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반란 - 소대장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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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엘라
작품등록일 :
2024.04.3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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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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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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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3. 한국사관학교 3금제도 위반과 만남의 비극-석진.철권.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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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반란 - 소대장 길들이기


1. 파트: 성장과 전조 (Episodes 1-30)


에피소드 5. 사관학교 3금제도 위반과 만남의 비극 석진.철권.종철




1학년 11월의 세 번째 주말, 토요일 오전 일과가 끝나고 봉화대(한국사관학교의 별칭)에서는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생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유난히도 맑은 날씨 속에서, 그들은 1박 2일 동안의 허락받은 외출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덧없이 짧고,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잘 지내고, 내일 저녁에 보자!” 생도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며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은 가을 하늘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서로를 향한 약속과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철권과 민석진 역시 외출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가족의 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과의 토요일 오후의 재회는 따스한 정을 나누는 화목한 순간으로 가득 찼습니다.


집안은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부모님이 오전부터 준비한 사랑하는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은 오랜만의 행복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저녁 무렵, 김철권의 고등학교 친구 박종철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김철권은 전화 너머로 느껴지는 그 기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철권아, 외출 나왔다며? 오늘 밤에 시간 어때? 안암동에 있는 고모집 막걸리집에서 한잔하자."


박종철의 제안에 김철권은 잠시 고민에 빠지지만, 오랜 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기쁜 마음으로 만남을 기약합니다.



"종철아, 그래. 오랜만에 너랑 술 한잔하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한국사관학교는 원래 '3금제도'가 있어. 결혼금지, 흡연금지, 음주금지야.


너랑 술 한잔 하기는 하지만 절대 비밀이야! 부모님한테도 알리지 마 ㅋㅋㅋ.


사실 한국사관학교 생활로 쌓인 이야기가 너에게 얼마나 많이 있을지 모르겠네,"



김철권은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엄마가 부릅니다.


“철권아! 또 전화 왔다. 이번에는 너 동기라고 해!”


엄마가 나가려는 철권을 불러 다시 안방으로 들어오라며 전화기를 건넵니다.



"철권아, 뭐하고 있어? 심심하니까 우리 만날까?


혜화동 대학로에서 구경할까?


지금 나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 중인데...


싫으면 나 혼자라도...


민간인 여자들도 구경하며 산책할까 해."


민석진의 목소리는 가볍고 부담 없었습니다.




"그래, 무슨 기분인지 알겠어, 하지만 혜화는 말고 안암동에서 보자.


종철이라고 고등학교 친구가 있는데, 이미 약속이 잡혀 있어서...


그 놈은 고대 다니거든. 함께해도 괜찮겠지?"


김철권의 제안에 민석진은 추가적인 제안을 합니다.


"야, 친구보고 여학생들 좀 데려나오라고 해! 미팅 좀 하자.


고대 여학생들이 한국사관학교 앞의 서울여대생들보다 못생겼다는 소문은 있지만 ㅋㅋㅋ"




약속 장소인 고모집 막걸리집은 고대 정문 앞 건너편으로 행정구역으로는 제기동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곳은 이미 여러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장소였습니다.


고모집의 낡은 간판 아래로 들어서자마자 다른 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긴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매친...."


바로 '아침이슬', 운동권 노래가 공간을 가득 메우며 청춘의 열정이 불붙는 듯했습니다.




박종철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두 사람을 맞이했습니다.


법대 동기들과의 막걸리 모임으로 그의 얼굴은 가을 해질녘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은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철권아, 드디어 왔구나! 이 친구가 아까 전화 통화 때 말했던 네 동기 석진이구나?


반가워, 정말 반가워.


아, 나 방금 우리과 동기들과 한창 술을 마시고 있었어.


이제 2차는 너희랑 하게 되니 기대되네!"



박종철은 술기운에 휩싸인 채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김철권은 생도로서의 품위 유지를 교육받은 터라 자신의 신분이 주점에서 드러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주변을 살피면서 다음과 같이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우리 지금부터 한국사관학교가 아니야. 여기 석진이 나랑 방위병 동기야!”




셋은 서로의 존재에 기쁨을 느끼며 빠르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막걸리 잔이 돌아가는 속도는 점점 더해져 취기가 오를수록 가속화되었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며 대학생활의 묘미를 즐기는 박종철은 2차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주량을 자랑하며 연신 건배를 외쳐 댔습니다.


테이블 주변의 분위기는 청춘의 가을날의 오후 햇살의 기운이 실내에 들어오듯 낭만으로 활기찼고, 각 테이블 별로 술잔을 나누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학교 생활의 즐거운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준 군인 2명과 1명의 민간인이 있는 이 테이블에서도 막걸리의 향긋한 냄새와 함께 어우러진 대화의 파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 각자의 이야기가 약간의 울림을 남기며 서로의 마음속에 조금씩 다가 갈려는 시점이었다.




그때 여학생 한 명이 테이블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이게 누구야? 종철이야?"


박종철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습니다.


"오~ 주연아, 어쩐 일이야?"



주연이가 한 말에 테이블 주변의 시선들이 특히 민간인 여자를 오랫동안 못 봐왔던 두 명의 시선은 그녀에게 쏠렸습니다.


"아, 난 방금 토론 모임에서 나왔어. 여긴 뭐하는 거야? 너희도 모임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시원하게 맑게 울려퍼졌고, 그녀의 존재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암시할 것으로 석진은 취중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철의 친구 주연이의 등장으로, 고모집 막걸리집 홀의 한쪽 구석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박종철은 그녀를 향해 너털웃음과 함께 대답했습니다.


"아니! 모임은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야. 나는 지금 2차 중이야. 이 친구들은 지금 몇 잔 안 했어."


이어서 친구들을 자랑하듯이 소개한다.


"이 친구는 내 고등학교 동창 김철권! 별라서 고등학교 37회 동기" 그리고 저 잘생긴 친구는 이 친구의 한국사관학교 동기야."


한국사관학교 대신 방위병 동기로 해달라는 철권의 부탁은 이미 종철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1차 때는 우리 과 동기들이랑 마시고 있었는데, 막걸리를 좀 더 마시고 싶어서 내가 불러내서 여기까지 왔지. 너는 어때, 합류할래?"


"아~ 두 분 다 그래서 머리가 짧구나!"


주연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나도 전작 조금 했는데 오늘따라 막걸리가 좀 더 끌리네. 잠깐 얘기할까?"




세 사람은 주연이를 자리에 앉히고 새로운 막걸리 주전자를 주문했습니다.


고모집의 특제 막걸리는 그들에게 가을밤의 달빛처럼 시원하고 달콤했습니다.



박종철은 취기를 더해가며 과감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여기 안암 캠퍼스는 좀 어두워.


여전히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어.


여하튼 이렇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 너희들은 어때? 한국사관학교 생활은 힘들지 않아?"



김철권과 민석진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한국사관학교 생활은 매일이 도전이었고, 그 도전 속에서 고등학교 친구와의 우정과 연대감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철권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한국사관학교 생활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물론 힘든 면도 많지만, 석진이 같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견딜 수 있지.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어."


거나하게 취해가는 민석진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나는 원래 군 체질은 아니야! 그냥 어쩌다 가게 됐어. 내 친한 친구들은 서울대 다녀!"



주연이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도 대학 생활에서 겪는 고민과 기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사관학교와는 전혀 다른, 그러면서도 반정부 투쟁으로 유명한 대학의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약간의 낭만과 더불어 젊음의 열정과 시련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모집은 여관을 개조한 막걸리 집이었기에 방들도 많았고 홀에도 테이블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취한 종철과 부담 없이 말하는 주연이와는 달리, 생도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음주금지 등 삼금제도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걱정으로 매너를 지키려 애쓰던 건장한 한국사관학교 90기 두 생도는 고대 앞 고모집의 막걸리에 결국 무너졌습니다.



먼저 취기가 몸 전체에 감돈 것은 민석진이었습니다.


석진은 지금까지의 건전한 듣기 위주의 대화에서 일탈하며 말했습니다.



“어이구~ 말로만 듣던 고대 여학생과 이렇게 좋은 자리를···.~” 혀가 꼬부라지면서 말했습니다.


“석진아~~ 취했어?” 철권은 품위 유지를 강조하듯 다그쳤습니다.


“야! 좀 비우고 와야겠네!” 하며 석진은 화장실을 향했습니다.



“괜찮아요! 귀여운 면이 있네요. 저희는 신고식때 사발주로 저 현상을 이미 겪었죠!” 주연은 석진의 취중 행동에 가볍게 넘어가는 듯 하면서 말했습니다.


“근데 생도들도 술 마셔도 되나요? 우리야 다 막걸리꾼들이지만.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이에 김철권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자각했습니다.


사관 생도는 완전한 군인은 아니지만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군인, 군무원, 기타 법률이 정한 자는···” 어쩌구 저쩌구 구절이 생각나면서 고모집의 민간인들과는 다르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3금제도 중의 하나인 음주금지 항목을 정면으로 어긴 음주실행을 넘어서 석진은 이미 화장실에서 오버이트를 진행 중으로 사관생도로서의 품위유지의 의무까지 어긴 이미 생도 규율의 실천 범위를 완전히 넘어 간 상태 였다.




“아뇨~ 무슨 한국사관학교~ 우리는 방위병들이에요. 어휴 반가웠습니다. 이제 그만 들어 가세요.”


진담반 농담반 인듯 말을 하면서 김철권은 주연을 떠밀듯이 보냈습니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석진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 한국사관학교 90기! 민석진이야!” 석진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지만, 곧 주연의 뒷모습과 함께 고모집의 다수 대학생 술꾼들의 소음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셋의 취기는 더욱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박종철이 왠지 모르게 순간적으로 빡 돌기 시작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주연이를 보낸 후 금세 어두워졌습니다.



그 날 밤, 막걸리집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박종철의 목소리는 갑작스레 날카로워졌습니다.


그의 말은 서서히 폭풍우처럼 거세지면서 공기를 진동시켰습니다.



"야! 종철이 친구, 민석진, 너도 한국사관학교라니, 쯧쯧.


너희 한국사관학교 출신 선배들 보면 군부 독재의 원흉들, 민중을 짓밟은 잔악한 무리들이잖아.


왜 너도 그런 길을 선택한 거야?"


박종철의 말은 테이블 위에 쏟아진 술처럼 흘러넘쳤고, 그의 눈빛은 불길하게 타오르는 듯했습니다.




김철권은 긴장감 속에서도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친구의 격앙된 감정을 다독이려 했습니다.


“종철아! 갑자기 왜 그래?”


그의 목소리는 밤공기를 가르며 친구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썼습니다.


“내 친구 철권이가 한국사관학교 간 것은 이해해! 내가 철권 아버지를 알거든! 철권 아버지가 겪은 사연도 있고!”


종철의 말에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이해와 사정이 묻어나왔습니다.



민석진은 그런 종철의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술기운에 휩싸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어이, 철권 친구~ 종철아! 난... 난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처음부터 한국사관학교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고등학교 때 어떻게 하다 보니 한국사관학교에 오게 되었어.


한국사관학교에서는 지금 열심히 적응 중이야.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야.


그런데 정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워."


민석진의 목소리는 취기에 힘겨워 하면서도 그의 진심을 전하려 애썼습니다.




술자리는 한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찼지만, 김철권의 노력으로 조금씩 원만한 분위기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물 흐르듯 중재하며 갈등의 불씨를 잠재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박종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쌓인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낡은 목재 탁자에 기대어 앉은 종철의 눈빛은 잠시 깊은 과거로 향했습니다.


어렴풋한 불빛 아래, 그의 목소리는 은은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5.18을 알아?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부모님이···”


그의 말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졌습니다.



잠시 후, 종철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불현듯 일어나 자리에 앉으며 외쳐댄다.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 씨팔 니미 좃도!”


그러면서 흥겹게 노래가 흘러나온다.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보내라!~”


종철은 서둘러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켰습니다.



김철권은 이 상황에서 더욱 더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둘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려 했지만, 박종철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막걸리 찬가라는 노래가 끝난 후에는 별의별 욕설을 내뱉으며 1차 2차의 과도한 음주로 결국 종철은 완전히 탁자에 퍽 엎어지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석진 또한 화장실에서 게우고 나왔지만 이상하게 취기는 더욱 올라왔고 종철에 이어서 역시 좌석옆으로 기울면서 넘어지나 싶었는 데 다행이 벽이 그의 상체를 지탱해 주었는데 의식은 사라졌다.



철권은 현 상황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자신을 중심으로 서로가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행이 침묵 속에서 종철이 겨우 일어나 막걸리집을 나서려 할 때, “고모! 술 값은 제가!” 라며 외상표시로 손가락을 혀바닥에 터치했습니다.



막걸리집의 흐릿한 불빛 아래, 가을밤의 서늘함이 그들의 대화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이 부딪히는 순간, 분노와 당혹감이 뒤섞인 차가운 공기만이 그들 사이에 남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불편한 진실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을 뒤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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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진은 택시 안에서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밤의 그림자가 서울의 번화가를 삼켜버린 시각, 집 앞에 도착한 택시는 조용히 멈춰 섰지만,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억지로 깨웠고, 결국 누나 까지 동원되어서 부축을 받아 간신히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민석진은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뜬 세상은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두운 하늘 아래, 교관들과 훈육관들이 몽둥이를 들고 학생들을 쫓아다니는 백골단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눈빛은 차갑게 빛나며, 공포의 아우라가 민석진의 집 주변을 조여 왔습니다.


그의 마음은 공포로 쿵쾅거렸습니다.


교관들은 무리를 지어 집을 둘러싸고, 그의 가족을 위협하는 듯 포위망을 좁혀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한국사관학교 3금제도 위반!" 그 말이 울림과 함께 교관 중 한 명이 민석진의 집 벽에 커다란 '한국사관학교 퇴교를 명함!'이라고 쓰인 거대한 딱지를 붙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꿈속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민석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가슴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불안감이 뒤엉킨 숨결은 아직도 그를 짓눌렀습니다.


밤하늘에 매달린 달이 창밖으로 비쳐 들어오는데, 그 빛이 마치 모든 것이 다시 평화로워졌음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달빛이 그의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듯 했습니다.


실제의 고된 훈련과 규율이 엄격한 생활, 그리고 그에 따르는 두려움이 꿈속에서 과장되어 나타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결심을 새롭게 다짐하며 잠에서 완전히 깨어 날려고 발버둥 쳤으나 이내 또 술기운이 남아 있었는지 또 잠에 떨어졌다.




다음날 오전, 석진은 어제 밤의 술기운으로 인해 비몽사몽한 상태로 늦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시간은 서서히 흘러, 오후가 되어서야 그의 정신이 명료해졌습니다.


부모님은 그의 방문을 열며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복귀 준비도 해야 하지 않겠니? 오늘은 엄마 아빠가 친척 결혼식에 가야 해. 준비 잘해라.”



석진은 무거운 머리를 들어 부모님을 바라보며 힘겹게 대답했습니다.


“네, 알겠어요.”


부모님은 문밖으로 나서시면서 누나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저 녀석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구나. 육개장국 끓여놓았으니, 그거 좀 차려줘라.”



누나는 안쓰럽게 석진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 어제 술 정말 많이 마셨네. 잠꼬대도 얼마나 심하던지, 옆방에 있는 내가 잠을 설쳤어.”


그녀는 엄마가 끓여놓은 육개장국을 쟁반에 담아 석진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누나는 숙명여대에서 사학을 전공하며, 남영동에서 숙대 쪽으로 올라가는 Y자 길에서 자주 다니는 밀주집에 대해 자랑했습니다.


“Y자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골목에 밀주집이 있는데, 거기서 숙대생 운동권들이 자주 막걸리를 마시면서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부르곤 해.”


석진보다 두 살 위인 누나는 자신이 속한 민민투 또는 자민투 같은 운동권의 이야기를 자랑스레 했습니다.


석진은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그저 누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 마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문득 말했습니다. “잠깐, 선물 줄 게 있어. 기다려봐.”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책 세 권을 가져왔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동생, 한국사관학교 생도 석진아, 누나가 군내 도서 보내기 운동을 기획 중이야.


아직 시작은 못 했지만 열심히 구상 중이거든.


이 책들 선물할게. 생도 생활 중에 한 번씩 읽어봐.


너도 앞으로 '민주' 군대의 간부로 성장했으면 좋겠어.”




석진은 책 세 권을 받았지만, 아직은 도서 반입이 허용되지 않아 고마움을 표하며 말했습니다.


“아고 누나, 도서 반입은 안 돼! 일단 외출 나올 때 시간 나면 읽어볼게. 고마워!”



누나는 부담 없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잘 읽어봐.” 그리고는 아무런 부담 없이 방을 나갔습니다.




육개장 국물이 입 안을 통해 식도로 부드럽게 흘러들어가고, 그 따끈한 열기가 조금씩 술기운을 누르며 석진의 의식을 깨웠다.


어제 밤의 막걸리가 서서히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가운데, 그의 정신도 점차 명료해져 왔다.


육개장 국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키고 나자, 석진은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은 쟁반을 치웠다.


그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옆에 놓인 세 권의 책으로 이동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씨알의 소리”


“5.18 그날의 외침”



5.18? 그 숫자가 마치 오래전에 들려온 울림처럼 석진의 귀에 맴돌았다.


그는 창 밖으로 변색 되어 낙엽 되기를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가을 잎사귀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어디서 들었더라?"


그 숫자 5, 1, 8은 마치 어떤 중요한 사건의 조각처럼 그의 기억 속에서 반짝였다.


번뜩이는 기억의 실마리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맞다! 어제 그 놈, 그 미친 놈, 철권의 친구 종철이가 무슨 5.18에 대해 씨부렸지."


석진은 종철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기에 어제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깊은 호기심이 그를 이겨내게 했고, 가장 일기에 쉬워 보이는 "5.18 그날의 외침"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석진의 눈은 그 숫자와 제목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 헤맸다.


그의 손가락이 머문 페이지에는 격동의 그날의 사진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고, 그 아래에는 "탄압받는 시민군"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군인들과 시민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잉, 군인이 때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탄압받는 거야?"


그는 화보 설명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적어야 하지 않나, '탄압받는 민간인'?"




그 순간, 석진은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본 사진 속의 군인은 계엄군이었고, 난닝구(하얀 속내의의 속어)를 입은 사람들은 시민군이었다.


사진들을 주로 보다가 갑자기 사진 아래의 설명글에 눈길이 멈췄다.


그는 사진 설명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고, 결국 글로 된 책의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다.


너무나 빠져들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 순간의 호기심은 스포이드가 물질을 끌어당기듯 그의 모든 주의를 끌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석진은 혼자 중얼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진 속의 군인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난닝구를 입거나 그것 마저도 못 걸친 청년들은 절망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려는 자신과 도망치고 싶은 자신 사이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 모든 게 진짜일까?" 그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깊은 갈등에 빠졌다. 그리고는 문득 어제 종철이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미친 놈, 뭐라고 그랬더라..."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눈은 책 속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화보와 글 사이에서, 석진은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잊고 읽어 내려갔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새로운 인식의 씨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심장에 무언가가 와닿았다.




그가 읽은 내용은 마치 가을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는 낙엽처럼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는 책을 덮지 못하고, 사진 한 장 한 장에 머무르며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탐색했다.




화보 속에서 흩어진 시간들은 잔혹한 역사의 조각들처럼 그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계엄군과 시민군의 대립,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된 무고한 영혼들의 외침은 석진의 심장을 무겁게 압박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어떤 새로운 진실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그의 생각은 미로를 헤매는 길잡이 없는 나그네처럼 방황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진실이 이곳에 숨어 있는 건가?"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사진 속의 장면들은, 그가 어제 들었던 종철의 말과 겹쳐지며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미친 놈,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걸까?" 종철의 얼굴이 그의 뇌리를 스치며 그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석진은 방 안에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불편한 진실과 처음으로 마주하며 그의 가슴 속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자리 잡았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알고 살아온 것일까?”


그의 목소리는 텅 빈 방에 울려 퍼지며 메아리쳤다.


그의 심장은 책 속의 아픈 역사와 함께 무겁게 뛰어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괴롭히면서도 새로운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창밖으로 비치는 초가을의 서쪽 햇살이 방 안에 스며들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벽시계의 또렷한 초침 소리가 마치 시간의 급박함을 상기시키듯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이미 5시가 넘었어···" 그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복귀 시간에 대한 의식마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평범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서 파도처럼 일었다. 석진은 책상 위에 놓인 "5.18 그날의 외침"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도서 반입은 금지여서 감히 엄두를 못 내겠지만 규정을 위반해서 그 책 가기고 한국사관학교에 복귀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10년 전의 이야기가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리다니···” 그는 책의 무게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책 3권을 책상위로 옮기고 그들과의 이별을 일단 고했다.


서둘러 속옷을 갈아입고, 어제 깨끗하게 모셔 둔 생도복을 옷장에서 꺼냈다.


그의 동작은 자동적이었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책 속의 역사와 싸우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과거의 그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외출복을 착용하며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5시 20분, 신길동에서 한국사관학교까지는 지하철 타고 버스 갈아타서 대략 1시간 10분 걸리니까···"


그는 계산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출발하면 6시 30분쯤 도착하겠네, 복귀 시간보다 30분 늦게."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았다.


어딘가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복귀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갈등했다.


집을 나서기 전, 석진은 잠시 멈춰 섰다.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절대 택시를 타고서 서둘러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1호선 신길역 지하철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저녁이 시작되는 노을 아래에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복귀시간 미준수는 퇴교라고 하던데!” 청량리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는 순간 5.18의 숫자는 사라지고 훈육관의 모습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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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피소드 4. 생도동기들-하나가 못 되다! 미복귀 및 지옥훈련! 24.05.02 63 0 28쪽
» 에피소드3. 한국사관학교 3금제도 위반과 만남의 비극-석진.철권.종철 24.05.01 66 2 26쪽
2 에피소드 2. 훈련의 땀과 도전의 그림자 - 그 와중의 일탈 24.04.30 85 1 23쪽
1 에피소드 1. 청운의꿈과 사관생도로서의 첫발 24.04.30 117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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