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멘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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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ch4808
작품등록일 :
2024.05.12 20:25
최근연재일 :
2024.09.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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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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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DUMMY

껌껌한 방에 울려 퍼지는 노크 소리.



똑똑똑...



침대에 누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문고리를 살짝 만져보지만,


여전히 굳게 잠겨 있는 문.



“아스테르... 어디 아픈 거야? 며칠 째 밥도 안 먹고...”


“...”


“걱정되잖아... 대답이라도 해줘...”


“...”


“...”



결국 에델은 오늘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스테르는 리파와 대화를 나눈 후로 자신의 마음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운동을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목욕을 할 때에도,


딱히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먹구름이 껴 있는 것처럼 편치 않았다.


머릿속에서 리파와 나눴던 대화가 계속 맴돌았고,


그럴 때마다 몸과 정신은 하던 일에 관계없이 멈춰버리곤 했다.


자신의 몸과 정신이 뚝뚝 끊길 때마다 얼굴엔 근심과 우울함이 내려앉았고,


결국 아스테르는 방에 틀어박혔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웃어넘길 수 있었던 그였지만,


이번엔 도저히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입꼬리는 자꾸만 내려갔고 마음은 자꾸만 차갑게 식어갔다.


십 년 넘게 꾸준히 하던 운동도 며칠 째 하지 않고 있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가끔 넥토가 무기력하다며 칭얼거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공감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의 아스테르는 무기력함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똑똑똑똑!



“허허허, 딸이니? 들어...”



벌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린 서재의 문.


렉툼은 주눅이 든 얼굴로 서재에 들어오는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빠가 가서 말 좀 해주세요... 제발 밥이라도 먹으라고...”


“아빠가 가서 말한다고 나올 일이었으면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스테르도 성인이 되었단다. 지켜보는 게...”


“3일 째에요! 3일이나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요!”


“그만큼 심란한 일이 있다는 거겠지.”


“심란한 일이요?”


“아스테르도 평범한 소년인데 당연히 이런저런 일이 있지.”


“...”


“조금만 아스테르를 믿고 기다려 보렴.”


“네...”



끼이이익...


쿵.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상황.


에델은 결국 리파를 찾아 나섰다.


아직 아침의 공기가 전부 사라지지 않은 오후 10시.


이 시간에 리파가 빨래를 한다는 걸 알고 있던 에델은 저택의 세탁실로 향했다.



쏴아아아아...


탁! 탁! 탁! 탁!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빨래를 치대는 소리.



끼이이익...



평소라면 노크를 했을 에델이었지만,


그녀는 심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빨래 바구니 위에 올라가 있는 리파.


리파는 뚱한 얼굴로 세탁실의 문을 연 에델을 바라보았다.



“...”


“...”



잠깐의 정적.


여느 대화의 흐름이 그러하듯,


가장 절박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최대한 예의를 의식하며 꺼낸 첫 마디.



“호, 혹시... 아스테르랑 무슨 일...”


“...”



에델은 사실 가슴 속에 화를 품고 있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아스테르가 저렇게 된 원인이 리파라고 단정하고 있었고,


아스테르를 저렇게 만든 리파에게 조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평소 에델의 심성을 생각하면 절대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이었지만,


어째선지 지금의 에델은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정도로 변해 있었다.


열심히 빨래를 짓밟던 리파의 다리는 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시큰둥하게 대꾸하는 리파.



“아무 일도 없었어요.”



해선 안 되는 말.


아무리 마음속에서 들끓는다고 해도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내선 안 되는 말이었다.


너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너를 의심하고 있다고,


너를 미워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았기에.


사랑해 마지않던 소중한 동생.


리파도 마찬가지였었는데...


에델은 내뱉고야 말았다.



“거짓말 하지 마.”



연신 빨래를 짓밟던 다리가 멈췄다.


어두워진 리파의 얼굴.


에델은 스스로 말을 뱉어 놓고도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에델을 살벌한 눈빛으로 째려보는 리파.



“제가 아스테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아가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뭐?”


“제 말이 틀려요?”


“나, 난 그저...”


“누가 보면 아가씨가 아스테르의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누가 봐도 비아냥거리는 말투.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이 새어버렸다.



“무슨 의미야? 비아냥...”


“맞잖아요. 전 솔직히 어이가 없거든요?”


“정말 너...”


“엄한 데에서 뺨을 맞아 놓고, 왜 저한테 화를 푸시냐 이 말이에요!”



날카로워진 목소리에 멈칫하는 에델.


에델은 리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날 저에게 화풀이를 해보세요. 아스테르가 아가씨 게 되나.”


“뭐라고?”


“하! 정말 모르고 계신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


“...”


“아스테르는 이미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요.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 같은 걸 모르는 순수한 꼬마가 아니라고요.”


“지, 직접 들은 거야?”


“하하, 진짜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네, 사실이에요. 직접 들었으니까요.”


“...”


“아쉽게 됐어요.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렸던 남자인데, 코앞에서 뺏겼으니.”


“...”



리파의 비아냥거림은 이제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리파는 이 당시 아스테르에게 거절당한 슬픔으로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기에,


평소보다 더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아마 다른 이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면,


일방적으로 리파의 태도를 지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델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스테르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아플 리가 없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세탁실을 나가는 에델.


리파는 그런 에델의 뒷모습에서 눈을 홱 돌렸다.



“짜증나...”




휘청거리는 발걸음.


에델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복도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토록 가슴이 아플 줄은 몰랐다.


어째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닫지 못했던 걸까.


후회 속에서 허우적대는 마음.


아스테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끔 학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몸에서 풍겨오던 진한 꽃향기,


옷 위에 묻어 있던 붉은색 머리카락,


예전과 달리 점차 줄어든 스킨십까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점점 남자답게 변해가는 아스테르의 모습도 전부 정체 모를 여자의 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무치게 가슴이 아파왔다.



끼이이익...


쿵.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로 뛰어드는 에델.


이불을 꽉 부여잡는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



“어떡해...”



에델도 리파와 마찬가지였다.


아스테르 말고 다른 남자와 함께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왠지 이대로 멀리 아스테르가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스테르가 수련을 떠나 멀어졌을 때와 다른 감각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는 이렇게나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그보다도 더 멀리,


절대 만날 수 없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제발... 가지 말아줘... 아스테르...”



그렇게 저택엔 슬픔이 찾아왔다.





노을이 지는 하늘.


장을 봤는지 과일과 감자로 가득 찬 종이봉투를 들고 외진 길을 걷는 중년 남자.


오늘 하루가 꽤나 피곤했는지,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



“하아~ 오늘 하루도 잘 해냈네...”



고개를 들어 노을을 올려다보니 힘든 삶에도 미소가 찾아온다.



“장관이네~ 장관이야! 으으~ 맥주 땡긴다~ 얼른 감자나 튀겨야지!”



호쾌한 중년 남자의 뒤를 쫓는 검은 그림자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멈칫하는 남자.



“으에? 뭐...”



자신의 등 바로 뒤에 닥친 공포에 질리는 얼굴.



“으아아아아아아악!”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종이봉투.


동그란 감자 하나가 길 위를 데굴데굴 굴러간다.


바닥에 흩뿌려진 감자와 과일들.


길 위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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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 붕괴 NEW 18시간 전 1 0 10쪽
125 124. 편지 24.09.17 2 0 10쪽
124 123. 미사 24.09.16 3 0 13쪽
123 122. 기대와 실망 24.09.15 4 0 10쪽
122 121. 담배 연기 24.09.14 6 0 9쪽
121 120. 거래 24.09.13 6 0 10쪽
120 119. 초읽기 24.09.12 5 0 10쪽
119 118. 성냥을 든 남자 24.09.11 5 0 10쪽
118 117. 보이지 않는 심지 24.09.10 5 0 11쪽
117 116. 드리운 어둠 24.09.09 5 0 9쪽
116 115. 지켜야만 하는 것 24.09.08 5 0 9쪽
115 114. 노파와 사과 24.09.07 6 0 10쪽
114 113. 마치 나른한 오후처럼 24.09.06 6 0 10쪽
113 112. 집단 지성 24.09.05 4 0 11쪽
112 111. 다른 목소리로 불리는 같은 호칭 24.09.04 4 0 10쪽
111 110. 도망 24.09.03 4 0 12쪽
» 10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24.09.02 6 0 8쪽
109 108. 고작 한 명 분의 무게 24.09.01 5 0 12쪽
108 107. 슬픔과 눈물의 역설 24.08.31 6 0 8쪽
107 106. 전부 알고 있다는 착각 24.08.30 7 0 12쪽
106 105. 머리색 24.08.29 5 0 10쪽
105 104. 금발의 여자들 24.08.28 6 0 10쪽
104 103. 모닐레 24.08.27 5 0 10쪽
103 102. 스튜 24.08.26 6 0 10쪽
102 101. 순응과 체념, 그 사이 어딘가 24.08.25 5 0 10쪽
101 100. 끝까지 함께 24.08.24 6 0 11쪽
100 99. 마지막 방문자 24.08.23 5 0 11쪽
99 98. 저녁 만담 24.08.22 4 0 10쪽
98 97. 반면교사 24.08.21 6 0 11쪽
97 96. 소년을 위해 24.08.20 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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