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님, 돌아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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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샌
작품등록일 :
2024.03.0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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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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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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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님은 인간을 키우고 싶어

DUMMY

■■은 원래 인간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신들의 관심사가 인간을 후원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뒤부턴 지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 인간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왜냐면, 인간은 너무 귀여웠으니까!


작고 아담한 생김새와 다양한 색깔은 생물 수집 매니아인 ■■의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약한 육체와 사교적인 성향 때문에 무리생활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았고, 한 개체가 위험에 처하면 다른 개체들이 도와주려고 하는 것도 좋았다.


치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털을 손질하거나 색을 입히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이렇게 귀여우면 하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은 거대한 손을 뻗어 털이 잔뜩 나있는 수컷을 냉큼 집어와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정원에 데려다 놓았다.


정성껏 돌봐줬지만 왜인지 인간은 하루도 안되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슬퍼하다가 지구의 풍습을 따라 인간을 정원에 잘 묻어주었다.


그 뒤로도 많은 인간들을 데리고 왔지만 모두 얼마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인간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소는 지구와 상당히 유사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과 넓다란 대지, 새파란 바다를 본 ■■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인간을 죽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이걸로 인간을 맞이할 준비가 전부 끝난 건 아니었다.


인간은 사교적인 동물, 아무리 좋은 환경이 갖춰지더라도 외로우면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은 거대한 대륙에서 인간을 한웅큼 들고와서 자신의 정원에 놓아두었다.


■■은 인간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포근한 보금자리를 제공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귀여워 해주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주면 인간들은 춤을 추면서 좋아했고, 예쁜 꽃이나 귀여운 동물을 선물해주면 다들 그 앞에 모여서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엔 모든 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죽어버린 것이다. 또!


■■은 시무룩해져서 ■■■년 동안 누워있기만 했다.


그가 정원을 가꾸지 않자 온 차원이 새까만 잡초로 뒤덮여버렸다. 잡초는 여러 종족과 행성을 집어삼키면서 날이 갈수록 커졌다.


어느 날 다른 신을 모시는 천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천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에게 물어보았다.


[위대한 심연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고민거리가 있다면 제가 도와드릴테니, 제발 정원을 정리해주세요...!]


■■은 슬픈 얼굴을 한 채 인간들의 무덤을 가리켰다.


[예전에 심연님께서 데리고 온 인간들이로군요.]


오, 이렇게나 많이 데리고 오셨을 줄은 몰랐는데.


온 정원을 뒤덮고 있는 묘비를 본 천사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약해서 쉽게 죽곤 해요. 심연님의 사랑을 감당할 만한 몸이 되지 못한답니다. 이제 인간을 키우려 하지 말고, 다른 분들처럼 후원을 하면서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쁜 원예용 가위로 잡초를 정리해주자 그제야 천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은 다른 신들처럼 인간을 후원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은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누구를 고를지 고민했다.


여러 마리를 골라도 상관없다곤 했지만 기왕이면 한명만 골라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은 유난히 눈에 띄는 인간을 발견했다.


까만털에 옅은 살구색 가죽을 가진 인간이었다. 얼굴에 털이 나지 않은 걸 보니 성별은 암컷인 듯 보였다.


그 인간은 던전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서 몬스터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인간은 각성을 하지도 않았고, 성좌에게 선택받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는 오로지 던전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열심히 몬스터들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나무 사이를 달리며 교묘하게 공격을 피할 뿐만 아니라, 기회가 찾아오면 게이트에 들어올 때 가지고 있던 식칼로 고블린들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인간의 뒤에서 고블린이 나타났다.


고블린은 거대한 검으로 인간의 옆구리에 크게 베었다.


촤악!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악, 아아악-!!"


바닥으로 쓰러진 인간은 피가 흘러내리는 옆구리를 감싸안곤 비명을 질렀다.


"크르륵-!! 케케케...!!"


고블린은 검을 휘두르면서 천천히 인간에게 다가갔다.


이를 본 인간의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을 흘러내렸다.


"시바알...내가 왜 이딴 일을 당해야 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게이트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서 저 좆같은 몬스터한테 죽어야 한다고? 진짜로?"


인간은 입술을 짓씹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죽으면 병원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는 어떡해? 수연이는 어떡하냐고...!"


그는 신음을 삼키곤 몸을 일으켰다.


"꺼져! 개자식들아! 내가 여기서 죽을 줄 알아!? 죽어도 절대 못 죽어!!"


인간은 나무에 기댄 채로 미친듯이 식칼을 휘둘렀다.


■■은 저 인간을 살리고 싶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이 손가락으로 인간을 가리키자 시스템 관리자가 화들짝 놀래면서 메세지를 보냈다.


[성좌 '위대한 심연'님께서 당신에게 후원하기를 원합니다.]


[후원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NO)]


"화신 계약...?"


인간은 멍하니 그 메세지를 보더니 애처롭게 소리쳤다.


"받아들일게...그러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화신에게 어떤 능력을 후원하시겠습니까?


1. 무한 회귀

2. 그림자의 주인

3. 사령술

4. 스킬 복사

5. 혈맥복속

(...)]


[능력을 선택하셨습니다.]


[2.그림자의 주인]


[화신이 각성했습니다.]


[화신이 S급 능력(유일)을 획득했습니다.]


그때, 인간의 눈이 붉게 변하더니 그림자에서 수 천, 수 만개의 손이 폭발하듯이 터져나왔다.


콰아앙-!!!


검은 손은 몬스터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을 뒤덮었다.


검은 손이 다시 그림자로 돌아갔을 때, 인간의 주변은 완전히 파괴되어있었다.


싱크홀처럼 푹 패인 땅 주변에는 검은 기운이 불길하게 일렁거렸다.


"하, 하하...미친..."


털썩-!


자신이 만들어낸 참사를 멍하니 바라보던 인간은 힘없는 웃음을 터뜨리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인간에게 회복물약을 후원해주었다.


[위대한 심연님께서 당신에게 기적의 엘릭서(S)를 후원했습니다.]


인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병을 집어들어 내용물을 전부 들이켰다.


그렇게 올해 22년된 수컷 인간 이강현은 ■■의 화신이 되었다.


***


그 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년이 흘렀다.


■■은 이강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그가 수많은 인간들 사이에 섞여있어도 구분해낼 수 있었고,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의 애정과 후원을 듬뿍 받은 이강현은 한 명의 어엿한 헌터가 되어있었다.


그는 이제 수백명의 헌터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고 있는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었고, 높은 사람들조차 함부로 하지 못할 권력자였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빌딩, 이강현은 사무실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직도 꿈만 같네요.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그는 하늘 저 먼곳에 있을 자신의 성좌를 올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된 건 전부 성좌님 덕분이에요. 그 날 성좌님이 아니었다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테고, 제 가족들을 지키지도 못했겠죠. 정말 감사합니다."


[위대한 심연이 기분 좋게 웃습니다.]


그가 미소를 띄운 채로 말했다.


"언제라도 좋으니 한 번쯤 성좌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은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다!


자신이 인간을 보고 싶어한 적은 많아도 인간이 자신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뭐,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요. 제가 죽을 때쯤에 마중 나와줄래요?"


너무 기뻐서 뒤에 이어진 말도 듣지 못했다.


■■은 얼른 이강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자신이 제일 아끼는 폭신한 소파에 앉혀두고 둘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손가락이 강현에게 닿기 직전, 그는 정원에 세워진 무덤을 떠올리곤 멈칫했다.


이강현이 자신의 힘을 받아 강해졌다고 해도 이곳으로 데려오면 죽어버릴 지도 몰랐다. 인간은 약하니까.


"성좌님? 왜 그러세요?"


[위대한 심연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은 어쩌면 좋을지 고민했다.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강현이가 여기로 오지 못한다면 내가 만나러 가면 되는 거잖아!


뚝딱뚝딱. 흐물흐물. 말랑말랑.


■■은 그날 이후부터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년 후.


툭-


지구에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


눈 내리는 12월 15일.


깜빡거리는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길을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가로등 아래에 알몸의 소년이 서있다.


대략 12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와 섬세한 이목구비, 유리알같이 새까만 눈동자-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같은 외모였다.


소년은 멍하니 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벌렸다. 차가운 눈송이가 뜨거운 혀에 닿자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입을 닫고 쩝쩝대다가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년은 눈이 쌓인 길바닥에 발자국을 내보기도 하고 길가에 세워진 눈사람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윽고 소년은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고 했다.


"■■■■■■■"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나오는 것은 인사가 아닌 사람의 것이 아닌 언어였다.


소년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자신의 목을 쥐고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보기 시작했다.


"아, 아으아... 우우...헤에엑오오우아아아아아아아아악내가왜으에에엑신이시여아아아이이이엄마살려주세요아버지보고싶어요맛있어요제발여기서꺼내주세요미안해요수연아졸업축하해죄송해요안녕하세요여기어디야이에에엑사랑해요여보당신을잊지않을게요전부성좌님덕분이에요."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들을 따라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괴상한 노이즈가 껴있었다.


마치 주파수가 잘못 맞춰진 tv에서 나오는 소음같은, 끔찍한 목소리.


"아아, 크음...! 강형! 간혁!"


몇 번 목을 가다듬고 나서야 드디어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왔다.


"이강현!"


누군가의 이름을 완벽히 내뱉은 소년은 만족스레 미소짓고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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