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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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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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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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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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권리 위에 잠자는 자

DUMMY

사나운 입가에 진한 미소가 새겨졌다.

두 눈동자는 빠르게 계산으로 움직였다.

수많은 방법을 떠올리고 비교하고 있을 터였다.


“저기, 대표 대리님.”


그사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왜 그래요?”

“약속 시간이 다 됐는데, 저분들 들여보낼까요?”

“하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누가 들어올지 뻔했다.

아까 전부터 서로 걱정거리를 말하고 있었으니.

물론, 녹호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라서 그런지, 얼굴에는 아직 어린 기운이 감돌았다.

실제로 인영보다 몇 살 많지 않을 테지.


“안녕···, 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하하···.”


어색한 인사가 지나갔다.

어쩌면 아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 불편할 터였다.

얼른 통성명만 하고 업무에 배치하는 편이 낫겠지.


“어? 뒤에 들어오는 분들은 누구시죠?”


하지만 곧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3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얼굴이 따라왔다.


“교수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아무래도 지부장 자리에 비전문가가 앉으면 안 될 거라고.”

“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최대한 전문가를 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인영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알아요. 그래서 고민도 많고요.”

“임원직은 근속 기간으로 임명하는 게 아닙니다. 능력이 중요한 법이죠.”


그렇게 말하고선 두꺼운 서류 뭉치를 내민다.


“지금껏 경영상에 보였던 문제점도 정리했습니다.”


문제점.

결코 기분 좋게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저 두께를 보면 더욱 그럴 터였다.


“이렇게나 많이···.”

“알아야 할 자료도 같이 뒀습니다. 읽어야 할 논문도 별첨했고요.”

“···네.”

“따로 자문단도 두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움직이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받아들려고 했다.

하지만 건네는 손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바로 소파에 앉아있는 녹호에게로.


“경영은 복잡한 일입니다. 학부생 수준보다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합니다.”


도플갱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꺼운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지. 알아야 할 게 많겠어.”

“맞습니다.”

“지금 인영이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예, 그렇습니다.”


능력 우위를 묻는 질문.

대답은 망설임조차 없었다.


“확실히 머리가 좋겠네. 인영이보다야 말이야.”

“예. 아무래도 학부생이시니까.”


인영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실무에서 뛰어봤다고 한들, 눈앞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아니었다.

더 긴 시간을 배웠고, 더 긴 시간을 일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밖에 없는 제안이다.


얇은 눈꼬리가 착잡한 기색을 띄웠다.

이내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짧게 턱 짓 했다.

자신은 괜찮다는 뜻이다.


“그럼 못 쓰겠네. 나는 머리가 아니라 수족이 필요하거든.”

“···예?”


하지만 녹호는 서류뭉치를 밀어냈다.


“지점장 자리는 분명 필요합니다. 그건 대표 대리도 동의한 사항 아닙니까?”

“저기 대학생들 맡기지, 뭐. 언제든 갈아 끼워버릴 수 있으니, 돈도 얼마 안 받을 거 아냐.”


선 굵은 턱이 졸업 예정자들을 가리켰다.

신입사원이 아니라 아예 지점장으로 앉히겠다면서 말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희는 더 고도화된 이론으로 법인을 이끌 수 있습니다. 훨씬 더 능률이 오를 겁니다.”

“알아.”

“무언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직접 신경 써야 할 일은 없습니다. 그저 편하게 권리를 누리면 됩니다.”

“그래서 싫다는 거야.”


전문가 중 한 명이 간곡히 설득했다.

동시에 얼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기색을 띄웠다.

도저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권리 위에서 잠들면? 내가 보호받을 수는 있나?”


하지만 녹호는 단호했다.


“그냥 경력만 보고 앉히면 결과는 좋겠지. 노력하지 않으면서 돈도 많이 벌 테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이해하진 못하잖아? 문제가 생겨도 그저 믿고 맡겨만 둬야 하고, 댁들을 부품 갈아 끼우듯이 바꿀 수도 없겠지.”

“······.”

“마음껏 부정을 저질러도 말리지 못해. 성능 좋은 부품에 휘둘리는 꼴이고, 내 회사를 뺏기는 꼴이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법학에서 말하는 격언이었다.

지금은 경영에서 이야기하고 있지.


“그럴 바에는 하나하나 지시하는 편이 더 나아. 다소 번거롭더라도.”


부분이 전체를 망칠 수 있다.

게으른 다수는 부지런한 소수보다 얄팍한 법이다.

도플갱어는 이 점을 꼬집었다.


“···돈이 아니라 권력 때문에 세운 회사였습니까?”


노련한 전문가도 상황을 이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득을 포기한다니, 보통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돈이 목적이라면 결코 이럴 수 없었다.


녹호는 이에 아무 말 없이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알아챘으니, 숨길 이유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호의 삼아 답을 알려주는지도 몰랐다.

유능한 사람을 유독 좋아하는 성격이니.


“실례 많았습니다.”

“그 서류 뭉치를 팔 생각은 없어? 컨설팅 비용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 있는데.”

“아닙니다. 있어 보이는 말만 끄적였을 뿐, 쓰레기나 다름없습니다.”


대화는 더 이상 의미 없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짧게 목례를 취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


카페.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이 텅 빈 채였다.

분위기도 괜찮은 곳이건만,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천선만이 후드를 뒤집어쓰고서 느긋이 커피를 마셨다.


“삼촌!”


그때, 테이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왔어?”

“네. 그런데 팻말이 있던데요? 오늘 여기 영업 안 한다고요.”

“내가 빌렸어.”

“카페 전체를요?”

“응, 큰 곳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렇게 안 하면 편하게 얘기하기도 힘들고.”


천선은 이제 유명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면 금세 사람이 따라붙었다.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괜찮아. 그만큼 벌잖아.”

“그래도요.”

“조용히 할 말도 있어서. 괜히 정신 사납지 않게.”


테이블 위에 있는 검은 물체를 톡톡 두드렸다.

카메라였다.

그것도 방송국에서나 쓰는, 상당히 고급 장비로 보였다.


“너도 알고 있지? 나랑 같이 다니면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한 거.”


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몇 번 같이 있었던 수준이 아니었다.

커다란 자리마다 따라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아예 동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천선의 팬이라면, 테이가 누군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네. 친구들도 계속 물어봐요. SNS 하라는 말도 하고요.”

“참. 걔네 말고 다른 애들이랑도 잘 지내지?”

“아···.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얘기해요. 그냥 그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괜찮아?”

“굳이 걸고넘어지기도 이상하잖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화내는 건. 그럼 따돌림당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수군댈 걸요?”


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동급생들은 방관자가 아니라 구경꾼이었다.

죄책감을 나눠 가졌을 뿐, 모두가 지옥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작은 외면들이 모이고 모여서 큰 불행이 된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묻기에는 애매했다.

그럴 능력조차도 없었고, 감당도 되지 않았다.

그냥 없다고 해버리면 없는 일이 될 터였다.

세상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지 않듯이.


“벌써 그런 얘기가 돌고 있어?”

“네? 아니에요!”

“수군댈지도 모른다고 뒷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뜻 같은데.”


조용한 말에는 반쯤 확신이 서렸다.

확실히, 테이가 안 좋은 예상을 뱉어대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저 걱정을 얼버무릴 뿐이지.

이렇게나 자세히 말한다면, 실제로 겪었을 확률이 높다.


“그 정도까진 아니고, 화장실에서 누가 툴툴대는 말을 들었어요.”


별생각 없이 하는 험담들.

모두가 나쁘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이는 끊이질 않는다.

그 엄격함은 자신에게만 예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 내뱉고도, 선을 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게 점점 심해질 거야.”

“그럴까요?”

“응. 방송 화면에 나오기로 결정했잖아. 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야.”


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반인이 유명해지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야.”

“괜찮아요. 귀찮긴 하겠지만.”

“음, 이건 직접 얘기하시는 편이 좋겠는데. 아, 마침 오시네.”

“네?”


그 말과 함께, 카페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어?”


동시에 테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들어오는 얼굴이 굉장히 익숙한 모양이다.

저 중년 남자 역시도 화답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테이야.”

“아빠?”


테이의 아버지.

미리 이야기가 됐던 건지, 자연스레 딸의 옆자리에 향했다.

그리고 천선에게 인사를 건넨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니에요.”

“얼핏 들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고.”


모든 일을 알진 못하겠지.

하지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담임 선생님과 통화 정도는 했을 터였다.

바빠서 신경을 못 썼을 뿐, 자식에게 애정이 없던 건 아니었으니.


“저도 테이한테 종종 도움을 받는데요, 뭘.”

“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어려운 일은 안 시키죠. 다만, 위험부담은 있어요.”

“예?”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

천선은 이에 덧붙이듯이 물음을 띄웠다.


“일반인이 유명해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살아온 시간이 짧다면 그저 좋다고 생각하겠지.

때로는 귀찮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다른 걱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주변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소식 들었다고, 혹시 돈을 빌릴 수 있겠냐고.”

“그리고요?”

“거절하면 야박하다고 욕을 해댈 테죠. 아니, 그뿐이면 다행입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은 기본일 겁니다. 하지도 않은 행동으로 손가락질받고, 희롱당할지도 모릅니다. 평생 숨어서 살게 되겠죠.”

“또요?”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강도에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마저도 점잖게 말한 수준이다.

겨우 몇 마디로는 처참함을 담아낼 수 없었다.


“네, 그래서예요. 어떻게든 돈으로 안전을 사야 해요.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유명세를 이용하는 거고요.”


작가의말

뭔가 있어 보이는 내용은 많지만, 제가 전문가이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냥 주워들은 거 배열해서 쓰는 수준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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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5화. 공작 24.07.11 10 0 13쪽
124 124화. 지역구 24.07.09 15 0 11쪽
» 123화. 권리 위에 잠자는 자 24.07.06 13 0 11쪽
122 122화. 논벌 24.07.03 12 0 11쪽
121 121화. 교수 24.07.01 13 0 12쪽
120 120화. 댓글 24.06.27 14 0 12쪽
119 119화. 인터뷰 24.06.24 18 0 12쪽
118 118화. 만찬 24.06.19 9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12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9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13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11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10 0 11쪽
112 112화. 반증 24.06.0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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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4화. 하늘 24.05.10 14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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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18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22 1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15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14 0 12쪽
97 97화. 행운 24.04.23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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