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하는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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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햄스터
작품등록일 :
2023.05.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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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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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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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하는 망나니 [2]

DUMMY

그도 모르게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다. 얼마 전만 해도 죽으려던 그였지만,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을 때 느꼈던 감정도 지금과는 달랐다. 난생처음 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공포. 망나니 자신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 중노미는 그보다 한 척은 작고, 늙은 주모는 이미 머리가 희고 허리가 굽어서 적어도 애년은 되어 보였는데 공포가 그를 덮쳤다. 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정신 차리려 노력했지만, 중노미가 그에게 달려드는 와중에도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라며 반복할 뿐이었다. 공포. 중노미가 그를 덮쳤다. 망나니는 겨우 몸을 굴려서 피했으나 평상이 부서지며 날아든 파편에 다리가 깔렸다. 그는 고통보다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미, 미안하오. 조용히 돌아가겠소.”


중노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파편에 깔려 누워있던 망나니를 손톱으로 할퀴었다. 망나니는 발길질하며 강하게 저항했지만, 중노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날카로운 손톱에 옆구리가 찢겨나갔다. 싸움이 길어지자 그들을 지켜보던 주모가 소리쳤다.


“어서 죽이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이렇게까지 할 건 없지 않소!”


“그냥 보내주려 했건만. 네놈이 화를 자처했다. 어디까지 보았는지 알 수 없으니 이대로 보내줄 수 없겠구나.”


“아무것도 보지 않았소. 정말, 정말이오!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소! 제발 살려만 주시오. 당장 이곳을 떠나 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겠소.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 않겠소. 나는 이 주막, 아니, 이 마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오!”


주모는 그의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살짝 웃으며 신호를 보냈다. 중노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놓아주자 드디어 긴장이 풀린 망나니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옆구리의 통증이 몰려왔다.


“감사하오, 감사하오! 절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소!”


망나니는 양손으로 상처를 감싸고는 연신 감사를 표하는데 중노미가 그의 목을 비틀 듯이 집어 올렸다. 망나니는 버둥거리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컥컥대고 있었다.


“이리 가져오거라.”


중노미가 그를 주모의 발 앞에 던져놓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가까이 보니 색이 더 짙구나. 그 고양이 같은 눈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내가 그 몸을 가져야겠구나. 그래, 이번엔 왼쪽으로 하지.”


중노미는 부엌에서 챙겨온 칼을 내려놓고는 그의 왼팔을 붙잡았다. 주모가 칼로 그의 팔을 내려치려는 순간, 주모가 휘청이더니 마른기침을 했다. 손으로 입을 막고는 다시 피를 토할 듯이 울걱거리는데 망나니가 그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서로 부딪혀 넘어졌고, 엉켜 구르면서 흙먼지가 일었다.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든 망나니가 곧바로 주모의 목을 그어버렸고 흙먼지 사이로 주모의 피가 솟구쳐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망나니는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당장 달려들 줄 알았던 중노미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겠다며 길을 나섰건만. 결국, 또다시 내 손에 다른 사람의 피를 묻히고 말았구나. 나는 주모에게 저항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 스스로 피를 불러왔으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이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죄를 짓고서 평온을 찾았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망나니는 아련한 눈으로 죽어가는 주모를 바라보는데 주모가 갑자기 격하게 꿈틀거렸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온몸이 털로 뒤덮였고 빠르게 크기가 작아져 갔다. 피가 뿜어져 나오며 찍 하고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더니 쥐로 변해버렸다. 끔찍하고 괴이한 장면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중노미를 보면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사람이 쥐로 변하다니. 내가 헛것을 본 거요? 자, 자네도 그럼······.”


중노미가 굉장히 신경질적인 소리로 찍 하고 울면서 달려들어 손톱으로 가슴을 할퀴었다. 망나니가 상처를 움켜쥐고 괴로워하자 중노미의 손톱은 다시 얼굴을 노렸다. 손톱이 눈앞까지 가까워지자 망나니는 칼을 가볍게 휘둘러 중노미의 양팔을 잘라버렸다. 찍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망나니가 먼저 왼쪽 얼굴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화가 난 중노미가 이빨을 드러냈고, 물어뜯을 기세로 사납게 달려들었는데, 바닥의 피를 밟고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망나니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넘어진 중노미의 다리를 칼로 내려찍었다. 흥분한 그는 기어서 도망가는 중노미를 따라가면서까지 처절하게 난도질했다. 이제는 더 움직이지 못하는 중노미의 머리를 찌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를 껴안았다.


“제발 그만 하세요!”


돌아서 얼굴을 보니 낮에 주막에서 허드렛일 하던 여인이었다. 이미 지쳐버린 망나니는 손에 힘이 풀리며 칼을 떨어트렸다. 사방에는 유혈이 낭자했고 망나니의 옷은 그에 못지않은 피로 젖어있었다. 바닥에는 쥐 사체 한 구가 있었지만, 그게 주모였고, 중노미와 함께 쥐들이 사람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직접 겪었던 그조차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 말리지 마시오. 소저, 사실 이자는 저기 죽어있는 쥐와 같은 미물이오. 믿기 어려울 테니 내가 직접 보여드리겠소.”


그는 칼을 다시 집으려 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저기, 칼, 칼 좀 주워주시오. 내가 금방 끝내버리겠소.”


떨리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여인을 살피던 망나니가 잠시 주춤하더니 질문했다.


“···설마 소저도 쥐요?”


그녀는 울먹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망나니는 단념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미물에게 죽는 건가. 이런 끔찍한 최후가 어쩌면 나에게 제일 걸맞을지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때 멀리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란을 들은 마을 사람들 한 무리가 주막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 수도 어림잡아 열댓 명은 되어 보였고, 저마다 한 손에는 횃불과 다른 손에는 칼과 낫이나 쇠스랑과 괭이 같은 농기구를 들고 있었다. 망나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뜬 망나니의 몸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주변은 습하고 어두웠다. 가까이서 본 여인은 훨씬 어여쁜 얼굴이었다. 얇지만 짙은 눈썹에 크고 동그란 눈과 둥근 콧방울, 그 아래 다물린 입술은 잠시 그녀가 쥐라는 사실도 잊을 것 같았다. 그의 상처를 돌보는 여린 손길은 보드라웠고, 닿을 때 차갑지만 금방 따뜻해졌다.


“···그 여인은 어떻게 한 거요?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았지?”


여인의 눈이 살짝 떨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수건의 물을 짜냈다.


“날 어디로 데려온 거요?”


“···주막 지하의 쥐굴입니다.”


망나니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손을 짚은 바닥이 축축했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곪기 전에 상처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다음에 전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인은 상처를 마저 닦아내고는 음식을 내어주며 말을 이었다.


“얘기가 깁니다. 들으면서 드세요. 이미 아시겠지만, 저희는 쥐가 맞습니다. 먹을 걸 찾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손톱을 먹은 어머니, 그러니까 주모가 먼저 사람으로 변했고, 덕분에 잠시뿐이었지만 저희는 처음으로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혹시 들키지 않을까 염려하며 저희는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녔지만, 그런 생활도 이미 익숙했고 큰 불만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잠시 마을 저잣거리에 다녀오던 오라버니가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다시 쥐로 변해버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도망쳐 나와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던 오라버니는 결국 전신이 마비되었고 손톱을 아무리 먹여도 다시 사람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잠시 멈춰서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오라버니를 위해 완전히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아다니셨고 이 마을까지 오게 된 겁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망나니가 끼어들었다.


“그 방법이란 게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겁니까? 아니면 그저 오라버니를 위한 복수였던 것이오?”


여인은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게 복수심이라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


문뜩 그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순간 부끄러워진 망나니는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찾은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사람의 신체 한 부위를 먹어버리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방법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오라버니는 다시 사람이 되어 움직일 수 있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고, 사람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결국 다시 쥐로 돌아갔습니다. 먹을수록 조금씩 성격이 난폭해지는 부작용도 있었고요. 그래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저희 어머니는 신체를 먹기 전부터도 마주쳤던 모든 사람을 죽이고 계셨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함이라기에 더 묻지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살인 그 자체에 집착하셨고, 그런 이유로 거처도 이 주막으로 옮기신 것 같았습니다.”


망나니가 빈 그릇을 내려놓으며 질문했다.


“내가 비명을 들었다며 주막으로 뛰어갔을 때, 그때 주막에 있던 자들도 당신들이지 않소? 그렇다면 어찌 나를 죽이지 않고 가만히 쫓으려 한 것이오?”


“네 맞습니다. 이미 주모와 다른 사람들을 처리한 뒤라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소저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요. 조금이라도 저를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는 충동적으로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이렇다 할 목적도 없었기에 한편으론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요물이 존재하는지는 몰랐고 자신과 엮이게 될 줄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막에서 보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많은 일을 겪었고, 조금이나마 상황을 알게 된 그는 복잡하던 머리가 정리되어 차분해지자 이제는 그의 앞에서 떠들고 있는 이 여인이 쥐가 아니라 뱀이나 도깨비라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아직 나를 살려둔 이유는 듣지 못했소.”


“···실은 귀공께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를 아는 사람은 이제 귀공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저가 아무리 미물이라도 살려준 것에 대한 도리는 마땅히 해야겠으나, 어머니와 오라버니를 죽인 내가 원망스럽진 않소?”


“원망스럽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살짝 긴장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원망스럽습니다. 그분들이 무슨 짓을 해도 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라버니고, 가족이라는 점은 변치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초한 일이고, 그분들이 벌인 일까지 감싸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인제 와서 따진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녀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그렇다면 들어나 봅시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긴 하오.”


여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주모에게 들어서 대충이나마 알고 있소.”


“이 마을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서도 아시겠군요. 저는 김호선이라는 자를 쫓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그자가 가진 물건을요.”


“그렇다면 괜한 짓을 했구려. 그자는 이미 죽었소. 재산 또한 관에서 몰수했을 거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이 아니오. 내 손으로 직접 그자의 목을 잘랐소.”


“그자는 분명 귀공을 다시 찾을 겁니다. 혹시 어디로 향하고 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특별한 뜻은 없지만, 수도를 떠나 남쪽으로 향하던 길이었소.”


“괜찮다면 저와 동행하는 건 어떠십니까?”


망나니는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해주었다.


“이미 도와드리겠다는 약속했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합시다.”


여인은 그의 옷을 돌려주고 길을 안내하겠다며 쥐굴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했지만 나름대로 잘 닦여진 길이었고 예상보다 넓고 깊었다. 여인을 쫓아 가팔라진 길을 따라 올라가자 어느새 마을 외곽으로 나올 수 있었다. 갑자기 밝아진 하늘에 눈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여인은 그의 손을 끌고 민가와 저잣거리를 지나 마을 반대편의 산에 올라갔다. 넓은 벌판과 듬성듬성 자라있는 앙상한 나무들에 눈이 수북이 덮여있는 평범한 설산이었지만 눈보라가 몰아쳐 방향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망나니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아갔다.


“이쪽입니다. 남쪽으로 가려면 저 산을 넘어야 합니다.”


“통성명이 조금 늦었구려. 소저는 이름이 어떻게 되오?”


“설희입니다.”


“나는 이름이 없소. 전엔 이름 대신 백정으로 불렸고, 망나니로 불리게 된 순간부터는 이름을 버렸소. 편한 대로 부르시오.”


“그럼, 앞이나 뒤를 따서 망이나 니는 어떻습니까?”


“···그 둘만 아니면 좋겠소.”


작가의말

죽지 못하는 망나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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