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대
뒤늦게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충격적인 광경에 넋이 나갔던 자들이 현실로 돌아왔다.
“꺄아아아악!”
“지, 징병관님이 죽었어?”
“이런 미친!”
난리는 가라앉을 생각을 안 했다.
방금 죽은 테일러는 영주가 임명한 관료였다.
징집관은 병사를 징집하는 권한을 가진 자리다.
어느 정도 신뢰하지 않고서는 맡길 수 없다는 말이다.
영주는 자신의 땅에서 사실상 왕처럼 군림하는 자다.
그런 영주가 테일러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이들을 과연 가만히 내버려두겠는가?
마을주민들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난리에서도 페인은 여유로웠다.
고작해야 시체 하나가 추가됐을 뿐이다.
오히려 너무 쉽게 죽였나 싶어서 아쉬울 정도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그쪽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나 있소?”
“여긴 이제 내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싫으면 저놈처럼 죽여주겠다.”
“잠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계속되는 충격에 윌슨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뭐가 맞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로 뇌가 터질 지경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윌슨의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이 마을은 내가 접수하겠다.”
“누구 마음대로! 여기는 우리 마을이야!!”
일부 자경대원이 페인의 말에 반발하더니 무기를 든다.
하나 그들의 반항은 페인이 칼집으로 두들겨 팸으로써 바로 제압당했다.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그들이 무기에 대한 재능을 깨달은 페인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페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모르그 마을을 접수할 수 있었다.
***
마을을 접수한 후 페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테일러의 재산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윌슨. 저기 뒤져버린 놈 집이 어딘지 안내해주겠나?”
“······후우. 이쪽으로 오시지요.”
윌슨은 적극적으로 페인을 모셨다.
이렇게 된 이상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강제로 점령됐다고 해서 하렌 영주가 봐줄까?
절대 아니기에 살려면 페인을 따라야만 했다.
그렇게 윌슨은 페인과 그의 부하들을 테일러의 집으로 안내했다.
도착한 테일러의 집은 다른 집들보다 더 크고 화려했다.
단층집이 대다수인 이런 마을에서 유일하게 층을 쌓아올린 이층집의 저택이었다.
테일러는 징병관답게 군과 관련된 물품을 꿍쳐둔 게 많았다.
“이 새끼 더럽게도 많이 해처먹었군!”
페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누구는 창 한 자루가 없어서 나무 깎아다가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철로 된 창촉이 넘쳐났다.
검이나 방패는 말할 것도 없고 밀이나 보릿자루가 그득하게 쌓여있었다.
“페일, 이것들 전부 기록해둬라.”
“예, 형님.”
“흠, 여기를 전진기지로 써야겠는데. 욤, 이놈 집을 창고로 쓸 거니 몇 놈 뽑아서 지키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페인 님.”
이로써 식량과 병장기에 대한 문제도 해결됐다.
전리품까지 완벽하게 회수한 페인의 움직임은 더 거침이 없어졌다.
***
전쟁은 속도전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변수는 늘어난다.
페인은 남이 끼어들 여지를 주기 싫었다.
자신의 복수에 누군가 숟가락을 얹는 것을 거부했다.
‘영주가 알아서 토벌군을 데리고 오기 전에, 그 전에 영주를 죽인다.’
누군가 끼어들 여지를 주기 전에.
하렌 영주를 죽이고 영지를 접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우선 부릴 수 있는 병력이 필요하다.
페인은 이번에 얻은 병장기를 팔지 않기로 했다.
테일러의 거처에는 병장기 외에도 돈 될 것들이 넘쳐났다.
고작 한 놈 털었다고 이 정도니 다른 놈들이 꿍쳐둔 것도 상당할 터.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놈들을 족쳐서 얻어낸다.
해서 그는 물자를 아끼지 않았다.
가진 것을 탈탈 털어서 새로운 병사를 무장시켰다.
다행히 모르그의 자경대원들은 상당히 쓸 만했다.
병사로서의 자질만 보면 농노마을 출신보다 고점이 더 높았다.
“이제야 도합 서른두 명인가.”
농노마을에서 10명+모르그 마을에서 20명.
여기에 페인과 페일을 합치면 서른두 명이다.
지배력은 걱정할 게 없었다.
칼질 몇 번 보여주니 알아서 설설 기었다.
어차피 징병관이 죽은 상황에, 이들도 공범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알려주자 충성도는 몇 배로 올라갔다.
‘쉽군.’
원래 이런 세계다.
병사들에 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노친네를 싸움에 참가시켰다가는 놀라서 죽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제 군대를 얻게 됐다.
이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영지는 돈이 부족해서 허덕일 정도다.
페일은 이런 페인에게 질문을 건넸다.
병사를 이리도 무장시켜서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진 거다.
“형님, 다음은 어디로 가십니까?”
“영주를 털어 먹기로 했잖아? 일단 이 주변 마을부터 싹 돈다.”
원래 이런 싸움은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한 법이다.
아무리 페인이 잘 싸워도 집중공격을 받으면 얼마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같이 싸우는 고기방패, 아니 부하가 있으면 날뛰기 훨씬 수월해진다.
만약 그러다 져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땐 그냥 뒤지면 된다.
어쨌든 이런 생각으로 마을순회가 결정되었다.
“윌슨, 이 근처에서 사람이 많은 마을이 어디인가?”
“저쪽으로 언덕 하나만 건너면 마을이 있습니다. 우리끼리는 약초마을이라고 부릅니다.”
약초마을.
전에 얼핏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돈 좀 만졌을 것 같은 이름이군.”
“바로 그렇습니다! 애를 넉넉히 낳아도 전부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죠!”
돈이 많다는 말에 페인은 입맛을 다셨다.
몇 명까지 감당이 가능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자 구미가 당긴 것이다.
그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약초마을로 향했다.
***
페인이 지방 마을들을 접수하고 있을 시점.
프랭크푸트 성에서는 불길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아무래도 반란이 일어난 모양이야.”
“뭣이? 반란?!”
“반란이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반란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재 칠레로스 영지는 이웃한 카로크 영지와 전쟁 중이다.
반란은 원래도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하물며 전쟁 중에 그 짓을 한다는 것은 즉결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문제는 반란 자체가 아니다.
반란이야 진압하면 그만이었다.
그보다는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곳들이 마비됐다는 게 타격이 컸다.
“하필 농장 밀집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다니!”
프랭크푸트 성에 올라와 있던 농장주들은 울상이 되었다.
자신들의 농장이 웬 불한당에게 점거되었다는데 기분이 좋겠는가?
하나 이들의 행동은 굼뜨고 느렸다.
페인이 마을 다섯 개를 먹어치우는 동안에도 입만 움직였을 뿐이다.
“벌써 다섯 곳이나 되는 마을이 반란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다섯 곳? 이게 말이 되는가?!”
“이,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군요.”
이제는 가벼이 넘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들은 부랴부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돈의 힘은 여기서도 발휘됐다.
점령지에 가까운 무지렁이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자 알아서 입을 나불거린 것이다.
“듣자하니 반란군의 대장은 웬 떠돌이 기사라고 하더군.”
“내가 듣기로는 귀족이라고 하던데?”
페인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반란군의 수괴, 주동자, 방랑기사, 또는 몰락한 귀족 등등.
저마다 알아내거나 들은 이야기를 속닥이기 바빴다.
소식은 프랭크푸트 성의 주인인 하렌 영주에게도 전해졌다.
***
“대체 뭘 하고 있던 게야!”
쾅!
하렌 영주의 분노가 탁자를 내려쳐진다.
가신들은 영주의 분노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하렌 영주는 기가 찼다.
어떻게 마을 다섯 개를 빼앗길 때까지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아이거 경. 군사부분은 그대의 일이 아니던가?”
“송구하옵니다, 영주님. 하나 그보다는 대책이 시급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그럼 좋은 의견을 내보시오. 저 반란분자들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그것이······.”
“으으음!”
가신들은 좀체 의견을 내지 못했다.
뭘 하려고 해도 돈이 드는데, 영지에는 돈이 없다.
그렇다고 자기 주머니를 털기는 싫었다.
그럼 군대를 빼서 지방으로 보낸다?
그랬다간 전쟁 중인 카로크 영지가 이때다 싶어서 움직일 거다.
하렌 영주는 고뇌에 빠졌다.
그러던 중 군사담당인 기사 아이거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용병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용병? 그 돈은 돈대로 퍼먹고 일은 제대로 안 하는 버러지들 말인가?”
용병은 대개 차남 아래의 물려받을 것이 없는 자들이 많았다.
잃을 게 없으니 막나가고, 그러다 사고를 쳤기에 평가가 박하였다.
“버러지도 나름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잡것들을 처리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지요.”
“군사담당인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한 번 믿고 맡겨보겠다.”
“명을 받듭니다.”
하렌 영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거는 잽싸게 움직였다.
마침 얼마 전에 성으로 돌아온 용병대가 있었다.
몇 번 거래를 해봤기에 신용도 썩 나쁘지 않았다.
아이거는 그들에게 일을 맡겨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하인을 불러서 심부름을 시켰다.
“너는 지금 이 길로 가서 영주님의 이름을 대고 그들을 불러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아이거 경!”
부름을 받은 하인 하나가 성에서 빠져나간다.
아이거는 그 모습을 저택 위에서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외출준비를 마친 그는 서둘러 어딘가로 향했다.
***
성 외곽에 존재하는 허름한 술집.
저택에서 빠져나온 아이거는 이곳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이 술집은 찾는 이가 드물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다만 장점도 있는데, 사람이 없으니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았다.
그가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은 것은 남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다.
반란이야 다른 곳에서도 종종 터지지만 지금은 이웃 영지와 전쟁 중이다.
적에게 약점을 노출하는 꼴이니 될 수 있으면 감추는 것이 맞았다.
때마침 하인이 불렀던 자가 술집으로 들어섰다.
잘 씻지 못해서 떡진 머리와 꼬질꼬질한 얼굴.
움직이기 편하도록 만든 가죽 갑옷에서는 헤지고 닳은 흠집들이 보였다.
몸에 걸친 유일한 금속은 목과 머리에 걸친 사슬투구였다.
“부르셨는지요, 나리? 신 미쉘,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헤헤!”
가벼운 말투와는 다르게 눈빛은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건들거리는 인상과는 다른, 피를 본 자의 것이었다.
“······그렇군. 미쉘 그대도 오랜만이다.”
아이거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용병을 추가로 고용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그도 용병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예를 추구하는 기사에게 강약약강의 태도를 지닌 용병은 꺼려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들도 전쟁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데 이들마저 등을 돌리면 전쟁에서 밀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아이거는 애써 불편함을 가라앉혔다.
시킬 일도 있으니 되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나았다.
“너희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어이쿠, 저희가 말입니까? 이거 지난 전투에서 열심히 싸웠더니 어깨며 무릎이 쑤셔가지고 나갈 수 있을지······.”
건들거리는 말투가 영 거슬린다.
아이거는 애써 이를 무시하고 돈주머니를 꺼냈다.
“은화 마흔 닢이다. 의뢰 한 번의 보상으로는 충분할 터.”
돈주머니를 본 미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의 웃는 얼굴 속에는 그득한 욕심과 살의가 피어올랐다.
- 작가의말
일요일은 휴재일!
월요일 오후 6시에 만나요!
가시기 전에 좋아요와 선작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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