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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ch4808
작품등록일 :
2024.05.12 20:25
최근연재일 :
2024.09.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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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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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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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15. 지켜야만 하는 것

DUMMY

너무나도 이질적인 감각.


그럼에도 차려지지 않는 정신.


그 와중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



“... 확인... 건강... 피...”


“... 확실... 제대로...”



구름 위를 부유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느슨해진 정신의 줄.



“아예 마을에 연고도 없고, 부모도 없는 걸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신의 구원이 절실한 어린 양이 또 하나 들어 왔군.”


“가엾기도 하죠.”



분명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저 흐리멍덩할 뿐,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축 늘어진 고개.



“근데 이게... 같이 있던 여자 아이는...”


“문제가 있나?”


“멀쩡히 가족도 있고 마을 내에서도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흐음... 둘이 무슨 사이지?”


“저도 잘... 우연히 같이 잡혀온 것 같습니다.”


“소녀는 깨어났나?”


“네, 일단 조치는 해 뒀습니다.”


“잘 했네. 아주 잘 했어.”


“아뇨, 제가 뭘...”


“토마스, 자네가 있어 안심이네.”


“아이고... 전부 다 목사님의 덕이죠...”


“신의 보살핌이 자네와 우리를 구원해줄 거야. 내 장담하지.”


“아멘...”



점점 뚜렷해지는 정신.


흐릿하기만 하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으...”


“곧 깨어나겠네요.”


“저번에 말했던 다른 제물은 어떻게 됐지?”


“아... 그 아이는 데리고 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아이도 연고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집행관이 말씀하시기를 마력이 엄청 뛰어난 걸로 봐서 실력자인 것 같습니다.”


“흐음... 아쉽게 됐네.”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손바닥과 발등에 박혀 있는 대못,


주위에 갑옷을 입고 서 있는 기사들.


아주 짧은 시간에 상황을 파악한 아스테르.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걸 깨닫자,


그제서야 직전의 기억이 두루뭉술하게 떠올랐다.



‘사과... 사과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잠깐... 그 말은...’



자신의 상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트리코.


트리코도 분명 납치되었을 것이다.


손과 발에 박힌 대못과 허리에 감긴 사슬?


고작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트리코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손과 발에 대못을 박혔다고 생각하니 몸이 바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지끈...


드드드득... 드득... 챙!



꽁꽁 묶어둔 사슬이 팽창하며 끊어지는 소리.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그 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 두 남자.



덥석!



눈앞에 보이던 남자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드는 아스테르.


남자의 몸은 천천히 들리더니 발이 공중에 뜨게 되었다.



까드드드득...



“으... 으아아아악!”



남자의 두개골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소리.



“트리코 어디 있어.”


“으... 으아아아악! 신부님! 구, 구해주...”


“잡아!”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의 명령에 분주하게 모이는 기사들.


창을 들고 아스테르에게 달려든 첫 번째 기사.


아스테르는 손에 들고 있던 남자를 기사에게 던지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두 사람을 함께 걷어찼다.



퍽!



그대로 벽에 나가떨어진 두 사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남자의 배는 말 그대로 짓이겨졌고,


함께 나가떨어진 기사도 마찬가지였는지 기사의 투구와 갑옷 사이에 난 틈으로 새빨간 혈흔이 흘러내렸다.



“쿨럭...”



곧바로 뒤에서 함께 칼을 휘두르는 두 명의 기사들.


아스테르는 몸을 돌리는 동시에 손을 휘둘렀고,


뒤에 있던 기사들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 그대로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컥!”



벽이 일부분 파괴되면서 동굴 안에 피어오르는 흙먼지.


직접 두 눈으로 본 압도적인 위압감에 무거워진 기사들의 발.


서서히 연기가 가라앉자 벽 근처에 쓰러져 있는 기사들의 몰골이 드러났다.


이미 죽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기사와 허리가 기이하게 꺾여 비명을 지르는 기사.



“끄아아아아아아악!”



그 장면을 지켜보던 검은 옷의 남자는 입술을 까득 깨물더니 동굴 깊숙한 곳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고작 흰색 천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반라의 소년.


전신을 무장하고 무구를 들고 있는 기사들은 소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눈에 소년이 내는 힘은 신적인 것에 가까웠다.


아무런 마법도 없이 인간이 그 정도의 힘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상식을 벗어나는 존재였다.



“어, 어떻게... 어떻게 해?”


“끄아아아아악!”


“머, 멈춰!”


“한꺼번에...”


“사, 살려줘! 허, 허리가!”


“미쳤어? 방금 못 봤냐고!”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가중되는 두려움.



“나, 난 못하겠어!”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도망치는 기사.



“씨발... 정신 안 차려?”


“하, 하지만!”


“고작 하나야! 한 명이라고!”



처음으로 입을 여는 소년.



“트리고 어디 있냐고.”


“트, 트리코가 뭔데!”


“여자 말하는 거 아냐?”


“네 좆집엔 관...”



퍽!


툭!


툭...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던 기사의 머리가 주먹질 한 번에 그대로 몸과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털썩!



머리가 사라진 몸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뚝... 뚝...



소년의 주먹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선혈.



“트리코한테 무슨 일 있으면, 당신들 오늘이 끝이야. 명심해.”


“히, 히익...”



소년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그 공간에 있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트리코가 대체 누군지는 알지 못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괴물을 멈추기 위해서는 트리코라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기사들 전부가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씩 소년에게서 멀어져 갈 때,


동굴의 통로에서 나타난 남자.



“거기까지야.”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아스테르.


가면을 쓰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안대를 쓰고 있는 소녀를 붙잡고 있었다.


익숙한 체형,


금발의 머리,


트리코였다.



텁...



아스테르가 당장이라도 뛰어들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미는 동시에,


트리코의 목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미는 남자.


그럼에도 가능했다.


아스테르의 속도라면 남자의 품에서 트리코를 빼앗을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이런 경우에 망설이기 마련이다.


그 틈이 있는 한,


아스테르는 트리코를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멈추라고 말 했을 텐데.”



푹!



“흐읍... 읍... 으읍...”



뽀얀 피부를 살짝 파고든 칼날.


트리코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파들파들 떨리는 트리코의 몸.



“머, 멈춰!”



아스테르의 다급한 목소리에 안대와 재갈이 채워진 트리코가 꿈틀거렸다.



“읍! 으읍! 읍! 으으읍!”


“이제야 알겠어?”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아스테르.


남자를 죽이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남자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 순간 남자는 트리코의 목에 칼날을 쑤셔 박을 것이다.


평범한 소녀인 트리코가 목에 칼을 맞고도 살 방법은 없었다.


더구나 아스테르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고,


기초적인 회복 마법도 사용하지 못했다.


트리코의 목에 칼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넥토에게 다시는 여동생의 미소를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곳에 있는 게 자신이 아닌 울티오나 넥토였다면,


분명 트리코를 구출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스테르는 불가능했다.


몸을 쓰는 건 결국 상대방이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릎 꿇어.”


“...”



털썩.



순순히 무릎을 꿇는 아스테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이 일절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포박해!”


“그...”


“...”



반라의 소년이 스스로 무릎을 꿇었음에도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는 기사들.


기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뭐해! 이 여자애가 있는 한 아무것도 못해!”


“네, 네!”


“쇠사슬 전부 가져와!”


“입도 막고!”


“안대도!”



풀썩!



열 명이 넘는 기사들이 소년의 위로 달려들었다.


기사들에게 덮쳐져 온몸이 꽁꽁 묶이는 와중에도 살벌한 눈으로 검은 옷의 남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스테르.


트리코는 남자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있는 힘껏 무언가를 외쳤지만,


재갈을 문 입은 그 무엇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읍! 으읍! 으으읍! 으읍!”



트리코가 자신의 목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상처를 입었다는 걸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무언가가 칼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리코는 남자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읍! 으읍!”


“네가 허튼짓을 하는 순간, 이 아이의 목숨은 없는 거야.”



아무런 말없이 순순히 포박되는 아스테르.


남자는 보란 듯이 트리코의 목에 겨눈 칼을 거두지 않은 채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얌전히 있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야. 네가 현명한 소년이기를 바라마.”


“트리코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순간,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거야.”


“하하, 걱정하지 마. 난 아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거든.”


“...”


“그럼, 이따 보자고.”



그렇게 남자의 그림자는 동굴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아스테르의 시선은 새까만 안대로 서서히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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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 붕괴 NEW 18시간 전 1 0 10쪽
125 124. 편지 24.09.17 2 0 10쪽
124 123. 미사 24.09.16 3 0 13쪽
123 122. 기대와 실망 24.09.15 4 0 10쪽
122 121. 담배 연기 24.09.14 6 0 9쪽
121 120. 거래 24.09.13 6 0 10쪽
120 119. 초읽기 24.09.12 5 0 10쪽
119 118. 성냥을 든 남자 24.09.11 5 0 10쪽
118 117. 보이지 않는 심지 24.09.10 5 0 11쪽
117 116. 드리운 어둠 24.09.09 5 0 9쪽
» 115. 지켜야만 하는 것 24.09.08 6 0 9쪽
115 114. 노파와 사과 24.09.07 6 0 10쪽
114 113. 마치 나른한 오후처럼 24.09.06 6 0 10쪽
113 112. 집단 지성 24.09.05 4 0 11쪽
112 111. 다른 목소리로 불리는 같은 호칭 24.09.04 4 0 10쪽
111 110. 도망 24.09.03 4 0 12쪽
110 109.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24.09.02 6 0 8쪽
109 108. 고작 한 명 분의 무게 24.09.01 5 0 12쪽
108 107. 슬픔과 눈물의 역설 24.08.31 6 0 8쪽
107 106. 전부 알고 있다는 착각 24.08.30 7 0 12쪽
106 105. 머리색 24.08.29 5 0 10쪽
105 104. 금발의 여자들 24.08.28 6 0 10쪽
104 103. 모닐레 24.08.27 5 0 10쪽
103 102. 스튜 24.08.26 6 0 10쪽
102 101. 순응과 체념, 그 사이 어딘가 24.08.25 5 0 10쪽
101 100. 끝까지 함께 24.08.24 6 0 11쪽
100 99. 마지막 방문자 24.08.23 5 0 11쪽
99 98. 저녁 만담 24.08.22 4 0 10쪽
98 97. 반면교사 24.08.21 6 0 11쪽
97 96. 소년을 위해 24.08.20 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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