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하는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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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3.05.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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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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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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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하는 망나니 [1]

DUMMY

김호선이 옥살이한 지도 보름 정도가 지나 드디어 한양을 벗어나 당고개로 향하는 길이다. 추분이 되어 쌓인 낙엽이 소달구지에 매달려 압송 중인 사형수를 위해 길을 밝혀주었다. 아래쪽으로는 새남터도 보인다. 주변에 우거진 갈대밭 사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이따금 두견의 노랫말을 싣고 불어오는 바람 또한 그들을 향한 듯했다. 이러한 날씨 때문인지 그게 아니라면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고적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어 살며시 눈을 감았다. 몇 촌각이 지나, 어느새 그들은 사형장에 도착해있었다.


‘정녕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것인가······.’


행형지는 인근 저잣거리로부터 구경하려 몰려든 백성들로 이미 시끄러웠다. 망나니는 크고 날이 무딘 행형도자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술병을 들고 목을 꺾어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의 다부진 몸에도 불구하고 검은 땅에 끌리고 있었다.

나졸들이 김호선의 양 귀를 접어 관이전을 꼽아두고 머릿밑에는 나무토막을 괴었다. 바닥에 눕혀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몸부림치는 그의 상투를 잡아 줄을 매어 기둥에 묶었다.


“준비되었습니다. 나리.”


나졸들이 행형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자, 그제야 조용하던 김호선도 입을 열었다.


“나, 나리, 억울하옵니다. 모살이라니요. 소인이 어찌하여 그런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지켜보던 나졸들이 무엄하다고 소리치며 그의 얼굴로 곧바로 발길질해 입을 닥치게 했다.


“나리···. 정말 아니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인의 처자식들이······.”


“닥쳐라! 기회는 이미 세 번이나 주어졌지 않느냐? 계복까지 모든 절차가 끝이 났거늘. 이제는 나를 희롱하려는 것이냐? 뱀 같은 혀를 잘도 놀리는구나. 연고도 없던 아녀자까지 모조리 살해한 자가 입에 처자식을 담다니. 하늘에 부끄럽지도 않더냐? 아무리 천륜과 인도를 저버린 자일지언정 어찌 이토록 추악할 수가 있느냐? 당장 집행하라!”


명이 떨어지자 덩실덩실 춤을 추던 망나니는 행형도자를 치켜들어 곧바로 김호선의 목을 향해 내려쳤다. 하지만 그가 긴장한 탓이었는지 매섭게 떨어지던 날은 중심을 잃고 김호선의 등에 박히게 되었다. 당황한 망나니는 다시 검을 빼 들고 휘둘렀지만, 이번에는 칼등으로 그의 뒤통수를 때리게 되었다. 이러한 실수가 몇 번이나 반복되자, 혹시나 하던 긴장은 기어코 그를 집어 삼켜버렸다. 망나니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김호선의 목은 잘리지 않았고, 거대한 검은 여러 살점만 지저분하게 도려냈다. 망나니는 초점이 흐려지며 휘청이기도, 바닥을 치기도 했다. 이제는 힘이 빠져서 사형수의 몸에서 다시 검을 뽑아내기조차 버거웠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술병을 집어 연거푸 들이켰다. 소매로 입을 닦고는 검을 다시 한번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깐 심호흡과 함께 힘을 주어 검을 뽑아내자 김호선은 검붉은 덩어리와 함께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 어, 어서 죽이거라. 내, 내가 아무리, 누, 누명을 썼기에 지금 이런 꼴이라지만. 너 같은 배, 백정 놈에게 욕보일 정도는 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김호선과는 달리 행형지 주위를 둘러 구경하던 백성들의 입에서는 검을 내려칠 때마다 거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저 상놈의 자식 꼴 좋다!”


“그러게, 멀쩡한 사람을 왜 죽여?”


“이것 봐. 저놈은 관상부터가 틀려먹었다니까?”


“죄를 지었으니 저래도 싸지, 싸.”


주변이 심하게 소란스러워지자 눈치를 살피던 나졸이 망나니에게 이만 끝내라며 호통쳤다. 망나니는 눈을 감고 힘껏 내려쳤고 몇 시진 만에 고통으로 몸을 덜덜 떨던 김호선은 목이 잘린 채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의 시신은 광희문 밖 성곽에 버려졌고, 일이 끝난 후로도 그의 머리는 삼 일간 매달려 백성들의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다.


“내, 내 칼로,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게 될 줄이야······.”


망나니는 술에 절어서 며칠을 보냈다. 우연히 김호선의 사형집행인으로 차출되었던 그는 소나 돼지 따위를 잡는 백정이었는데 그 일이 끝난 후에도 가둬진 채 얼마간 불려가며 참수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한 사람의 목을 잘라낸 참이었는데 몇 번을 겪었어도 사람을 죽일 때의 충격은 여전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들지만, 그래도 더는 실수하지 않았다. 아무리 술에 취한다 해도, 검을 놓치지 않았다. 쉽다. 목이 두껍고 커다란 동물과 달리, 사람은, 오히려 쉽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낱 천인 취급을 받으며 살았어도 하늘 아래 떳떳했는데. 이제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었구나.”


하지만 술이 깨면 손끝부터 그 감각이 전해져왔고, 잠이 들면 그가 죽인 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잠결에 흘린 땀으로 젖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술을 찾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게 되는 건가? 이러한 삶이라면 반갑지 않다. 내 손으로 그 많은 사람의 숨을 앗아갔으니. 그들의 죽음 앞에 춤을 추다니. 죽어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자들의 감정이, 너무 힘겹구나.”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몇 병의 술을 비워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정신이 멀쩡했다. 밖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벌써 대설인가. 아마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것 같구나.”


주변을 둘러보는데 경비가 소홀해져 있었다. 그가 이렇게 지낸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동안 매일 같이 신음하며 술로만 허송세월했기에 도망은커녕 그가 곧 미쳐버릴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곧장 머릿장에서 칼을 꺼내 온몸을 그었다. 긋고 또 그었다. 고통스럽다. 피가 울컥거렸다. 충동적인 일이었지만,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삶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몸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갑자기 목을 향하던 칼이 멈췄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은 더럽혀졌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목을 치던 자가, 내 죽음은 이토록 편하게 결정하다니. 이보다 이기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 스스로 삶을 끝낼 수는 없다. 나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아니, 적어도 내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상처를 지지고 몸을 씻어낸 뒤 옷을 갈아입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내 죄를 씻어야 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 사람으로 죽지 못한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


망나니는 그대로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담을 넘어 산으로 달렸다. 본능적으로 당고개 쪽은 피해서 며칠을 걸었다. 아직 그를 쫓는 사람은 없었다. 하염없이 남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어스름이 깔렸던 하늘에 해가 다시 떠오를 때가 돼서야 산을 벗어나 작은 주막에 이를 수 있었다. 키가 작은 중노미가 그를 맞아주었다.


“···여기, 국밥 한 그릇만 먹읍시다.”


부엌 쪽에서 불을 피우던 주모가 대답했다.


“국밥은 아직인데, 적어도 삼각은 기다려야 할 거요.”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그럼, 거기 앉아요. 술은 안 드시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양골국에 몇 가지 떡과 술을 시키고는 평상에 누웠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며 살펴본 그의 모습은 확실히 볼품없었다. 다부진 체격에 키는 어림잡아서 다섯 척 정도 됐는데 머리에 쓴 낡은 패랭이에서부터 무명옷까지 피와 진흙이 엉겨 진득하게 눌러 붙어있었고 그 아래로 보이는 붉은색의 머리카락과 회색의 눈동자는 누구라도 그가 백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는 도망을 다니기도 힘이 들 것이다. 이대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거다. 만약 잡힌다면 당장이라도 죽게 될 테지. 감히 어찌 내가 죽음을 거부할 수 있겠나.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그가 한숨을 쉬는 사이 주막 주위로 나졸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고 놀란 기색을 감추고 있는데 부엌에서 음식을 내오던 주모도 나졸들을 보더니 그에게 말했다.


“아이고, 또 무슨 일이래요? 요즘 나라가 어찌 될런가, 오늘은 또 나졸들이 난리래?”


그는 나졸들이 모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질문했다.


“요즘 무슨 일이 있었소?”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이쪽은 처음인 모양이요?”


주모는 상을 마저 차리고는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마을에서 말이요. 누가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다 죽여 버려서 저기 논이고 밭이고 사람이 없는 거요. 마을 남자들이 순찰도 돌고 그랬는데 며칠을 밤낮으로 돌아다녀도 이상한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거요. 그러는 중에도 사람은 자꾸 죽어 나가지, 아이고, 그러다 결국 저 나졸들이 잡아갔단 말이요. 김호선이라고 들어봤으려나 모르겠네.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역병이 돈 것도 아니고, 아이고, 하여튼 그래서 우리는 ‘아이고, 잘됐다. 이제 끝났다.’ 하면서 다시 장도 열고 그랬는데 근데 며칠이나 지났나 또 사람이 죽어나더란 말이요. 관아서 사람이 와도 이게 뭐 진전이 있어야지. 이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오. 이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또 나그네라도 지나가고 해야 돈도 벌고 할 텐데 이제는 소문이 돌았는지 상인들도 이 근처로는 안 지나가는 거요. 그쪽이 석 달 만에 보는 사람이라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걸 보고는 무슨 도깨빈 줄 알았다니까? 솔직히 말하면 얼씬도 말라고 하고 싶은데 이게 그럴 수가 있나? 아이고, 내 입이 방정이지.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망나니는 주모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술 몇 병을 더 비우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졸들이 자신을 쫓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지만, 그렇다고 이 마을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주막을 떠나 다시 남쪽으로 향할 때는 이미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내 입으로는 김호선을 욕보일 수 없다. 그자와 내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둘 다 사람을 죽였지만 내게는 이유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 그럼 내가 더 나쁜 것 아닌가.’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있던 주막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바로 몸을 돌려 주막 쪽으로 달렸다. 살려주시오. 주모의 목소리였다. 질퍽한 진흙 때문에 발이 무겁다. 살려주시오. 숨이 가쁘다. 살려주시오. 소리가 가깝다. 주막에 있던 오동나무가 보인다. 그가 다시 돌아가는 건 누군가를 구한다면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거라는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 탓이었을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주막에 도착한 망나니는 헐떡이던 숨을 삼키고 주변을 살펴봤다. 조용했다. 평상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고 중노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엌도, 마루 쪽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보시오. 여기 아무도 안 계시오? 주모! 대답 좀 해보시오!”


그가 큰 소리로 부르자 우물 쪽에서 부스럭거리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우물 안을 들여다보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는 놀라며 우물 안으로 떨어질 뻔했는데 주모가 간신히 그를 붙잡아주었다.


“왜 우물에서 헐떡이고 계시오? 아까 나가는가 싶더니 왜 돌아오셨소?”


“그게, 괜찮소? 무슨 소리가 나기에, 아까 해준 얘기도 있고 하니 걱정이 되어 돌아왔소.”


순간 주모의 표정이 차가웠다. 주모가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소. 괜찮으니 다시 돌아가도 좋소.”


“분명 비명이 들렸소.”


“술을 저만치나 마셨으니, 취해서 헛것이 들린 모양이오.”


주모의 행색은 나갈 때 보았던 그대로였다. 정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여기 중노미랑 다른 여인들은 어디로 갔소?”


“걱정 해주니 고맙긴 한데, 무슨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오? 척 봐도 도망 나온 노비 같은데 이만 떠나는 게 좋지 않겠소? 아까 내가 해준 말은, 아이고, 내가 조금 심심하니 그랬소. 어디 가서 허튼소릴랑 하지 말고 볼 장 다 봤으면 이만 가주시오.”


주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 떠밀려 주막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망나니는 잠깐 망설이더니 이내 곧 떠나려는데 바닥에 피가 묻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문짝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에 피가 있었는데 급하게 뛰어오느라 보지 못하고 지나온 것 같았다.


“아직 굳지 않은 걸 보니, 일각도 지나지 않은 듯하구나. 주모가 그들을 죽인 건가? 하지만 아까 들었던 비명과 애절한 목소리는 분명히 주모의 것이었다. 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가 고민하는 사이 주막 쪽에서 다시 한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진짜다. 헛것이 아니다. 지금 달려가서 확인해보면 될 터.’


당장에 달려가 보니 중노미는 안뜰에 서 있고, 주모는 술청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오해한 모양이야. 이제 정말로 돌아가야겠네.”


망나니는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는데 술청에 있던 주모가 울걱거리더니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


“···아무래도 이 몸은 너무 늙었어.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구나.”


주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가운 음성에 등골이 오싹해진 망나니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그의 다리가 꼬이며 그대로 넘어져 버렸고, 그 소리에 돌아본 주모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사, 사, 살려주시오!”


작가의말

죽지 못하는 망나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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