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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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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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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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반증

DUMMY

***


수많은 기자가 둘러싸고 있는 곳.

단상 책상 위에는 마이크와 음료가 놓여있다.

뉴스에서 익숙하게 보는 풍경이다.


그래, 기자회견.

그 중앙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천동죽이다.

멀끔한 얼굴은 다소 굳은 채였다.

익숙하지 않지만, 플래시 세례를 견딘다.


“먼저 제 말을 들어주시러 와주신 기자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힘을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동죽은 가벼운 인사로 시작했다.


“여러 번 말해왔듯, 저는 도플갱어입니다. 바라보는 대상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며, 이는 유전자 단위까지 적용됩니다.”

“······.”

“위험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능력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쓰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선,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며 비스킷을 베어 물었다.

그러자 나이 들고 깡마른 남자의 모습으로 변한다.

동시에 플래시 세례도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팔에 튜브를 감는다.

굵은 바늘을 팔뚝에 꽂았다.

채혈하는 과정이었다.


“이 혈액은 연구소에 맡겨 각종 검사를 치르겠습니다. 안정성이 확인된다면, 신체 조직을 정기적으로 기증할 계획입니다.”


과정이 끝나자, 새로운 사진을 보며 비스킷을 문다.

그러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시선은 정면으로 향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큰 고비가 끝났다는 듯이.


“이제 질문을 받기로 하겠습니다.”

“신체 조직은 돈을 받고 팔 생각이십니까?”

“아뇨, 대가를 받지 않겠습니다. 애당초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장기 매매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부터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할 터였다.


“어디까지 기증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우선, 골수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시간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가장 빠르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차차 영역을 늘리겠습니다.”

“또 다른 도플갱어로 모 인터넷 방송인을 지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식혜를 마시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이 있으십니까?”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도플갱어 지목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능력은 고형 음식물일수록 쉽게 변합니다. 음료를 마셔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식혜는 쌀알이 존재합니다.”

“예. 하지만 그 양이 적습니다. 자극을 줄 만한 양도 아닐뿐더러, 가라앉아서 마시기도 힘듭니다. 명백한 고형 음식을 섭취한다면 마주 보는 사람으로 변할 겁니다.”


기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식혜라는 점이 걸리지만,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렇게 지나갈 만한 의문이다.

기자회견장 밖에 도착한 남자만 아니라면 말이다.


“허락 없이 들어오시면 안 되는···.”

“글쎄요, 힘들까요?”


여우 같은 미소가 문 앞에 섰다.


“아니, 그···. 혹시 관계자일까요?”

“네. 아주 진하게 관련 있죠.”

“그럼 안으로 들어가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천선이 기자회견장 안으로 들어섰다.

태연하게 가장 중앙 통로에 발을 디뎠고, 순간 시선이 집중됐다.

대부분 뭔가 싶은 눈빛을 보였다.

고개를 다시 동죽에게로 돌리려다가, 다시 천선을 바라보았다.


“···어?”


놀람은 짧았다.


“야, 찍어!”

“뭐야!”

“미친, 오늘 특종만 몇 개야?”


파바밧!


순식간에 플래시 세례가 터져나간다.

천선은 즐기기라도 하듯이 빛을 내리쬐었다.

관심을 받으며, 느긋하게 통로 중앙에 섰다.


“오빠, 여기서 찍고 있으면 될까요?”

“그래. 잘하네.”


뒤에는 테이가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개인 방송을 송출하는 중이다.


-와 나작스 대스타 다 됐네

-♥♥♥♥♥♥♥♥♥♥♥♥♥

-왜 혼자만 그래픽이 다름????

-♥기자회견 주인공이 등장♥

-진짜 연예인 같아용!


오프라인,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시선이 쏟아진다.

하지만 천선은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천동죽 씨?”


오히려 인사를 받은 사람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도저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도플갱어라. 사람을 홀리는 악마라죠? 처음엔 설핏 듣고 칭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심으로 하는 모함이었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매끈한 손에는 과자가 들려있었다.

원통형 통에 든 감자칩 브랜드다.

이를 보란 듯이 흔들더니, 뚜껑을 개봉했다.

손끝은 입구에 들어가 반 토막이 난 과자를 꺼냈다.


무슨 의미인지 다들 눈치를 채기 시작한 찰나.

천선은 여유롭게 과자를 입 안으로 넣었다.

턱은 보란 듯이 움직였고, 목울대도 한 차례 꿀렁였다.

시선은 계속 동죽에게 박아둔 채로.


“어, 어떻게···.”

“겨우 관심 좀 끌자고 평범한 사람을 이렇게 모함하나요?”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도플갱어가 아니라고, 완벽히 반증해버렸다.


“다들 이런 사기꾼이 하는 말을 믿는 건가요? 자기가 사람을 구할 거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쏘아붙였다.

오해일 수도 있건만, 사기꾼으로 못 박아버린다.

아예 숨통 끊어버리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동죽도 그 서슬을 읽었는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가능합니다. 방금 뽑은 피로 확인할 수 있듯, 제 몸 밖으로 나왔다면 변화 후에도 형질이 유지됩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유전자 검사로···”

“몸 밖에 나온 물질. 그걸 당신이 임의로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믿냐고요.”


도플갱어는 알고 있다.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나왔다면, 뭐든지 그대로 유지된다.

이를 조작할 만한 능력 따위는 없었다.


“만약 이식한 후에 해코지할 마음을 먹는다면?”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존재했다.

대중은 이를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그럴 리 없습니다!”

“음, 해코지할 ‘마음’이 없다는 거죠? 그건 꼭 능력은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글쎄요?”


천선이 비웃음을 흘렸다.


“이식 수술이 어디 작은 일인가요? 몸에 이물질을 심어 넣는데, 그냥 믿으라고요?”

“그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믿음을 기반으로 제도를 운영했죠? 어제부터 바티칸 시국이었나?”

“‘몸 밖의 물질을 조작할 수 있다’, 그게 가능했다면 사실상 신일 겁니다. 나쁜 의도도, 그럴 만한 힘도 없습니다.”


동죽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차분히 주장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야, 자세한 내막까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나요?”


하지만 한 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냉장 보관할 혈액이 고작 몇 달 멀쩡하다고, 골수를 이식하겠다고 주장하잖아요? 인간은 실험용 쥐가 아닌데 말이죠.”

“······.”

“태어나서 지금껏 그 능력과 함께 살아왔지만, 미심쩍게도 그 생각은 못 한 천동죽 씨. 사람들이 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의심.


-맞네

-와 오빠 진짜 똑똑하다

-캬 사이다!!!!

-멋져용♥♥♥♥♥♥♥


논란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동죽을 비난할 터였다.

나중에 어떤 진실이 밝혀지든 간에, 입장을 바꾸지도 않을 테지.

결국,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마련이니까.



***


교회.

지금은 아이들이 빠지고 어른만 남았다.

예현이 들어오자 목사복을 입은 사람이 달려온다.


“목사님.”

“그래, 내가 없는 동안 잘 이끌고 있었는가?”

“예. 갑자기 사라지셔서 놀랐습니다.”

“잠깐 바빴다네.”


공손한 태도, 분명 부목사였다.


“그나저나 다들 잘 지내고 있었는가?”


곧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신도를 향한 말일 테지.


“네, 부목사님이 잘 이끌어주셔서요.”

“취업해서 좋아요.”

“레저 피노키오에서···. 아, 목사님도 아시죠?”


그 말에 예현이 미소를 보였다.


“그렇지. 다 내가 지시하고 주선한 일일세. 다들 업무는 어떤가?”


레저 피노키오에 직접 교인을 보냈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좋아요! SNS 하면 돈 줘요!”

“그거 팔로우 늘어나면 성과금 주더라고요? 그래서 퇴근하고도 휴대폰으로 글 퍼다 날라요.”

“맞아요, 저는 매크로까지 돌리고 있어요. 이번엔 잘생긴 사람이 홍보 모델 됐던데요?”

“진짜 좋은 일자리긴 해요.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 돈도 많이 주고요.”


바이럴 마케팅.

직접 지시하면 여론 조작이고, 법적 처벌까지 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지시가 아닌, 유도가 필요했다.

열성적으로 홍보 자료를 퍼뜨리고 다른 업체를 비방하도록.


“자격은 그대들의 신앙심이지. 계속 삶에 충실하기를 바란다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들 형제자매의 일을 도와주게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네. 회사 SNS 주소 가르쳐주면 바로 팔로우할게요.”


회사에서 전략을 짠다.

그건 직원에게로 전달된다.

이는 다시 교회로 퍼진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홍보한다.


여기에 위법 요소는 없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직원 개인 문제였다.

성과를 위한 일탈일 뿐이니까.


“점점 많이 오는군. 예배 시간이 오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예현이 부목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비한 말이 있다면 이만 물러가겠네.”

“아닙니다! 오랜만에 오시는 건데, 귀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그런가?”


당장 고개를 조아린다.

하긴, 진짜 예현이 어릴 때부터 세뇌했던 인생이다.

최근에 비범함까지 봤으니, 신앙심은 더욱 맹목으로 변했을 테지.


“흠. 그래, 그렇게 하지.”


중후한 발걸음이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상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많은 얼굴이 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안녕들 하신가.”


예현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하는 이야기니, 가장 근본적인 부분으로 돌아갈까 한다네. 그래, 믿음은 어떤가?”


말이 술술 나온다.

미리 준비라도 했던 모양이다.


“아브라함은 어느날 계시를 받았지.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따르기로 결정했지.”

“아···.”

“하지만 그때 아버지께서 등장하셨다네. 어린양을 가리키며 제물로 쓰라고 하셨지.”


신께 자식을 산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이야기.

구약이기에, 다소 과격한 감이 존재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다들 말해보겠는가?”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항상 옳으세요!”

“아버지께서는 다 뜻이 있으십니다!”


예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단상 위로 다가왔다.

서주였다.


“목사님, 부탁하신 것 조사해왔어요.”

“그래, 고맙단다.”


고개를 숙인 후, 아래로 내려갔다.

예현은 미소를 빙긋 지어 보였다.


“기자들,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네만. 일어나 줄 수 있겠는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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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지역구 24.07.09 15 0 11쪽
123 123화. 권리 위에 잠자는 자 24.07.06 13 0 11쪽
122 122화. 논벌 24.07.03 12 0 11쪽
121 121화. 교수 24.07.01 13 0 12쪽
120 120화. 댓글 24.06.27 14 0 12쪽
119 119화. 인터뷰 24.06.24 18 0 12쪽
118 118화. 만찬 24.06.19 9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12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9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13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11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10 0 11쪽
» 112화. 반증 24.06.0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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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5화. 시위 24.05.14 11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14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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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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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15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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