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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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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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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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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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DUMMY

대기실에 좀 늦게 도착했다.

최웅은 안 보이고 피디, 한소라, 고연아 등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소라와 바로 눈이 마주쳤다.

지난번 밤늦은 전화 통화 후 첫 대면이었다.

당연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한소라 역시 그러해 보였다.


프롬프터에 따르면,

요즘 나한테 되게 쏠려 있다는 건데.

눈치 빠른 이현호가 그걸 캐치해 낸 후 조바심에 들이대었다가 지난번 대기실에서 그 사단이 났던 거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녀에게 대시할 생각은 없다.

신선혜 등 다른 후보가 버젓이 살아있고

송주나와도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아직은 풍요 속의 빈곤을 택하련다.


‘‘어머나! 강대구 소장님! 저희 구면이죠?’‘’


한소라와 눈인사를 막 나누고 난 후였다.

갑자기 누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해왔다.


고연아였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친했던가.

아마 한소라로부터 오늘 내가 주도적으로 코너를 이끌 거라는 사전 귀뜸이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저, 기억하시죠? 기억 못하세요?’’


기억을 왜 못하겠냐.

그때 나한테 튀겼던 니 침방울도 역력히 기억날 정도인데.


‘‘아! 간만입니다. 그때 토론장에서 만난 후 처음이죠?’’

‘‘그러게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중구난방에도 나오시고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님 SNS랑 개인방송 게시판에 안부 인사도 남겼었는데. 근데 답글 거의 안 다시는 것 같아서요.’’

‘‘예, 요즘 들여다 볼 시간이 통 없네요.’’


실지로 시간이 없긴 하다.

하지만 땡기는 사람에게는 다이렉트 메시지나 전화 문자라도 꼭 답장을 해 준다.

너 같이 인상 안 좋았던 애는 당연히 답장 안 해주지.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이어서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이 도착했다.

양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서는.


‘‘저희 아는 지인이 한과 제조를 하세요. 오늘 들릴 일이 있다가 몇 박스 사가지고 왔어요. 스태프 분들 고생 많이 하시는데 같이들 드시라고요.’’


역시나 사소한 것만 봐도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은 다르긴 다르다.


‘‘오늘 사회를 맡은 강대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나와 배은정은 사전에 짠 대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초면인 척 했다.

나와 배은정 관계를 알고 있는 최웅은 한소라를 비롯 다른 제작진에게 일언반구 언급 안 한 모양이다.

아무튼 이런 류 보안의식은 업계 최고다.


배은정이 건넨 한과를 하나 받아먹으며 고연아의 빈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인생이 공수래공수거라고 하거늘

그래도 이런 데 오면 울 후배처럼 손에 주전부리 좀 들고 오는 게 예의 아닌가.


그래, 좋아!

빈손으로 왔으니 오늘 내 제대로 당신 빈손으로 가게 해 주지.



+++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최웅과 한소라가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오늘의 특별 게스트 배은정과 고연아를 차례로 소개해주었다.


‘‘자! 이 새 코너 비정치토론에 대해서 우리 강소장이 잠깐 소개 좀 해주겠소?’’

‘‘예, 총선을 앞두고 급조 기획된 저희 코너 비정치토크는요.’’

‘‘비정치토론 아니에요?’’

‘‘비정치토론일 수도 있고 토크일 수도 있고. 뭐 그게 중요한가요? 메치나 엎어 치나.’’

‘‘야! 진짜 말 그대로 급조한 코너답네요’’

‘‘예, 우리도 총선팔이 좀 해야하니까요.’’

‘‘아무튼 그래서요?’’

‘‘예, 그래서 저희 코너는 정치인들에게 정치 외적인 주제들만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인데요. 절대로 정치에 관계된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하게 될 경우 바로 레드카드 꺼내 퇴장 조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총선 앞두고 정치인보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니. 이거 일종의 고문 아닌가요, 강소장님? 한참 자기 피알하기 바쁜 시기인데.’’

‘‘아닙니다, 엠씨 소라님. 한국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정치인들이 맨날 정치 이야기만 해서입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죠?’’


최웅이 눈빛은 잔뜩 기대한 눈치면서 입으로는 언발란스하게 막말을 했다.


‘‘엠씨님들, 그 동안 울 나라 정치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이런 저런 토론을 하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한 것 중에 엄청 설득력 있고 신박하다고 느끼신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으신가요?’‘


최웅과 한소라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이 방송 보고 계신 네티즌 니네들도 다들 그러하실 겁니다. 벌써 채팅창에 없어가 난무하네요. 그 이유가 뭘까요? 다름 아니라 정치인들이 정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영혼이 없기 때문이죠. 정치에 대해서, 정책에 대해서 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개인 역사, 가정환경, 철학, 사생활, 인간관계 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야 그들이 말하는 정치와 정책이 보다 설득력 있게 평가되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거죠. 보통 이런 걸 예술 비평에 있어서는 작가주의 비평이라고 하고요. 그러니까 단지 그 작품 자체의 호불호뿐 아니라 창작자가 그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 철학, 사상, 인성 가정환경 이런 것들을 종합해 가치 판단하는 거죠.’’

‘‘아이, 초장부터 뭔 소리야?’’


최웅이 애써 딴지를 걸지만 저 새끼 오늘도 제법이네 하는 듯한 표정은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채팅 창 반응도 과히 나쁘지 않았고.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코너 첫 번째 게스트로 섭외된 두 분 고연아, 배은정에 대해서 정치 외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는데요. 우선 대학교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우!’’


내가 앞에 놓인 종이를 보면서 과장된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러세요?’’


한소라가 물었다.


‘‘우리 고연아씨 학력이 후덜덜하네요.’’


고연아가 머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와우! 울 나라 사립 명문대 졸업에 미국에서도 스탠포드 대학. 여기 정말 들어가기 힘든 곳이잖아요. 야! 고등학교 다닐 때 전교 회장 출신?’’

‘‘아니에요. 그런 건 안 해 봤어요.’’

‘‘그렇군요. 원래 진짜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또 그런 감투는 안 쓰더군요. 사회 나가서 찐 감투를 쓰지. 자! 다음으로 ......’’


종이에 다시 시선을 던지자마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려보였다.

이어서 그 표정 그대로 배은정에게 시선을 보냈다.


‘‘배은정씨는 ...... 상대적으로 ......’’

‘‘아! 예. 저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에요.’’

‘‘예. 그래도 나쁜 학교는 아니죠. 저도 이 학교 출신인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소장님이랑 같은 동문이신 거.

‘‘그렇군요. 우리 학교가 나쁜 학교는 아닌데 그렇다고 또 고등학교 때 날고 기는 애들이 들어오는 그런 학교는 아니죠. 명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잡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근데 냉정히 지잡에 더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건 그렇고 배은정씨 고등학교 때 내신 등급은? 3등급? 4등급?’’

‘‘예에?’’


난 데 없는 내신 등급 질문에 배은정이 조금 당황해 했다.


‘‘야, 인마! 귀한 게스트 불러놓고 뭐 그딴 걸 물어 봐. 예의 없게 시리.’’


배은정 대신 최웅이 대신 나서 주었다.


‘‘아니, 내가 방금 말했잖아. 이런 걸 좀 밝혀야 저 분이 내는 정책 같은 게 어떤 성질의 것인지 좀 더 심도 깊은 평가 가능하다고. 명문대 출신이 아닌 데서 오는 어떤 상대적 열등감 같은 게 법안 발의 같은 데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 지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아이! 정말 너무하시네요, 강소장님.’’


이번에는 한소라가 내게 한 소리를 했다.

그 사이 나는 슬쩍 실시간 채팅창을 살폈다.


그곳에서도 항의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강대구 저 새끼 원래 매너 없는 새끼인 줄은 알았지만 오늘은 특히나 넘 하네,

지 후배라고 사람 만만히 보네,

강약약강의 전형을 보여주네, 등등.


이어서 나는 배은정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녀는 평소대로 만면에 미소를 견지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니, 뭐 괜찮아요. 선배님 논리 은근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데요.’’


내 의도를 아는 지 아니면 원체 성격이 온화해서 그런지

어쨌든 기특한 후배다.

자! 다시 기수를 돌려


‘‘고연아씨는 당연히 학교 다니셨을 때 1등급이셨겠죠?’’

‘‘예? 아! 예.’’

‘‘그럼, 혹시 1등급 하는 비결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인강만 좀 들었어요. 뭐 이런 이야기 말고 좀 구체적이고 특별한 걸로.’’

‘‘예? 아, 근데, 저 정말 별 비법 없었어요. 정말 교과서랑 인강 외에 딱히 ......’’

‘‘와! 그럼 애초 머리가 좋은 거네요.’’

‘‘아니에요. 머리는 그냥 중상 정도고요. 대신 노력을 좀 많이 했죠. 예를 들어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아무래도 현지인에 비해 언어가 딸리니까, 진짜 그때는 화장실에서도 핸드폰은 절대 안 들고 들어가고 책만 가지고 들어갔던 것 같애요.’’

‘‘와우! 그렇죠? 머리만 믿는 건 역시 한계가 있죠? 역시나 노력을 해야 되겠죠? 운동선수들도 아무리 재능충이었던 애들도 훈련 게을리 하고 향락 즐기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더군요. 야! 진짜 요즘에 화장실에 핸드폰 대신 책 들고 들어가는 거, 그거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진짜 대단하셨네. 와우! 역시 아무나 스탠포드에서 학위 따는 게 아니구나!’’


고연아를 향해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나는 슬쩍 최웅과 한소라 표정을 살폈다.

한소라는 대체 저 인간 뭐 하자는 플레이인가 하는 표정인 데 반해

최웅은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기색이었다.

이미 그는 지금 내 전략을 눈치 채고 있었다.


바야흐로 과거 정치는 ‘바람의 시대’였다.

바람을 잘 일으키는 정치인이 성공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정보화가 이루어지게 된 후 이제 ‘바람의 시대’는 저물고 ‘역풍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람보다 역풍을 더 잘 활용하고 조심해야 하는 시대란 이야기다.

한 편에서 바람을 일으키려고 하면, 그에 맞서 반대 세력이 급속도로 결집하며 역풍으로 맞서게 되고,

그 역풍 때문에 바람의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 전략도 바로 그것이었다.

대놓고 강약약강을 시전하면서

배은정과 고연아를 편파적으로 대접하면서

그에 따른 역풍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전략이다.



- 배은정 저 여자 넘 불쌍하다

- 아무리 강소장 저 새끼 요즘 좀 뜬다 그래도 그렇지 지 대학 후배를 저 따위로 다루냐.

- 심리학 적으로 보면 일종의 졸부 심리라고 할 수 있죠. 갑자기 운 좋게 뜨고 나서 못 살던 자기 시절 부정하는 거요.

- 아! 졸부 심리, 그거 일리 있네요.

- 괜히 강대구 저 새끼가 싸돌고 도는 고연아 저 여자까지 재수 없어 보이는데.

- 고연아 몰라? 저 년 원래 재수 없는 년임.

- 맞아. 지 칭찬 하는데 저 고개 뻣뻣하게 잘난 척 하는 거 보소.

- 다른 프로에서 봤는데 매사 존나 당당한 척 하더라.



그리고 내 전략은 예상대로 더 할 나위 없게 들어맞고 있었다.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에게는 동정과 연민의 댓글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반면 재수 없는 악연 고연아에게는 실지로 재수 없다는 댓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신나게 또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나? 흐흐흐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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