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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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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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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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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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2화

DUMMY



‘‘2023년 대한민국 지디피는 1조 1720억 달러 정도고 경제성장률은 1.4프로입니다.’’


이 말은 내가 눈앞에 나타난 프롬프터를 보고 한 말이 아니었다.

아예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신선혜 말고 또 다른 변호사 친구.

방금 전 내가 말했던 통계수치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맞나 안 맞나 확인해 주었던 그녀.

그녀가 회계사 친구가 내게 던진 질문까지도 바로 검색해 나 대신 대답해 준 것이었다.


이유가 뭘까?

혹시나 여고 시절부터 회계사 친구에게 어떤 질투심을 느껴온 건 아닐까?


직업은 변호사 회계사 둘 다 전문직이니 논외로 치고

외모에서도 둘 다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성형을 많이 한 얼굴이라 원본 우열을 가늠할 길이 없다.


두 사람의 가정환경은 더더욱 알 길이 없고

그럼 혹시 이전에 저 변호사 친구가 회계사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빼앗긴 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변호사 친구가 회계사 친구의 애인인 존슨에게 마음이 있어 지금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 역시 아니라면,

그렇다면,

혹시나,

아니 역시나,


변호사 친구가

나에게 첫 눈에 반한 걸까?

나, 여자 변호사들에게 특히나 잘 먹히는 스타일인가?

푸하하하하.


음, 어쨌든 이쯤에서 그만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이제 이 이야기 그만 하고 얼른 디저트나 고르죠. 이런 주제 이야기는 다음에 포장마차 같은 데서 하도록 하고요. 참! 존슨한테는 당신 다니는 넷플러스에서 조만간 괜찮은 시사 토론 프로그램 런칭하고 나를 사회자 써주면 그때 가서 본격적으로 토론해 보자고 통역 좀 해주실래요?’’


아까부터 계속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마침내 해냈다.

회계사가 그리 내키지 않은 기색으로 존슨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나름 서양식 위트라고 생각했지만, 존슨은 나의 넷플러스 사회자 섭외 유머에 생각만큼 빵 터지는 기색은 아니었다.

아까 전 나의 저격에 여전히 기분이 상해있는 걸까?


‘‘치어스, 치어스!’’


내가 존슨에게 건배까지 청했다.

그만 마음 풀라는 듯.

존슨도 따라서 잔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나만큼 활짝 웃지는 않았다.


아이, 짜식, 덩치 값 좀 하지.

뭐 이런 걸로 그렇게 꿍, 하고 있어.

얀마, 형은 지금까지 이렇게 망신당하는 걸 아예 캐릭터 삼으며 인터넷 바닥에서 굴러다녔는데,

사석에서 잠깐 당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꿍, 하고 있어.


‘‘치어리더스! 치어리더스!’’


내가 좌중의 여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존슨이 빵, 터지며 자지러지듯이 웃어댔다.

하마터면 앉아 있던 의자와 함께 쓰러질 뻔하기까지 했다.


그냥 무심코 내뱉은 애드립이었다

치어스라며 건배를 청했던 내 말에 생각만큼 존슨이 동하지 않는 기색이자

그냥 제 딴에는 영어로 아재 개그 한 번 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반응이 좋다니.

한국 식 아재개그가 케이팝 만큼 글로벌화 될 수 있다는 생각지도 않은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자! 이 수제 맥주는 서비스입니다. 한 번 맛보세요.’’


오마카세 사장님은 분명 센스가 있었다.

때 맞춰 디저트를 가져다주면서 수제 맥주를 서비스로 내주었다.


나는 다시 연신 존슨과 치어스 대신 치어리더스를 건배사로 외치며 낄낄댔다.

술 몇 잔이 연속으로 들어가자 그와 나는 어느새 한국말로 형, 동생 부르며 가끔 만나 서로 영어 한국어 개인 과외 약속까지 했다.


존슨의 마음이 풀리자 애인인 회계사 친구도 덩달아 마음이 풀렸다.

우리 일행은 더 할 나위 없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오마카세 식당 문 닫을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참! 오빠! 내일 저품격 토크쇼 나오실 거죠?’’


옷가지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신선혜가 나에게 물었다.


‘‘응? 아참! 내일 저품격 토크쇼 방송 있는 날이지?’’


토요일.

나와 신선혜를 처음 만나게 해 준 저품격 토크쇼 방송하는 날.


‘‘음, 근데 난 내일 쉬련다.’’

‘‘어머! 왜요?’’


애초 프로그램 컨셉 자체가 주로 B급, 아니 B급을 넘어 C급 감성으로 연예계 스포츠계를 다루는 인터넷 방송 저품격 토크쇼.

얼마 전 나는 중구난방이나 송주나의 시사 라디오 프로 등 공중파 프로를 하면서 쌓일 스트레스들은 주말 저품격 토크쇼에서 배설하겠다고 계획한 바 있었다.

애초 컨셉 자체가 대놓고 싸구려 프로라서 막말이나 쌍욕, 심지어 패드립까지 해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 주는 프로니까.


그래서 만약 오늘 이 술자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일 분명 참여했을 것이다.

중구난방에서 정원택, 김여준 사이와 잠시 긴장관계에 빠졌던 터라 그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전문직 치어리더들과 아메리카 동생 놈 덕에 웬만한 건 다 풀어진 거 같다.

마지막 남은 찌꺼기 먼지들도 다 제거하기 위해


‘‘존슨! 존슨! 렛츠 고우 투 이태원 클럽! 데어 이즈 메니메니 모어모어 치어리더스!’’

‘‘오케이! 치어리더스! 치어리더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하던 여자들도 결국 우리의 강권을 이겨내지 못했다.

내일 저품격 토크쇼에 나간다는 신선혜까지도.



+++



‘‘선배님! 선배님!’’

‘‘아이, 썅.’’

‘‘아이, 진짜 강소장니임!’’

‘‘짜식, 아침부터 대체 몇 통째 거는 거야?’’

‘‘아이고, 그만 좀 일어나 보세요. 아침은 무슨.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안 돼. 나 어제 새벽까지 술 마셨단 말이야.’’

‘‘같이 새벽까지 술 마셨어도 신변호사님은 쌩쌩하게 바로 전화 받았다고 하던데. 울 막내 작가 말로는.’’

‘‘야! 그 나이 때는 나도 그랬어. 근데 참! 뭐라고? 신변 걔는 뭔 변호사가 보안의식이 그렇게 없냐. 나와의 밀회를 벌써부터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고.’’

‘‘에이, 둘이 사귀는 사이 절대 아닌 거 우리 다 알아요.’’

‘‘야! 니들이 어떻게 알아?’’

‘‘에이, 애초 밑그림도 안 나오는 조합인데, 미쳤다고 ......’’

‘‘야! 너 우리 둘 중 누가 미쳤다는 거야?’’

‘‘예? 아이, 아, 그, 그야 당연히 선배님이죠. 요즘 완전 대세신데 어떻게 신변처럼 애송이 변호사를.’’

‘‘와! 장 피디, 너 요즘 대화를 좀 소홀히 했더니 진짜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출연시키려고 아침부터 마음에도 없는 알랑방귀나 뀌고 있고 .....’’

‘‘선배님! 진짜 꼭 좀 나와 주세요. 꼭 나와 주셔야 돼요. 안 그러면 오늘 저희 방송 완전 쫑나요.’’

‘‘장피디야! 우리 안 지 벌써 10년 다 되어 가지?’’

‘’예. 얼추 그렇죠.’’

‘‘그럼, 너도 대충 내 스타일 알 만큼 알잖아. 나 언제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스타일인 거. 솔직히, 요즘 너희 저품격 토크쇼 너무 써. 웅이 형님 시사팩폭쇼만 해도 출연료를 몇 배를 올려줬는데. 니들은 그 어떠한 노력의 기미도 안 보이고 ......’’

‘‘오늘 저희가 그래서 정말 단 거 준비했어요. 출연료는 아니지만.’’

‘‘응. 아니야. 나 잘래. 출연료 외에 내 인생에 단 거는 지금 단잠 밖에 없음. 끊는다.’’

‘‘서, 선배님. 그룹 핑크걸스 .....’’


막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저품격 토크쇼 장피디의 다급한 목소리가 막 페이드 아웃되려 했다.


‘‘으, 응? 핑크걸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핑크걸스? 핑크걸스가 뭐?’’

‘‘오늘 출연진에 핑크걸스 제인 누님 나오시기로 했거든요.’’

‘‘뭐, 뭐, 핑, 핑크걸스 제인?’’

‘‘예, 얼마 전에 가수협회 회장 되셨잖아요. 그동안은 대게 60대 남자 분이 하는 거, 처음으로 40대 여자 분이 되셨잖아요. 케이팝 글로벌 인기에 발맞춰 아이돌 1세대 걸그룹 멤버. 오늘 케이팝의 미래와 방향 설정 뭐 이런 심각한 주제로 다 같이 썰 좀 풀어보려고 자리 마련했지 말입니다.’’

‘‘야, 너희 프로가 무슨 그런 주제를 다뤄? 연예인 사생활 뒷조사나 캐는 파파라치 프로가.’’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마 제인 누님 작년 이혼 건에 대해서 최초로 입을 여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도 싶은데. 어떻게 형님, 안 땡기세요?’’

‘‘......’’

‘‘반면 제인 누님께서는 엄청 형님 땡기신 다는데.’’

‘‘나, 나를?’’

‘‘예. 패널들 중에서 형님을 콕 찝으시더라고요. 안 나오면 자기도 출연 안 한다고.’’

‘‘왜, 왜?’’

‘‘요즘 중구난방 너무나 잘 보고 있다고. 그 전에 저희 프로 애청자였는데 매번 선배님 입담 너무 재미있었다고. 예전부터 꼭 같이 자리하고 싶다고 그러시네요.’’

‘‘......’’

‘‘선배님! 강소장님! 선배님도 핑크걸스 팬 아니셨어요?’’

‘‘......’’

‘‘형님 세대 중에 핑크걸스 팬 아닌 분도 있으신가요?’’

‘‘음 ...... 난 아니야.’’

‘‘아! 그러세요? 그럼, 뭐, 소머즈 팬이셨나요? 아니면 베이비 폭스? 에이, 아무리 그래도 1세대 걸 그룹은 핑크걸스죠?’’

‘‘아니, 내 말은 ......’’

‘‘예.’’

‘‘핑크걸스 팬은 맞았는데 제인보다는 오로라 팬이었다고.’’

‘‘아하! 그것도 맞죠. 핑크걸스 중에서도 오로라 누님 인기가 최강이었죠, 하하하.’’

‘‘그래서 그러는데, 오로라님은 섭외 안 돼?’’

‘‘하하하. 오늘 저랑 같이 제인 누님 잘 구워 삶아보죠. 그러면 오로라 누님도 조만간 나오시지 않겠어요? 요즘 드라마 끝나고 좀 쉬는 타이밍 같은데. 어떠세요. 형님? 출격 콜?’’

‘‘당연 콜이지. 이미 일어나서 몸 풀고 있는 중이야, 짜샤.’’



+++



핑크걸스.

1세대 걸 그룹 최강자.

걸크러쉬 메인 보컬 제인, 인형 같은 비쥬얼 오로라, 아크로바틱 댄스 머신 새벽.


우리 세대 남자들이라면 정말 그녀들 노래에 환호성을 안 지르기 힘들었다.

제인의 디바급 보컬 능력과 새벽의 신기에 가까운 춤 실력도 인기 요인이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오로라의 충격적인 비쥬얼에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마치 만화 영화에서나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


아이엠에프 시절 국민들이 절망할 때 그 시름을 걷어주다가

2002 월드컵 때 국민들이 환호할 때 돌연 해체 선언을 한 전설의 걸그룹.


이후 제인은 솔로 가수로 성공을 이어갔고,

오로라는 비쥬얼을 앞 세워 배우로 전향, 가수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주연급 역할을 하고 있고,

음반 프로듀서와 기획사를 운영하던 새벽만은 생각만큼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팬 취향이 그러했다.

오로라가 압도적인 멤버 개인 인기 1위, 2위는 제인, 3위는 새벽.

비록 오로라를 영접하는 건 아니지만 2위인 제인만 해도 어디인가.

장피디 말대로 오늘 잘 구워삶으면 다음에 오로라도 직접 실물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는가.


참! 그런데 내가 그랬던가.

저품격 토크쇼는 중구난방이나 송주나 시사 라디오를 하다가 쌓인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장이라고.

다른 회차는 몰라도 오늘만큼은 아니다.

오늘은 배설하는 장이 아니라 거꾸로 섭취하는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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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24.06.19 228 4 12쪽
43 42화 24.06.18 237 6 13쪽
42 41화 +2 24.06.17 233 6 13쪽
41 40화 24.06.16 25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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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1 24.06.14 252 5 13쪽
38 37화 +1 24.06.13 248 7 12쪽
37 36화 24.06.12 23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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