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남자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다.
페인은 본래 21세기 지구에서 태어난 문명인이다.
뛰어난 문명에서 살아온 그에게 중세시대의 삶은 고역이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어이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뛰다가 돈 주기 싫다던 취객에게 찔려 죽었다.
뭐 이딴 죽음이 다 있나 싶다.
더 황당한 건 그 다음에 있었다.
“응애! 응애애-!”
입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 페인은 환생한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거.’
지구가 아닌 어딘지도 모를 중세풍의 세상.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필 농노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누구는 귀족에다 특별한 능력을 얻고 그러지 않나?
근데 자신은 그런 게 쥐뿔도 없었다.
현대인의 정신을 가진 그는 좀체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무려 2년을 넘게 방황했다.
어머니인 메리는 애가 뇌를 다친 건 아닌가 걱정을 했다.
“남자가 몸만 튼튼하면 되지 머리 좀 나쁘면 어때서!”
아버지인 햅슨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몸만 튼튼하면 최고라 여기는 훌륭한 농노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페인은 누가 봐도 훌륭한 농노로 자랐다.
얼마나 훌륭하냐고?
부모 앞에서 욕을 지껄일 정도로 제대로 배워먹었다.
“씨발, 내가 앓느니 죽지.”
“지금 뭐라고 했냐?”
“아버지! 이쪽 울타리는 다 끝났으니 저쪽도 만들게요.”
“오냐. 이 새끼 이거, 누구 자식인지 참 똑똑하구만!”
울타리를 만드는 일은 무척 고됐다.
하지만 페인은 땀을 흘리면서도 꿋꿋이 만들었다.
이 세상은 아동학대가 아주 일상이다.
7살짜리에게 일을 시키는 게 평범하단 소리다.
당연히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페인은 도움이 되면서도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일감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비누도, 화약도, 뭣도 아닌 기껏해야 울타리 말이다.
‘뭔 놈의 밭을 경계선도 없이 마구 지어?’
농노들은 자기 밭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그저 영주님의 밭을 죽을 때까지 짓는 게 인생의 전부였다.
그따위로 일하니 효율이 바닥을 친다.
경계선이 없어서 농사 좀 잘된 곳은 서로 자기가 했다고 싸움이 벌어졌다.
고작해야 보리 한 줌.
그 맛없는 걸 더 얻어먹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보다보면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었다.
참다못한 페인은 촌장에게 허락을 받아 울타리로 경계선을 세워서 헛수작을 못하도록 막았다.
“이러면 들짐승도 막고 서로 착각할 일도 없겠지.”
자기 담당구역이 정해지자 농노들은 게으름을 부리지 못했다.
전부 다 안 됐을 때는 티가 안 난다.
대신 내 땅만 소작이 낮으면 대번에 티가 났다.
덕분에 농노들은 페인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촌장이 페인을 비호했기에 건드리는 간 큰 놈은 없었다.
이후로도 페인의 화려한 지식자랑(?)은 계속됐다.
나무로 만든 괭이의 날부분을 살짝 휘게 만든다는지.
아니면 비가 오기 전 수로를 파서 물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환생자가 하는 일치고는 실로 소소하기 그지없지만 이게 최선이다.
페인의 지식이야 사용법에 한정되어 있으니까.
스마트폰 펌웨어 올리기, 게임 랭커 되기 이런 건 써먹을 곳이 없었다.
그나마 보고 들은 게 좀 있어서 이 정도였다.
고마워요 유X브, 고마워요 인터넷방송, 커뮤니티, 기타 잡지식들!
어쨌든 페인은 손재주를 인정받았다.
덕분에 권력자인 마을 촌장에게 총애를 받았다.
“허허허, 네가 아주 복덩이구나.”
‘시발 그럼 먹을 거라도 좀 주든가······.’
이러니 마을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배고픈데 주는 것도 없이 일만 시키니 누가 열심히 하는가?
그래도 페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쓸데없는 촌장의 총애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던 중에 전쟁이 터졌다.
멀리서 봐도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아주 개 같은 일이 말이다.
***
전쟁의 징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관리가 찾아왔다.
자신을 징병관이라 소개한 관리는 이렇게 외쳤다.
“자비로우신 하렌 영주님의 명이시다! 가구당 한 명씩 병사를 차출하라!!”
징병관의 시선은 사람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 차갑고 딱딱한 그런 시선이다.
당연히 농노들은 거부하지 못했다.
어딜 감히 농노 따위가 영주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해서 농노들은 저마다 가정에서 전장에 내보낼 사람을 뽑았다.
“전장에는 맥스 네가 가라.”
“아버지, 집안의 가장은 제가 계승하겠으니 잘 다녀오십쇼.”
“이 새끼가 나보고 뒤지라는 거냐······!”
웅성웅성-
징병 대상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서로 가지 않으려고 난리를 쳤다.
이윽고 집안에서 병사로 차출될 이들이 하나둘씩 정해지기 시작했다.
페인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씨발. 어쩔 수 없겠지. 금방 다녀오마.”
“여보!”
페인의 나이는 고작해야 이제 12살이다.
차마 어린 자식을 전장으로 보내지 못한 아버지인 햅슨은 스스로 그곳을 향해 떠났다.
그렇게 반 년의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촌장은 페인을 따로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햅슨이 죽었단다.”
“그렇군요.”
페인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미약한 희망이 깨지자 어머니인 메리는 밤새도록 울었다.
“흑······흑······.”
농노의 부모도 부모는 부모다.
그녀는 자식들이 듣지 못하도록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조용히 눈물을 삭이는 어머니의 울음소리.
페인은 그것을 가만히 누워서 새벽까지 들었다.
“씨발 거 내가 가장 한번 해보지 뭐.”
자신은 지금부터 이 집안의 가장이다.
가장으로서 혼잣말로 다짐한다.
자신이 없는 아버지의 역할도 해내야 했다.
이날 이후로 페인은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손이 부르터져라 밭을 간다.
짬짬이 울타리를 만들고, 잡지식을 활용해서 이것저것 해냈다.
피곤하고 하기 싫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
‘그것이 가장이니까.’
힘들게 만드는 것은 노동만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거지 같은 일이 그를 귀찮게 만들었다.
“이거 안 놔?!”
“이 년이 한 번만 대주면 잘해주겠다는데 왜 반항을, 으악!”
“우리 집안은 내가 먹여 살린다. 그러니 네놈 도움은 필요 없어!”
가장인 페인이 어리니, 어머니를 노리고 달려드는 승냥이들이 있었다.
그런 승냥이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은 가장의 의무인 법.
페인은 마을의 망나니 새끼들에게 어머니를 지켰다.
사나운 들개처럼 침을 흘리는 페인의 으르렁거림에 남자는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다.
이내 뒷걸음질을 치면서 도망가자 페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좁아터진 마을에 뭔 놈의 놈팽이가 이리도 많담.’
이런 놈들 때문에 페인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지 못했다.
어머니와 넷째 동생, 집안에 여자가 둘이나 있으니 지키는 것도 일이다.
“형 멋있다.”
“진짜 쩌는데?”
동생들은 그런 페인의 모범적인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형이 모범을 보이니 둘째와 셋째도 그것을 본받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건들면 이빨부터 드러낸다!]
이것은 집안의 가훈이 됐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엄마와 막내에게 접근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사나운 어조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덕분에 집안의 여자들은 무사했다.
대신 집안의 남자들은 어그로가 끌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 시발새끼들이?’
어느 날이었다.
똘똘한 둘째가 죽도록 처맞고 돌아왔다.
장애가 남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하나 둘째 페일은 퉁퉁 부운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엄마를 지켰어!”
어머니를 지켰노라고, 쉰 목소리로 말이다.
“알겠으니까 좀 자라, 그러다 진짜 죽는다.”
죽기 직전까지 처맞은 동생은 간신히 눈을 감고 잠들었다.
***
그날 페인은 동생을 쥐어 팬 놈의 집안에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
으득.
망설임 없이 이를 들이밀었다.
어디로?
남자의 약점인 부랄을 물어뜯었다.
더럽고 냄새나지만 아직 어려서 힘도 무기도 없다.
이게 그에겐 최선이었다.
“끄아아아아아!!! 놔, 놔 이 새끼야······!”
무식하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남자는 고통에 못 이겨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워낙에 작은 마을이다.
비명소리에 소란은 금방 알려졌다.
밖으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소리가 들려오는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보았다.
피범벅이 된 남자의 아랫도리와 그것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페인의 모습을.
“퉷.”
신관도 재생 못할 정도로 씹어버린 아랫도리의 흔적.
그를 바라본 마을 사람들은 질색했다.
“저저, 독한 놈!”
“메리는 건드리지 말자고.”
“으으, 내 아랫도리가 다 아프네!”
그렇게 페인은 마을에서 독종 겸 재주꾼으로 소문이 났다.
아비 없는 집이라고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다.
***
세월이 흘러 페인은 17살이 되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페인은 영주가 전쟁에서 불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길한데.’
그 소식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이들이 마을을 찾아왔다.
영주의 병사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페인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메탈슬라임입니다!
이번 시작도 잘 부탁드립니다!
월요일~토요일 오후 6시에 연재되오니 많이많이 봐주세요!
가시기 전에 좋아요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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