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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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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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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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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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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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세뇌의 시간

DUMMY

“더 가까운 신도라. 당연히 그 증명은 돈으로 하겠지?”

“헌신이라고 해주게. 돈은 방법 중 하나일 뿐 아니겠나?”

“쉽네. 솔직히, 그편이 제일 편하지. 어차피 푼돈일 테고.”


돈.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협상한다면 이보다 속 편한 결과가 없을 터였다.


“너무 나를 경계할 필요는 없다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

“······.”

“주님의 아들로서, 신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할 뿐이라네. 자네 역시 의지하면 한결 편해질 걸세.”


녹호가 커피잔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작은 과자를 집어 들었다.

예현은 그 모습에 빙긋 웃으며 커피를 물었다.


“뭐,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모험을 할 필요는 없겠지.”


뒤이어 나온 말에 어깨에도 힘이 풀린다.

중후한 얼굴에는 은은한 안도감이 서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 좋단다.”


녹호의 목소리다.

아니, 녹호의 목소리였었다.

하지만 사납기만 했던 음성이 그 끝은 어딘가 묵직해졌다.

분명 언제 한 번은 들어봤겠지.

혼자서 발성 연습을 했을 때라든가.


“···어?”


중요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녹호였던 것이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뻗고 있다.

가슴에 박힌 무언가, 그건 작은 주머니칼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토매틱 나이프라고 부를 수 있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칼날이 솟아오르는 도검 말이다.


“왜, 당황스러운가?”


녹호였던 것.

그리고 새롭게도 예현.

계속 들어왔던 예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칼로 사람을 찌른 채로 여상스럽게.


오토매틱 나이프가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따끔한 감각 역시 느껴졌겠지.

손목이 비틀리자 따끔함은 점점 뜨끈한 통증으로 변해갈 터였다.

숨은 크게 들이쉬어도 모자란 기분이 들겠지.


“이게 무슨···.”

“말을 아끼게나. 시간이 줄어들 거라네.”

“어윽···.”


작은 신음이 반사적으로 새어 나온다.

이제 저 머리와 몸도 위기 상황을 깨달았다.

그러자 커다랬던 손은 힘껏 칼날을 뽑아냈다.


찌이이익···!


핏물이 짜낸 여드름처럼 튀어 나가, 셔츠 위를 더럽게 수놓았다.

의례복을 입은 예현이 구멍 뚫린 가슴팍을 짓눌렀다.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폐부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 남은 손으로 칼을 든 팔뚝을 붙잡는다.

고개는 똑바로 들어, 자신을 찌른 자를 바라보았다.

얕은 숨이 섞인 소리를 내면서.


“지옥에 떨어질···, 허억···.”

“아쉽게도, 천국에는 진작 내 자리가 없었다네.”


마치 짐승이 거울을 처음 보고서 놀란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동공이 시꺼멓게 확대됐다.


“‘악마를 낳은 여인’이라고, 그 입으로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짐작하지 못했는가?”

“아으···.”

“천국을 말하고, 천벌을 말하고, 악마를 말하고, 구원을 말했지. 그 실체가 눈앞에 있다네. 기쁘지 아니한가?”


‘악마를 낳은 여인’

기껏해야 망상이나 과장쯤으로 여겼을 터였다.

초자연적 존재가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천사나 귀신 같은 걸 믿은 적이나 있었을까?


“아니, 그래서 기쁘지 못한 겐가?”


하지만 신을 팔아먹던 인간은 오늘 악마를 마주했다.

심지어 자신을 칼로 찌르며, 존재를 훔치기까지 했다.

마치 제 자리를 빼앗듯이.


“대답하기 힘든가?”

“아, 아아···.”

“그래, 그럼 그러게나. 말을 뱉어봐야, 시간만 짧아질 뿐이니.”


예현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목숨이 빼앗겼고, 인생이 빼앗겼고, 내일까지 빼앗긴다.

삶이 있는 현실도, 죽음 이후 천국도 사라진다.

타인에게 구원을 팔았던 대가로, 자신은 희망 없는 지옥에 떨어진다.


‘있을 자리’가 박탈당하는 순간.

너무나 익숙한 일이고 그 결과 역시 익히 봐왔다.

지금껏 비웃어 왔던 인간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선택을 했다.

바로, 외길로 걷는 것.


“용서···, 하시고···, 구하소서···.”

“······.”

“저를···, 용서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신을 팔아먹던 인간이 악마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주기도문과 닮은 애원이 흘러넘친다.

이제 숨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들리지 않네만?”


악마는 무릎 꿇고 울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비틀린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제발···, 저를 구하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

“구원해···,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우는 인간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애원하는 목소리는 반쯤 미쳐서 입만 뻐끔댔다.

소리 없이 기도를 아우성쳤다.

응답하지 않는 악마를 향해.


“······.”


악마···, 이제 유일하게 남은 예현은 시체를 조용히 갈무리했다.

널널한 의례복을 벗기고 자신이 셔츠 위로 걸쳤다.

목사복 안에 있는 평상복에서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옷이 시꺼먼 편이라, 핏자국과 구멍도 잘 보이지 않았다.


“흠, 괜찮군. 운동을 게을리하진 않았는가?”


몸을 움직이며 신체와 옷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중얼거리는 대로, 중후한 외형과 걸맞게 나름 단단한 육체를 지녔다.

사이비 목사라기보다는 중년 배우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하긴, 어쩌면 그게 당연할 터였다.

아무리 사기꾼이라도··· 아니, 오히려 사기꾼이기에 겉모습이라도 번지르르해야 한다.

자기관리에 소홀했다면 이렇게 사람을 홀려오진 못했겠지.

교회 과포화인 한국에서, 목사로 살아남는 데에 성공한 사람 아닌가?


“운영이 문제인데···”

“목사님?”


그때였다.

아무도 없었으련만, 갑자기 문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는 끝나셨···, 꺄악···!”


방서주.

그토록 집착과 불안에 떨더니, 혼자 조용히 남아있었나 보다.

하지만 독대가 길어졌고 결국, 직접 확인하려고 했겠지.

그게 이런 사단을 만들고 말았다.


“시···, 시체가···.”


예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와중에 눈은 방법을 떠올리듯이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주먹이 가볍게 쥐어졌다가 펴진 것이, 극단적인 방법 역시 떠올린 듯했다.

어차피 시체도 하나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니.


마침내 서주와 시선을 마주했다.

경악이 서린 눈빛이 이쪽으로 쏟아진다.

결정은 빨라야 했다.

눈빛을 차분히 가라앉혔고, 이전의 동요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고고하게 입을 열 뿐.


“두려워하지 말라.”


천사가 인간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하는 말이라고 했던가?

예현은 서주에게 진정하라고 명령했다.

지고한 존재가 피조물을 대하듯이.


“모, 목사님. 이게 무슨···.”

“그저 허물을 벗었을 뿐이란다.”

“허물···, 이요?”


당황하는 와중에도 대화는 통했다.

어쩌면 그토록 의존하던 목사가 하는 말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렇단다. 얼굴을 보렴. 나와 똑같지 않니?”


시신으로 향하는 시선.

그러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2000년 전과 같은 일이란다. 육신에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새로운 육신을 맞이하는.”


2000년 전 있었던 부활.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지금 예현이 어떤 말을 얘기하고 있는지.


달라질 것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차피 사이비였고, 사람을 미혹하던 인간이었다.

이렇게나 터무니없는 거짓말 따위는 언젠가··· 아니, 처음부터 계속 이어졌을 터였다.


“목사님께선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셨···”

“아버지께선 모든 자식을 사랑하신단다.”


그래, 처음부터 이어온 거짓말이었다.

예스러운 말투는 오래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멀끔한 외형과 고고한 태도로 신비감을 유지했다.

직접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망상하기를 유도해왔다.


“그저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일을 맡기셨을 뿐이지. 바로, 지금 너처럼 말이다.”

“···네?”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너를 몰랐겠니?”


그 적층된 세뇌가 지금에서야 빛을 발한다.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한 청년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 그리고 여기 기다리고 있었던 것까지.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셨단다.”

“아···.”


서주는 예현이 하는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꼭 나쁜 짓을 들킨 아이 같았다.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아버지께서는 주저하지 않고 알려주시지.”

“······.”

“나를 감히 속이려 한 죄를 어찌 감당할 생각이었니? 이미 2000년 전 일을 알지 않니?”


그 힐난 한 마디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예수를 배신한 제자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유명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면 실수겠지만, 두 번째는···.”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서주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다.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이 두 손을 모아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고 어깨는 위아래로 들썩인다.

목이 아픈지, 목소리도 불안정하기만 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앞으론 정말로···”

“방법이 있단다.”


예현은 그런 서주에게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건 늘 그랬듯이 외길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니?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일을 맡길 뿐이라고.”

“···네? 저도요?”

“그래. 아버지께서는 모든 걸 알면서도 네가 여기에 오도록 두셨지. 남은 삶 동안 내가 죄를 씻어내려 준다면, 얼마든지 길은 열려 있단다.”


외길.

오직 예현을 통해서만 지날 수 있는 구원.

있을 자리를 잃은 사람은 그 하나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아···.”


신음 같은 탄성이 울렸다.

외길, 그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죄 씻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단다. 평생토록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일이지. 그런데도 받아들이겠니?”

“부탁···, 부탁드립니다···.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테니 제발···.”


그 말에 다정한 미소가 얼룩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녹호가 약속했던 대로, 서주는 예현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원하던 바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 우선, 내 허물을 옮겨야 한단다.”



***


욕실.

서주는 좁은 선반 하나를 안으로 가져왔고, 그 위에 성경과 와인잔 하나를 위에 놓았다.

시체는 뚜껑 닫힌 변기에 앉아있다.

그 발목에는 상처를 났는데, 이 때문에 발밑 대야에는 피가 한가득 고였다.


혈액을 제거한다는 것.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수분은 악취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피를 받아두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군인이 죄 많은 육을 찔러 눈이 멀었으나, 창에 묻은 피로 눈을 씻어 빛을 되찾았단다.”

“성 론지노···.”


롱기누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확인 사살을 했다고 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란다. 차가운 물과 굳지 않은 피로 모든 죄를 씻어내야지.”

“피를요?”

“그래. 육은 죄를 지고 죽었으니, 신성함은 혈액과 함께 빠져나온단다.”


‘피로 씻는다.’

시체 처리를 자연스레 얼버무리는 데다가, 서주를 공범으로 만들 수 있었다.

적어도 외부에 구설수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주의하렴. 죄를 씻은 이후로는 이 일을 입에 담아선 안 된단다. 그럼 기껏 축성한 몸이 다시 더러워지고 말 테니까.”

“알겠어요. 꼭 입을 다물게요.”


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급만 해도 죄가 된다는 말에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면 성경조차 쓰이지 못했을 텐데.

이미 그 머릿속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예현으로서는 좋은 일.

느긋한 얼굴로 준비를 계속했다.

우선, 성경을 꽉 쥐었다.

그리고 유리잔은 피가 담긴 대야 안에 넣고선, 통째로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바닥에 앉거라.”


작가의말

착한 어린이는 따라하면 안 됩니다.

나쁜 어른도 따라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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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70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8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1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81 1 12쪽
»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2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5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5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5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4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9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6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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