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티만 던전에서 무한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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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작품등록일 :
2024.03.21 08:05
최근연재일 :
2024.03.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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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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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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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수 없는 남자

DUMMY

 - 하와와, 따수운 게 참 좋아요오.


 모닥불 제일 따뜻한 자리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핫팩을 품은 수인. 해먹에 대롱대롱한 채로 해롱해롱.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이 곧 잠들 품이다.


 - 그 세계엔 신기한 물건이 많도다.


 엘프는 S자 선베드에 앉아 있다. 머리맡에 묶은 메모리폼 베개를 꾹꾹 눌러보는 그녀.


 - 이 침상은 나무로 만든 건가?

 “아아, 라탄이라고 부르는 덩굴같은 나무예요. 아무래도 플라스틱 재질보단 친환경 소재가 더 편안할 것 같아서. 잠깐...나무?”


 남자는 아차 싶다. 서방대륙에서 온 엘프들이 유독 숲과 나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 내 고향은 북방대륙. 그곳에선 엘프조차 나무를 태우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혹한과의 전쟁에서 땔감은 군량과 마찬가지. 군량 없는 군대가 어찌 싸울 수 있겠나?


 엘프는 ‘신경쓰지 마라.’를 온 몸으로 보여주듯 선베드에 눕는다. 명주실처럼 가늘고 고운 은발이 샤라락 깔린다.


 - 내 비록 그대 세계의 문명과 플라스틱이란 물질에 대해선 무지하나, 이 나무로 만든 침상이 더 비싼 것만은 알 수 있다.

 “어떻게 아셨죠?”


 남자는 놀란 눈으로 엘프를 쳐다본다. 그녀의 푸른 홍채가 그 시선을 담담히 담는다. 


 - 네가 평소 파티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대에게 감사하마. 그럼.

 “별 말씀을···안녕히 주무시길.”


 마력을 많이 써서 노곤한지 곧바로 눈을 감는 엘프. 남자도 그제야 싸구려 매트리스에 걸터 앉는데


 - 나도 고맙구만.


 침낭속 드워프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 이렇게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침낭은 처음인걸.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건가?


 드워프답게 학구열을 드러내는 그녀. 에어쿠션이니 보온재니 설명하기 힘들었던 남자는 농담으로 넘긴다.


 “열심히요.”

 - 뭐냐, 너도 모르는 거야? 어쨌든 잘 자라, 파티장.


 남자는 진작에 꿈나라로 간 무도가를 바라본다. 그녀의 잠자리는 <와꾸와꾸> 침대. 기왕이면 번듯한 침상을 마련해달라고 짜증을 냈었다.

 수인이 ‘대장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볏짚 위에서 자고 있을 거다. 그러니 감사하자.’라는 식으로 달랬기에 망정이지, 남자가 폭발할뻔했다.


 ‘포인트가 너무 부족해.’


 군용 모포를 덮으며 남자는 생각했다. 


 ‘전투에 쓸 물건을 소환하기에도 벅차다. ’


 남자는 ‘자신이 일했던 물류센터의 물건’에 한해, 소정의 포인트를 내고 소환할 수 있다.

 인간병기에 마법사가 판치는 이세계에서, 직접적인 전투 능력이 뒤쳐지는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건 이능 ‘소환 능력’을 극한까지 활용한 덕분. 


 ‘보급에 소비되는 포인트를 줄인다면?’


 사실 식재료는 이 세계의 것을 보관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나 무도가 그리고 수인의 향수병을 달랠 순 없겠지만.

 침구류니 위생용품이니 하는 것도 전투에 직접적 도움을 주진 않는다.

  저번 화에 언급했듯 남자의 서브 능력 ‘결계 소환’만으로도, 갑작스러운 층 이동이나 습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는 편안하게 잠든 파티원의 면면을 훑는다. 너무도 안락해보이는 얼굴들이다.


 - 고민 있나.

 “엇.”


 잠든 줄 알았던 엘프녀가 몸을 일으켰다. 긴 은발이 봄바람속 커튼처럼 흔들린다.


 “아뇨, 아닙니다.”

 - 심각해 보이는데?

 “하하···. 별 거 아님다.”


 웃어넘기는 남자. 그냥 넘기지 않는 엘프.


 - 그대는 정말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군.


 남자는 피식 웃는다.


 “앙헬라, 당신이 할 말입니까.”

 - 그도 그렇군.


 나이는 가장 많으면서 말수는 가장 없는 엘프. 어쩌다 내뱉는 말도, 전투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차음 기능을 적용시킨 덕분에, 결계 안은 장작 타는 소리만이 타닥타닥 감돈다. 참 조용하다. (때때로 들리는 드워프의 코골이나 수인의 이갈이만 뺀다면)


 - 이참에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제 이야기요?”

 - 그래. 그대의 이세계에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쩌다 이 세계로 전이됐는지. 

 “들어봤자 재미도 흥미도 없을 텐데.”


 남자는 왼손의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튕겼다. 살짝 울적할 때마다 하는 버릇.


 - 밤은 기네. 그대가 얘기해준다면 모두 해소될 수도 있겠지.

 “해소라니, 무엇을요?”

 - 내 궁금함과 그대의 불안함.


 손가락 튕기기를 멈춘 남자. 졌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


 막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진 나. 이를 악물고 자라나 명문대 경영과 수석 입학자이자 졸업자란 타이틀을 얻었다. 안 해본 알바 없고, 작은 사치 한번 부린 적 없다.

 그 덕분인지 일류 물류 기업에 관리직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높은 빌딩들 사이에서 우뚝 서, 도시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었다.


 ‘누구나 그럴싸한 야망을 갖고 있지. 현실을 마주하기 전까진.’


 내게 주어진 첫 업무는 물류센터 막노동. 꼭대기는 커녕 발디딜 수조차 없는, 피라미드를 쌓는 노예가 됐다. ‘관리자가 되려면 현장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회장의 방침 때문.


 ‘펜만 잡아본 샌님들을 거르겠다는 거지.’


 상하차 숱하게 해본 나로서도 힘든 살인적 스케줄. 사람을 말그대로 개처럼 굴려 댔다. 온갖 파트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장비 익히기까지. 이게 끝이 아니다.

  현장 막노동 뒤에는 퇴근 대신 연수니 평가니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드디어 쉬나 했던 주말엔 단합회까지. 워라밸은 모르겠고 라벨 떼느라 손톱이 다 닳았다.


 ‘<생활의 살인>에 내도 충분하겠는데? 하하.’


 한 주만에 동기들 태반이 떨어져 나갔다. 첫 달이 지나자 남은 반의 반도 그만 뒀다. 수습 기간이 지나고 월급을 오롯이 받은 건 나뿐. 월급만 온전했지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 기왕 회사의 개가 될 거라면 다리 부러진 개 대신 똑 부러진 개 되자. ’


 나는 아예 회사에서 숙식을 했다. 그 성실함으로 신뢰를 사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친분을 쌓고, 코딱지만한 권한이나마 잘 활용해 담당 창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 어이, 여 군. 그만 씨부리고 이 박스나 조립해라.


 그런 나를 못마땅해하는 단 한 명이 있었으니. 근속 연수로 반장 감투를 받고 거들먹거리는 저 놈.


 - 주임님, 제가 하겠습니다.


 마침 그놈 근처에 있던 알바가 대신 나서려는데


 - 마, 니는 뭔데 끼어드노. 가서 니 할 일이나 해라 마.


 오 반장 놈이 막아선다. 


 “제가 하죠.”


 뒤에서 알바들이 수근거리는 게 들린다.


 - 조만간 여 주임님이 창고장이 되면 오 반장보다 높아지는 거지?

 - 그렇지. 그러니까 그 전에 여 주임님을 괴롭혀서 퇴사하게 만들거나 부서 옮기게 하려는 심보지. 속 보이게.


 그래, 너희가 아는데 내가 모르겠니.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것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다.


 ‘근데...왜 하필 박스냐.’


 10살 땐가 수녀님이 말씀하시길, 아기였던 내가 들어있던 곳은 바구니도 포대도 아닌, 박스속 비닐 봉투.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박스도 비닐 봉투도 쓰지 않고 살아왔다. 


 - 니 귓구멍에 잣 박았나? 내 말 안 들리는갑네? 그만 처씨부리고 박스나 접으라 카이

 “네.”


 그래, 까라면 까야지. 아직은 저 놈이 상사니까.


 - 저짝으로 옮겨서 해라. 알바 애들은 쉬게 내비리두고 니 혼자서 좀 해라.

 “알겠습니다.”


 웃으면서 돌아서는데 반장 놈이 내 헬멧을 툭툭 두들긴다.


 - 일 똑디 해라 알긋나? 내 두 눈으로 단디 보고 있다. 또 그라믄 위에다 보고해뿐다.


 인간 CCTV 납셨네 시발. 나는 반장을 잠깐 노려다 본다. 놈은 흠칫 담배를 떨어뜨린다. 벌써 한 시간째 이러는 중. 담배를 피우는 건지 농땡이를 피우는 건지 아주 물아일체다.


 “그러면 저도 보고 드릴 겁니다.”

 - 뭐, 뭐라꼬? 니 지금 뭐라 했노?

 “상습 근무 태만, 폭언, 폭행까지. 게다가 오늘 점심에는 술까지 드셨죠? 중장비 작업 하셔야 하는데.”

 - 이, 이 새끼가! 누구 덕분에 여기 붙어있는줄 알고!


 성큼 다가와 불뚝 나온 배를 내미는 놈. 마늘냄새 고기냄새 소주냄새 트리플 똥내가 펄펄 풍긴다. 


 “저보다 연장자이시니 여 군 어쩌고 하는 것까진 참았습니다. 하지만 이 새끼, 저 새끼 하지는 마십시오. 저는 반장님 자식도 아닐 뿐더러, 반장님 덕분에 이 회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떳떳하게 공채 통해서 들어왔고 엄연히 직책이 있습니다.”

 - 니...니 말 다 했나?

 “아뇨. 남은 건 보고서에 적으려고요.”


 몸을 돌려 반장 놈을 지나친다.


 - 와 임마 싸가지 보소. 마, 니 스카이 대학교 출신이면 다가? 지 스카이 나왔다고 건방진 게 하늘을 찔러 쌓네.


 걸음을 성큼 옮기는데 성큰처럼 뒤통수에 꽂히는 말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간다.


 - 안 들리나? 맞다, 니 고아라매? 거봐라~ 스카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가정교육 못 받으면 소용없는기라~ 아, 참 니는 할애비도 뉜지 모르겠네. 하늘에 있는지 땅에 파묻혔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푼다. 여기서 못 참으면 끝이다. 


 - 애미 애비가 버젓이 있다가 뒤진 거면 그래도 낫다 아이가. 근데 니 애미는 니 버리고 갔다매?


 하지만 반장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무슨 수녀들이 돌보는 고아원이라 카던데,수녀인지 창녀인지 알 수가 있나. 안 그렇... 악! 아악!


  반장 놈의 아가리에서 담배 똥내 대신 피냄새가 날 때쯤에야 직원들이 나를 떼어냈다. 정신 차리고 내려다보니 이놈 강냉이는 반쯤 털렸고, 코는 부러지고, 턱은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는 주저 앉았다.


-----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합의금을 주고 남은 돈을 확인해 보니 만원이 안 된다.

 소주 두 병을 샀다. 양손 바바리안처럼 병을 휘두르며 비틀거릴 때.


 - 빠아아아앙!


 “어...어?”

 

 커다란 트럭이 나를 덮쳐 온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취해서 도로 위를 걷고 있나? 아니다. 그럼 저 트럭이 인도로 돌진하는 거잖아?


 “으아으아아!”


 급히 피하려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 만다. 부딪힌 건 머리인데 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지? 실화냐? 이렇게 죽는다고?

 주마등을 보기 직전 날 덮친 트럭의 로고가 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로고···내가 다니는 물류회사네? 하하, 시발. 세상이 나를 끝까지 엿먹이네.


 「안젤라 수녀님, 제 이름을 왜 행복으로 지으셨어요?」

 - 물론 네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해서지. 

 「그럼 제 성은 왜 여씨인가요?」

 - 여호와의 자식이라는 상징으로.

 「그럴 거면 다른 애들처럼 주 씨로 짓는 게 무난하지 않나요?」

 - ···밤이 늦었단다. 얼른 자렴.

 「여 씨면 이상하잖아요. 여행복. 난 여행 가본 적도 거의 없는데···.」

 - 행복한 꿈 꾸렴. 


 문이 닫히는 걸 마지막으로 회상이 끝났다. 주마등이라는 거...생각보다 길구나.

 안젤라 수녀님. 수녀님의 성이 여 씨인 건 돌아가셨을 때야 알았어요. 이젠 성에 대해선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기쁘죠. 그런데...제 이름은 왜 그렇게 지으셨습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행복하고 싶은데! 닉값을 할 수가 없어!”


 코앞까지 다가온 트럭을 보고 절규했다.


[3화 - 행복할 수 없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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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평판의 중요성 24.03.22 40 0 11쪽
14 칙칙한 초콜릿보다는 24.03.22 35 1 10쪽
13 뼈는 잘 발라먹자 24.03.22 39 1 10쪽
12 원딜의 민족 24.03.22 36 1 11쪽
11 듀얼! 24.03.22 46 1 11쪽
10 내분 24.03.22 41 1 10쪽
9 던전 안내자가 힘을 숨김 24.03.21 49 1 10쪽
8 가챠 시간 24.03.21 52 1 10쪽
7 반전 24.03.21 47 1 10쪽
6 나이는 숫자일뿐 그런데 그 숫자가 ㅈㄴ 큰 24.03.21 54 1 12쪽
5 검은 막 24.03.21 56 1 13쪽
4 자 연습해 볼까요, 행복 24.03.21 70 1 14쪽
» 행복할 수 없는 남자 24.03.21 91 1 12쪽
2 이세K 푸드 체험 24.03.21 118 1 11쪽
1 전투 시작 24.03.21 22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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