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젖히는 자
“안녕하신가 제군! 나한테 뭐 할 말 없나?”
“어······살려주세크아아악!!”
“지랄은 씹새가.”
촤아악!
페인은 숏소드를 휘둘렀다.
그리곤 바위를 떨어트린 수비병들을 쳐죽였다.
그것을 본 적군이 주춤 뒤로 물러선다.
이윽고 학살이 시작됐다.
페인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성벽 위는 금세 초토화되었다.
***
수비군 병사가 창을 찔러온다.
페인은 그 병사를 향해 툭하고 발을 걸었다.
“어어?”
병사는 당황했지만 쉽게 균형을 되찾지 못했다.
빈틈투성이가 된 병사는 페인이 가져다 댄 칼날에 스스로 목을 가져다댄 꼴이 되었다.
스걱-
“커헉, 컥. 피가, 내 피가······.”
병사의 목에서 피가 꿀렁꿀렁 넘쳐났다.
손바닥으로 가려보지만 의식은 빠르게 흐려져 갔다.
그러나 고작 한 명이 당했다고 적이 도망가지는 않는 법.
성벽 위에 있던 용기 있는 병사가 페인에게 달려들었다.
“너는 내가 상대해주겠, 카학!”
“진짜 더럽게 많네.”
푸욱.
페인은 달려드는 병사의 가슴에 숏소드를 찔러 넣었다.
가볍지만 갈비뼈를 비집고 들어오는 칼날에 그 병사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즉사했다.
칼날이 지휘관의 뱃가죽을 헤집는다.
지휘관이 쓰러지자 병사들은 허둥지둥 거렸다.
페인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성벽로 위는 그런 페인을 피하려고 도망가는 병사들로 가득했다.
하사관들이 어떻게든 싸우게 하려고 칼을 들고 설쳤으나 무리였다.
눈 깜빡할 때마다 페인의 손에 병사들이 죽어버리니 윽박질러도 앞으로 나가는 놈이 없었다.
‘성문부터 열어젖힌다.’
페인은 점점 숨이 차오름을 느꼈다.
사다리에서 묘기를 보이며 위에서 떨어트리는 온갖 물건을 다 피했더니 상태가 말이 아니다.
땀에 절은 찝찝함과 혼자서 이것들을 다 상대하기는 무리라 판단.
그는 성문을 열고자 아래로 향하였다.
“놈! 어딜 가느냐! 절대 비켜주지 않-!”
“비켜 쌍놈아.”
“으겍!”
퍼억!
빼앗은 창대로 머리통을 후려친다.
투구를 썼지만 충격까진 흡수하지 못한 듯 병사는 기절했다.
쿠웅-!
기절한 병사는 바닥에 처박혔다.
머리부터 박은 탓에 소리가 요란했다.
‘지금인가? 지금이 기회인가?!’
‘고맙다 배인, 네 덕에 내가 영웅이 될 기회가 생겼어!!’
이때 슬금슬금 뒤에서 접근해오는 병사가 있었다.
아무리 페인이 체인메일을 걸쳤더라도 후방에서의 기습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 페인은 보지도 않고 창날을 뒤로 돌려 놈을 찔렀다.
‘성벽 아래에 숨어있던 놈이군.’
페인은 그가 처음 숨어있을 때부터 존재를 눈치 챘었다.
성벽과 그 옆에 쌓아둔 돌무더기에 몸을 감췄던 것이다.
알면서도 내버려둔 건 굳이 다 상대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다가오면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푸우욱!
페인이 옆구리 뒤로 넘긴 창날이 상대의 뱃가죽을 관통한다.
등 뒤로 피 묻은 창날이 튀어나오자 어마어마한 고통에 병사가 꺽꺽거렸다.
“꺼어억!”
“쥐새끼처럼 오지 말고 당당히 덤벼라.”
거의 동시에 적 2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병사들이 두려움에 주춤거린다.
지휘관들은 어떻게든 병력을 앞으로 밀어 넣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잡아! 잡으라고! 뭐하고 있어!”
견장에 장식을 단 투구를 입은 지휘관은 펄쩍 뛰었다.
수성에서 가장 중요한 성벽 지키기가 초장부터 실패해버렸다.
하렌 영주가 알기라도 하면 지휘관부터 족칠 터.
그렇기에 그는 침을 튀기며 병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하, 하지만 저걸 보십쇼!”
“벌써 열 명도 넘게 죽었는데 저희가 어떻게 잡습니까?!”
페인의 정신 나간 전투력에 병사들은 접근을 꺼려했다.
병사에게 그는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지휘관들이 물러나는 이들을 베어도 죽을 게 확실하다고 여기는지 다가가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페인은 이미 전진했다.
결국 계단에 도착했다.
“안 올 거면 좀 비켜라. 거슬린다.”
“으으으!”
“좀 찔러! 이렇게, 이렇, 케헥!”
퍼어억!
창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던 자가 나가떨어진다.
그의 머리에는 칼자루가 깊게 틀어박혀 있었다.
페인은 자신이 죽인 병사의 무기를 던져서 맞췄다.
무기에 맞은 자는 머리가 뒤로 넘어가더니 즉사했다.
페인은 조심조심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 시대의 성벽은 계단도 조잡하기 짝이 없다.
경사가 무슨 미끄럼틀 수준이다.
떨어짐을 방지할 손잡이가 없으니 삐끗하면 떨어져서 죽거나 병신이 된다.
페인은 초집중을 하며 계단을 밟았다.
언제 어디서 적이 공격해올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절벽과도 같은 곳을 내려가야 했다.
어찌 보면 이곳이야말로 이 성에서 가장 뛰어난 방어시설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아아악!”
페인의 뒤를 쫓아오던 운 나쁜 적군 병사가 옆으로 떨어진다.
콰직,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는데 살아남기는 글러보인다.
다행히 페인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옆에 떨어져 죽은 병사와 다르게 무사히 바닥에 도착했다.
탁.
“후우. 뒤지는 줄 알았네.”
바닥에 발을 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페인.
그는 창칼이 날아들 때보다 방금 전이 더 긴장됐었다.
숨을 내쉰 그는 거침없이 성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페인을 막으려고 수비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신이다!”
“앞을 막으면 반드시 죽는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한 명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럿이 그런 말을 뱉었다.
“저리 꺼져.”
“으으으······!”
페인이 성큼성큼 걷는다.
이미 겁을 먹을 대로 먹은 병사들은 그의 앞을 막지 못했다.
“저것들이 뭘 하는 거야! 당장 막지 못하겠느냐?! 집사! 내 명령을 똑바로 전달해라!”
“예, 예, 그러겠습니다 영주님.”
이를 저택에서 지켜보던 하렌 영주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집사는 제 주인의 분노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착실히 전진하던 페인은 기어코 성문에 도착했다.
***
페인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보아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거인증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대개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신장을 지녔다.
때론 2미터50센티에 가까운 키를 가진 그들은 일반인과 비교하면 거인 그 자체였다.
그런 그들도 이 성문 앞에서는 작아 보일 것이다.
‘크군.’
그만큼 성문은 거대했다.
얼마나 큰지 고작해야 ‘문’일 뿐인데도 압도감이 대단했다.
아마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는 성의 수비와 상대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을 터.
그런 성문의 앞에 페인은 도착했다.
후욱. 후욱.
뜨거운 숨결이 입을 통해서 토해진다.
페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주춤거리며 눈치를 보는 적군이 있었다.
“네가 앞으로 가.”
“장난 하냐? 나보고 죽으라고?”
“젠장, 화살도 안 통하고,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수비군 병사들은 페인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몇몇 용기 있는 자가 덤볐으나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다치지 않은 자들은 죽어서 말이 없기에 조용했다.
페인은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기묘한 감각에 묘한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문과 빗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목표는 처음부터 빗장이었다.
‘어서 열어야겠군.’
이 거대한 문을 열어야 아군이 들어올 수 있다.
자신처럼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올 자는 많이 없을 것이다.
페인은 성문을 걸어 잠근 빗장에 손을 댔다.
묵직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뇌리까지 닿았다.
“거 더럽게 무겁네.”
수비군은 빗장에 손을 대는 페인을 보면서 기회를 노렸다.
“멍청한 녀석, 저건 혼자서 들 만한 무게가 아니야!”
“뭣들 하고 있느냐? 놈이 성문에서 막혔으니 바로 덮쳐라!”
수비군 지휘관들이 소리를 지른다.
페인이 빗장을 들지 못하고 멈춰선 거라고 판단한 거다.
‘무겁긴 해.’
확실히 빗장의 무게는 상당했다.
혼자서 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최소 서너 명, 혹은 그 이상이 달려들어야 움직일 정도로 무거웠다.
그러나 페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웨폰마스터의 재능을 각성하면서 신체가 놀랍도록 강인해졌다.
무기를 다루면 다룰수록, 싸우면서 강해지니 근력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렇기에 지금 이 빗장처럼.
사람이 깔리면 무게에 짓눌려 죽을 것처럼 무거운 물건도 홀로 들어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크아아아아!”
그그그그-
위를 향해 올라가는 커다란 빗장을 바라보며 수비군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페인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지만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부들부들!
페인의 팔과 다리에 핏줄이 곤두섰다.
온몸이 부들거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빗장을 던져냈다.
“크하!”
쿠웅!
빗장이 옆으로 넘어간다. 옆으로 넘어 던졌다.
길고 커다란 빗장이 넘어가자 그 방향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허둥거린다.
***
페인의 팔뚝이 급속도로 팽창한다.
범인을 넘어선 근력이 팔뚝으로 모이자 이를 이용해 빗장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크하아압!”
고함을 지르면서 빗장을 던진다.
본인 무게의 몇 배나 되는 빗장이 약간이지만 하늘을 난다.
그리고 몇 초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우웅-!
바위보다 무거운 빗장이 떨어지자 뿌연 먼지가 일어난다.
커다란 나무를 몇 년이나 잘 말려서 만든 빗장은 그 자체로 흉기였다.
부딪친 경로에 놓였던 성벽은 긁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콰르르······.
아예 일부가 허물어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성벽의 모습!
심지어 떨어지는 충격에 땅이 울리자 일부 병사는 넘어지기까지 했다.
빗장이 넘어지면서 생긴 충격은 그만큼 컸다.
돌벽과 돌계단, 건물 일부, 그리고 사람까지 전부 다!
그 경로에 놓인 영지군은 깜짝 놀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날뛰었다.
“으악!”
“어서 피하-, 카학!!?”
“---!!!”
이러한 와중에 페인은 혼란을 더했다.
바로 성문을 발로 뻥 차면서 열어젖힌 것이다.
꽈앙!
성문이 활짝 열린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혁명군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온다.
그것을 바라보던 페인이 뒤쪽의 적군을 향해 등을 돌린다.
“무기 버려. 허튼 짓 하는 놈은 죽인다.”
“저 말 듣지 말-!”
퍼억!
페인이 던진 숏소드가 지휘관의 얼굴을 꿰뚫는다.
덜덜덜!
“어거, 어거어!”
지휘관은 얼굴이 관통된 상태로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어떻게든 얼굴에 박힌 숏소드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것을 빼내도, 빼지 못해도 그의 죽음은 정해져 있었다.
털썩.
결국 지휘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에 박힌 숏소드는 더 깊게 파고들었다.
시체가 쓰러지자 페인은 재차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기 버려. 뒤지고 싶냐?”
“살려주십쇼!”
탱그렁- 탱, 탱그랑!
너도나도 무기를 버린다.
저 압도적인 광경을 보고도 느끼는 게 없다면 뇌가 없는 것이리라.
그러는 사이 아군 병사들이 도착했다.
페인은 그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무기 쥔 놈은 죽이고 벽딸 치는 놈은 내버려둬라!”
“벽딸이 뭐야?”
“난들 알겠나.”
어쨌든 병력이 우르르 몰아닥친다.
영지군은 그것을 보고도 막지 못했다.
그리하여 혁명군은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영지군은 그것을 보고도 막지 못했다.
그 누구도 저기 엎어져서 죽은 지휘관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싸움의 승기가 페인에게로 기우는 순간이었다.
- 작가의말
내일도 오후 6시 연재!
가시기 전에 선작과 좋아요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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