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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ch4808
작품등록일 :
2024.05.12 20:25
최근연재일 :
2024.09.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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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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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붕괴

DUMMY

동굴 안에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



푹!



“끄으으읍! 끄으읍... 끄흑... 흐읍...”


“우리를 아껴주시고...”



푹!



“끄흑! 흐으읍! 흐윽... 흡...”


“또, 돌봐주시고...”



푹!



“흐윽! 흐으읍! 끗...”


“사랑하시는...”



온몸 곳곳에 꽂혀 있는 송곳들.


송곳들은 정말 말 그대로 장기고 뭐고 할 것 없이 온몸 곳곳에 고르게 꽂혀 있었다.



“흐으읍... 흐으읍...”



피로 범벅이 된 재갈 아래로 질질 흐르는 침.



“자... 그럼 다 꽂았으니까...”



마치 자신의 의무를 깔끔하게 마친 사람처럼 개운한 얼굴.


마티아는 소년의 몸에 수많은 송곳들을 박아 넣느라 흘린 땀을 스윽 닦으며 등을 돌렸다.



“이따 봐~”


“흐읍... 흐으읍... 흐읍...”



이틀째 이어진 고문.


남자는 아스테르의 몸을 인간의 것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치러진 잔혹한 고문.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장기가 가득한 배에 꽂힌 단 하나의 꼬챙이로도 목숨을 잃었으리라.


매달린 상태로 경련을 일으키는 아스테르의 몸.


아스테르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뇌가 불타는 기분이었다.


아득해져만 가는 정신을 붙잡을 힘이 없었다.


그것이 목사의 노림수였다.


아무리 불사의 육체를 가졌다고 한들,


고통을 느낀다면 결국 무용지물이라는 걸 목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는 마티아에게 소년을 고문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천지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마음이 무너지면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이니까.



“끄으으...”



점점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아스테르의 몸.



똑... 똑...



십자가의 기둥에 묶여 있는 새빨간 천.


그리고 아래에 꼼꼼하게 놓인 양동이들.


천은 십자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양동이는 공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담아냈다.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생각보다 많아서,


이미 어젯밤에 한 번 천과 양동이들을 새 걸로 교체하기도 했다.


마티아는 그런 신비로운 소년의 몸을 탐구라도 하는 듯,


이것저것 기록하며 그 기원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소년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저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트리코와의 만남 때만,


어떻게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당장 흐르고 있는 피,


한참 전에 굳어버린 피,


굳어버린 피 위에 또 새롭게 적셔지는 피,


아물기 전의 무른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고름까지.


소년의 몸은 추악한 광기에 뒤덮여 갔다.


소년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그저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과 절규만이 그의 머리를 채워갔고,


본디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소중한 것들은 점차 희미해져만 갔다.


육체와 정신 그리고 고통의 경계는 더는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뒤섞였고,


결국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서서히 잊어가는 소년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목사는 정확히 12시간에 한 번 트리코에게 한 잔의 물과 푸석푸석한 빵을 주었고,


트리코가 식사를 마치고 1시간 후에는 아스테르와 만나게 해주었다.


이 규칙은 아스테르와 거래를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다.


덕분에 트리코는 아스테르를 두 번 만나면 하루가 지난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아스테르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축 늘어져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는 목사.


목사는 마티아가 소년의 몸에 남긴 잔혹한 흔적을 보곤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늘 하던 대로 십자가의 앞으로 소녀를 끌고 갔다.


오늘은 꽤나 시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목사였다.


먼저 소년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고,



“...”



소녀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낸다.



“하아... 하...”



드디어 재갈에서 자유로워지자 소녀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


트리코는 항상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오빠밖에 없었기에.


1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오빠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녀의 눈에 씌워져 있는 안대가 스르륵 내려간다.


반가운 마음에 살짝 올라갔던 입꼬리.


그러나 소녀를 기다리고 있던 건 더 짙고 어두운 절망이었다.



“...”


“...”



오빠의 몸에 박혀있는 수십 개의 송곳.


아직 트리코는 아스테르가 어떤 일들을 당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창에 꿰뚫린 것만 봤지,


그가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실제로 고문이 시작된 이후로도 아스테르와 만남을 가졌지만,


그때 당시엔 운이 좋게도 마티아가 몸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마티아는 이제 소년의 몸에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이 꼬챙이만 하더라도,


고통을 두 번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고안된 기행이었다.


몸에 꽂아 넣을 때 한 번,


그리고 상처가 재생되었을 때 박혔던 꼬챙이를 다시 뽑으면서 한 번.


더불어 이번 고문은 마티아에게도 아주 중요했다.


마티아는 아스테르의 몸의 곳곳에 꼬챙이를 하나씩 박아 넣으면서 아스테르의 반응을 관찰했는데,


이는 인간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부위를 고찰하기 위함이었다.


아스테르는 말 그대로 마티아의 실험 쥐가 되어버린 것이다.


트리코는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에도 그의 몸이 충분히 지저분했었기에,


아스테르가 고문을 당해 피로 범벅이 되었을 때에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일들을 당하고 있는지.


고슴도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끔찍했다.



똑... 똑...



아직 조금밖에 안 찬 양동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핏방울.



“...”


“...”



평소라면 진작 먼저 말을 걸어주었을 터다.


그의 몸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오... 오빠...”


“...”



순간 소녀의 머릿속에 감도는 불길한 생각.


오빠가 죽은 걸 아닐까?



툭.



얼굴을 찡그리는 목사.


트리코는 온몸에 힘이 빠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


만약 목사가 그녀의 몸을 뒤에서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것이다.


이제는 굳이 오열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쉽게 눈가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오빠... 아니지? 나 혼자...”


“...”



목사는 귀찮아지는 게 싫었는지 소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저 괴물이 죽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무치도록 차가운 정적을 깨는 신음.



“아으... 아...”


“오빠? 오빠!”



뛰쳐나가듯 몸을 앞으로 내던지는 소녀.


하지만 목사는 그런 그녀를 놔줄 리 없었다.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앞으로 내던지지만,


단번에 쉽게 제압되는 가련한 몸.


간절하게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내밀지만 역시 닿지 않는다.



“나 트리코야... 트리코. 그러니까...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까... 흐읍... 흑... 말 좀... 해줘...”


“아... 으아... 긋...”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입 모양.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으이... 코...”


“흐윽... 오빠... 미아내... 내가...”


“트이... 코...”



목사는 더는 이 거래에 의미가 없다는 걸 파악했다.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는 목사.


소년의 정신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위해 등을 지지 않은 채로 소녀를 끌고 간다.


아직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목사가 자신을 끌고 가자 있는 힘껏 발버둥치는 트리코.



“이거 놔!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왜 데려가는 거야!”


“그만 둬, 이제 끝났으니까.”


“뭐라는 거야! 대체 뭐가...”


“네 오빠, 정신 놨다고.”


“거짓말 하지 마! 오빠는...”



저 멀리 들려오는 어눌한 목소리.



“트... 이코... 트... 이...”


“오빠!”



누가 들어도 정상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사에게 질질 끌려가는 소녀.


목사는 머릿속으로 또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자신의 설계대로 모든 일이 흘러가기 시작하자,


가면 속에 감춰진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골칫거리인 소년의 건을 처리해냈다.


이제 남은 건...



“드디어 끝났네.”


“뭐?”


“지긋지긋했는데, 잘 됐어.”


“대체 무슨...”


“이제 너만 처리하면 끝이야.”


“그... 그게...”


“쟨 이제 네가 무슨 짓을 당해도 모를 걸.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어린 너라도 알고 있겠지?”


“...”


“너도 고생 많았어, 곧 편하게 해줄게.”



점점 숙여지는 소녀의 고개.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


소녀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자신을 위해 몸을 내던진 오빠의 운명도,


그리고 그의 품 안에서 보호 받던 자신의 운명도.


이렇게 자신의 삶이 끝이 나리라는 걸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종막의 기운.


끝이 다가왔다는 게 느껴졌다.



“꽁꽁 묶인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가축 같은 모습이 됐네.”


“...”


“하긴, 그만큼 죽음이 무서운 거겠지.”



스르륵 다시 소녀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목사.


그리고는 천천히 소녀의 시야를 가리는 검은 안대.


목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진 소녀의 팔목을 잡고 그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림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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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6. 회상 NEW 4시간 전 0 0 12쪽
» 125. 붕괴 24.09.18 2 0 10쪽
125 124. 편지 24.09.17 2 0 10쪽
124 123. 미사 24.09.16 3 0 13쪽
123 122. 기대와 실망 24.09.15 4 0 10쪽
122 121. 담배 연기 24.09.14 6 0 9쪽
121 120. 거래 24.09.13 6 0 10쪽
120 119. 초읽기 24.09.12 5 0 10쪽
119 118. 성냥을 든 남자 24.09.11 5 0 10쪽
118 117. 보이지 않는 심지 24.09.10 5 0 11쪽
117 116. 드리운 어둠 24.09.09 5 0 9쪽
116 115. 지켜야만 하는 것 24.09.08 6 0 9쪽
115 114. 노파와 사과 24.09.07 6 0 10쪽
114 113. 마치 나른한 오후처럼 24.09.06 7 0 10쪽
113 112. 집단 지성 24.09.05 5 0 11쪽
112 111. 다른 목소리로 불리는 같은 호칭 24.09.04 4 0 10쪽
111 110. 도망 24.09.03 4 0 12쪽
110 10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24.09.02 6 0 8쪽
109 108. 고작 한 명 분의 무게 24.09.01 5 0 12쪽
108 107. 슬픔과 눈물의 역설 24.08.31 6 0 8쪽
107 106. 전부 알고 있다는 착각 24.08.30 7 0 12쪽
106 105. 머리색 24.08.29 5 0 10쪽
105 104. 금발의 여자들 24.08.28 6 0 10쪽
104 103. 모닐레 24.08.27 5 0 10쪽
103 102. 스튜 24.08.26 6 0 10쪽
102 101. 순응과 체념, 그 사이 어딘가 24.08.25 5 0 10쪽
101 100. 끝까지 함께 24.08.24 6 0 11쪽
100 99. 마지막 방문자 24.08.23 5 0 11쪽
99 98. 저녁 만담 24.08.22 6 0 10쪽
98 97. 반면교사 24.08.21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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