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영국 절대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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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영JY
작품등록일 :
2024.03.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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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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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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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의(2)

DUMMY

4. 신의(2)



“허어어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촉각이 단 한 노인의 입에 집중되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나... 허어어어어...”


그가 한숨을 내쉴 때마다, 주변인들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오르내렸다.


“저, 노사(老師)...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잔뜩 떨리는 어조로 묻는 노인.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지만, 평소 뉴스를 많이 보던 이들은 그의 낯이 익음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 대기업, 광성그룹의 회장 성강필이었다.

자산만 따지면 세계 부자 순위 53위로 엄청나게 높은 순위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건 대한민국에서 그의 영향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게다가 순환출자구조로 보유하고 있는 그룹 지배력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를 상회하는 수준.


평소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박력으로 십만 그룹 계열사 직원들을 아우르는, 광성의 신(神)같은 존재가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도 인간이었다.


“허어, 이거 확실치는 않소만...”

“추측이라도 말씀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뒤에 있던 장남, 성종호가 불쑥 나서며 외칠 때, 노인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거 쌀이 익어 뜸이 들어야 밥이 되지! 자네는 식사할 때 그냥 생쌀이라도 씹나? 에잉, 됐소이다. 아무 문제도 없소! 그냥 고뿔(감기)이오, 고뿔!”


성광전자의 사장까지 맡아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성종호였지만, 이 괴짜 노인네의 강짜 앞에서는 방도가 없었다.


“네 녀석은! 빨리 성수신의께 사과드리지 못하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부친을 위한 마음에 급한 나머지...”

“부친이 가면 떨어질 회사 주가랑 상속세가 급하겠지. 떼잉! 내 진정으로 부친을 위한 마음이면 이리 타박하지도 않네!”


부끄러움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성종호 사장.

이어 맥을 짚어보고, 몇 차례 더 MRI와 CT, 엑스레이 사진까지 확인해 본 성수신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태을청홍오신폐흡증일세.”

“태... 예?”

“태청호... 아니 태을청홍오폐신흡증이라고.”


뭔가 단어가 바뀐 것 같았지만, 일단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기에 다들 당황한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게 어떤 병증인지...”

“폐에 양기(陽氣)가 과히 들어차 호흡이 거칠고.”

“오...!”

“심장에도 양기가 과하여 쉬이 가슴이 뛰고, 화기가 가라앉지 않으며.”

“오오...!”

“그 양기가 빠져나간 탓에 손발이 냉(冷)한 것이 한여름에도 변하지 않으니.”

“오오오...! 맞습니다!”


찌릿, 성수신의가 쏘아보자, 추임새를 넣은 이가 쭈그러들었다.


“그것이 태을청홍오신흡폐증이라는 것일세.”

“마, 많이 안 좋습니까?”

“뭐, 글쎄... 치료받지 않으면 길어야... 에잉, 그걸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차피 치료할 거 아니야?”

“예, 암요. 그렇지요.”


그 호랑이 회장이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성수신의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필요한 건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흠흠, 뭐 그렇다면야 내 노력을...”


그 순간, 마치 전기라도 감전된 듯 성수신의의 허리가 꼿꼿이 펴졌다.

눈까지 휘둥그레 뜨는 성수신의.

이어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무,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닐세...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와도 되겠나? 내 검진에 너무 기력을 쏟아 그만 어지럽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뜨는 성수신의를, 광성 회장 가족들이 한동안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



“저게 신의(神醫)라고요?”


서커스의 위성을 동원해서 막 광성그룹 회장 저택을 도청한 록산나가 벌레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으,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누가 들어도 사기잖아요! 그 병 이름만 세 번 바뀌었어요! 저거 순 돌팔이 사기꾼 아니에요?”

“사기꾼은 나쁜 사람이에요.”


록산나 옆에 서서 얼굴만 빼꼼 내밀어 똑부러지게 말하는 하연.

그 모습에 수한이 멋쩍게 웃었다.


“그것까진 부정하기 힘들군.”


록산나가 하연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런 사기꾼한테는 못 보내요!”

“못 보내요!”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두 크고 작은 조카가 단호하게 외치는 모습에 수한이 난처해져서 웃음만 흘렸다.


“하는 수 없지. 굳이 방해하지는 않으려 했는데.”


잠시 집중한 뒤에, 무어라 입을 뻐끔거리는 수한.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아서, 록산나와 하연이 고개만을 갸웃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택의 초인종이 울렸다.

록산나가 나가서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꼬장꼬장하게 생긴 작달만한 노인이 서 있었다.


“대체 누구냐! 노인네 심장 덜컥 떨어지게 한 놈이!”


록산나의 뒤에서 멀쑥한 수한이 걸어 나오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당신... 아니 네놈이냐? 갑자기 귀에다 천리전음(天理傳音)을 날린 게?”

“그렇습니다.”


천리전음.

휴대전화의 발전 이후로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초인의 상징 같은 기술이었다.

즉, 눈앞의 남자가 확실한 초인(超人)이라는 것.

갑자기 초인급의 무인이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인 꼴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초인이라면 보통이라면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성수신의도 괴팍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었다.


“거 어른이 왔으면 물이라도 한잔 대접하는 게 예의 아니더냐?”

“그렇군요.”

“알면 서두르지 않고 무얼 해?!”

“일단 와서 앉으시죠. 차 한 잔 드리겠습니다. 홍차 괜찮으십니까?”

“철관음(鐵觀音)아니면 안 마신다, 이놈아.”

“물로 드리지요.”

“홍차로 내오거라. 흠흠.”


성수신의가 응접실 쇼파에 앉는 동안, 수한은 허공섭물로 주방에서 다기와 물, 홍차까지 가져왔다.

허공에서 구형(球形)으로 뭉쳐 있는 물이 펄펄 끓는 건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달한 내공 통제!

그걸 본 성수신의의 입이 다시금 벌어졌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성수신의도 의사이기 전에 무인이었다.

화씨의가(華氏醫家)의 비전 청낭신공(靑囊神功)을 극성으로 익힌 준초인급 무인 말이다.

그런 그의 안목으로 보기에도 과연 저 정도의 신위를 보일 무인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었다.

적어도 그 정도 되는 무인 중, 성수신의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었다.


“그러는 할아버지는 뭐예요? 사기꾼이에요?”

“... 뭐?”


록산나가 뒤에서 어색한 중국어로 쏘아붙였다.


“아니, 태을청홍 어쩌고 그러면서 사기나 치려고 하고!”

“... 천리지청술(千里地聽術)로 듣고 있던 건가.”


머쓱해진 성수신의가 머리를 긁적였다.

천리지청술은 아니고, 그걸 본따 만든 현대 도청 기술이긴 했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다.


“얘야, 이 할애비는...”

“알고 있습니다.”


록산나 대신에 답하는 수한.


“응? 뭘 알아?”

“매스컴에 나온 광성그룹 회장의 사진을 좀 확인했습니다. 적취(積聚, 암)가 있어 보이더군요.”

“네놈... 의원이냐?”

“기운의 흐름을 조금 잘 읽을 뿐입니다. 적취는 기운의 흐름이 어긋나 한곳에 기가 맺혀 있는 것을 의미하니, 그것이 곧 종양이며 암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사진을 보았다면서?”

“그 정도로 흐름의 왜곡이 심해지면 외관에서도 보입니다. 신의께서도 이미 알고 오셨던 거 아닙니까?”


그제야 수한을 보는 성수신의의 눈에 흥미가 더해졌다.


“나야 그렇다만, 아마 그걸 사진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녀석은 내 후계들 중에서도 몇 없을 터인데?”

“저는 의원이 아니라 무인이니, 기운의 흐름과 결과에 더 익숙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록산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뭐, 뭐예요? 그러면 진짜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 폐암이다.”

“헐!”

“그렇지만 신의께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암이겠지.”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보는 수한의 시선을 피하면서, 성수신의가 홍차를 호록 들이켰다.


“쉽게 치료한다고, 그게 중한 병이 아닌 것은 아닐진대... 떼잉...”


성수신의 정도 되는 신의(神醫)라면 많이 겪었을 일이었다.


“폐암보다는 있어 보이지 않느냐? 태을청홍신오흡폐증이? 그리고, 그냥 폐암이라고 진단했다가는 수술을 따로 받아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록산나가 ‘네 번째 틀렸어요, 저 병명.’ 하는 말을 뒤로한 채, 수한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거부(巨富)들이 괜히 신의를 찾는 것이 아닐진대.”


성수신의는 물론 외과적인 치료도 할 수 있었지만, 가능하면 침술과 기공치료를 선호했다.

그래서 몸에 칼을 대는 걸 꺼리는 부자들은 억만금을 내고라도 성수신의를 찾았다.


“MRI 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종양이 생겨서 마음 먹고 좀 뜯어내려고 했더니, 웬 놈이 방해해서 놀랐다.”


명색이 글로벌 대기업의 회장이니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긴 하겠지만, 아마 MRI나 CT 결과로는 한참이나 지나야 폐암이 확정되었으리라.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성수신의에게, 수한이 흔쾌히 말했다.


“뜯어내십시오.”

“응?”

“원래 이런 건 시간을 좀 두어야 약발이 더 받는 법입니다. 저쪽엔 준비할 것이 많다고 전달하시고 잠깐 여기서 저나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기꾼이라면서?”

“의적(義賊)이라고 하시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수한은 성수신의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재단을 알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손꼽는 거대 자선 의료 재단의 설립자가 성수신의였으며, 익명으로 기부되는 막대한 기부금이 성수신의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수한의 말에 성수신의는 모르는 척 헛기침만 터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래서, 도와달라는 건 또 무어냐?”

“여기 있는 제 조카를 고쳐주셨으면 합니다.”

“조카? 따박따박 사람을 사기꾼으로 모는 당돌한 저 여아 말이더냐?”

“그 옆의 아이입니다.”

“으흠?”


록산나의 뒤에 숨어 있다가, 빼꼼 얼굴만 내미는 하연을 발견한 성수신의가 바로 말했다.


“천살(天殺)? 아직 개방되지는 않았구나.”

“그렇습니다. 그 전에 해결해두고 싶습니다.”

“뭘 해결해? 천살을?”

“예, 저 아이에게서 천형(天刑)을 없애고 싶습니다.”


수한이 조카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성수신의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그 시선을 마주하며 고민하던 성수신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특히 저 아이는 힘들겠어.”

“... 이유가 있는지요?”

“나이가 몇 살이지?”

“예닐곱쯤 된 것으로 압니다.”

“늦었어. 안전한 천살 제거 시술을 위해선 다섯 이전이어야 해. 천문(天門)이 거의 개방 직전이야. 자칫하면 수술 중에 이지를 상실해버리거나 백치가 될 가능성이 너무 높아.”

“아...”


낮게 탄식하는 수한.

그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다시금 물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


쩝, 하고 입맛을 다신 성수신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긴 있는데, 꽤 어려울 거다. 그래도 하겠느냐?”

“뭐든 하겠습니다.”

“일단 신경 지도를 분석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니 똘똘한 콤퓨타 프로그래머도 하나 필요하고.”

“있습니다.”


록산나를 염두에 두며 고개를 끄덕인 수한.


“내공의 통제에 엄청나게 능한 초인급 무인이 필요한데... 그건 자네가 하면 될 거 같고.”

“네, 그건 제가 하면 되겠군요.”

“마지막이 제일 어려운데...”

“세이경청하겠습니다.”

“국가 단위 연구소의 초거대 입자 가속기를 돌려 얻은 특정 핵종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필요하네.”

“CERN을 섭외하겠습니다.”


CERN은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로, 세계 최대 규모의 초거대 입자 가속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한의 영향력이면 당연히 동원할 수 있었다.


“... 그게 다 된다고?”


멍하니 되묻는 성수신의를 향해.


“예, 됩니다.”


수한이, 나직이 그러나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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