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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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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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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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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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빚

DUMMY

숙박시설이지만, 그 용도는 대개 다른 부분에 있었다.

더군다나 대낮에 대실을 했다면 더욱더 말이다.


“다른 생각은 없어요. 그냥 다정해 보여야 하니까요.”

“무슨 소리야?”

“전에 말했잖아요. 목사님한테 관심을 끌려면 뺏길 것처럼 굴라고요.”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왜 여기까지 왔는가 했더니, 녹호가 가르쳐준 대로 했을 뿐이란다.

뒤에 있을 일은 생각지도 않고.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진 않았다.

경계하는 눈초리를 내보이며, 문에 바짝 붙어있었다.

어떤 일을 주의해야 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대상이 대상이니 만큼.


“좋네. 그럼 계속해보자.”


하지만 녹호는 옅은 비웃음을 흘리고선 발길을 옮겼다.


“무슨 소리예요?”

“목사가 겁먹도록, 이빨 자국 한 번 새기자고.”

“잠깐···, 멈춰요. 소리 지를 거예요.”


성큼성큼 움직인 발걸음은 어느새 서주 바로 앞에 섰다.

작은 얼굴은 그림자에 어둑히 가려진다.

키 차이가 그만큼 크게 났기 때문이다.


“해 봐.”

“···네?”

“해보라고. 연기인 거 다 들킬 각오하고 사람 불러 모아 봐. 소문 잔뜩 나게 말이야.”


녹호는 왼손으로 문짝을 짚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 손길은 생각보다 온유해서 언뜻 눈치채기도 힘들 정도였다.


“감시하는 눈이 그렇게 신경 쓰여?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반항 한 번 못할 정도로?”

“······.”

“그럼 각오하고 온 거 아냐? 무슨 짓을 당하든 말든 말이야.”

“아니에요, 전혀 그럴 생각은···”

“그래? 그럼 지금 문 열고 나가도 되지? 밖에 누가 감시하고 있든 말든?”


문을 짚고 있던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서주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야 입을 벌렸다.

그리고 다급히 두꺼운 손목을 붙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탓이다.

여전히 지켜보는 눈길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대로 녹호가 떠나면 목사 귀에 들어간다고 여겼다.

어쩌면 연극이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끝나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싫으면 언제든 나가. 말리지 않을 테니까.”


서주가 문고리를 쥐느라 몸을 돌렸다.

등을 감싸던 커다란 손은 자연스레 말랑한 배 위를 덮었다.


“하지···.”

“목소리가 작아졌네? 누가 엿듣고 있을까 봐 그래?”

“······.”

“뭐, 더 좋네. 싫으면 소릴 질러도 되잖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세상 사람이 다 알도록.”


녹호가 몸을 숙였다.

그 모습은 꼭 사자 한 마리가 어린양 하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사나운 숨결은 새하얀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배를 덮고 있는 커다란 손은 여전히 존재감이 선명했다.


“······.”


정적이 모텔 안을 기어 다녔다.

긴장감이 벌레 다리처럼 타다다닥 지나간다.

서주는 바들바들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혹여 소리가 새어 나올까 염려되는지.


그러던 중 녹호가 입을 열었다.

커다란 입은 서주의 귀에 숨소리 가득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꼭 속삭이기라도 하듯이.


“앞으로 날 불러내려면 각오해야 할 거야.”


사자 같은 몸이 한 발 물러섰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넌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하아, 하아···.”

“자, 말해.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녹호는 태연히 돌아서서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고선 냉장고를 뒤적인다.

그 반면, 서주는 아직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아예 안쪽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말 안 할 거야? 다른 게 하고 싶어?”

“아뇨, 말할게요.”


하지만 한 마디 들리자마자 바로 한 발 앞으로 나선다.

문밖에 누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게 아니라도 저 자리가 꺼림칙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목사님이 인영이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서주가 뱉은 말에 녹호가 입술을 매만졌다.


“근거는?”

“봤어요. 미리 약속이 있다고 하셨는데 제 조카를 만나셨어요.”

“어떻게 알았어? 미행이라도 했나?”

“그건···.”


다 알면서 뱉는 말이다.

예현인 상태로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 백미러로 다 확인했으면서.


“그리고, 딱히 문제는 아니잖아? 목사도 일정이 있는데 어떻게 너한테만 매달려 있을 수 있겠어?”


그저 다 알고 있으면서 느긋이 짚어갈 뿐이다.


“네가 목사한테 시간을 쏟을 순 있지.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그런데 그 반대는 아니잖아?”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귀찮게 굴면 안 되지. 곁에 둘 사람은 시간을 벌어다 줄 인간이지, 낭비만 시키는 버러지가 아니잖아?”


자기 일을 멀찍이 조언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까지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일 테니.


“···그럼 참아야 해요?”


서주는 그 손바닥 안에서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원하고 있을 반응을 보였고, 원하고 있을 질문을 뱉었다.


“글쎄? 목사를 독점할 셈이면 별말 못 해주겠네. 김예현이 네가 잡아둘 만큼 하찮은 인간이야?”

“그건 아니죠, 목사님께선 정말 신의 아들···.”

“뭐,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네. 앞으로 예배도 계속할 테고 새로운 사람이랑 대화도 나눠야겠지. 교회도 점점 넓혀가야 하니까 말이야.”


서주와 예현은 연인관계가 아니다.

종속관계일 뿐.

그렇기에 아래에서 위로 요구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 인영이한테 너무···.”


그 현실이 싫은지 말꼬리를 흐린다.

왜 하필 조카냐는 듯한 말투로.


“아, 그게 문제야?”

“네?”

“조카가 싫은 거라면 방법이 있지.”


사나운 눈빛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가 점점 짙어진다.

분명 뭔가를 눈치챘고, 이후 상황에 대해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인영이가 싫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카한테만큼은 뺏기기 싫잖아? 그런 경쟁심을 느끼는 대상을 보통 싫어한다고 하는데?”

“······.”

“밉잖아. 안 그래?”


결정이 끝난 눈빛은 어느덧 얇은 미소를 지었다.

혓바닥은 사자가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한 번 할짝댔다.


“앞으로 집에 늦게 들어가. 왜냐고 물어보면 말 못 할 빚 때문에 바쁘다고 하고.”

“빚이요?”

“뭐, 대충 둘러대기에는 그만큼 좋은 말이 없잖아?”

“그렇긴 한데, 왜···.”


잠시 대꾸하지 않고 미소를 씩 지어 보인다.

계략은 세웠지만, 그걸 전달하는 건 다른 문제다.

적당히 숨길 부분은 숨기며, 말해도 괜찮은 사실만으로 미혹해야 한다.


“‘돈이 모자라다.’ 그건 두 사람이 공유하는 문제잖아? 그럼 조카가 어떻게 하겠어?”

“인영이도 알바를 늘려야겠죠. 어쩌면 대학도···.”

“어쨌거나 급전을 구하려고 하겠지. 본인이 쥐고 있는 방법으로 말이야.”

“과외를 늘린다는 말이에요? 꽤 이름 있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


대화는 그렇게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뭐든 상관없어. 어찌 됐든, 목사한테 관심을 쏟을 시간은 사라지겠지.”

“아!”

“너도 조카만 물리면 되는 거잖아?”


서주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와 불안에 휩싸이게 한 문제가, 녹호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해결됐다.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도 될까요?”

“상관은 없어. 그런데 괜찮겠어?”

“네? 뭐가···.”


고개를 잠시 갸웃한다.

용건이 끝났으니 헤어지면 됐다.

더군다나 서주에게 녹호는 여전히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금도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말했잖아. 앞으로 날 불러낼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라고.”


녹호는 서주가 달아나기 전, 확실히 단속을 끝내려고 했다.

다시는 먼저 연락할 생각 하지 못하도록.

괜히 인연이 복잡하게 꼬이지 않도록.


“오늘을 이대로 끝내도 괜찮겠어? 나중에 내가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땐, 목사한테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면서까지 불러야 할 텐데?”

“······.”

“뭐, 정 그렇다면야. 그래, 피곤할 텐데 쉬어.”


여기서 끝내도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이 말을 내뱉은 시점에서 목적은 완료됐다.

서주는 이제 함부로 녹호를 부를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


이제 용건이 남은 사람은 서주뿐이다.

녹호가 일을 확실히 끝맺느라 넘어온 기회, 최대한 살리는 편이 좋았다.

문제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지게 되기 마련이니까.


“자, 잠깐만요!”


이 어린양은 초조하게 눈을 굴리다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부탁할 일이 떠오른 모양이다.


“옷···, 옷 사주세요! 지난번에 주셨던 게 더러워졌어요!”



***


늦은 밤.

인영이 허름한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명함을 내려다보면서.


“화해를 하긴 해야 하는데···.”


이 종잇조각을 받으면서 예현과 대화를 나눴었지.

서주가 왜 사이비에 빠졌는지에 대해서.

목사는 서로 존중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단다.

인영이 제 이모를 애처럼 취급하고, 무시했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말이지.


“왜 안 오지? 또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명함에서 시선을 떼고 시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홀로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라.

그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마침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철컹!


얇은 철문이 뻑뻑하게 휘어지다가 퍽하고 열리는 소리.

이 가난한 경보음에 인영이 다급히 명함을 구겨 쥐었다.

역시나 보일 수 없는 물건이다.

몰래 목사를 찾아갔었던 흔적이니까.


“이모, 이제 왔어?”


서주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별말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시선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대화도 나누기 싫은 모양이다.


“손에 그건 뭐야? 쇼핑백 같은데.”

“······.”

“옷 사고 오느라 늦은 거야?”


인영은 어떻게 해서든 한 마디라도 붙이려고 했다.

어쨌거나 가족이고, 이 냉전이 시작한 계기도 자기가 했던 지레짐작 때문이었으니까.

마침 좋은 대화 소재도 있었다.

늦게 들어온 이모는 종이가방이 가득 쥐고 있다.


“옷도 많이 샀네? 신용카드라도 긁었어? 그럼 다음 달 카드값이···.”


한 마디라도 받고 싶은 걸까?

정말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습관이라도 되는지, 흐름은 결국 현실로 귀결됐다.

더 파고 들어봐야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을 만한 질문이다.

인영도 말을 뱉은 다음에 아차 싶었겠지.


“그···, 영수증은 있지?”

“알바 때문에 늦은 거야. 빚 갚아야 해서.”


서주는 불편한 얼굴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정말 마지못해서 하는 소리겠지.

녹호에게 들은 조언이 있으니까.


“빚?”

“내 물건엔 손대지 마.”


그렇게 말하고선 옷장으로 가서 쇼핑백을 집어넣는다.


“무슨 빚? 내가 모르는 게 있어?”

“······.”

“연습생 생활 때문에 끌어모은 거? 아니면 생활비 때문에 잠시 빌리기라도 했었어?”


서주는 인상을 찌푸리고선 옷가지를 챙겼다.

자기 전에 갈아입을 편한 잠옷이다.

그리고 묻는 말엔 대답하지도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작가의말

저번주에 깨달은 게 있는데, 아무래도 오전 7시 10분에는 올리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아무도 안 보더라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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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64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70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8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1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8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1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5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5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5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4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9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6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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