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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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두끼
작품등록일 :
2023.10.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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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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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 2

DUMMY

이즈하 또한 처음에는 자신이 맞이한 이가 왕실 전령이 맞는지 한참을 확인했다. 왕실 전령은 슬슬 이 신임 장교가 처음 보는 사태에 허둥대는 꼴을 보고 있기 싫었다. 전령은 신원을 확인한답시고 왕실 전령을 칼바람 부는 밖에 내버려 두는 융통성 없는 이즈하를 대놓고 질타했다.

이즈하는 급한 대로 장교 숙소에서 단잠에 빠진 요새 사령관을 깨워야만 했다. 그는 이렇게 높은 상관들이 찾아왔을 때, 일단 직속상관을 불러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의 길지 않은 군 생활에 있었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사령관은 단잠을 자다가, 자신을 깨운 새파랗게 어린 신임 장교를 보면서 자신이 아직도 꿈속에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군대 꿈을 꾸기엔 이젠 자신의 경력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그는 곧 신임 장교가 자신을 깨웠다는 현실을 알아보았다.

이즈하는 왕실 전령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보고했다. 사령관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즈하는 늙고 주름진 사령관의 눈이 이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다. 사령관은 자신이 정말 꿈이 아닌 현실에 있는지 잠시 의심했다. 평생 한직이나 떠돌던 자신에게 갑작스레 왕실 전령이 나타났다. 이는 필시 비상사태임이 틀림없었다. 사령관은 이즈하를 시켜 장교들을 모두 깨우라고 시켰다. 이즈하는 명령대로 선임 장교들을 깨웠다. 장교들도 전대미문의 사태에 어안이 벙벙하여 얌전히 이즈하를 따라왔다.

한편, 전령은 한 시간이 넘도록 칼바람을 맞고 있었다. 한 밤중에 허둥지둥 출근한 장교들은 왕실 전령을 보고 경악했다. 이즈하의 보고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장교단은 급히 전령을 응접실로 옮겼다. 몇몇 장교들은 전령의 분노가 두려워 융통성 없이 열라는 문은 안 열고 신원 확인 한답시고 왕의 사자를 추위에 떨게 한 이즈하를 질타했다. 일종의 책임 회피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즈하는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부당한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즈하도 사령관까지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고급 장교 몇 만이 전령에게서 첩보를 받을 수 있었다. 이즈하는 뻣뻣하게 굳은 채 응접실 앞을 지켰다. 이즈하 자신이 봐도 자신이 매고 있는 당직 장교 완장이 이렇게 초라하고 멍청해 보일 수가 없었다. 동료 장교들도 불안하게 응접실 앞을 서성댔다. 이즈하의 동기들은 처음으로 지적을 당한 이즈하에게 너무 상심하지 말라면서 그를 위로했다. 이즈하는 여전히 자신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동했는데, 지적받아야 하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지적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실, 모두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로 왕의 전령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다. 모두가 입에 올리진 않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어쩌면 군사 작전의 개시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응접실에서 이런 저런 정보 교환이 끝나고, 지휘관은 순식간에 늙어버린 얼굴로 전령을 마중했다.

이미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병사들도 이미 소요 사태에 깨어나거나 왕의 사자가 부대를 방문했다는 소문을 들은 지 오래였다. 지휘관은 금일 오후에 장교 회의가 있을 것이니, 모든 장교들은 근처 방어 사령부에서 집결하라고 명령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이 난리통이 지나가고 나서야, 이즈하는 뒤늦게 병사들의 인원을 점검할 수 있었다. 오늘 어떤 일과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즈하는 선배 장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지만, 선배 장교들도 전대미문의 사태에 어쩔 줄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즈하는 고민하다가 일단 병사들에게 일과 집합 대신 대기 명령을 내렸다. 간만에 오전 내내 빈둥댈 수 있다는 소식에 병사들은 기뻐했다.

분명 밤을 하루 꼬박 센 이즈하였지만, 심상치 않은 사태 때문에 잠에 들 수 없었다. 이즈하는 뒤늦은 식사를 마치고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다.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즈하가 지금 사태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은 이것뿐이었다.

초조한 시간이 지나, 장교들이 방어 사령부에 집결했다. 병사들은 고급 장교에게 차를 내주고 외투를 받아주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인원을 확인한 후, 지역 방어 사령관과 수도에서 내려온 전령이 강단에 올랐다. 지역 방어 사령관은 자기보다 계급도 낮은 전령에게 예의를 갖춰 행동했다. 이즈하가 보기엔 수수한 정복 차림의 나이 지긋한 사령관은 뒷전이고, 금사와 가발로 치장한 젊은 귀족이 거들먹거리는 상황이 다소 이상하게 보였다. 방어 사령관과 전령이 귓속말로 몇 마디를 나누더니, 사령관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뒤로 빠졌다. 전령은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모두 주목.”

전령은 자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곧바로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광역 지도로 돌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우리의 동맹은 그 위세를 시험받고 있는 상황이다. 1000년 전, 세 부족 동맹이 체결된 이후로, 그간 유지되던 평화가 서쪽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본관은 여기까지는 제군들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십 여년 전, 서쪽 평원에서 깃털부족의 반정부 운동이 발발한 이후로, 우리 동맹은 중요한 우방인 깃털 부족이 스스로 자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간 우리 왕국은 세 부족 동맹의 수장인 시메트리온의 의사를 존중해 깃털 부족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 까닭은 1000년간 대륙을 재패해온 시메트리온의 역량과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메트리온은 깃털 부족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는데 실패했고, 되려 사태를 악화시켜 깃털 부족의 정국을 무정부 사태로 이끌었다.”

지금까지는 심각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장교들은 지루함을 숨기지 않았다.

“거두절미하고, 현재 시메트리온의 북동쪽 영지인 나탈라니아 지부에서 제 2의 반정부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탈라니아 지부는 바로 우리 국경 동쪽에 위치한다. 이 소요 사태가 심각해진다면, 우리 서리 왕국의 안보도 무사할 수 없다. 시메트리온은 이번에도 우리 군의 자주성을 과소평가하며 정규군을 파견해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젠 모두가 시메트리온이 쇠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손 놓고 시메트리온이 알아서 해 주길 바란다면, 우리가 두 번째 깃털부족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때문에, 국왕께서는 우리에게 시메트리온의 정규군이 도착하기 전에, 소요 사태를 마무리할 것을 명령하셨다.”

전령이 잠시 말을 멈추자, 장교들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시메트리온 정부를 거스른단 말이오?”

귀족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월권행위라고···”

1000년간의 평화에 익숙했던 늙은 장교들이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소요 사태를 진압한다는 말이오?”

“국왕 전하의 명령은 명확하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나탈라니아 지부로 진군할 것이다.”

장교들은 서로 수근거렸다. 상황실이 순식간에 시장 통처럼 술렁였다.

“이 작전은 당연히 극비 작전이겠지요? 저희 부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나탈리아 지부 정규 진압군으로 위장하면 되겠습니까?”

늙은 장군 하나가 물었다.

“아니, 이건 공식 작전이다.”

짧은 정적이 지나고, 장교들은 당황하여 서로 웅성댔다. 그 동요가 어지간히 컸고, 또, 계속해서 의혹이 증식했기 때문에, 전령은 불편한 표정으로 정숙을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이게 정말 정규 작전이라면, 우리는 세 동맹의 신뢰를 공식적으로 깨버리는 거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이러면 우리가 반정부 폭도들이랑 다를 게 뭐요?”

여러 장교들이 소신을 밝혔다.

“맞습니다. 반정부 편에 가세하자는 겁니까?”

귀족은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의견을 밝혔다.

“국왕 전하께선 우리가 자주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메트리온과 한 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길 바란다. 우리의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가 바로 이 군사 개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인가?”

늙은 장교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비록 서리 왕국의 군인들이긴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세 부족 동맹 군대의 일원이잖소. 언제부터 서리 왕국 군대가 서리 왕국만을 위한 군대였단 말이오? 이건 완전히 독자 노선을 걷자는 얘기랑 다를 게 없잖소. 시메트리온을 굳이 자극할 이유가 뭐란 말이오?”

“하지만, 이것이 국왕 전하의 뜻이다.”

전령은 반박하지 않고 상명하복의 순리를 앞세웠다. 제 아무리 장군이고 고급 장교여도 국왕의 말에 거역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런 건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1000년간 함께 해온 동맹을 무시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냔 말이야···”

전령은 불편하게 침묵하다가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장교들을 침묵시키며 발언했다.

“국왕 전하께서는 현실 정치를 하는 거다. 이미 천족 정부, 그러니까, 시메트리온이 쇠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부에 의존하자는 말인가? 국왕 전하께서는 그 점을 명심하여 천천히 자립하고자 한다. 자립에 있어서 이번 군사 작전은 시작에 불과한데, 제군들이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굴면 대체 뭘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귀족도 다소 흥분해서 대답했다. 장교들은 입을 다물었다. 전령은 뒤늦게 흥분을 가라앉히며 명령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천족 정부에게 반기를 들고 싶지 않은 자들은 빠져라.”

늙은 장군 몇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사실상 사직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천족 천하였던 1000년간의 평화 속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장교들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 모양이었다. 이즈하는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숨죽인 채 보고만 있었다.

“이제 국왕 전하의 명령에 충성할 사람들만 남았다고 믿겠다.”

이즈하는 사실상 천족 정부의 영지를 침공한다는 정신 나간 계획을 듣고 있는 현실이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했다. 자주권 행사라니. 이즈하는 젊은 학생들이나 떠들던 이야기를 새로 부임한 국왕이 믿고 실현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가 무얼 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천족 정부를 향한 충성을 사실상 버린 건데,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야죠. 만약 천족 정부가 국왕 전하와 우리에게 보복하면 어떡할 겁니까? 국왕 전하는 우리를 지켜준다고 약속했습니까? 그리고, 아직까지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천족 정부가 내어주는 부와 명예보다 더 큰 것을 국왕 전하는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간 천족 정부는 수도 성역에 틀어박혀 현실 정치엔 눈을 돌린 채 대륙에서 공출한 부를 쌓아두기만 했지만, 국왕 전하는 다르다. 국왕 전하는 적극적으로 작전에 임한 장교들에게 귀족 작위와 특급 승진을 약속하셨다.”

남아있는 장교들은 전령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이즈하는 귀족 작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귀족 작위라면 어쩌면 정말 아버지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천족 정부가 쇠퇴했다고 하지만, 만일 천족 정부가 아직 건재하다면, 독자 노선을 타는 서리 왕국을 보복하여 지금의 국왕을 쫓아내고 보수적인 국왕을 세우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완전히 도박판에 끼어들라는 꼴이군.”

옆에서 동료들이 떠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도박에 응할 것이냐, 응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만이 남은 선택지였다. 나이든 장교들이 줄지어 정복 코트를 벗어 자리에 두고 떠났다. 명백히 사임을 의미했다. 신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든 장교들이 머뭇대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느라 허둥댔다.

전령의 뜻대로, 천족 정부에게 반기를 드는 왕의 판단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00년. 한낱 인간인 이즈하로써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 방대한 시간동안 천족 정부는 대륙을 지배했다. 그런 천족 정부가 고작 단 한 번의 패배를 겪었다고 해서 이를 1000년간의 통치의 끝이라고 생각하기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이즈하가 보아도 왕의 판단은 젊은이의 호기로운 도박이었다.

이즈하는 잠시 머뭇대다가, 곧 마음을 정했다. 평생 평화가 이루어진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천족이 만든 시대가 끝나지 않으면, 이즈하는 결코 아버지의 부관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이즈하가 그럴듯한 작전 계획을 짜고 훈련을 진행한들, 귀족도 아닌 그가 아버지가 일하는 부대에 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평생 경비 업무와 무익한 당직이나 서면서 늙어가기엔 그는 아직 젊었다.

그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어린 나이부터 자기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이젠 젊음을 잃어가는 어머니에게 편안한 여생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진해야 했다. 그런 숙명을 짊어진 이즈하에게 이 전쟁의 시작은 승진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즈하는 자신의 행동이 전부 남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의 삶에는 정작 자기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채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장교들은 자리를 지켰다. 그 이유가 상명하복의 순리에 저항할 용기가 없어서인지, 야망을 꿈꾸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불미스런 상황에 소신을 지켜 직장을 포기할 수 있는 이들은 이미 늙어버린 노인들이나 가능했다. 그들은 지금 전역한다 해도 얼마든지 고급 장교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중간 계급의 장교들은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제대군인 연금으로 살아가기엔 수도에 사는 처자식들을 벽지로 이사 보내야할 상황이었다.

“좋다. 제군들은 국왕 전하와 함께 국경을 넘을 것이다.”

이렇게, 장교들은 좋든 싫든 국왕의 무모한 도박에 가담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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