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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파선생
작품등록일 :
2024.03.31 10:13
최근연재일 :
2024.08.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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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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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하면 죽는 병이 있음

DUMMY

사랑, 그것은 가장 가장 아름다운 존재지만, 가장 성가신 것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고, 상대방과 쉴 틈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어떨 때에는 서로 원수를 대하듯 싸우고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길 기다리며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계속해서 몸과 마음을 흔들어 대며 귀찮게 하는 존재가 사랑이다. 그런데, 철수에게는 더욱 강렬한 의미의 성가심이 사랑이었다.


철수에게는 말 못할 병이 있다. 말한다고 한들 아마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그런 병이다. 철수가 걸린 병은 특정한 단어에 과도한 발작을 일으키는 정신 건강 장애다. 의사가 말한 그의 병명은 "특정 공포 장애"로 불안 장애 중 하나다. 특정 공포 장애에는 약도 존재하지 않는다. 항불안제를 복용하면 불안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목숨을 담보로 약효를 시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철수는 자신의 병을 인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야만 했다.


철수가 특정 공포 장애를 앓게 된 이유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정 공포 장애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많이 발생하는데, 철수도 그 같은 이유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가 6살 무렵의 일이었다.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간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봄날이었다. 비록 어디를 가나 많은 인파로 분볐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상쾌했다. 가족 모두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 떠난 날은 그 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철수의 가족은 한 한적한 바닷가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바다 구경을 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결정이 가족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게 된 것이다. 그때 그들은 갑자기 급발진 한 차량이 그들을 덮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철수와 아빠는 중상을 입었고, 엄마는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철수는 그때의 상황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말도 여전히 귀에 새겨진 듯 선명했다.


“엄마는 말이야, 우리 철수와 제주도에 와서 너무 좋아! 철수야 사랑해. 철수는 어때?”


철수는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 했다.


철수가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활기찬 아이로 돌아간 듯 지냈다. 하지만 그 사고가 있은 일 년 후, 철수가 어린이 집에서 써 온 어버이의 날 편지를 아빠에게 낭독하면서 무엇인가 잘못 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빠, 그리고 하늘에 계신 엄마. 저 정말 잘 하고 있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


철수는 편지를 모두 낭독하지도 못하고 급성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증상은 심각했다. 온몸의 근육이 굳어지며 경련이 일어나 몸이 떨렸으며, 기도가 닫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고 헐떡이며 땀을 비오 듯 흘렸다. 다행히 아빠가 바로 곁에 있었고, 신속한 응급조치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철수의 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일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일 년 동안, 철수의 병은 더욱 깊어졌고, 이제는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머물고 있는 것조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안다고 하지 않는가? 철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랑을 가슴 한 곳 깊숙한 곳에 담아 두기로 했다. 하지만, 입으로 내지 않는 단어는 점점 그 뜻이 희미해 지게 마련이다. 철수는 언젠가부터 사랑을 잃어 버린 것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에게 후광이 비치는 듯 하고, 주위에서 종이 울리는 것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 모습을, 누구는 천사를 본 것 같다고 표현하고, 누구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 하고 있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쩌거나 철수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첫 사랑을 만난 철수는 잊고 지내던 사랑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하지만,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사랑 지닌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죄를 짓는 일인 것만 같았다. ‘좋아 한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의 병은 그것마저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수는 다른 사람에게 “좋다”라는 말도 제대로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있었다. 사랑의 감정은 알듯 모를 듯 말을 돌려 두루뭉술하게 피해 가려고 해도, 쉽게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너, 언제까지 날 힐긋 쳐다보기만 할 거야? 너 내가 좋지?”


첫 사랑을 당돌하게도 철수를 붙잡고 따지기 시작했다. 뜻밖에 일에 철수는 얼이 나간 듯 굳어 버렸다. 철수는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며 머뭇거렸다.


“말 안 해도 상관 없어. 네가 날 좋아하는 거 아니까! 사실 나도 네가 신경 쓰였거든. 자, 받어. 내 전화번호야.”


첫 사랑이 자기 휴대폰 번호가 보이게 끔, 휴대전화를 철수의 얼굴 쪽으로 내밀었다.


“너라면,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반드시, 꼭!”


그때, 철수는 눈물이 절로 났다. 한 두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 아주 펑펑 울며 눈물을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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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태양계는 뽑기다 (하) 24.08.19 4 0 18쪽
5 내 태양계는 뽑기다 (상) 24.08.19 4 0 18쪽
» 사랑한다 말하면 죽는 병이 있음 24.04.01 11 0 6쪽
3 보이는 것보다 다를 수 있음 24.03.31 7 0 7쪽
2 수업이 제일 재밌어요 24.03.31 5 0 6쪽
1 물장난으로 무림 고수 24.03.31 12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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