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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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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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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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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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1화

DUMMY

울컥.

이번에는 의성어가 아니라 의태어 울컥이었다.


프로파일러 박미나가 울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그녀가 울컥했다.


‘‘왜 그러세요, 미나씨?’’


한소라가 당황한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


‘‘죄, 죄송해요.’’


박미나가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당황스러운 건 한소라뿐 만이 아니었다.

최웅도 그랬고 이현호도 그랬고 나 역시 그러했다.


‘‘제가 방송사고 낸 건가요?’’


박미나가 눈물을 훔치더니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이제까지 오로지 단 한 가지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다들 계속 당황해 했다.


‘‘혹시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내 말을 듣다가 갑자기 이렇게 울컥하는 반응을 보인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 아니에요. 강소장님!’’

‘‘저 때문이 아니에요?.’’

‘‘예. 오히려 강소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예? 제가요? 제가 왜요?’’


박미나가 엄지 척까지 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방금 강소장님 말씀하신 어머니와의 일화요. 그게 너무 감동적이어서요.’’

‘‘예에?’’

‘‘사실 저도 어린 시절에 비슷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사실 누구나 어렸을 때 그런 비슷한 경험들 다 있잖아요. 세상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시니까요.’’

‘‘예. 그렇죠. 세상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시죠.’’

‘‘사실 아까 강소장님이 이상병 어머니 가지고 이야기하셨을 때도, 솔직히 저 마음속으로는 계속 고개 끄덕끄덕거렸거든요. 만약 강소장님 말대로 이상병 어머니가 아들을 자수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런 감성 인터뷰를 일부러 하셨던 거라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 거죠. 프로파일러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효과 있는 방법이었구요.’’

‘‘아! 예.’’

‘‘비록 살인자 아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으로부터 지금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고 계시겠지만, 또 아들을 자수시키기 위해 지금 그렇게 힘든 가짜 인터뷰를 자처하고 나서다니, 그 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에 울컥하게 되네요.’’


그녀가 애써 또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많이 힘겨워 보였다.


+++



방송이 끝나고 몇몇 이들과 간단하게 차 한 잔을 했다.

그 사이 언론에서는 이상병에 관한 속보가 계속 떴다.


하지만 이상병 어머니 인터뷰가 체포에 대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은 아직 없었다.

아니, 아마 그 내용은 영원히 기사화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버리는 무궁무진한 팩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차를 마시고 다음 일정을 위해 스튜디오를 나섰다.

건물 밖까지 나왔다가 뒤늦게 핸드폰을 놓고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건물로 돌아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스튜디오 대기실에 들어가는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남아 있는 인물은 이현호와 한소라.

한소라가 바닥에 깨져 있는 컵을 담고 있었고, 그 옆에 이현호가 벌건 얼굴로 서 있었다.

나를 보자 두 사람은 당황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프로파일러랑 함께 방송을 하고 난 탓일까?

갑자기 나는 두 사람이 지금 이 낯 선 상황에 이르기까지에 대해 분석을 하고 예측을 하고 싶어졌다.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우리들 몰래 섹스 파트너였다.

둘 다 리버럴한 성격에 서로의 진심에 대해 확신을 하는 사이까지는 아니다 보니, 현재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러던 중 최근 싸움이 일어났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은근히 찌질한 이현호가 왜 매번 모텔 대실료를 내가 내야하냐 짜증을 부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제 밤 전화 통화에서 급 화해를 하게 되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 내가 스튜디오에 막 도착했을 때 둘은 비 온 뒤 땅이 굳듯 새삼 꽁냥꽁냥한 모습을 보였던 거고.


하지만 오늘 방송 중 남녀 데이트 폭력 문제에서 이현호가 남자 쪽 입장을 대변한 것에 다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한소라가 방송 중 이현호의 몇몇 마초적 표현을 문제 삼자, 이현호가 너 이 년 진짜 폭력이 뭔지 보여줘, 뭐 이러면서 컵을 던진 것이 깨진 것일 수도 있다.


‘‘두 분이서 사랑싸움을 하셨나 왜 그렇게 생긴 컵을 깨고 그러셨어요, 하하하.’’


마침 깨진 컵의 문양이 하트 모양인지라 내 농담은 그리 엉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두 사람은 과민하게 뜨끔해 하는 반응이었다.

이거, 정말 수상해 보인다.


핸드폰을 찾아 들고 다시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러면서 나는 계속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프로파일링 해 본다.

두 사람의 지금까지 관계 분석은 끝이 났고, 이제 이후의 일들을 예견해 본다.


내가 사라지자 다시 대기실에 단 둘이 남게 된 두 사람.

다시 또 말싸움이 시작된다.


결국 싸가지 없는 이현호가 나는 감히 여자들 앞에 입에 올린 적 없는, 솔직히 여동생 주화년한테는 어렸을 때 몇 번 시전했었던, 개쌍X이라는 험악한 욕설을 내뱉더니 문을 박차고 나선다.

홀로 남게 된 한소라는 주저앉아 오열한다.


그날 저녁, 한소라는 누구한테든 위안을 받고 싶어진다.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 같이 술 한 잔을 하게 된다.

애써 밝은 척 이야기를 하지만 그러다 문득 마가 뜨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게 된다.


점점 술에 취해 간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오늘 낮에 보았던 한소라 방송 이야기를 꺼내든다.


‘‘얘! 소라야!’’

‘‘으응?’’

‘‘오늘도 니네 방송 너무 재미있더라.’’

‘‘그랬어?’’

‘‘응. 특히 그 분 있잖아.’’


한소라는 이현호 이야기인 줄 알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이현호가 아니라 바로 나, 강대구인지라


‘‘그 시사평론가 있잖아. 요즘 엄청 잘 나가시는 분.’’

‘‘아아! 난 또 누구라고? 강소장?’’

‘‘응. 중구난방에도 나오고 있고.’’

‘‘근데 강소장님 뭐?’’

‘‘말을 너무 감칠나게 잘 하더라고. 뭐랄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오늘 특별 게스트로 나온 그 프로파일러 여자도 방송 내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굴더니 결국 마지막에 감정 복받쳐서 성냥탑처럼 무너져 버렸잖아.’’

‘‘어? 어! 마, 맞아, 그랬었지.’’

‘‘언제 한 번 기회 닿으면 불러 봐. 직접 실물 영접하고 싶다, 얘!’’

‘‘그, 그래. 뭐 그 양반 뭐 내가 부르면 언제나 콜이지.’’

‘‘그래? 예전에는 방송 중에 소라 너한테 좀 질척대고 그러더만 요즘에는 별로 안 하더라. 그거 그냥 컨셉이었던 거야?’’

‘‘어, 어? 아! 그거.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요즘 좀 조용하시네.’’


친구가 무심코 한 말에 한소라는 동기부여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자리를 파하고 집에 돌아와서 불현듯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어! 여, 여보세요?’’

‘‘어머! 왜 이렇게 놀라세요?’’

‘‘저, 정말, 소라씨야?’’

‘‘예, 왜 이렇게 놀라세요? 혹시 ......’’

‘‘아, 아니야. 나 뭐 이상한 거 보고 있지 않았어.’’

‘‘예? 그게 무슨 ......’’

‘‘아,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아니 소라씨. 무슨 일이야? 이 야심한 시각에.’’

‘‘강소장님! 주무시고 계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이번 주 중구난방 주제들이 정해졌다고 좀 전에 막 메시지가 와서 자료 조사하다가 ......’’

‘‘아! 그럼, 바쁘신가 보네요. 그럼, 내일 다시 걸까요?’’

‘‘아, 아니야. 괘, 괜찮아.’’

‘‘되게 목소리가 당황하시는 것 같아서요.’’

‘‘당황한다기 보다 깜짝 놀라서. 너무 깜짝 놀라서.’’

‘‘예? 왜요?’’

‘‘아, 그, 그게. 뭐랄까 좀 초현실적인 일 같아서.’’

‘‘뭐가요?’’

‘‘우리, 지금 사적으로 전화 통화하는 게.’’

‘‘예? 우리가 사적으로 전화통화하는 게 무슨 초현실적인 일이에요? 처음 전화 통화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근데 이 시각에 전화 한 적은 없잖아.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

‘‘음, 하긴 그건 그렇죠. 아! 사실은, 오늘 저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왔거든요.’’

‘‘저, 정말이야?’’

‘‘아니. 왜 이렇게 놀라세요? 제가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왔다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아, 아니야. 계, 계속 해 봐요, 소라씨.’’

‘‘ 술 한 잔 하고 오는 길에, 낮에 강소장님이랑 같이 방송 했던 게 생각나서요. 그 이상병 엄마 인터뷰 이야기 있잖아요.’’

‘‘응, 그, 그래.’’

‘‘그거 정말 강소장님이 오늘 방송에서 예측한 대로 이상병 마음을 동하게 하기 위해서 이상병 엄마가 일부러 인터뷰를 자청한 걸까요?’’

‘‘그, 그건 지금 당장은 팩트 여부 밝힐 수 없겠지.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지금 수사진이나 인터뷰 땄던 기자가 후일담으로 책 같은 데 써서 밝히든가 하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원래 세상사라는 게 그렇잖아.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건 빙산의 일각이지. 대부분의 팩트들은 빙산 아래 물속에 감춰져 있는 법이지. 그런 게 다 물 위에 올라와서 보이게 되면 오히려 세상이 재미없어지지. 그렇지 않겠어?’’

‘‘소장님 말 맞는 것 같아요. 요즘 소장님 말 대부분이 다 맞는 말 같아요, 호호호.’’

‘‘하하하.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내가 요즘 좀 치지. 타율이 거의 뭐 7,8할 대 가깝지 않나, 하하하.’’

‘‘......’’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듣고 있어, 한소라씨?’’

‘‘아! 예. 죄송해요. 잠깐 메시지 온 게 있어서요. 확인하느라고.’’

‘‘괜찮아. 우리 사이에 뭐 그런 일 가지고, 하하하.’’

‘‘저기 소장님!’’

‘‘응.’’

‘‘요즘 좀 치시니까요 .....’’

‘‘응. 내가 요즘 치니까, 뭐?’’

‘‘혹시 제가 지금 소장님한테 전화한 이유도 한 번 알아맞혀 보실래요?’’

‘‘으응?’’

‘‘그러니까 제가 이 야심한 시각에 나한테 전화한 이유, 이 안 하던 짓을 한 이유에 대해 한 번 맞혀 보시라고요.’’

‘‘......’’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소장님도 어디서 메시지 온 거예요?’‘’

‘‘아, 아니야. 난.’’

‘‘그럼, 방금 전 제 말 들으셨어요? 제가 지금 소장님한테 전화한 이유 맞혀보라는 말?’’

‘‘음 ...... 소라씨?’’

‘‘예.’’

‘‘사실 좀 전에 소라씨가 왜 이렇게 깜짝 놀라서 전화 받냐고 물어서 내가 그랬잖아. 너무 초현실적인 일이라 깜짝 놀라는 거라고.’’

‘‘예. 그랬었죠. 근데요?’’

‘‘그게 무슨 의미인 지 알아?’’

‘‘예? 그게 무슨 의미라니요?’’

‘‘사실 아까 낮에 소라씨와 그 누구냐, 이현호, 이기자, 두 사람 관계 가지고 잠시 프로파일링을 했거든.’’

‘‘예? 그게 무슨 말?’’

‘‘그러니까 오늘 스튜디오 도착했을 때 대기실에서 소라씨랑 이기자 두 사람이 오늘따라 좀 너무 친한 척 하고 있기에 이상하게 생각했거든. 그리고 나서 방송 끝나고 나서 또 대기실에서 소라씨랑 이기자 단 둘이 있을 때도 좀 이상했거든. 내가 핸폰 다시 찾으러 돌아갔는데 컵 깨져가지고 그거 쓸어담고 있었잖아.’’

‘‘......’’

‘‘그래서 그 두 가지 장면 가지고 오늘 프로파일러 분도 봤겠다 저 두 남녀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거지, 하면서 프로파일링을 해 본 거지. 그런데 그 끝에 소라씨가 나한테 전화하는 것까지 한 번 상상해 봤는데, 근데 실지로 지금 막 이렇게 전화가 온 거야. 그러니 내가 깜짝 안 놀랄 수 있겠어?’’


방금 한소라에게 설명한 그대로다.

한소라와 이현호 사이 관계를 프로파일링 한 번 한답시고 하면서

섹스 파트너 관계인 두 남녀가 아까 대판 크게 싸운 것부터 해서 술 취한 한소라가 밤늦은 시각에 내게 전화를 해 오는 것까지 상상을 했었는데,


놀랍게도 지금 그녀 전화가 진짜로 와 버린 것이다.

마치 무슨 영화 제목인양

나, 강대구의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번에는 프롬프터 도움이 일절 없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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