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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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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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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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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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시위

DUMMY

***


녹호가 차고에서 방으로 돌아왔다.

얼굴에는 여전히 개운치 않은 기색이 서렸다.

하긴, 체육관에서도 영 갑갑해 보였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거는 곳은 다름 아닌 유송.

통화음만 한참 이어진다.


“뭐야?”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꼭 받기 싫다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사나운 얼굴에 미세한 금이 생겨났다.

평소 태도와 최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원인은 짐작이 간다.


“···귀찮게.”


녹호가 일어났다.

성큼성큼 발길을 옮겨 은밀한 곳으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컴컴한 계단과 복도를 지났다.


지하실.

굳건한 철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겉과는 달리, 문짝 안쪽은 유난히 녹슬고 손톱자국이 많았다.

몇 년 전부터 그랬듯이 말이다.


“뭐야? 어디 갔어?”


내부는 깔끔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라졌다.

어쩌면 그냥 퇴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책상 위에 휴대폰과 종이 한 장이 놓인 채였다.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라.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지?”


두꺼운 손이 종잇장을 들었다.

끄적인 글자가 망막에 비친다.


-아파요.


첫 번째 적힌 문장이었다.


-몸만큼이나 마음이 아파요. 잠깐 당신이 너무 미웠어요.

“······.”

-눈앞에 있다면 때려줬을지도 몰라요. 울며불며 욕을 퍼부었을지도 몰라요. 제 주제도 잊고요.


주제라.

명백한 상하관계다.

어떤 불합리함도 참아내야 했다.

애당초 그런 조건으로 고용된 처지니까.


-도망가버릴까도 생각했어요. 마냥 하염없이.


단순히 그게 괴로웠을까?


-그런데 그건 싫었어요.

“···뭐?”

-다시 얼굴 보기가 무서운데, 영영 안 보자니 너무 숨이 막혀요. 눈앞이 깜깜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요. 아마 그런 탓이겠죠. 당신과 누구보다도 오래 지내고, 과거 역시 봤으니까.


유송은 그 관계 위의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저는 당신의 어머님과 같은 걸 바라고 있었어요. 주제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으로 당신이 바른 삶을 가지길 바랐죠. 오롯하게 그 존재를 인정받는 인생이요.


순수한 애정.

그건 시간이 겹겹이 쌓여 생겨난 감정이다.

그리고 관계를 초월했기에 서로 동등하기도 했다.


-그걸 위해선 제가 당신 곁에 떠나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의 못된 짓에, 누군가는 솜털 같은 회초리질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아이는 그래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선의를 가지게 되었다.

도플갱어를 위한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또,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 저를 원망하겠죠. 알아요, 얼마나 큰 배신으로 느껴질지. 얼마나 어이가 없을지.

“하···.”

-폐 끼쳐서 죄송해요. 계약을 어겨서 죄송해요. 하지만 염치없게도 그런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유송은 무력했다.

그러니 선의 역시도 조심스러웠다.


-부디 제 동생을 챙겨주세요. 얼마나 어이없고 화가 날지 알지만, 그래도 부탁드려요.


양해를 구하고 부탁까지 해야만 전달할 수 있었다.

도플갱어에게 일말의 인간성을 기대하면서.


“······.”


녹호는 종이를 구기듯이 주머니에 넣었다.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련님?


두오를 향한 통화였다.


“김유송이 사라졌어.”

-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신경 쓸 건 없고, 앞으로 하나 조사해봐.”

-유송 양을 찾아보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건 됐어. 문제 없으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문제가 없으면.

반대로 말하면, 어떤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신원미상 자살자가 생기는지, 그게 20대 초반 여성인지 찾아봐.”


그랬다.

솜털 같은 회초리질이라니.

유송이 이를 행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녹호에게 실금이라도 가게 하려면, 그 정도라도 해야 했다.



***


녹호가 차에서 내렸다.

평소와는 달리, 운전석에서.

주차장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마침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대표님?”


아리송한 표정.

사나운 눈가가 내려다보자, 다급히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

“아, 버튼 눌러드릴까요?”


녹호는 별말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다음, 알아서 버튼을 누르고 위로 올라갔다.

직원도 중간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렸다.


꼭대기 층.

문이 열리자마자 몇 사람이 보인다.

직원이 늘어났기 때문이겠지.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대표 대리 보러.”

“약속은 하고 오셨어요?”


녹호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잠시만요, 그냥 들어가시면 안 되는···.”


막 붙잡아오던 손길은 또 다른 직원에 의해서 제지당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대, 대표님? 아, 안녕하세요!”


녹호는 그 모습을 잠시 보더니, 안쪽으로 스윽 들어갔다.

한 사람이 굳은 인상으로 문서를 보다가, 인기척에 문득 고개를 든다.


“응? 뭐야?”


인영이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싫나 봐?”

“아니, 좋···같긴 해.”


녹호는 잠깐 코웃음을 치고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 피녹호. 내가 보내준 메일 봤어?”

“어. 그래.”

“그것 때문에 온 거고?”


인영은 헐레벌떡 이것저것 챙겨서 일어났다.

나눠야 할 대화가 많은 모양이다.


“말해서 뭐 해? 그렇게 징징거렸으면서.”

“참나. 나도 방법은 알고 있었거든? 권한이 없어서 그렇지.”

“됐고. 나불대고 싶은 거 나불대 봐.”


바리바리 싸 들고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 문제 상황을 주욱 늘어놓았다.


“컴플레인이 많아.”


다른 말로 하면, 민원이 늘었다는 소리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가 불친절하다고 난리야. 카페는 위생 문제로 꼬투리 잡으려고 하고. 또, 안전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요약.”

“십X끼들, 진상 존X 부려.”


인영이 결국 욕을 뱉었다.

한 번 내지르고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모양 빠지긴 하는데, 결국 그런 일이더라. 영업부에서 돈을 벌어오고, 잡음도 주로 거기서 생기니까.”

“맞는 말이지.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쉬울까.”

“남 일처럼 말하지 마.”


고양이 같은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근데 조금 이상해. 회사 경영 자체는 쉽거든? 내가 어려운 이야기는 안 하잖아?”


회사 내 자금 운영이나 설비 파악.

눈이 어지러운 서류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간단한 일이 지나치게 커져 버렸어. 이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그래?”

“고객들 있잖아, 이용할 때는 별말을 안 해. 근데 SNS로 가서 불만을 토해버려.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말해야지, 공론화 먼저 하고 있어.”

“······.”

“그다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붙어. 꼭 다 안다는 듯이 틀린 얘기를 지껄여. 그럼 그게 추천 수가 올라가고.”


부정적인 관심.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불어난다.

사과하면 죄인이 되고, 하지 않으면 낙인이 찍힌다.

도저히 상종 못 할 사람으로.


“그렇게 오늘 시위까지 한다잖아. 우리를 규탄한다면서.”


도플갱어가 정신없던 사이, 무언가 극단으로 치달았다.

감정이 너무 빠르게 차올라서 터지고야 만다.

꼭 폭탄처럼.


“확실히. 빠르네.”

“그치? 뭔가 있는 것 같지?”

“당연히 뭔가는 있지. 그걸 감수하고서도 빠르다고.”

“어?”

“인간이 죄다 쓰레기라서 그래. 하, 불 지르고 싶네.”


녹호는 잔잔한 경멸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언뜻 진절머리가 난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 그리고 유송과의 일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지.


“뭐야? 죄다 꿰고 있는 것 같네?”

“지금 자료 보낼 테니까 복사 시작해. 한 1000부 정도.”


휴대폰을 툭툭 두드렸다.

미리 준비한 자료겠지.

지금 상황을 전해듣고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알았어. 준비할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아래에는 역시나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근데 어디 발표회라도 있어? 되게 많이 뿌리네?”

“있지. 그것도 아주 큰.”

“어디서?”


바닥에 테이프로 구역을 나눈다.

미리 위치를 잡아두기 위해서였다.


“저기서.”


모여든 사람들.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다.

확성기며, 피켓이며 다양하게도 가져왔다.

시위하기에 알맞게.


행인 역시도 관심을 가진다.

휴식 시설, 그 앞에서 벌어지는 이변이라.

흔하게 생기는 일은 아닌 탓이겠지.


“응?”

“말했잖아. 저기서 한다고.”

“지금? 시위할 때?”

“내려다보다가 적당할 때 뿌려. 나랑 이 정도 붙어먹었으면 그만한 눈치는 있잖아?”


녹호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심했다.

등 뒤에서는 갑작스러운 야단이 들려왔다.


“아, 씨! 다들 모여요!”

“네, 대표님!”

“대표 대리라고요!”

“아, 네! 대표 대리님!”


인영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발을 맞추려면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그러니 다급히 사람을 소집한 것이겠지.


그 사이, 녹호는 발을 느긋하게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바깥으로.

금세 시위가 벌어지는 곳까지 내려왔다.


“진짜 개떼처럼 모여들었네.”


사나운··· 아니, 그보다도 시커먼 미소가 서렸다.

다가가기만 해도 공기가 껄끄러워지는 느낌이다.


“레저 피노키오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상생과 공생을 위해 대화를 나눠라!”

“나눠라! 나눠라!”

“나눠라! 나눠라!”


이를 알아채는 이는 드물었다.

그만큼 주변이 요란했기 때문이다.

녹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시위대 앞으로 나섰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으니.


“저기요. 여기 시위 준비 중이니까 가세요.”


시위대장이 나섰다.

저 건물에서 나왔으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겠지.

덩치도 녹호만큼이나 커다랗다.

기세로는 밀리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흠, 잘 찍히고 있나 모르겠네. 방송하는 애들한테 홍보해뒀거든. 동생 이름으로.”

“안 들리세요?”

“너네도 아는 기자가 있었나 봐? 그게 아니면, 그냥 돈 쥐여줘서 섭외했나?”


천선으로 벌인 이벤트.

그렇게 쌓인 인맥으로 정보를 흘린 모양이다.

이곳에서 거대한 사건이 생긴다고.


마찬가지로 저쪽도 단단히 준비했다.

돈을 줘서 기자를 부른 것이다.

시위 현장을 찍으라고.

그래서 자극적인 기사를 써달라고.


“설마, 여기 관계자?”

“그래. 내가 대표지.”


그 말과 함께, 시위대장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1등석에서 구경이나 하고 싶은데. 의자 하나 가져다가 주지?”


작가의말

앞서 그런 내용이 있었잖아요?


사회 정의를 위해 학폭 가해자 신상 공개->악플->자살->신상털이범이 죄책감을 덜기 위해 피해자에게 몰려듬->피해자 인권도 파괴됨


저는 이게 좀 극단적인 비약일까 걱정했거든요.

엄벌주의가 심화된 사회로요.


뉴스가 조회수를 끌기 위해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키워드 노출->신상 털이범들이 재미로 피해자까지 조리돌림.


이게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현실은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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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화. 만찬 24.06.19 9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13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10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13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11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10 0 11쪽
112 112화. 반증 24.06.01 11 0 12쪽
111 111화. 선악은 항상 정방향으로 향하는가 24.05.30 10 0 13쪽
110 110화. 배신 24.05.27 10 0 12쪽
109 109화. 관계의 재시작 24.05.2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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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시위 24.05.14 12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14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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