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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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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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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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滿天)(3)

DUMMY

※※※



음공 기예.


무공의 일파를 차지하는 분야지만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나 문파가 많지 않다. 가악(歌樂)을 천시하는 풍습이 은연중에 깔려있기 때문일까.


광역절기인 까닭도 있었다.


일례로 백연이 근래 겪었던 것중 가장 음공에 가까웠던 건곤연환탈백도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소리 경파를 흩뿌려 전장을 제압하는 도법. 펼치는 무인조차 쉬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그렇다.


“소리비도는 단독으로 펼치는 무공이 아니네. 특수한 검명(劍鳴)으로 음공 기파를 미리 상대의 체내에 쌓아 뒤흔들고, 그것을 비도로 증폭시키는 복잡한 기예.”


말하며 손을 펼친다.


“수고를 들인만큼 공능이 확실하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당진천의 손이 움직일때마다 새로운 비도가 발출되고 회수되기를 반복한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세갈래 비도를 검격으로 쳐내는 것도 잠시. 궤도가 뒤틀린 비도가 다시금 휘어들며 기묘한 휘파람 소리를 내고.


쩌어엉!


“쿨럭......!”


전진 보법을 밟던 백연의 무릎이 푹 꺾여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쇄도하는 새털같은 은침(銀鍼)이 수십개. 그것을 어렴풋이 인지한 순간 소년의 눈이 자색으로 물들며 그의 몸이 꿈결처럼 움직였다. 은침의 궤적을 읽으며 사이로 파고들어 회피하는 신법이 신묘하다. 그런 그를 보며 당진천이 감탄을 뱉었다.


“대단하군. 지금쯤 체내 기파가 정상이 아닐텐데 아직도 그런 움직임이라니.”


화악-!


은침의 파도를 뚫고 전진한 백연이 검을 올려쳤다. 그 순간 당진천의 손가락이 까딱 움직이며 두자루의 암기가 등을 노리고 짓쳐왔으나, 두 자루 모두 백연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음? 무슨 보법 여파가......”


파아아악!


용형보의 뇌기가 주변을 감싼다. 진각을 내리찍은 것 마냥 사방으로 흩어지는 벼락줄기가 등허리를 꿰뚫으려 날아오던 비도의 궤적을 뒤틀고.


쩌어어엉!


여상히 내리친 당진천의 단검과 여휘가 얽혀들었다. 그와 함께 당진천의 소매가 구름처럼 부플어 오른다. 또다시 발경력 여파를 갈무리하는 수법. 그렇게 백연의 검을 내리누르며 막아낸 당진천이 웃었다.


“심법, 안법, 신법, 보법. 어느 하나 신묘하지 않은것이 없군. 그 검(劍)도 그럴테지.”

“......”


음성에 진기 파동이 담겨있다. 음공이 끊어지지 않는 상황. 점차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단검째로 갈라버렸어야 할 여휘가 나아가지 못하고 막힌 이유였다.


“허나 그 몸 상태로는 전력의 반도 못낼텐데. 괜찮은가?”

“잡기(雜技)가 많군. 당신은.”


퉷.


소년이 핏물을 뱉으며 이를 드러냈다.


“말도 많고.”


짓씹듯 내뱉은 말과 함께였다.


백연은 여휘를 놔버렸다. 직전의 검격 경파를 몸에 휘감아 꽃잎처럼 회전하면서 당진천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 그로 인해 한순간 균형을 잃은 당진천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동시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백연의 손아귀가 당진천의 팔 상박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그대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왼손으로 뇌기(雷氣)를 뒤덮은 낙안권 일격을 준비하면서였다.


“......!”


퍼어억!


핏물이 허공에 흩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백연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 한가운데에 권법 일격을 얻어맞은 당진천이 각혈하며 뒤로 수장을 넘게 물러났다. 그 사이 여휘를 회수한 백연이 즉시 보법을 펼치며 따라붙었다.


쩌엉! 쩌저정!


두 무인의 신형이 교차했다. 인지하기도 어려운 속도로 백광을 끌며 따라붙은 백연을 상대로, 당진천은 거의 같은 속도를 가져가고 있었다. 여휘가 희끗한 궤적을 그리며 베어들어갈때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비도가 검격을 막아내고.


“쿨럭. 자네만 신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네.”


옅은 핏물을 뱉으며 미소를 지은 당진천이 귀찮은 파리를 쫓아내듯 크게 손을 휘젓는다. 그와 동시에 당진천의 소매가 한번 크게 부풀며 안에서 새까만 구름같은 침들이 사방으로 비산(飛散).


검은 꽃잎처럼 피어난 암기 다발들을 인지함과 동시에 백연의 사고가 급격하게 가속하고, 자색으로 물든 시야 속에서 수백개의 투로를 동시에 파악해낸다. 그 속에서 당진천이 가느다란 침 하나 하나에 진기를 연결해 허초까지 펼쳐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감각 하나는 진짜군.’


하나하나 파훼할 수 없었다. 전부 동시에 부숴야 했다. 백연은 지체하지 않고 전진 보법을 멈췄다. 보법 여파를 휘감은 그대로 소년이 오른발을 살풋 들어올리고.


콰아앙!


거세게 내려찍은 진각에 뇌기가 사방으로 발출된다. 그에게 쏟아지던 검은 구름을 한순간 허공에 붙들 정도로 강렬한 진각 경파가 무질서하게 퍼져나간다. 직후 소년이 온몸에 뇌기를 두른채로 사선을 향해 일검을 내쳤다.


파악-!


먹구름이 걷히듯 검격 경파 한번에 암기 다발이 부러지고 튕겨지며 휩쓸려나갔다.


그러나 그때쯤 당진천은 이미 다음수로 옮겨가고 있었다.


키이잉-


새까만 암기 다발을 걷어낸 백연의 시야에, 대기를 일그뜨리며 회전하는 경파가 눈에 들어왔다. 당진천의 소매 안쪽 깊숙히 은은히 빛나는 묵색 비도가 보인다. 명문세가의 자제답게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막대한 공력이 허공에 나선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비선유성표(飛旋流星標).”


당진천이 미소를 지으며 뇌까리는 것과 동시에, 백연의 인지가 수백으로 쪼개진다. 사방 풍경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소리가 침잠했다. 어느 순간 시간을 되감듯이 중단세로 돌아온 여휘가 백연의 앞을 가로막는다.


피이잇-!


간극 속에서도 빛살같은 속도로 허공에 한줄기 묵빛 궤적이 새겨졌다. 나선 경파를 휘감아 추진력을 배가한 비도. 아마 저것을 내던지는 당진천 본인도 그 속도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백연의 몸 상태로는 쉬이 파훼하기 어려운 절기였다. 처음 보았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이미 본 적 있는 일격이다. 그것도 당가주 본인이 펼치는 것을.


‘훨씬 약해.’


이미 겪어본 검로. 자연스레 일보를 내딛으며 검파를 비틀어 쥔다. 동시에 소년의 검이 분열하듯 허공에 새겨졌다. 전진하는 비도의 궤적보다 빠른 속도였다. 뇌풍을 휘감은 검격이 역으로 회전하며 비도의 경파를 낱낱이 해체한 직후.


콰아아아앙!


궤적이 뒤틀린 묵빛 비도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며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백연의 신형이 앞으로 쇄도했다. 비도를 받아낸 검격 경파를 그대로 운해비영의 신법 추진력으로 삼은채였다. 당진천 또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한손으로 비도를 연이어 쏘아보내며 사선으로 후퇴 보법을 펼친다.


카각, 쩌정!


검이 비도와 얽혀들고, 백연의 걸음이 멈추는 순간마다 암기 다발이 그의 급소를 노리고 쏟아진다. 뇌광을 휘감은 검격이 쏟아지는 암기 사이에서 춤추듯 이어지며 공격을 파훼.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두 사람의 신형이 경기장 위 전체를 구분없이 누빈다.


찰나지간에도 교환되는 초식이 여러가지.


두 사람 모두 무공을 전개하는 것이 숨쉬는 것보다 자연스럽다. 각자의 무공에 있어 상당한 성취를 쌓았다는 증거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희끗한 한줄기 뇌광이 번뜩이며 쏟아지는 암기의 파도와 어지러이 얽혀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합이 맞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실상은 아니었다. 합이 교환될 수록 백연의 검끝이 느려진다. 비도가 쇄도하는 사이사이 경기장 위를 따라 음공이 터져나온다. 질주하던 소년의 걸음이 푹 꺾이며 암기가 어깨와 뺨을 스친다.


점점이 흩어지는 핏물과 함께 백연의 몸에 상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저놈,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평소보다 배로 느려. 저러다간......”


어느새 몸을 앞으로 기울인 팽악이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금새라도 경기장 위로 뛰쳐나갈 기세다.


“젠장. 수작을 부려놨군. 음공 기예라니.”


평소보다 희게 질린 당소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의 눈이 빠르게 당가의 가솔들을 훑었다. 그 사이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공손령을 확인한 당소하가 이를 깨물었다.


“개입을......”

“일단 참아라. 저놈은 아직 절초도 안 꺼냈다. 질리가 없다.”

“당진천도 마찬가지니 문제다. 만천을 아직도 숨겨놓고 있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지?”


나누는 말이 급했다. 평소와 다르게 둘 모두 긴장감을 역력히 드러낸다. 당진천의 무공에서 살기를 읽은 까닭이었다.


‘진심으로 여기서 살초를 펼칠 생각이다.’


당소하가 숨을 가다듬었다. 백연의 생각도 읽을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거늘. 당진천의 수작에 걸려든 것인가.


‘내가 계속 살피고 있었어야 했다.’


그 스스로도 안일한 면이 있었다. 백연에게 죽지마라 경고했으나, 설마 이 자리에서 살계(殺計)를 준비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당장 저 위에 천독이 앉아 지켜보고 있거늘.


“......음. 그리 걱정이 되는 건가요?”


그때였다.


옅은 의문이 담긴 악예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소하와 팽악의 시선이 그녀에게 훅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 안보이나? 당진천이 살초를 펼치려 한다. 막아야......”

“비무제전에서 살초를 막을 권한은 없습니다. 그것이 고의성이 다분하다 해도요. 그리고.”


악예린이 여상한 태도로 경기장에 시선을 던진다. 눈에 깃든 안법 기파로 끊임없이 두 무인의 격돌을 관조하면서다.


“당신들은 백연이 정말로 질것이라 생각하는 건가요.”

“......저 녀석도 무적은 아니다. 검에 찔리면 다치고 베여. 특히 지금 움직임을 봐라.”


파바바박!


허공에 불티가 튀어오른다. 희끗하게 이어진 백색 검로가 수십가닥 비도의 궤적과 얽혀드는 과정이었다. 미묘한 간격으로 던져진 비도가 백연의 검격을 틀어막는다. 자유로이 뻗어나가야 할 뇌광이 뚝뚝 끊어지며 끝까지 뻗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전부.


읽히고 있다. 마치 어디로 검이 올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투로를 익혔어. 저자가 자주 행하는 짓이다. 타인의 습관을 읽고 그것으로 판을 설계하지. 거기에 음공까지 끼얹었다. 지금 백연은 물속에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음험한 놈이군.”

“맞다. 거기에 아직 꺼내지 않은 패가 두어개는 더 있을거야. 아무리 백연이라 해도 불리한 판에 올라버렸어. 이건......”


당진천이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악예린은 여전히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일 뿐이었다.


“그런가요?”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그냥, 일전에 제가 백연과 손을 겨루어 봤을때는.”


악예린이 중얼거린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였다. 처음 용봉지회에서 그녀에게 충격을 선사했던 소년의 무위. 그 압도적인 검로가 아직도 기억속에 선명하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검이 어디로 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금원방주를 상대할때도 마찬가지였다. 금원방주는 그녀와 팽악, 당소하의 공격은 잘만 막아내면서도 백연의 검로만은 계속 놓쳤었는데.


“정해진 검로라는게 없었으니까요. 일격 일격이 항상 최적의 투로를 찾아내는 것의 반복. 각 초식이 자유분방하면서 얽매임이 없고, 공수 전환이 자유로웠지요. 짧게 표현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천변만화(千變萬化)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련지-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악예린. 그와 함께 곁에 앉은 두 사람의 표정이 서서히 바뀐다. 그제서야 무엇을 깨닫기라도 한 듯이.


쩌어어어엉!


그때 경기장 위에서는 음공 기파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비도와 암기의 파편으로 범벅이 된 바닥.


그 위에서 백연의 검이 간신히 암기 수십자루를 쳐내었지만 어깨에 은침 두어개가 박혀들고 만다.


“슬슬 먹혀들고 있군.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하네만.”


따악-!


당진천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함께 백연의 사방으로 떠오른 비도들이 재차 경파를 뿜어낸다. 허공에서 가속하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흩뿌리는데 막을 방도가 없다. 소년의 입에서 이제는 새빨간 것을 넘어 화사하다 느껴질 정도의 선혈이 한움큼 흘러나오고.


“이번엔 두자루네. 잘 받아보게나. 가능하다면 말이지.”


여유로이 화려한 옷자락을 펼치며 눈매를 휜 당진천의 양 소매가 거칠게 부풀어 오르며 두자루의 묵빛 비도를 발출시킨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가속하는 바도 앞에서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은 백연의 검끝이 낭창하게 휘어지며 분열한다. 일전 보여주었던 검격 기예가 재차 펼쳐지는 것이 유려했다. 허나 소년의 속도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두자루의 비도를 전부 막을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당진천의 비선유성표에 실린 공력이 둘로 분할되어 약해졌음에도.


콰아아앙-!


한자루의 비도를 막아낸 직후, 뒤따른 이격(二擊)이 소년이 가까스로 들어올린 검면을 격했다. 굉음과 함께 소년의 신형이 뒤로 날듯이 밀려나 구른다. 여휘를 바닥에 끌며 몸을 멈추는 모습.


핏물을 뱉으며 고개를 쳐드는 얼굴이 창백하다. 흑단같은 머리칼이 고통이 서린 자안(紫眼)을 반쯤 가리며 흩어졌다. 그런 백연을 보며 당진천이 그림같은 미소를 그려냈다.


“무엇을 그리 망설이는지 모르겠군. 절초가 남았을 것인데. 이만 끝을 봐야지.”


태연히 끝을 논한다. 이미 승기를 잡았음을 직감한 어조다. 지금 백연에게 남은것이 무엇이 되었든 전부 파훼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스스로가 아직 꺼내보이지 않은 패가 많은 까닭이다.


그리 말하며 비스듬한 시선으로 상석을 힐끗 쳐다본다.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천독이 앉은 그곳을.


“오지 않겠다면 내가......”


그때였다.


소년은 돌연히 일어나 있었다. 한순간 시간이 분절된 듯한 움직임. 그와 함께 사선으로 늘어진 검끝에서 새벽 안개마냥 희끄무레한 백광이 일었다. 그것을 인지한 당진천의 입매가 비틀렸다.


‘온다.’


모여드는 공력의 크기가 달랐다. 소년이 준비하는 것은 검격 절초. 동시에 당진천의 사고가 한없이 쪼개지며 가속했다. 늦여름 저녁의 그림자마냥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그의 손이 허공으로 향했다.


손바닥 전체를 따라 흡착과 발산의 구결이 흐른다.


이 순간.


경기장 전체의 모든 것이 그의 기감하에 들어왔다.


섬세하게 뻗어낸 내공 진기는 그물처럼 모든것을 뒤덮어 하나로 엮어낸다. 여태껏 뿌려진 비도와 암기들. 수십, 수백에 달하는 쇳조각이 몸을 바르르 떨고.


우우웅-


투명한 물에 한점 먹을 톡 떨군것 마냥 대기를 따라 어렴풋이 번져오는 백광이 있었다. 어느새 전진하며 검을 올려긋는 암화.


전진 보법의 간합이 달랐다. 한순간에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당진천의 코앞까지 짓쳐왔다. 그의 기감에도 돌연 나타났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핫.”


허나 당진천은 웃음을 뱉었다. 이미 암화의 보법 간합과 습관은 알고 있었다. 소년이 나타나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후퇴 보법을 밟았다. 당가 추뢰신법(追雷身法)의 묘리가 암화의 검끝과 정확히 반보 거리를 유지하며 당진천의 신형을 뒤로 이동시켰다. 흩날리는 당진천의 옷자락 끝이 암화의 시린 검격에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파아아아앙!


빗나간 검격 여파가 허공을 저몄다. 굉음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얼마나 막대한 공력이 실려있었는지. 하지만 그 검은 당진천의 몸에 닿지 못했다.


그의 승리였다.


“끝이군.”


백연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자령안이 깃든 눈이 이 순간 사방을 감각했다.


눈 앞에서 펼쳐진 손바닥을 들어올리는 당진천. 그 끝에서 퍼져나오는 거대한 기파가 그를 비롯해 경기장 전체를 휘감고 돈다. 일견 수백, 수천가닥의 내공으로 된 실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 형세가 마치 파도나 폭풍과 같았다.


몸 전체를 이용해 손끝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선을 조종한다. 발끝부터 근맥 전체를 따라 흐름이 물결처럼 맥동하고.


우우우우웅-!


수백에 달하는 철편(鐵片)과 비도, 암기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시야 전체가 은빛과 묵빛의 파편으로 물든다. 대기를 가득 점하는 금속의 구름.


그 모든 조각이 전부 당진천의 손아귀 안의 흐름 아래 놀아나고 있었다. 화려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손끝을 움직이는 것이 달리 고아했다.


당가비기(唐家祕器). 암기술(暗器術) 만천(滿天).


한순간 소리가 훅 꺼졌다. 절세신공의 흐름을 감각에 담은 까닭이었다. 백연의 상단전 백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순 소년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동시에 신공의 모든 흐름과 형태를 뇌리에 때려박듯 새겨넣는 것도 찰나.


당진천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파바바바박!


흑백(黑白)의 광채가 시야를 수놓는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암기와 비도들이 일제히 소년을 향해 떨어지는 광경이 마치 꽃비를 보는 것 같았다. 흩날리는 비화(飛花)는 지극히 화려한 동시에 한없이 예리했다.


죽음의 비.


한순간 소년의 신형이 그 속에 가려져 완전히 사라지고.


“......!”


객석의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순간.


쩌저저저저정!


철편의 폭풍 사이로 시린 백광이 뻗어나왔다. 금속의 폭풍 사이로 어렴풋이 엿보이는 일검(一劍)의 궤적. 만천의 흐름과 수백 줄기의 실타래마냥 희끄무레한 선율을 엮어내며 뒤엉킨다. 벼락처럼 터져나오는 불티가 바람에 몸을 실은 꽃잎마냥 한없이 화려한 작태로 흩어지기를 반복.


검격 궤적을 따라 짙은 파문이 수십, 수백개가 터져 나오며 대기를 물결치게 만든다. 그러나 이어지는 발경력 여파는 흩어지지 않았다. 휘도는 진기의 흐름이 어느 순간부터 한곳으로 수렴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무슨, 말도 안되는......!”


그 사이로 경악성이 어린 당진천의 표정이 문득 스친 직후.


화아아아아악-


돌연 만천의 중심에서부터 따스한 바람이 몸을 잔뜩 부풀리며 터져나오더니, 어느 순간 모든것이 멈췄다. 사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경기장 위, 허공을 따라 암기와 비도들이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검을 여상히 치켜든 소년이 서 있었다. 검끝에서 뻗어나온 뇌광(雷光)이 모든 암기와 비도를 휘감은 형상.


쉼없이 흩어지는 내공 경파마저 다시 휘돌아 소년의 검끝으로 모여든다. 이 순간 경기장 위의 모든것을 지배하에 넣은 상태였다.


당가의 절세신공마저도.


“이런 느낌인가.”


투명한 음성이 울린다. 목소리에 언뜻 담긴 즐거움이 느껴진다.


“만천(滿天).”


백연이 희게 질린 얼굴의 당진천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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