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님, 돌아가주세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베샌
작품등록일 :
2024.03.04 20:31
최근연재일 :
2024.08.21 12:48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326
추천수 :
0
글자수 :
79,081

작성
24.03.05 08:00
조회
30
추천
0
글자
11쪽

성좌님은 잘못 도착했어

DUMMY

니콜라스 로퍼슨은 뒷세계의 심부름꾼이었다.


마약 운반, 뒷조사, 암살, 장물 거래, 신분 위조, 시체인멸.


돈만 주면 뭐든 했다. 그에겐 곧 돈이 법이고 진리였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 니콜라스는 평소처럼 칵테일 바로 향했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가게 안에선 분위기 있는 재즈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범한 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곳은 뒷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위험한 장소였다.


그리고 이 가게의 마스터는 정보상이자 일손을 알선해주는 브로커였다.


니콜라스는 바 테이블에 앉아 컵을 닦고 있던 마스터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범, 새로 들어온 일없어?"


마스터가 푸른 눈동자로 니콜라스를 쳐다보았다.


"자네는 항상 부지런하구만. 이번에 들어온 일은 두 개정도 있지. 하나는 운반이고, 다른 하나는 암살이야."

"일단 다 들어볼게."


하나는 마피아 조직의 물건을 특정 장소까지 운반하면 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부잣집 도련님 한 명을 던전에서 죽이는 일이었다.


"전자는 보나마나 마약이겠네. 후자는 뭐야? 정확히 누가 누굴 죽여달라는 건데?"

"베릴슈타인 집안이 후계싸움 중인 건 알고있지? 장남이 망나니 차남을 죽여달라고 하더구나."

"아~ 그쪽 차남이 하루도 빠짐없이 사고를 친다는 얘기는 들었어. 마약에, 여자에 난리도 아니던데?"

"그래서 어떻게 하겠나?"

"둘 다 받을게."

"좋은 선택이군."


니콜라스는 임무가 적혀있는 서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슬럼가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골목길 안쪽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애새끼 왜 이러고 있는 거냐? 춥지도 않나?"

"정신 나갔나보지."

"근데 얘...남자애치곤 예쁘장하게 생기지 않았냐?"

"팔아먹으면 돈이 꽤 될 거 같은데? 근데 그 전에..."


니콜라스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골목길 안을 들여다보았다.


양아치들이 웬 꼬마를 둘러싸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지, 옷까지 싹 벗겨놓은 상태였다.


니콜라스의 눈썹이 찡긋 일그러졌다. 그는 양아치들을 향해 매섭게 소리쳤다.


"니들 뭐하냐?!"


니콜라스는 정의로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동생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가 나쁜 짓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


양아치들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뭘하든 뭔 상관이야. 신경쓰지말고 꺼져!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니들이야말로 그 애 놔두고 꺼져."


양아치 한놈이 그 말에 욱하고 달려들었다. 그는 곧바로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이새끼가!"


니콜라스는 칼을 들고 덤벼드는 놈도, 각목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달려드는 놈도 손쉽게 제압해버렸다.


"끄으으..."

"괴물같은 새끼..."


어느 새 양아치들은 고통스럽게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꺼져, 뒤지기 싫으면."


니콜라스의 매서운 눈빛과 마주한 그들은 겁을 집어먹고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허세는..."


니콜라스는 도망치는 양아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래봬도 그는 각성자였다.


물론 E급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에 비하면 우월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아치 몇 명 손봐주는 일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란 소리였다.


'평소였다면 다리든 팔이든 부러뜨렸겠지만...애가 있으니까 참는다.'


니콜라스는 피묻은 손을 탈탈 털어내다가 아이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거기, 동양인 꼬마. 이리와."


소년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니콜라스에게 다가갔다.


니콜라스는 아이에게 자신의 패딩을 입혀주었다.


"여긴 밤에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마. 아까처럼 나쁜 사람들이 해코치할 수도 있으니까."

"응. 고마워."

"대답은 잘하네. 근데 너 신발도 뺏겼냐...?"


작게 한숨을 내쉰 니콜라스는 자기 신발까지 벗어주곤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여자애야, 남자애야...밑을 안 까놨으면 성별도 모르겠네.'


아이의 매끄러운 머릿결과 보드라워보이는 피부는 '나 귀하게 자랐어요~'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왜 이런 애가 여기 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자신이 신경쓸 것은 아니었다.


"따라와."


그 후, 니콜라스는 소년을 직접 경찰서 근처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것이 귀찮긴 했지만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 속 깊이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간만에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아까 구해준 아이가 자신을 졸졸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니콜라스는 인상을 팍 찡그리곤 홱 뒤를 돌아보았다.


"인마, 너 왜 쫓아오는 거야?"


소년은 말없이 니콜라스를 올려다보았다. 빛 한점 들지 않을 것처럼 새까만 눈동자는 왜인지 모를 꺼림직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니콜라스는 이유모를 섬뜩함을 느끼곤 짧게 경고했다.


"따라오지마."

"응."


소년은 그렇게 대답해놓곤, 니콜라스가 뒤를 돌자 다시 총총거리며 따라왔다.


니콜라스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서 소리쳤다.


"야! 내가 따라오지말라고 했지!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부모님이 걱정도 안하냐?!"

"난 집 없어. 부모도 없어."

"...어엉?"


소년은 폭탄발언을 하고 니콜라스의 소매를 붙잡았다.


***


"하...미치겠네."


니콜라스는 제 앞에서 따뜻한 담요를 덮은 채 코코아를 들이키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고아였다고? 고아라서 갈곳이 없어서 날 따라왔다, 뭐 그런거야?'


고생한 번 해본 적 없이 생긴 주제에 무슨 고아란 말인가?


손가락에는 굳은살 한점 없었고, 눈동자에는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은 말간 얼굴은 고아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저 어린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대로 있다간 부잣집 자제를 납치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쓸 지도 몰랐다. 이 집에 경찰이라도 들이닥치면 정말 답이 없었다.


'일단 오늘 하루만 재우고 보내자. 내일이 되면 바로 경찰서로 보내버리는 거야.'


니콜라스는 그렇게 결심했을 때, 소년이 갑자기 코코아를 뱉었다.


"우웩."


니콜라스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너 갑자기 왜 그래?"

"혀가 찌릿찌릿해. 이거 신기하다."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혀를 쭉 내밀었다. 통통한 혀는 빨갛게 익어있었다.


"식혀서 먹어야지...코코아 처음 먹어보는 애도 아니고..."


괜히 놀랬네.


니콜라스는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있잖아, 니콜라스. 여긴 어디야?"

"내 집."

"아냐. 여긴 어느 나라인지 묻는거야."

"미국 뉴욕이지. 어디겠어?"

"여기 서울이 아니야?"

"서울이면 한국 수도 말하는 거냐?"

"응."


니콜라스는 아이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주다가 멈칫했다.


'근데 내가 내 이름을 알려줬던가?'


뭐, 알려줬겠지. 안 알려줬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말할 리가 없잖아?


소년이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미국 뉴욕이면 잘못 왔네. 나 서울로 가야하는데..."


소년이 니콜라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니콜라스, 나를 워프 게이트로 데려다줘. 그걸 타면 빨리 서울로 갈 수 있잖아."


워프 게이트란 마탑의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신묘한 이동수단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면 5분도 안되서 먼 거리를 오고 갈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신분이 확실히 보장되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으며,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타겠다고 하는 걸보니 더더욱 부잣집 자제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니콜라스는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타게? 너 100만 달러 가지고 있냐?"

"없어. 하지만 니콜라스가 나 대신 내주면 되잖아."

"그런 돈 없거든? 내 수중에 100만 달러가 있었으면 이딴 거지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겠냐?"

"니콜라스는 돈도 많으면서 나한테는 주기 싫구나? 그럼 내가 알아서 벌어야겠다. 100만 달러를 가질 때까지 니콜라스네 집에서 지낼게."

"뭐? 누구 마음대로?!"

"난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머리색도 예쁘고 피부에도 점이 많아서 신기해. 귀엽게 생겼어."


소년이 주근깨 난 니콜라스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웃었다.


니콜라스는 저 동양인 꼬마가 진저차별이라도 하는 건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니까 서울에 가기 전까지는 니콜라스 곁에 있을 거야."

"너...머리라도 다친 거냐...? 뭘 멋대로 정하고 자빠졌어? 난 너랑 같이 지낼 생각이 전혀 없어요.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갈곳도 없고 불쌍해보여서 하룻밤 정도만 재워주려고 데려온 것뿐이거든? 그 이상은 절대 안돼."

"난 어디서 지내면 돼?"


전혀 말이 안 통했다.


'이상한 애한테 잘못 걸렸네.'


니콜라스는 대화를 포기하고 어제 먹다 남은 피자나 던져주었다.


"저녁이나 처먹어."


***


다음 날 니콜라스는 소년을 꼭 붙들고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이 애가 저희 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더라고요. 미아같은데 부모 좀 찾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니콜라스는 그 말을 남기고 얼른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죄를 짓고 사는 입장에서 이런 곳은 꺼림직해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 창문 너머로 소년이 니콜라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을 이대로 버리고 가는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니콜라스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니콜라스는 기다란 소파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다.


자꾸 소년이 생각나서 찜찜했지만 이게 맞는 거였다. 동생 하나 돌보는 것도 힘든데, 남의 집 애까지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짜증나게...내가 왜 이런 걸로 고민해야하는 거야?"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앞에 서있는 사람을 본 니콜라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너냐?"


그래, 또 그 소년이었다.


이쯤되면 많이 참아줬다. 평소의 니콜라스였다면 소년의 뒷덜미를 덜렁 들고 경찰서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매정하게 굴 수가 없었다. 소년의 상태는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달려오다가 넘어진 건지 머리는 부스스했고, 그가 빌려줬던 동생의 옷은 까맣게 더럽혀져있었다.


청바지의 무릎 부분은 어떤 액체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아마 피가 난 모양이다. 또 신발 한짝은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니콜라스는 한동안 말없이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이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


왜 서울로 가야한다고 하는 걸까? 왜 자신과 함께 지내려고 하는 걸까?


이쯤되니 무슨 사연이 있나 싶었다.


어쩌면 어떤 일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다거나 부모님에게 학대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진짜로 고아라 의지할 만한 사람이 필요해서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안좋은 사정이 있는 아이가 자신을 도와준 니콜라스를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해서, 자꾸만 들러붙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니콜라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두 손을 들었다.


"좋아, 내가 졌다. 내가 졌다고."


그는 당분간 소년을 돌봐주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성좌님, 돌아가주세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성좌님은 오해받고 있어 (2) 24.08.21 9 0 12쪽
14 성좌님은 오해받고 있어 (1) 24.08.20 13 0 13쪽
13 성좌님은 한국에 도착했어(4) 24.05.21 18 0 11쪽
12 성좌님은 한국에 도착했어(3) 24.04.22 16 0 12쪽
11 성좌님은 한국에 도착했어(2) +1 24.04.21 16 0 12쪽
10 성좌님은 한국에 도착했어(1) 24.04.16 20 0 12쪽
9 성좌님은 자비로워(7) 24.03.26 19 0 12쪽
8 성좌님은 자비로워(6) 24.03.24 20 0 13쪽
7 성좌님은 자비로워(5) 24.03.20 22 0 12쪽
6 성좌님은 자비로워(4) 24.03.13 23 0 11쪽
5 성좌님은 자비로워(3) 24.03.11 26 0 12쪽
4 성좌님은 자비로워(2) 24.03.10 24 0 12쪽
3 성좌님은 자비로워(1) 24.03.07 25 0 11쪽
» 성좌님은 잘못 도착했어 24.03.05 31 0 11쪽
1 성좌님은 인간을 키우고 싶어 24.03.04 45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