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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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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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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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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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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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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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0화

DUMMY




‘‘어머!’’

‘‘왜 숙희야?’’

‘‘존슨이 들릴 수 있다는데. 어떻게 오라고 할까?’’


존슨.

이름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저기, 오빠’’


한참 맛있게 해산물 튀김을 맛보고 있는데 신선혜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응. 왜?’’

‘‘누구 하나 와도 될까요?’’

‘‘아이, 뭐, 그거야, 뭐, 오늘 돈 내는 쪽에서 ...... 근데 누구신데?’’


신선혜가 맞은편 회계사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숙희 남자친구인데, 넷플러스코리아에 근무하고 있어요. 참! 오빠도 어쨌든 방송인이시니까 말 잘 통하겠네. 오빠, 영어도 어느 정도 하시죠?’’

‘‘응? 아! 여, 영어?’’


영어.

당연히 잘못 한다.

영어 이야기 나오면 마치 영어의 몸이 되는 기분만 든다.

1형식에서 3형식까지는 그럭저럭 만들어낼 수 있다지만, 4형식, 5형식 문장 만드는데는 많은 고뇌가 필요할 정도다.


‘‘영어 뭐 좀 기본적인 건 좀 하긴 하지만, 한국인데 한국말을 써야 되지 않겠어?’’

‘‘존슨이 한국 온 지 몇 달 안 되어서 한국말을 잘 못해서요. 죄송해요.’’


회계사 친구가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웃는 낯이지만 침을 뱉고 싶었다.


‘‘음, 뭐 그럼 한국말 가르쳐주면서 대화하면 되지. 얼른 오라고 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성비가 너무 안 맞아서 좀 그랬었는데, 하하하.’’


내 귀로 들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되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예. 게다가 존슨이 전공이 국제경제학이었거든. 아마 오빠랑 대화거리가 무궁무진할 것 같네요. 사실 원래 오늘 좀 바쁜 일정이 있다고 했었는데 한국의 유명 시사평론가 분이랑 만난다고 하니까 엄청 의욕을 부리더라고요.’’


커억.

순간, 그만 사래가 걸려서 입에 들어있던 것을 뱉어내기까지 하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하고 많은 전공 중에 국제경제학.

국제와 경제.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이다.


방송에서 국제 뉴스 쪽은 대개 외대 관련어학과 교수 같은 해당 분야 전문가를 불러 원 포인트 레슨으로 듣기에 내가 딱히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고,

경제 뉴스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수포자였기에 일찌감치 본능적으로 관심이 안 갔다.


30여분 후.

이름부터 불청객 느낌이 드는 존슨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외모도 불청객이었다.


190에 가까운 키.

멀끔한 얼굴.

당연히 그곳도 존슨이겠지, 흥!


여자 친구라는 회계사 친구야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다른 친구들, 변호사와 대기업 연구원 친구도 온갖 예쁜 척 하며 그를 맞이하였다.

나때와 비교해도 호들갑 강도가 두 배 정도 더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신선혜까지 그래보였다.


‘‘나이스 투 미 츄. 마이 네임 이즈 존슨.’’


마지막으로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만나서 나도 반가와요. 내 이름은 강대구.’’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한국말로 답했다.


‘‘제 이름은 존슨입니다, 하하하.’’


어색한 한국말이기는 하지만, 존슨이 바로 자기 인사말을 시정했다.

그러니까 도리어 내가 머쓱해졌다.

이 새끼, 그렇게 초장부터 시사팩폭쇼 이현호 못지않게 재수 없다는 스멜을 물씬 풍겨왔다.



+++



‘‘......’’


20여분 째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밥만 먹는 척 하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먹을 접시도 안 보인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틈나는 대로 몰래몰래 존슨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곳은 나의 독무대였었는데.

내가 입만 열면 좌중의 여자들이 빵빵 터졌었는데.


태어나서 한 번 본적 없는 모 한류스타를 우연히 방송국에서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는 식의 구라를 꾸며 내면서

내 자신도 내 순간 소설 쓰기 능력에 속으로 감탄했던 게 엊그제도 아닌 불과 45분 전 일이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는 방금 전 그 여자들이 딴 놈팽이한테 너도 나도 한 마디라도 해 보려고 앙탈을 부리고 있다니.

다들 집에 영어 못해 죽은 조상들이라도 있나.

그 시절에는 영어 쓸 일도 거의 없었을 텐데,

시발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시발 진짜.


‘‘헤이, 미스터 대구?’’


그를 질투했지만, 그래도 그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으면 하며 불안에 떨고 있던 참이었다.


‘‘#@U#@##$$^%**&&&^^^^^^!&**(()()))))))(&&@(&(&(&(&@(&(@&(&R(@&(@&**(@((&(@*&(@&(@&R(@&R(@&R(@&R*@#&(&*(&*&*((&*&*&(&@&*#(@&R(&(@&(? @%@))@*)@*)))@)))@))@)#))@)@)@))@)#)@#))$)@)$)@)$)$)? #$@)$*)()()(!))))!)@())#()!)(!)(#)(!#()!()@((@(!)(!()#!)(()#!)(#)(!()!?’’


하하하, 하하하.

나는 그저 웃음으로 때웠다.

내게는 정말로 존슨의 말이 특수문자에 가깝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오빠, 지금 존슨 말 잘 이해 못하셨죠?’’

‘‘으응? 뭐? 응? 아이, 오늘따라 한국말도 잘 안 들리네.’’


나는 간만에 내게 말을 걸어온 신선혜 쪽을 향해 귀지를 조금 파 튕겨 보냈다.

솔직히 오늘 처음 보는 다른 애들은 그런다 쳐도 선혜 너는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녀가 정말로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를 남주로 섭외해 잡아놓은 자리에서, 특별히 내가 사고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다른 새끼로 남주를 교체해 버리다니.

아무리 달면 바로 삼키고 쓰면 바로 뱉기로 유명하다는 방송가에서도 이런 캐스팅 교체는 일찍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사실 저도 이해 잘 못 했거든요, 호호호. 숙희야! 니가 통역 좀 해 줄래?’’


그래도 그나마 그녀가 약간의 개전의 정은 보여주고 있었다.


‘‘아! 방금 존슨 질문은요. 작년 재작년부터 세계가 은근히 전쟁 모드잖아요.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중국 대만도 언제 터질지 모르고요 이런 국제 정세와 관련해 앞으로의 한국 증시와 환율 등 경제지표 흐름에 대해 유명 시사평론가로서 대구씨 예상은 어떠신지 존슨이 질문 던진 건데요.’’


언젠가 저품격 토크쇼인가 어디에선가 나는 영어를 이렇게 정의내린 바 있다.


‘‘영어는 나를 안면 인식 장애로 만드는 무언가다.’’


풀어 이야기하면,

처음 볼 때는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옆에 있는 누가 쟤 누구잖아, 하고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기억이 하나 둘 나기 시작한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러했다.

처음 존슨 저 새끼 입에서 발설될 때는 뭔 소리인지 하나도 감이 안 오더만,

애인이라는 회계사 애가 통역을 해주니까 하나 둘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War가 계속 나왔던 것 같고,

특히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아랍, 차이니스, 타이완 다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나?

안면 인식 장애로 못 알아본 당사자가 불쾌한 기색으로 이미 자리를 뜬 상태와 다를 바 없는데,

방금 그 문장들을 바로 못 알아들은 것만으로 이미 내 영어 실력은 좌중에 뾰록 난 후인 걸.


‘‘음, 글쎄, 하하하, 음, 하하하.’’


한국말로도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를 영어로 대답해보라는 듯한 상황.

이 상황에서 믿을 곳이라고는 오로지 한 곳.

허공이다.


나는 잠시 물끄러미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절대자,

프롬프터 존재를 절실히 갈구했다.


하지만 허공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갈수록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랬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프롬프터 창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경우는 오로지 방송 중일 때뿐이었다.


원래 프롬프터 창이 방송 스테이지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어디 이런 식당 같은 사석에서 프롬프터 창이 나타날 리가.


그리고 설령 나타난다 해도 문제인 게,

한글로 나오면 그걸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내 영어실력으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반대로 영어로 나와도 문제.

내가 그걸 제대로 해석해낼 리도 만무하고 설령 해석해내도 그걸 내 고향 충청도에서도 안 먹히는 영어 발음으로 발설해야 하는 상황.


아! 이런 게 말 그대로 외통수라는 것인가?

세상, 이 새끼, 결국 나 뒤통수 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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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글자 수 늘리려고 내가 이러는 줄 의심할지 모르겠지만.

농담이 아니라 실지로 이랬다.


내가 존슨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물끄러미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사이,

특수문자 같은 말들이 쉴새 없이 내 귓전을 때려댔다.

하필 설상가상 외고 출신 동창들 만남 자리라니.

나만 빼고 모든 한국인들이 최소 언어 연수 2년 이상 갔다 온 수준의 영어 회화를 구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중간 중간 코리아를 비롯한 나라들 이름과 이코노미, 지엔피 지디피 등 경제 용어 정도 알아들을 정도였다.


아! 그리고 숫자들도 또 좀 나왔던 것 같다.

빌리언, 밀리언, 싸우전드, 헌드레드 같은.

이 자본주의 노예들 같으니라고.


‘‘저기 디저트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우연인지, 아니면 오마카세 사장 센스가 엄청 뛰어난 건지 모르겠다.

그가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어 있던 내게 와 말을 걸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디저트 뭐가 좋을까요? 아! 그러지 말고 여기 메뉴판에 적혀 있는 디저트 메뉴들 하나하나 최대한 길게 시간 겐세이 해주시면서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 까요?’’

‘‘예, 물론이죠. 그럼, 첫 번째 이 살구 빙수의 경우 ......’’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오마카세 사장의 디저트 설명을 들었다.

그의 디저트 설명도 영어처럼 힘겹게 들려와 고통스러웠지만.


‘‘헤이, 미스터 강.’’


오마카세 사장의 디저트 설명이 아직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존슨 새끼가 다시 또 나를 불렀다.

그리고 또 뭔가 한참 주절주절댔다.


마지막 문장이 의문문인 것으로 보아 역시나 이번에도 내게 또 무슨 시사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 같은데.

이 새끼 보자보자하니까 지가 무슨 시사프로 사회자라도 되는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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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1 24.06.21 212 5 12쪽
45 44화 +1 24.06.20 228 5 12쪽
44 43화 24.06.19 229 4 12쪽
43 42화 24.06.18 238 6 13쪽
42 41화 +2 24.06.17 234 6 13쪽
41 40화 24.06.16 25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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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1 24.06.14 2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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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24.06.12 2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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