.


“황실에 더 이상 군문의 장수들은 남아있지 않다. 정확히는 북경에는 남아있지 않지.”

“......예?”

“군문의 힘은 다른 것을 위해 이미 안배되었고, 북경을 수호하기 위해 지원을 와야 할 황실의 사방장군(四方將軍)은 자리에 없다.”


툭.


검은 가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흩날리는 머리칼 아래로 한없이 짙은 흑색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강직한 무골의 얼굴. 짙은 눈썹과 단단한 턱선. 그리고 강철같은 눈매가 눈에 들어온다. 짧게 붙여 자른 수염마저 그의 성정을 나타내는 듯 보일 정도의 사내.


악예린이 아는 얼굴이었다.


군문 악가로써 한번쯤은 마주치지 않을수가 없는 북방의 도지휘사. 장성을 홀로 수호한다던 북녘의 별.


“지금 북경을 공격하는 기마군세만이 전부가 아니다. 신주흑림을 비롯한 사도 무림의 세력마저 북경으로 향하는 중이지. 허나 그럼에도 황실의 지원은 없다. 그러하니.”


천뢰시(天雷矢) 종리군이 담담히 말했다.


“이대로 두면 섬뢰신창(閃雷神槍) 악위진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



※※※



푸른 바람이 치솟았다. 칼날처럼 높이 솟은 산맥 위로.


청명한 여름날이다. 푸르게 산을 채운 초목들이 파릇한 생기를 자랑하다 못해 길마저 침범하여 마구잡이로 덮어버리고 있었는데, 곤륜으로 오르는 산길만큼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백에 이르는 탓이었다.


난세의 청해.


이곳의 뭇 민초들이 의지하는 이름은 이제 곤륜파인 까닭이다.


곤륜파의 무인들이 쉴새없이 옥수를 비롯한 주변의 마을들을 지키기 위해 나도는 것은 물론이요,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민초들이 곤륜산으로 걸음한다. 그에 더해 상행과 여러 세력들 또한 매일 같이 곤륜파의 산문을 두드리니, 자연히 산길이 단단히 다져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지독히 높은 길이다. 아주 안전하다고만은 할 수가 없었는데, 그 탓에 곤륜파의 산길 곳곳에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누워 오가는 길을 살피는 무인들이 있었다.


백자 배 아이들.


보신경 수련과의 병행이다. 기척을 감추는 연습도 함께인데, 화신풍을 제대로 익혔다면 이 정도는 모두에게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 사람이 단휘나 소홍 정도에 이른다면 더욱 더 그렇다. 바람결 같은 기척과 뛰어난 기감.


아무도 그들의 눈을 쉬이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야만 옳았다.


“......음?”


단휘는 문득 몸을 일으켰다.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던 나뭇가지 아래로 푸른 잎사귀 하나가 느릿하게 떨어져 내렸다.


“방금 무슨......”


뇌까리는 순간 단휘의 옆에 유령처럼 솟아난 기척. 삽시간에 그 옆에 선 소홍이 미간을 좁히며 단휘를 바라보았다.


“지나갔어. 누군가가.”

“젠장.”


그와 함께 두 소년의 몸이 즉각적으로 흐릿해졌고, 다음 순간 그들은 곤륜파 산문 근처의 나뭇가지 위에 올라 있었다. 언제든지 검을 뽑을 채비를 한 채인 두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산문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네 명의 사람.


곧장 눈에 띈다. 하나같이 독특한 복장을 했는데, 그것이 그냥 평범한 의복이 아닌 갑주라는 것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 사람이 각기 다른 형태의 갑주를 입었으나 하나같이 화려한 것만은 공통적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즉시 단휘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거. 군문의 사람들 아니야?]


전음을 보내자 소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돌아오는 대답이 간결했다.


[불러올게. 방주들.]


그 말과 함께 소홍의 기척이 유령처럼 흐릿하게 녹아내리더니, 이윽고 한줄기 바람이 빠르게 옥수를 향해 솟구쳤다.


그때였다.


“계시오?”


네 사람중 가장 앞에 선 이가 입을 열었다. 단단한 음성에 서려있는 정중함. 황톳빛 갑주를 두른 무인이 산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곤륜의 장문인을 뵈러 왔소만.”


그 모습을 보며 단휘는 입술을 베어물었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문을 좀 열어주시지 않겠소이까.”


분명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하게 말하고 있건만,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끼이이이이-


곤륜파의 산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서 걸어나온 것은 운결이었다. 더없이 침착한 얼굴로 산문 앞에 모여선 네 명의 무인을 둘러본 그가 입을 열었다.


“군문의 장수들이시구려. 항시 극히 바쁘실 분들께서 어떠한 연유로 이런 외지까지 걸음하셨소이까?”


작가의말

7/19일 금요일은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휴재입니다. 곤륜환생을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7/20일 토요일 6시 10분에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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