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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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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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 범인

DUMMY

#024




“죄송합니다, 집을 착각했네요.”


젊은 사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문을 쾅 닫았다.


이로써 9번째 허탕이다.


물약이 담긴 음료수 캔은 이리저리 튀어 다니며 제 몫을 하는 중이었지만, 운이 나쁜 건지 방문하는 곳마다 엉뚱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여자, 그다음은 키가 180이 넘는 남자, 혼자 사는 노인, 가출 청소년들···.


“···다양하게도 나오네.”


이정도면 그놈만 빼고 다 나온 거 아닌가?

초조한 기분으로 캔 속의 물약을 비워냈다.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움직이는 캔을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절할지도 모른다.


캔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뒤 쓰레기봉투에 손을 넣다가 돌연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하나 남았다.


만약 이번에도 아니면?

강원도로 출발할 때만 해도 확신에 차 있었는데, 헛걸음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불안함만 커졌다.


한동안 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캔을 바라봤다.


최선을 다했다.


눈알이 빠지도록 영상을 분석했고 거금을 투자해 물약도 만들었으며 당일치기로 강원도에 두 번이나 오지 않았던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이래도 안 되면···.


“한약방에서 포장기나 돌리지, 뭐.”



< 24 >



마지막 열 번째 원룸.


201호 앞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내용으로 보아 인터넷 방송을 켜놓은 듯했다.


쿵쿵-!


망설임 없이 201호 문을 두들겼다.

시끄러운 방송 소리가 뚝 끊기더니 이내 걸쭉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안 사요.”


웬 동문서답이 이어지더니 다시 원룸이 시끄러워졌다.


쿵쿵-!


“아래층에 사는 사림인데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얼굴 보고 얘기하시죠.”

“아이 씨, 귀찮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

170cm 전후의 키와 뚱뚱한 몸.

책상에 올려진, 내 손에 있는 것과 같은 음료수 캔.


“아래층 사는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후드 티.


모자를 벗고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렸다.

잔뜩 찌푸려있던 사내의 눈이 커다래졌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혹은 정말 일면식도 없는 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반갑다?”

“여···, 여, 여길 어떻게 알고···.”


놈이 허둥거리며 문고리를 잡았다.

물론 내가 버티고 있는 터라 닫지는 못했지만.


“나한테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당신이?”


사내의 당황한 눈이 방향을 잃고 굴러다녔다.

혹시 깡패 같은 놈이면 어떡하나 해서 힘의 물약도 챙겨왔는데, 직접 보니 방구석 패배자일 뿐이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할만한 용기도, 능력도 없다.


사내의 어깨너머로 방을 죽 훑어봤다.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 것 치고는 꽤 멀쩡한 방이었다.


“대체···.”


물어보려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나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수십만 개의 악플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쳤다.


두들겨 패도 되나?

합의금 정도야 어떻게든 마련하면···.


목구멍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어보는 게 먼저다.

두들겨 패든, 경찰에 넘기든, 이유를 들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대체 이유가 뭐야?”

“배···, 백현호가 사람 때린다! 으악!”


놈이 돌연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소리쳤다.

갑잦기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싶은 순간, 복도로 사람들이 하나둘 쏟아져나왔다.


“어? 저거 백현호 아니야?”

“야밤에 무슨 난동인지 모르겠네.”

“망했다고 이제 막 나가나 봐.”


사람들을 불러내 상황을 넘어가려는 거였구나.


실로 더럽고 치사한 계획이다.

반성은 고사하고, 끝까지 나를 매장하려는 의도가 보이니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미래백화점이고 뭐고 시원하게 한 방 꽂고 감방에 들어가고 싶다.


아마 몇 살만 더 어렸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주먹을 날리면?

그때는 나를 둘러싼 괴담들이 현실이 되고 만다.

아니, 사실 그것까지도 상관없을 정도로 화가 치솟았지만, 진짜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엄마의 한약방.

최철빈의 병원.

나를 믿어준 동창들과 강하윤···.


핸드폰 카메라가 저격수처럼 나를 노리는 중이다.

주먹질 한 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을 생각하니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도망치지 못하게 발만 잘 묶어둔다면 나머지는 법으로, 정당하게 해결할 수 있다.


복도에서의 대치가 길어졌다.


놈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듯했지만, 자기가 불러낸 사람들이 복도를 꽉 틀어막은 덕분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오랜 침묵을 깬 건 도도한 목소리였다.


“백현호 씨.”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고개를 돌렸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곱절은 커졌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봤는데···.”

“미래백화점 사장이잖아!”

“강하윤?”

“실물이 연예인 저리 가라네.”

“핸드폰 좀 치워 봐! 나도 보게!”


소란 속에서 강하윤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뒤로는 형사들과 최기현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현관에 서 있는 놈의 얼굴을 살폈다.

귀가 있다면 자신이 미래백화점 주가를 얼마나 떨어뜨렸는지 알 테고, 귀가 있다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미래백화점 사장이라는 것도 알 터였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겁을 집어먹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연예인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강하윤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이질감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이놈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체 왜?


딱 보니 평범한 30대 악플러 같은데, 경찰도 재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다가온 강하윤이 가만히 사내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건 강하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강하윤의 입이 열렸다.


“너는 화면이 더 낫네.”

“예?”

“블랙박스는 흐릿하거든.”

“초면에 말을 좀 막 하시네.”


강하윤이 대뜸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형사와 최기현이 놀라서 강하윤을 말렸다.


“합의금은 따로 까주면 되잖아?”

“사장님,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 자세한 얘기는 서에 가서 하시죠.”


형사가 급히 놈을 끌고 갔다.


그보다 강하윤도 정상은 아니구나.

형사 앞에서 용의자를 패려고 할 줄이야.


* * *


오후 11시, 서초경찰서.


형사가 피곤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저 형사도 고생이네.

어쩌다가 미래 그룹 막내딸이랑 엮여서···.


“이름.”

“박준영이요.”

“직업.”

“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토박이인 놈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쓴 거야? 백현호 씨랑 무슨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박준영이 굽은 어깨를 으쓱했다.


“재밌잖아요.”


인간이 맞나 싶은 뻔뻔함이다.

박준영은 이미 모든 걸 포기한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자기가 한 짓을 부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길고 지루한 신문이 이어졌다.

그 뒤로 이어진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박준영은 나랑 눈곱만큼도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사연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충청남도 근처도 와본 적이 없는 놈일 줄은 몰랐는데···.


졸업앨범도 우연히 얻었다고 했다.

대체 어떤 우연이 있었길래 충청남도 서산에 있던 졸업장이 강원도 강릉까지 흘러가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딱히 중요한 게 아니라 묻지 않았다.


인생이 지루한 공장 직원.

박준영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원한 관계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다.


박준영은 말끝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감정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었으며 당연히 나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형사가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결국은 관심받고 싶어서 그랬다?”

“네, 죄송합니다.”


짧고 덤덤한 대답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중얼댔다.


“나한테는 반말하지 말라고 지랄 대더니···.”


박준영이 슬쩍 나를 쳐다봤다.

역시나 반성하는 기색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저 사람 좀 내보내면 안 돼요?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쫑알대서 거슬리잖아요.”


쫑알대서 거슬리잖아요?

울컥하며 일어나려는데 순간 강하윤이 내 다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강하윤이 나를 진정시키고 통화를 이어갔다.

경찰서에 온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통화 중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내일 나갈 기사의 내용과 미팅 일정들을 조율하는 듯했다.


형사가 다시금 키보드를 두들겼다.


“너 때문에 미래백화점 측 피해도 장난 아니야. 이거 끝나면 가서 싹싹 빌어. 강 사장님이 봐주실 줄은 모르겠다만.”

“주식 떨어진 건 갑질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나중에 법정 가서도 꼭 그렇게 얘기해.”


한창 신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경찰서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한 명은 최기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였다.


두 사내가 다가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강하윤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호 씨도 일어나죠.”

“예?”

“우리가 있어 봐야 도움 될 것도 없고. 여기 법무팀장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미래백화점 법무팀장이었구나.

어쩐지 태가 남다르더라니.


그대로 경찰서를 나가려던 강하윤이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박준영 쪽으로 다가갔다.


“이름이 박준영이라고?”

“네.”

“백현호 씨가 좀 모자라 보여도 우리 백화점의 희망이었거든. 너는 그걸 망쳐버린 거고.”

“아하.”

“할 말 없니?”


박준영이 가만히 강하윤을 바라봤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당당하고 빤한 눈빛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한 번만 선처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사과는 받을게. 선처는 없고.”

“저 공장 다니면서 공무원 준비 중이에요. 손해배상 물어낼 돈도 없고, 빨간 줄 그어지면 공무원 시험도 못 볼 텐데···.”

“그래서?”

“저 정말 한강에서 뛰어내릴지도 몰라요.”


박준영이 기계적인 표정으로 애원했다.

보는 나도, 형사도, 심지어는 최기현과 법무팀장마저도 황당한 표정을 했다.


강하윤이 가볍게 박준영의 어깨를 두들겼다.


“한강 물 차가워. 핫팩 꼭 챙기고.”


강하윤의 입꼬리가 돌연 섬뜩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박준영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고, 박준영의 표정이 처음으로 창백해졌다.


“그럼 수고하세요.”


* * *


경찰서에서 나온 박준영이 급히 택시를 잡았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무턱대고 그를 잡아둘 수 없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택시에 오른 박준영이 초조하게 손톱을 씹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강하윤이 좀 전에 속삭였던 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네 뒤에 있는 놈한테도 잘 숨어있으라고 해.’


강하윤은 자신이 사주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 사주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듯했지만, 강하윤 정도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서울을 한참이나 벗어나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어느 고급 일식집이었다.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간 박준영이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방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지그시 눈을 찌푸렸다.


미래 생명 상무이사, 조석준.

미래 식품 연구소장, 남춘태.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미래 전자의 사장이자 미래 그룹의 장남인 강대현.


강대현이 지그시 눈을 찌푸렸다.


“아, 안녕하십니까! 박준영입니다!”

“국민 영웅께서 오셨네.”

“···예?”


강대현이 뒤를 보라는 듯 슬쩍 눈짓했다.

박준영이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뭘 믿고 그렇게 까부나 했더니···."


언제부터, 대체 어떻게 따라온 건지 뒤에는 씩 웃고있는 백현호가 있었다.


“까불만했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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