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과 검정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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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맨
작품등록일 :
2024.05.08 12:39
최근연재일 :
2024.09.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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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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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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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EP - MOON 01

DUMMY

오늘은 솜사탕처럼 폭신한 구름 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아주 예쁜 하늘색으로 가득찬 날이다.


내 인생의 중요 분기점 이지만, 아주 말랑 말랑한 감성이다.




내 기분이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애써 평온한척 해보고 싶지만 아직 어떤 자극도 없는데


나의 심장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오늘이 그 날이라는 인식을 하고 쿵쾅거린다.


나의 심장은 일반 사람들의 것과 달라서 유난히 더 쿵쾅거린다.


나의 생경한 심정을 증폭시키는 원인은 이 낯선 방 때문이기도 하다.


불편함 없이 완벽한 침실 이었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것이 주는 이질감이 있다.


여기는 국회의사당 북쪽에 있는 힐튼호텔의 6층이다.


낡은 카펫에서 올라오는 쿰쿰한 냄새 덕분에 럭셔리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창밖으로 머리만 보이는 국회의사당이


내가 워싱턴에 있다는 것과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눈 뜨자마자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저 햇살과 구름이 창 너머로 보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오겠지?..”





이제 곧 생일이 다가오고 20살이 되지만 나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과보호를 받는 편이다.


어딜 가거나 아빠와 함께인 경우가 많다.


특히 지구에 와 있을때는 대부분 그렇다.


내가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달 연구소 뿐이다.


오늘 간만에 지구에 내려오면서 여기서 멀지 않은 하야트 호텔이 더 맘에 든다고 했는데,


아빠는 힐튼 체인의 멤버십이 있어서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며 이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굳이.. 이런 날까지 포인트에 집착하는게 정말 아빠 답다.






세수하고 양치하고, 머리 손질을 간단히 하고 옷도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창가에 앉아서 워치를 세번 두드렸다.


화면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워치를 세번 두드렸다.





“아.. 렌즈 안꼈구나..”





가방에서 렌즈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 물이 가득차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눈가에 케이스를 밀착시킨다.


물 안에서 눈을 몇번 깜박거리자 나노봇들이 렌즈 형태로 각막에 자리를 잡는다.


케이스를 닫아 가방에 넣고 다시 워치를 세번 두드리자 눈앞에 화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각종 SNS에 급등 영상은 나와 관련 된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아주 흔한일은 아니었지만,


가끔 겪어본 일이라서 크게 당황 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그럴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었다.


오늘 미국연방법원, 대법원에서 나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날이다.


나는 탄생부터 세상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고 한다.


어렸을때는 그런것에 대한 아무런 인식없이 마냥 해맑게 여느 아이들처럼 그렇게 자랐다.


지금에 와서 어느정도 머리가 크고,


내가 자라온 환경이 일반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것 같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다들 자신의 계정의 조회수를 위해서 평소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거나 없거나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한다.


덕분에 오늘의 토픽은 내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다.


오늘 만약 내가 인간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면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바뀌는 것이다.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수 있는 날이다.


나의 자의식이 너무 충만한것 아니냐고?


이건 나에 대한 판결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이다.






나는 분명 인간과 유전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지적능력이나 자라온 환경적, 문화적 특성이나 사고방식 등을 고려하면 나는 그 어떤 인간과도 다르지 않다.


만약 나를 인간이라는 범주에 넣어준다면 앞으로 수많은 연구실에서 만들어질 하이브리드 생명체들의 법적 지위도 문제가 될 것이고,


애시당초 연구 자체가 금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타의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행위를 실험실에서 하게 둘 정부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인간 지위를 주는 것에 대해서 많은 반대여론이 있었다.


그런 반대에 가로막혀 대법원까지 십년을 넘는 시간이 걸리도록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면 내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예전에 인권단체들의 압박덕분에 법원에서 최소한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판결을 내겠다고 대답했었다.


사회의 여론이 양분되어 찬성과 반대가 팽팽 했다.


어느 쪽 결론을 내리더라도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법원이 그렇게 판결을 질질 끌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제까지 중간 중간 수십차례 이상 법정이 열렸지만 3번 인가를 제외하고는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판결의 당사자 이기는 하지만, 형사 재판도 아니고 내가 이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자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나의 의견이나 생각이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사자 이지만 참고인 같은 대우를 받았다.


오히려 우리 아빠가 수십번 재판에 불려다니며 답변을 해야 했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나에게 아버지가 있냐고?


법적으로 나의 아버지이고, 엄밀히 말해서 생물학적으로도 나의 아버지이다.





“똑 똑 똑”





누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목의 워치를 두번 두드려 화면을 닫고 방문으로 걸어간다.


어차피 올 사람은 아빠 밖에 없어서 바로 문을 열까? 하다가 누구세요?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냥 열었으면 넌 너무 조심성이 없다면서 아빠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누구세요 라고 한 것이다.





“응, 아빠야~ 가자! 시간 다 됐어”





문을 열자 간만에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아빠가 서 있다.


잠을 잘 못 주무신건지, 퀭한 눈가와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이 나이대의 여느 부자들이 어떤지 잘은 모르겠지만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아빠와 사이가 좋은 경우보다는 냉랭하거나 다투거나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아빠의 관계는 정말 친구같은 사이이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 아빠가 애써 그렇게 우리 관계를 정립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뭐 좀 먹을래?”아빠가 물었다.




“아니, 그냥 가자. 별로 생각없어.”






둘다 긴장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둘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렇게 애써 태연한척 하려 하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아빠는 어떤 약속이 건 한참 전에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 패턴에 익숙해져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는 것 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 걸어갈거야?”




“아~ 기자들이나 사람들 많을 수도 있다고 법원에서 차 보내준다고 그거 타고 뒷문으로 들어오래.”




엘리베이터 1층 버튼을 누르니 아빠가 그 버튼을 취소하고 B버튼을 누른다.


호텔 뒷문으로 나가니 검정색 밴이 서 있다.


듬직해 보이는 아저씨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이나 와본 곳이지만 올 때마다 낯설다.


적응이 안되는 곳이다.


판사나 변호사들은 그래도 이 공간이 익숙할까?


뒷자리는 판결을 보기위해서 온 기자들과 일반인들로 가득하다.


법원 앞도 각종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30여분 정도 지나고 판사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멍 한 것을 넘어서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것 같았다.


그냥 의식적으로 지운 정도를 넘어서


누군가가 내 머릿속으로 손을 넣어서 내 생각들을 꾹꾹 눌러서 밖으로 다 밀어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리가 들리지만 그 소리가 머릿속에 담기지 않았다.


급기야 삐.. 하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중간 중간 단어들이 들린다.





[하이브리드.. 동등한.. .. ..]





그리고 옆에서 아빠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끌어 안았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판결 내용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나는건가?


아마도 내가 인격체로 인정을 받은 모양이다.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아빠에게 물어봐야 할것 같다.






계속 내 귓전에 이명이 들리고 법정을 나와 계단 앞에 섰다.


수 많은 카메라들이 있었다.


오래된 영화에서는 이럴때 번쩍 번쩍 플래쉬가 터지던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다들 동영상 촬영을 해서 플래쉬 같은건 없다.


정말 많은 목소리가 수많은 질문들을 해왔지만 지금 제대로 무언가를 사고하고 대답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미국 법원에서 어울리는 행동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한국식으로 꾸벅 크게 반절을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다시 법원 뒷편으로 가서 준비된 차를 타고 바로 테더 탑승장으로 갔다.


호텔에 짐이 남아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 보내서 챙겨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 그대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아빠랑 나는 테더 탑승장에 와서 대기실에 앉았다.


이번 셔틀은 아빠와 나를 위해 준비된 특별편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내가 금수저인 덕분에 누릴수 있는 사치였다.





“레온 축하해~! 이제 이런 씨름도 끝났구나~


하지만 판결내용을 축하하는 건 아니야!


넌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원래 인간이었어.


그 사람들에 의해서 너의 정체성이 결정되는게 아니다.


아빠가 축하한다는 건 지긋지긋한 법정 출두가 끝났다는 거야”




“응, 알아요~ 고마워요~ 사실 난 아까 정신없어서 판결 내용도 하나도 못들었어.”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고 내용을 살펴 보았다.


결론은 하이브리드 생명체도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것.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격체 중에 하나로 인정하여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 인간의 범주에 포함 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내 판결보다 앞서 3년전에 AI에 대한 인격체 인정 판결이 있었다.


모든 AI는 아니고 몇가지 조건을 충족한 경우 인간과 동등한 권리가 인정된다.


그냥 법인을 세워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이 오기까지 사람들의 전뇌화를 통해서 사망 전에 클라우드에 뇌를 복제하는 서비스 상품이 출시 되고,


그렇게 클라우드상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의식(?)을 인격으로 인정해야 하는 가에 대한 담론이 있었다.


오히려 유전자의 99%가 일치하지만 몇가지 특징이 다른 나와 같은 하이브리드 생명체에게 인격을 부여하기 보다 앞서


소프트웨어의 확장인 AI와 자신들의 뇌를 복제한 가상 AI에게 인격을 부여 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에서 오늘의 판결도 이런식으로 나올것을 예상했다.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로 인정하고 권리를 부여한다.


그렇게 반대파를 토닥이고, 찬성파를 달래주는 정도로 끝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 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자신들과 얼마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로 시작 되서 가지를 뻗어 나온 파생품은 쉽게 인정이 되어도


외부의 것이 섞여들어온 존재는 얼마나 나를 닮아 있더라도인정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나는 도대체 뭐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 다지만 나는 나의 존재 자체가 의문이다.


나는 도대체 뭘까?


이 답을 찾지 못하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몸을 지탱하고 싶은데..


바다, 아니 중력조차 없는 우주에 둥실둥실 부유하는 것 처럼 그렇게 나라는 존재 자체가 늘 부유했다.


존재에 대한 의문과 삶의 목적이 없이 부유하는 것에 멀미가 났다.






나는 어디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한참 매달려 있다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집어치워 둔 생각들이 다시 올라온다.


셔틀이 거대한 새총처럼 생긴 발사대 위에서 튕겨져 올라갔다.






얼마 후, 옆으로 달로 향하는 테더가 회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몇번을 봐도 이 거대한 기관이 작동하는 것은 신기하고 장엄하다.


테더에 가깝게 다가가자 우리가 탄 셔틀이 찰싹 하고 자석처럼 붙는다.


그리고 달 센터를 향해서 셔틀이 다시 던져진다.


아빠는 약간 멀미가 나는지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순간이면 하이브리드라는 것이 몸소 느껴지는 것 같다.


더 강인한 육체적 형질 덕분에 이 정도는 전혀 몸에 부하가 느껴지지 않는다.


달 센터에 도착해서 한번더 자가용 셔틀을 타고 우리 연구소로 향했다.






[우주 인류] 연구소에 도착했다.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 진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마침 연구소는 2주간 저녁이 이어지는 기간이다.


어둠이 만들어 주는 아늑함이 나에게는 익숙하고, 그 익숙함이 나에게 이곳을 더 ‘집’처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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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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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3 크림슨74
    작성일
    24.05.30 23:25
    No. 1

    와~~이거 명작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문체도 좋구요.
    건필하세요 화이팅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비트맨
    작성일
    24.05.31 08:20
    No. 2

    감사합니다. 첫댓글에 이런 말씀주셔서 힘내서 쓸수 있을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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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P - MOON 02 24.05.29 131 2 16쪽
» EP - MOON 01 +2 24.05.29 259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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