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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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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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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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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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교수

DUMMY

***


대학교의 개인 연구실.

한 사람이 홀로 업무에 열중했다.

개인실이 마련될 정도라면, 누군지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한창 일에 빠져 있을 무렵, 갑자기 통화음이 울렸다.

교수는 휴대폰을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머리라도 식힐 요량인지 창가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는 산뜻했다.

불쾌한 전화는 아닌 모양이다.


-오늘 술 괜찮나 해서. 바에 괜찮은 놈 하나 들어왔대.

“아, 오늘? 당연히 가야지.”

-웬일이야? 계속 빼더니?

“야, 이것들아. 그건 나한테 계산을 떠넘기니까 그런 거지. 내가 제일 많이 번다지만, 양심이 있냐?”

-그럼 어쩌냐? 우리가 거진데.


친구들인 모양이다.

다들 항상 빌붙어서 얻어먹고 있는 듯했다.


-오늘 나오는 거면, 돈 좀 생겼나 봐?


전화기 너머에서 은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정하고 돈을 뜯어낼 모양이다.

교수도 딱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을 뿐.


“곧 돈 들어올 데가 생겨서 말이야.”

-오호? 돈줄 하나 잡았나 봐? 정부 프로젝트라도 땄어?

“돈줄? 잡기야 했지.”

-이야! 썰 좀 풀어 봐!

“자세하게 말하기엔 길어서. 근데 돈만 많은 놈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지킬 머리가 없으니까 나처럼 배운 놈한테 다 헌납해버리잖아?”

-크크크. 역시 대단해, 우리 교수님.


통화는 몇 마디 더 이어지다가 끝이 났다.

휴대폰을 내려두고서, 시선은 바깥으로 향했다.

창밖에는 늘씬한 여자가 건물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중이다.


인영.

지금 커피 한 잔을 내려두고서 노트북 가방을 들어 올렸다.

해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회사 업무든 학교 과제든 바쁠 수밖에 없겠지.


“인영아.”


그때, 웬 남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아, 선배님.”

“뭘 선배님이야. 오빠라고 불러야지.”

“하하···. 호칭은 통일해야 해서요. 다른 분들께도 선배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왜, 저번에 누구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봤는데.”


인영은 불편한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대충 상황을 넘기고 싶은 듯했다.


“또 학식 먹을 거지? 오늘은 맛있는 거 먹자. 내가 밥 사줄게. 저기 후문 쪽에.”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긴. 너 맨날 값싼 것만 먹잖아. 가자.”

“진짜 약속이···”


남학생이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학교 밖에 있는 식당에 데려갈 모양이다.


“싫다잖아?”


그 남자 뒤로 으르렁대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엄, 깜짝이야. 누···, 누구세요?”

“선약.”

사나운 미소가 눈앞에 가득했다.

노란 머리카락은 사자처럼 휘날렸고, 입가는 흉포할 만큼 크게 찢어졌다.

선배는 위압감을 느꼈는지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꼭 도망가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야, 피녹호.”

“왜 그래?”

“알아서 조심하라고.”


인영이 찌르듯이 말했다.

녹호도 알아들었는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거대한 손으로 남학생을 툭툭 건드렸다.


“이제 가보시지? 시간 많아?”

“아니, 그게···. 저···.”

“내가 선약이라고.”


남자는 그 말에 쭈뼛대며 물러섰다.

척 봐도 거대한 덩치에 지레 겁을 먹었다.

둘만 남자, 인영은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


“야, 여기 내가 다니는 학교라고. 그런데 깽판을 치면? 나는 어떡해?”

“왜 그래? 보내줬잖아.”

“하. 태도가 이상했거든?”

“너무 신사적이었으면? 그게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녹호는 이내 맞은편에 앉았다.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걸린 채였다.


“그리고 너무 신사적이었으면? 너도 서운했을 텐데?”


인영은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곧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입을 닫았다.


“왜? 할 말 없어?”

“···뭐가.”

“그래. 맞는 말 같아서 괜히 짜증만 나지?”


갸름한 얼굴에 금이 갔다.

화라도 났을까?

테이블 밑에선 기다란 다리가 휙 움직였다.

퍽 소리가 울린 건, 그다음 일이었다.


“뭐, 괜히 폭력도 쓰고 말이야.”

“때리고 싶다, 정말.”

“어쨌거나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잖아. 내가 여기까지 와야 했던 이유 말이야.”


녹호는 정강이를 맞고서도 태연히 얘기했다.


“어. 내가 너한테 교수님 소개해주기로 했잖아.”


인영은 다시 노트북을 집어넣었다.


“왔으니까 이제 뵈러 가야지.” “너무 이르지 않나?” “상관없을 거야. 딱히 강의가 있지도 않으시고.”


그렇게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장서서 연구실로 안내할 모양이다.


“아, 근데 너 교수님한테도 반말하면···.”


그러다 문득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녹호는 타인에게 매번 반말을 해왔다.


“왜? 존댓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맞지. 근데 좀 애매하잖아. 개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랬다.

여기엔 사정이 있었다.

녹호, 예현, 천선은 뚜렷이도 달라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말투였다.

피녹호는 오만했으며, 단 한 번도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


“내 체면 좀 생각하라고 생떼 부리고 싶긴 한데, 이제는 사정을 아니까.”


음모론은 음모론으로 남아야 한다.

함부로 의심을 살 만한 언행 역시도 피해야 했다.


“그냥 내가 다 말할게. 넌 조용히 해.”

“똑똑하네.”

“조용히 하라고.”


두 사람은 금세 연구실 앞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손가락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교수님, 들어가도 될까요?”

“아, 인영 학생이지? 문 열려있어. 들어와.”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인문학 교수라서 그런지, 연구 장비는 없고 수많은 논문만 있을 뿐이다.


“귀한 분께서 오셨네요. 레저 피노키오의 피녹호 대표님 맞으시죠?”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해왔다.

인영 역시 얼른 앞으로 나와 말을 받는다.


“아, 네. 그래도 저랑 대화하시면 돼요. 저희 대표님이 말주변이 없으셔서요.”

“그러니? 하긴, 들어서 알고는 있어. 대표 대리로서, 직접 일을 도맡아 한다고.”

“그 정도는···.”

“일단 두 분 다 앉으세요.”


녹호는 여기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 실무에 뛰고 있는 건 알겠어. 그런데 한계가 있지?”


교수는 인영에게 넌지시 물었다.


“네.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책이 현실을 모두 나타내진 못하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잘하고 있어. 할 수만 있다면, 대학원생 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야. 근데 확장까지 하겠다고?”

“아, 네. 아시네요.”

“당연하지.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지방에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


대화는 매끈하게 진행되었다.

미리 준비해둔 말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용건 역시도 나오겠지.


“그러다 보니 든 생각이 있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해. 사람이 모자랄 텐데, 몇 명 추천이라도 해줄까 해서.”


‘인맥을 공급하겠다’, 이게 목적인 모양이다.


“추천이요?”

“학생도 알겠지만, 덩치가 큰 기업을 이끌려면 전문가가 필요해.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래서,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다고요?”

“아, 따로 돈을 받을 생각은 없어.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 그냥 대학교 취업 알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윈-윈이지.”


인맥과 인재.

신생기업이 가지는 문제였다.

여기에 대학교가 힘을 보태 준다면,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몇 자리 정도라면 가능해요. 이번에 서울에 있던 직원 몇 분은 지방으로 내려다 보낼 예정이라서요.”

“아니, 그게 아니라 관리직으로 말이야.”

“네?”


다만, 교수는 신입사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경영은 되는 대로 하는 게 아니야. 알면 알수록 할 수 있는 게 많거든.”

“저도 열심히는···.”

“학생은 잘 모르겠지. 배운 것까지만 잘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인영이 움츠러들었다.

반박하기도 힘들 터였다.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니.


“그런데 얼핏 봐도 난잡한 부분이 많아. 여기까지 성장한 건, 운이지. 냉정히 말해서.”

“······.”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가 했으면 몇 배는 더 커졌겠다 싶어.”


자신이 녹호에게 걸림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겠지.

설령 그렇다고 다그쳐도 할 말은 없었다.

인영이 한 일에 비해, 도플갱어는 너무나 거대한 영향력을 제공해왔다.


막대한 자금력, 뛰어난 화제성, 어떤 수익도 포기하는 목적성.

전문가라면 이 세 가지를 훨씬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테지.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할 말이 아니면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녹호가 입을 열었다.


“그···, 예?”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알잖아? 어른이라면.”

“아니, 그···.”


인영이 놀라서 두꺼운 다리를 찔러댄다.

교수도 당혹스러운 듯이 굳어버렸다.

설마 반말로 시비를 걸어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왜 그래? 지금 시대에, 일자리 줄 수 있는 사람이 갑 아닌가?”


녹호는 그 얼굴 위에 권리를 주장했다.

경영학과 교수에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논리를 내세웠다.


“···하하. 상상 이상으로 직설적인 분이시군요.”

“문제 있어? 돈 있고 권력 있으면, 천박함도 솔직함이 되는 법이잖아?”

“맞는 말입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이렇게 강하게 나오니, 오히려 공손해졌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몸을 사려야 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교수는 경어체로 물었다.

눈꼬리는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어딘가 흉흉해졌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뜻이다.


동시에 아예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녹호가 가진 자본력이 아쉬울 터였다.

심지어 법인이라는 형태로 계속 재물을 흡수하고 있으니.


“학교에서 뭘 줄 수 있지?”

“예?”

“어쨌든 여기도 돈 잡아먹는 장소 아냐? 축제나 행사를 할 때 우리도 같이 먹자고.”


녹호는 입가가 찢어질 듯이 미소를 지었다.



***


교회.

예배가 끝났는지, 예현은 부목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신도들은 그 주위를 둘러싼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내가 있으면 더 번거롭겠다 싶어.”

“아닙니다. 목사님이 계신 게 어떻게 불편함일 수 있겠습니까?”

“아닐세. 지금도 지나치게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았는가? 다들 다른 곳에 살고 있는데도 말일세.”


그 말대로 교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붐볐다.

다른 곳에서 예배하던 신도들까지 이곳에 온 모양이다.

오직 예현을 보기 위해서.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면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영광입니다.”


이 많은 신도와 일일이 담소를 나누지는 못하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다들 떠나지도 않고 남아있다.

신앙심이 예현을 향했기 때문이다.


“목사님!”


그러던 중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인파를 뚫고 들어온다.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 그저 신도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지금 손님 한 분이 만나길 바라십니다!”

“손님 말인가?”

“네! 국회의원인데···.”


말하기 껄끄러운지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더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신도들로 가득했던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는 덕이다.

그리고 한 중년 남자가 보좌관 여럿과 함께 나타났다.


“이렇게 실례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예현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곧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 천청해 의원.”


작가의말
이름 tmi
주인공 반대편이나 모호한 쪽은 자연물에서 따왔습니다.

ex)
장현묘->검은 고양이(피노키오 동화에도 등장하죠?)
김유송->어린 소나무(나무 인형과 반대되니까요)
김송과->소나무 열매, 솔방울(남매라서요)
천청해->푸른 바다(거대하고 일관성 있는 느낌을 바랐습니다)
천동죽->겨울 대나무(사군자입니다)
천하죽->여름 대나무(형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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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125화. 공작 24.07.11 10 0 13쪽
124 124화. 지역구 24.07.09 15 0 11쪽
123 123화. 권리 위에 잠자는 자 24.07.06 13 0 11쪽
122 122화. 논벌 24.07.03 12 0 11쪽
» 121화. 교수 24.07.01 14 0 12쪽
120 120화. 댓글 24.06.27 15 0 12쪽
119 119화. 인터뷰 24.06.24 19 0 12쪽
118 118화. 만찬 24.06.19 9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13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10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13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11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10 0 11쪽
112 112화. 반증 24.06.01 11 0 12쪽
111 111화. 선악은 항상 정방향으로 향하는가 24.05.30 10 0 13쪽
110 110화. 배신 24.05.27 10 0 12쪽
109 109화. 관계의 재시작 24.05.23 10 0 12쪽
108 108화. 돈 뿌리기 +2 24.05.21 15 0 12쪽
107 107화. 김송과 24.05.18 15 0 12쪽
106 106화. 하늘 +1 24.05.16 14 0 12쪽
105 105화. 시위 24.05.14 12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14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10 0 13쪽
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14 0 12쪽
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18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22 1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15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14 0 12쪽
97 97화. 행운 24.04.23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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