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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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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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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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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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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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세 명

DUMMY

“왜···. 왜?”

“우선 들어와.”


녹호는 가는 손목을 붙잡고 안으로 끌어당겼다.

금세 두 사람은 안방까지 도착했다.

이 모습에, 서주도 무슨 일인지 깨달은 듯했다.


“나는 불장난이야?”


인영은 거리낌도 없이 내질렀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녹호도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


“아니야.”

“그럼?”

“내가 가족 개념이 희미했어. 애초에 정상적인 환경을 누려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상식이란, 대중화된 편견이다.

이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에게 별세계 관습일 뿐이다.

도플갱어에겐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그랬다.


“그게 말이 돼?”

“보육원에서 자란 애가 아빠랑 엄마를 알 수 있겠어? 아예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으면! 어떻게···.”

“모르지?”

“······.”

“그냥 그런 환경이었어. 그래서 인간관계든 뭐든 일단 움켜쥐고 봤어. 그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아버지, 어머니, 자식, 형제.

이를 겪어본 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나마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자식, 아버지와 자식 관계만 단편적으로 체험했을 뿐이다.


일부일처제가 교과서에 얼핏 나와는 있겠지.

하지만 그걸 체감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 상식은 시험 문제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관계 정리할 거지? 그렇지?”


인영이 조심히 입을 뗐다.

자신은 안전할 거라는 기대도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주가 한 발 나섰다.

다소 불안한 눈빛으로.


“서주야, 괜찮아?”

“아니요.”

“그렇다는데?”


녹호가 차분한 시선으로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건 꼭 반응을 요구하는 듯했다.


“그래서···, 일부다처제를 하겠다고?”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합의점이 그렇다면야.”

“합의? 아니, 싫어. 내가 왜 반쪽짜리를 가져야 하는데? 왜 양보해야 하는데?”

“······.”

“피녹호, 네가 한 명 골라. 이모랑 나, 둘 중 한 명 고르라고. 비겁하게 이러지 말고.”


도플갱어는 곧장 대답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인영을 바라볼 뿐이다.

침묵은 조심스레 이 방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묵묵한 시선은 서주를 향했다.


“···전 괜찮아요!”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뭐든지 상관없어요! 두 번째라도 괜찮아요!”

“이모?”

“버리지만 말아요! 그럼 저는···.”


서주가 바들바들 떨었다.

두 손은 치맛단을 꼭 붙든 채였다.

눈망울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망과 함께, 인영을 바라볼 찰나.


“보다시피, 이래서.”


녹호가 시선을 가로챘다.


“···하. 이모도 나랑 똑같네.”

“맞아. 그리고 똑같이 내 약점을 알고 있지.”


이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한 명이라도 배신하면 내가 위험해져. 재산 몰수당하고 재판에 넘겨지겠지.”

“······.”

“아니면 갑자기 증발할 수도 있어. 도망쳤다는 소문만 가득하겠지. 그리고 몇십 년 후에, 어떤 제약회사 지하실에서 발견되겠지. 생체실험 재료로.”


분노는 배신을 부른다.

두 사람도 당장은 참겠지.

하지만 먼 훗날, 누군가가 유혹한다면 흔들릴지도 몰랐다.

도플갱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하지 않으면 될 일이니까.


“이모를 택하면, 내가 배신할 거라고 생각해?”


인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얼핏 원망이 담겼다.


“아니. 너 의리 있잖아.”

“그런데 왜.”

“그럼 물을게. 서주를 택해도, 배신 안 할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벌어지려는 입술.

하지만 금세 닫히고서, 침묵을 내뱉었다.

이모를 택해도 받아들일 자신이 있는가?

도플갱어를 깔끔하게 보내줄 생각이 있는가?

그런 물음이었다.


인영은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쉽게 보낼 자신은 없었다.

설령 배신하지 않을 생각일지라도, 깔끔한 자세를 취할 순 없었다.


“···아니.”


질척거리며 붙잡았다.

녹호를 사랑했기에.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만 했다.


도플갱어도 이를 알았다.

그렇기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그저 풀어내지 못할 만큼 엮이고 엮여 나갈 뿐이지.


“배신은 안 하겠지. 그래도 협박은 할 거잖아? 버리면 각오하라고.”

“······.”

“이쪽도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야.”


인영은 결국 도끼눈을 치떴다.

가만히 있는 서주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독점욕을 느꼈고, 그래서 현실에 화가 날 터였다.


“나한테 미안하긴 해?”

“그래. 미안해.”

“그럼 나도 너랑 똑같이 하고 다녀도 돼? 다른 남자 만나고 다녀도 되냐고?”


결국, 내뱉은 건 복수였다.

너도 했으니 나도 하겠다는.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맞아. 그게 합당하겠네.”

“······.”

“그런데 그건 안 돼. 화날 것 같거든.”


도플갱어는 지극히 이기적인 대답을 내어놓았다.

자신은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인영도 별말 하지 않고 녹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침묵.

기다랗게 뻗은 손이 올라갔다.

이내 손끝은 단단한 가슴에 닿았다.


“된다고 했으면 진짜 화냈을 거야.”


인영이 녹호를 밀었다.

마침이라고 할까?

거대한 몸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아직 그날까지 조금 남았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기다란 몸이 가까이 다가갔다.

갸름한 얼굴에는 어딘가 묘한 미소를 띠었다.

녹호도 무언가 통한 듯, 두꺼운 팔뚝으로 가는 허리를 휘감았다.


“목사님···.”


그때,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인영아.”

“두 번째도 괜찮다면서? 아니야?”


가느다란 눈꼬리가 유독 날카로워졌다.

꼭 먹이라도 빼앗길까 경계하는 모습 같았다.


“넌 또···.”


서주 역시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언뜻 기시감마저 느껴졌다.

조카가 자신과 예현 사이를 끼어들었을 때의 순간이 떠올랐다.

공기마저 껄끄러워지려는 찰나, 두꺼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응?”


도플갱어가 문제 있냐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서주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야, 피녹호?”

“왜?”

“설마, 아니지?”


한 쌍의 동공이 떨리는 순간, 사나운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와 동시에, 두 여자는 힘껏 침대로 당겨졌다.


“꺄악! 야, 잠깐만!”


멍청한 표정을 지은 서주.

얼굴이 새빨개진 인영.

두 사람이 출렁이는 침대 위로 넘어졌다.


녹호는 이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어쩔 생각이냐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그럼 내 목숨이 위험해지는데.”

“아니, 그래도 이건···!”

“그럼 양보할래?”


인영은 그 말에 퍼뜩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시선은 멈칫 옆으로 향한다.

조용히 누워있는 서주에게로.

벌써 상황을 받아들인 것만 같았다.


갸름한 얼굴에 작게 금이 간다.

앞니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이내 머리는 푹 소리와 침대에 파묻혔다.


“···X발. 마음대로 해.”


갸름한 눈꺼풀이 질끈 감겼다.

그리고 기다란 손가락은 이불보를 꽉 움켜쥐었다.



***


해가 떠올랐다.

호텔 방에서도 빛이 들어왔다.

녹호는 테이블에서 느긋하게 태블릿을 살폈다.


다만, 의상이 묘했다.

셔츠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청바지만 입은 상태다.

피부에는 웬 상처가 생겨났는데, 유독 왼쪽만 시뻘건 피딱지가 가득했다.

꼭 그 방향에서만 긁어댄 듯이.


“아···.”


침대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갸름한 얼굴은 배부른 하품을 내뱉었다.

가느다란 몸이 느릿하게 이불 속에서 뒤척였다.

시선은 곧 옆으로 향했다.

자연히 망막엔 자신과 함께 누워있는 사람이 담겼다.


“으으응···.”


서주가 답답한 듯이 이불을 밀었다.

새하얀 피부는 덜렁 밖으로 나왔다.

순두부 같은 부드러움이 따스하게 흔들렸다.

쥐어짜인 듯, 거대한 손자국이 남아있는.


인영은 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저 풍경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곧 미간이 움찔댔다.

상황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이해되기 시작했겠지.


“···아?”


눈꺼풀이 크게 뜨였다.

동시에 이불을 부스럭대며 주위를 살폈다.

빠르게 정보를 얻기 위한, 동물이 주위를 경계하는 반응이었다.

설령 머릿속은 당혹감에 마비가 됐을지라도 말이다.


“아아아?”

“으으, 조용···.”

“아니, 잠깐. 나 뭐야? 어제 뭘 했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이불은 흘러내렸고, 자신의 몸 역시 드러났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새하얀 나신이.


부스럭, 기다란 손가락은 당장 이불을 끌어 올렸다.

손톱 사이에 누군가의 핏물이 굳어있다.

자신이 어떤 순간에 참지 못한 버릇이었다.

이제 기억이 났겠지.

갸름한 얼굴에도 새빨간 핏기가 올라왔다.


“깼어?”

“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은 내가 질러야지. 몸이 이 지경이 됐는데.”


도플갱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상처도 그래서 남겨뒀을 테지.

인영을 놀리기 위해서.


“아···, 인영아.”


갑작스러운 소란에 서주도 깨어났다.

얼굴엔 다소 멍한 기색이 서렸다.

하지만 인영과 달리, 요란을 떨지는 않았다.

이불 밖으로 나가려는 듯이 앞으로 몸을 숙일 뿐.


“어디 가?”

“일. 어제 못했잖아.”

“옷은 입어야지?”

“왜 그래? 어차피 다 보셨잖아?”

“그래도!”


인영은 다급히 서주를 붙잡았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자, 다시 움찔하면서.


“옷도 안 보여.”

“아이, 진짜!”


말 그대로였다.

두 사람의 옷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나마 보이는 건, 녹호가 대충 벗어둔 셔츠 정도뿐이다.

인영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서주에게 입혔다.


“사이 좋네.”

“넌 닥쳐!”

“왜? 어젯밤에 화해했잖아? 아니, 몇 번 더 싸웠나?”


다급한 손길은 익숙하게 이모를 챙겼다.

드문드문 손자국 새겨진 몸은 셔츠 속으로 모습을 숨겼다.

일단 당장은 보이지 않도록.


정리가 끝나자, 서주는 그 차림 그대로 이불에서 나왔다.

하지만 의미 없었다.

커다란 옷가지는 몇 걸음 만에 흘러내렸다.

겨우 숨겼던 살결이 덜렁 모습을 드러냈다.

서주는 신경도 쓰지 않지만.


“아으···.”


인영도 나와야 할 차례.

이불 속에 남은 옷은 없는지 찾아보다가, 곧 절망감에 물들었다.

한 번 끙 앓더니, 결국 이불을 통째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망토처럼 걸쳤다.


애벌레가 그럴까?

두꺼운 앞섬을 단단히 쥐고서, 뒤뚱뒤뚱 침대에서 나왔다.

둔한 움직임은 옷가지를 찾아 방을 돌아다녔다.

녹호도 그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앉지? 의견 좀 듣고 싶은데.”


그 말에 갸름한 얼굴에 작게 금이 갔다.


“옷만 입고.”

“급해.”

“야.”

“빨리 끝나면 나 먼저 나가볼 생각인데. 어때?”


인영은 결국 통통 튀면서 테이블에 다가갔다.

이내 녹호가 친히 빼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인영아.”

“왜?”

“조금 보이는데.”

“야, 씨!”


애벌레 같은 몸은 푹 수그러들었다.

꼭 여린 살결이 쿡 찔린 듯이.


작가의말

피카레스크는 주인공에게 너무 이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취향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을....

취향은 아닙니다....

암튼 아임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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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논벌 24.07.03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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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화. 만찬 24.06.19 9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13 0 13쪽
» 116화. 세 명 24.06.13 11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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