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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ITE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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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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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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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멈추지 말고 점프

DUMMY

8천 피트의 상공 수송 헬기 바닥에 고공복을 입은 사람들 십여 명이 앉아 있다.


방풍 안경 너머 진지한 시선으로 강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녀의 손목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마지막 배에 간신히 올라타 지각을 면한 그들이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유진의 사소한 행동이라도 놓치는 날에는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먹게 되는 저녁을 포기해야 한다.


“오늘 고고도 강하 교육이죠! MC-4 전술 낙하산이라 본인들이 직접 펼쳐야 합니다. 헷갈리지 마시고요.


밑에서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완벽하게 낙하하는 거예요! 딴 생각하지 말고 4000피트에서 핀 뽑기, 낙하지점 확인, 그리고 안전한 착륙이 중요합니다.”


“예!”


“녹색불이 들어오면 걸어 나가세요. 밑에서 봅시다. 파이팅!”


“파이팅!”


헬기 뒷문을 등지고 선 유진의 외침에 시끄러운 강풍과 엔진소리가 무색해진다.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옛 노래를 부른다. 그는 이 상황을 즐기면서도 진지해 보였다.


옆 사람들은 조용히 그의 노래를 듣는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는다.


갑자기 헬기 뒷문이 열리자 유진이 상체를 내밀어 지상의 낙하 포인트를 확인한다.


잠시 후, 헬기 천장 구석의 표시등에 녹색불이 들어오고 유진이 수신호를 한다.


모두 일어나 유진을 지나치며 줄줄이 출구로 걸어가 탁 트인 공간을 향해 뛰어내린다.


이들은 5년 넘게 200회 이상 고공낙하 교육을 받았다. 그런 그들도 야간 절벽 다이빙만큼은 알 수 없는 공포감 때문에 매번 어려워한다.


유진은 1000회 이상 고공낙하 교육을 받은 베테랑이라 사고 발생을 대비해 마지막에 뛰어내린다.


모든 사람이 차례로 강하한 후, 유진도 힘차게 뛰어내린다.


4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10여 개의 MC-4가 저녁노을과 뒤섞여 활짝 피어 오른다.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활짝 핀 꽃들의 흩어짐은 시간의 문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


지상 낙하 포인트 주변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강하자들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간다.


이도신이 착지한 강하자들을 둘러보며 외친다.


“다친 데 없죠? 낙하산을 풀고, 지도랑 나침반부터 꺼내 베이스캠프 좌표 확인하세요!


독도법에 서투신 분들은 옆 사람과 의논하셔도 됩니다. 낙오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착륙한 유진이 낙하산을 풀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한다.


“모두 완료! 수고하셨습니다.


낙하산 잘 풀어서 강하 장비랑 함께 그 자리에 두고 베이스캠프를 찾아가세요!


반드시 지도와 나침반을 활용하시고 되도록 스스로 해보세요.


독도법이 의외로 재미있어요!”


“네!”


도신과 대기하던 사람들은 고공낙하를 마친 이들의 낙하산을 잘 포장해 두 대의 지프에 나눠 싣고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이들은 낙하산 포장만 500여 회 한 사람들이다.


포장을 잘못하면 강하 시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사고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도신은 지프를 타고 베이스캠프를 향하던 도중에 유진과 시선이 마주치자 활짝 핀 웃음으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다.


그녀는 무심한 시선으로 도신을 보며 손을 흔든다.


도신은 유진이 궂은일을 싫은 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해내는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녀의 리더십은 정말 탁월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


베이스캠프 주변은 20동 가까이 크고 작은 갈색 텐트가 쳐져 있고 그 중앙의 모닥불 3개에는 저녁거리들이 익어간다.


도신과 낙하산 포장팀은 베이스캠프에 먼저 도착해 대형 텐트에 낙하산을 옮기고 있다.


달마와 함께 요리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고공낙하를 마친 이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신속하게 배낭을 받아 대형 텐트로 옮긴다.


정한식도 그들에게 배낭을 벗어주며 힘들어한다.


“밥은 다 됐나? 배고파 죽겠다! 오늘 배 들어오는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죽어라 뛰는 바람에 힘 다 빠져 낙하산 핸들도 간신히 당겼어!”


라며 모닥불 주변에 누워버린다. 아마 그 마지막 배를 못 탔으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다.


달마가 말한다.

“정 선생님, 이렇게 매번 늦지 않고 교육에 참석하시는 걸 보면 그 체력이 부럽습니다. 식사가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식사 담당들이 신속하게 야간 고공 다이빙을 앞둔 이들 앞으로 스테인리스 식판에 식사를 가득 담아 전달하자 모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어둠이 내리는 정글의 밤을 환하게 밝힌다.


모두들 지금 식판에 담아 먹는 밥맛이 지구상에 그 어떤 고가의 만찬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상을 잊은 낭만의 기회를 준 신 앞에 감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떠들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늘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니 식사 때나 쉬는 시간에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터뜨린다.


잠시 후, 유진이 외친다.


“식사 후 잠깐 쉬고 야간 다이빙 교육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수영복 입수가 아니고, 위장복과 전투화를 착용한 그대로 다이빙하시면 됩니다.”


“훈련복 젖으면 엄청 무거워지는 거 다 아시죠?


전투화도 수영할 때 불편하니까 조심하시고요.


갈아입을 옷과 트레킹화는 개인 텐트에 넣어놨으니 교육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갈아입으세요.


각자 2회씩 입수하시고 다 끝나면 간단한 회식이 있겠습니다.”


“네!”


모두 휴식시간을 마치고 다이빙 장소로 이동한다.


*


랜턴 불빛을 따라 좁은 오솔길이 눈에 들어오고 오솔길 양쪽 울창한 밀림이 마치 풀나뭇가지를 곱게 엮어 만든 담처럼 이어진다.


어둡고 고요한 섬 어디선가 하늘이 터질듯한 폭포 소리가 들리고, 각자 랜턴을 이용해 폭포 쪽 사잇길이 나타날 때까지 조심스럽게 더듬어 간다. 도신이 말한다.


“컨디션이 안 좋은 분들은 미리 말씀하세요. 다음에 다이빙하셔도 됩니다.”


“네.”


잠시 후, 오솔길 옆으로 사잇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이십여 미터를 더 걷자 웅장한 소리와 함께 주변이 탁 트이며 거대한 폭포가 드러난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보인다.


약 90m 높이로 물보라와 물안개가 뒤섞여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지만 모두 태연하다.


이때,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포즈의 다이빙을 각자의 랜턴으로 관찰한다.


이후 모두 줄줄이 절벽으로 다가가 서슴없이 뛰어내린다.


다이빙을 마친 입수자는 폭포 위로 연결된 두 개의 밧줄 중 왼쪽 밧줄을 잡고 폭포 위로 다시 올라간다.


젖은 훈련복과 전투화로 폭포 정상까지 암벽 등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제네스와 케일라는 오른쪽 밧줄 상단과 하단에 위치해 모두의 안전한 등반을 돕는다.


한식이 1차 다이빙 후 수면 위로 떠 올라 호탕하게 웃는다.


“푸하! 한 주 피로가 싹 가신다! 하하하!”


오른쪽 밧줄에 매달린 제네스가 말한다.


“정 선생님, 오늘 폼이 제일 좋아요!”


“폼은 회장을 못 이기지. 근데 이렇게 어두운데 넌 지금 내가 보이냐?”


“네? 하하하.”


다이빙이 끝난 후,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도신이 외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정말 좋은 소식이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일단 내려가서 한잔하며 같이 해석합시다.”


“네!”


*


아늑한 분위기의 베이스캠프 텐트촌 중앙에 모닥불이 타고 있다.

야간 폭포 다이빙을 마친 사람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모인다.


모닥불 주위로 두 명씩 짝을 지어 통나무에 앉아 나누어준 종이 한 장을 보며 열띤 토론을 한다.


내일 새벽에 서둘러 출정하려면 빠르고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다.


평소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한식이 오늘따라 신나서 말을 꺼낸다.


“이거 보니까 딱 봐도 스콜라 지대로 가야 해!”


유진이 묻는다.


“저번 달에도 스콜라 지대였는데 이번에도 같은 지역이라고요?”


“이 문구가 그걸 말하잖아. ‘낮의 썰물 뒤로 사람들은 오징어 떼와 춤을 추고’를 봐봐. 스콜라 말곤 이 지구상에서 썰물로 오징어 떼를 모을 수 있는 장소가 없어. ”


달마가 끼어든다.


“그건 그렇습니다. 스콜라 지대 말고는 없어요. 그럼 스콜라 지대라고 가정하고 한 번 해석해봅시다.”


그러자 도신이 혼잣말을 하듯 말을 던진다.


“아니지. 저번 달이 스콜라였는데 이번은 아니지 않나?”


유진은 그를 흘겨보며 조용히 핀잔을 준다.


“제발 건성건성 하지 좀 말아요. 일단 스콜라 지대라는 가정을 하고 해석을 해보자는 거니까 다른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봐요.”


도신은 그녀의 말에 열심히 고민해 본다. 유진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응시해가며 바라본다.


“다른 의견들이 없으시니까 정 선생님 말씀대로 스콜라 지대로 가정하고 해석 들어가죠. 다들 모이세요!”


모두 모이자 달마가 말한다.


“여기 보면 1년에 한 번 썰물이 있다고 되어있지.


스콜라 지대 섬들 전체가 썰물이 매일 있는 게 아니야.


썰물이 딱 한 번만 일어나는 곳이 있거든. 스콜라 지대의 가장 큰 섬이 1년에 단 한 번만 물이 빠져. 그것도 아주 크게······.


거길 가리키는 것 같아. 약력으로 보면 내일모레 일요일 오후가 바로 그 날이기 때문에 다른 섬은 볼 필요가 없어. 내 생각은 그래.”


이에 케일라가 반문한다.


“하지만, 저번 달과 같은 스콜라 지대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해석이 이렇게 쉽게 마무리될 리 없습니다.”


유진이 말한다.


“우리에겐 내일 토요일 오전부터 36시간만 주어졌기 때문에 WPC에서 해석이 너무 어려운 지도를 배포하지는 않았을 거야.


두 달의 시간이 주어지는 여름 대회도 아니고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찾아야 하는데 이 정도 난이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해. 정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그래. 우리가 며칠 동안 날밤 까면서 해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번 달이랑 장소가 같지만, 스콜라 지대에 수만 개의 섬이 있잖아.


그리고, 1년에 한 번만 물에 잠기는 섬이 지구상에 딱 하나라는 사실과 그 섬이 스콜라 지대에 있다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그러니 이번 해석이 그렇게 쉽다고만은 볼 수 없어. ”


“그럼, 내일 스콜라 지대로 가는 것으로 해요. 다들 괜찮죠?”


“네.”


상황이 일단락되자 달마가 일어나 뒤에 있는 텐트에서 포도주를 꺼내 들고 온다.


“이번 건 오래된 포도주야. 고된 일 하느라 애썼으니 내가 특별히 골라왔어. 잔에 따르고 옆으로 돌려 봐.”


모닥불 주위로 20여 명이 더 가까이 둘러앉아 포도주 맛을 본다. 다들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유진이 케일라의 목을 오른팔로 감싸 안으며 말한다.


“내일 기대된다. 그치?”

“저번 달과 같은 지대인 것이 함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아직도 의심됩니다.”


“의심은 이따가 하고 이거나 마시자.”


그때, 유진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도신이 끼어든다.


“그러니까 지금 결론 난 거야? 엉?”


유진이 한숨을 쉬며 냉랭하게 말한다.


“아까 뭘 들은 거예요. 이미 결정 났는데.”


“그래?”


이때 유진이 문득 생각난 듯이 도신의 팔을 치며 말한다.


“이거 봐봐요. 진짜 맛있어요! 포도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으아~.”


하늘은 별 무리가 물안개를 뿌리고 있고 사방이 개구리와 부엉이 소리로 가득하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 모든 게 맑고 상쾌하다.


오늘은 모임 시작부터 두 개의 훈련을 받느라 대화도 별로 못했다. 일찍 자야 새벽에 출발할 수 있으니 남은 대화는 내일 해야 하는 분위기다. 다들 하나같이 너무 아쉬워하면서 텐트로 향한다.


유진이 외친다.


“푹 자고 내일 봅시다.”


“예. 마담~”


*


새벽 5시가 되자 마지막 불침번인 제네스가 큰 소리로 새벽 공기를 울린다.


“기상하세요, 기상! 어서 준비하고 밥 먹어요. 스콜라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우승하자고요! 자, 기상!”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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