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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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 아가미 물약

DUMMY

#012




쏴아아-!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봤다.

어제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싶더니, 점심때부터 미친 듯이 퍼부어대는 중이었다.


“아, 맞다.”


창문을 닫고 얼른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처럼 손님이 없는 날에 미리미리 재료를 구해두어야 했다.


게임에 접속해 곧장 제조법 창부터 켰다.

가장 위에는 현금 1천만 원에 육박하는 ‘부활의 물약’ 제조법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제조법을 누르자 재료와 함께 간단한 설명이 떠올랐다.


【 죽음을 1회 견딥니다. 】


“음?”


죽음을 견딘다는 게 무슨 소리지?

죽기 직전에 딱 맞춰서 쓰라는 뜻인가···.

잘만 쓰면 상상을 초월하는 물약이 될 것 같은데, 설명이 애매모호 한 게 문제였다.


그냥 아가미 물약처럼 【 아가미가 생깁니다. 】 하면 얼마나 직관적이고 좋아?


불만스럽게 재료들을 확인했다.

어제 유민영과 전화하느라 미처 재료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참이었다.


“우선 맨드레이크 7000뿌리랑···.”


잠깐만.


“며···, 몇 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다시 봤다.


【 맨드레이크 0 / 7000 】


“미친 거 아니야?!”


맨드레이크가 아무리 흔한 약초라고 해도 7000뿌리나 들어간다면 말이 달랐다.


어림잡아 뿌리당 100골드로 계산해도 70만 골드···, 그러니까 재료 하나에 현금 50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뜻이다.


매물도 문제였다.

연금술사가 워낙 비인기 직업인 탓에 ‘약초류’는 언제나 매물이 부족했다.


그런데 맨드레이크 7000뿌리?

오늘부터 꾸준히 사도 다 모으려면 1개월은 족히 걸릴 터였다.


“괜히 샀나···.”


짜증스럽게 머리를 넘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가지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넘어가고.”


마우스 휠을 내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한 욕을 꾹 참았다.


【 피닉스의 깃털 0 / 10 】


이번에 새로 생긴 보스가 피닉스다.

그놈이 주는 아이템이 피닉스의 깃털이었고, 이건 검색해봐서 알고 있다.


획득 확률이 약 10% 남짓.

심지어 이건 쓰이는 곳도 많아서 가격이 지금도 오르는 중인 재료였다.


마지막에 봤을 때가 얼마였더라?

개당 10만 골드가 넘었던 것 같은데.

꼬투리 떼고 10만 골드라고 해도 무시 못 할 금액인 건 확실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계산기를 두들기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들어가는 재료의 반도 안 봤는데 현금으로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미련 없이 마우스를 놨다.

애매하게 비쌌으면 온몸을 비틀어서라도 샀을 것 같은데, 이렇게 답도 없이 비싸니 오히려 포기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나중에 싸지면 사지, 뭐.”


컴퓨터를 끄고 제조실을 나갔다.

한약방 밖은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시커먼 하늘로 천둥 번개가 우르릉거리는 것을 보니 당분간 그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건 미친 짓이고···.

엄마도 9시는 되어야 올 텐데.


고민하다가 몸을 돌렸다.


“물약이나 만들어야지···.”



< 12 >



능숙하게 국자를 저었다.

오늘의 주방은 마당이 아니라 창고였다.


“어디 보자···, 후!”


회복 물약을 한 국자 떠서 식힌 다음 날름 목구멍에 부었다.


“으음!”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익숙한 생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나도 모르게 몇 국자나 퍼먹다가 흠칫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 중독되는 거 아니야?”


아직까진 문제없는 것 같다만.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물약을 빈 통에 옮겼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비슷한 작업을 반복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 건 8시가 막 넘어갈 즈음이었다.


[ 아들! 오다가 사고 나서 좀 걸릴 것 같은데! ]


“무, 무슨 사고?!”


[ 가벼운 사고야. 빗길에 미끄러져서. ]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창고에서 나왔다.


“엄마는? 괜찮아? 다친 건 아니고?”


[ 그냥 가드레일에 살짝 박은 거야. 아니지, 이 정도면 박은 게 아니라 긁힌 거네. 아무튼, 안 다쳤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다행이네. 알았어, 먼저 집으로 가 있을게.”


전화를 끊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창고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구멍 뚫리던 것처럼 쏟아지던 비는 잠깐 숨을 고르는 것처럼 잠잠해져 있었다.


“다시 쏟아지기 전에 가야지.”


창고로 들어가서 솥을 정리하는데 문득 구석에 놓아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재료는 다 쓰고 없었다.

아니지, 정확히는 딱 하나 남긴 했다.


“아가미 물약이라···.”


대충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지는 기분이다.

해적 만화에 나오는 그놈들처럼 되는 거 아닌가?

고민스럽게 가방을 바라보다가 결국 장갑을 꼈다.


“언젠가 만들기는 할 거잖아?”


심지어 아가미가 달리는 물약이라면 엄마가 없을 때 만드는 게 좋다.


가방으로 손을 넣고 차근차근 재료들을 떠올렸다.

아가미를 만들어내는 물약답게 들어가는 재료는 하나같이 비린내가 가득한 것들이었다.


삭힌 생선, 해초, 민들레, 늪바위 이끼,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나 가루까지.


하나하나 꺼내어 솥에 넣고 곧장 물을 부었다.

그래도 삭힌 생선 빼고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 냄새다.


한참을 끓이니 흉측한 비주얼의 물약에 점점 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가미 물약은 깊은 바다를 닮은 색이었다.

검푸른 색의 액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들었으면 먹어는 봐야지.”


국자로 물약을 떠서 호로록 마셨다.

목구멍으로 비릿한 액체가 넘어가는 순간 귓불 뒤가 근질근질했다.


“응?”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귓불 뒤쪽으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서 가늘게 갈라진 틈이 느껴진다.


“이게 아가미인가 보네.”


묘하게 불쾌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양반이다.


크기가 작아서 만지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르겠다.

고개를 두리번거려 양동이를 찾았다.

물약 만들다 남은 생수를 모조리 양동이에 때려 붓고 망설임 없이 머리를 박았다.


“흡!”


셀프 물고문을 하는 기분이긴 했지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물에 머리를 완전히 담근 채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쉬익-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귓불에 떨림이 느껴졌다.


“오!”


숨이 쉬어진다.

입에서 보글보글 산소가 빠져나가는 게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숨은 쉬어졌다.


“푸우!”


양동이에서 얼굴을 빼고 고개를 털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솥 안의 물약을 바라봤다.


“비상용으로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겠네.”


* * *


1시간 전, 마을회관.


유민영이 바쁘게 카메라를 챙겼다.

촬영팀의 문지훈이 놀라서 다가왔다.


“카메라까지 챙겨서 어디 가세요?”

“인서트로 쓸 만한 것 좀 따오게. 겸사겸사 동네 구경도 좀 하고.”

“예? 비가 이렇게 오는데···.”

“원래 시골은 비 올 때가 진국이야.”


유민영이 밝게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다녀올게!”


회관을 떠난 유민영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유민영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짓누르듯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아니면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어깨가 무거웠다.


“이거라도 해야지···.”


이런 날씨에, 그것도 피디가 직접 인서트를 따는 경우는 흔치 않았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자당리.


정취도 좋고 사람들도 정이 넘쳤지만, 이것만으로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송에는 화제성이 필요하다.

아무리 농촌 다큐멘터리라도 화제성을 무시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유민영은 그 화제성을 백현호에게서 찾았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듯했지만, 어지간한 아이돌 뺨치는 외모에 키도 훤칠한 인간.


누구보다 도시에 살 것 같은 인간이 시골과 어우러지는, 그 오묘한 그림이 좋았다.


“산삼 얘기는 안 하겠다고 하면···.”


빗속을 헤매던 유민영의 걸음이 멈췄다.


‘방송국은 참 든든하겠네요.’


백현호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시청률을 위해서면 사람 트라우마까지 들쑤시는 피디님이 계시니까.’


이건 단언컨대 피디로 살면서 들은 가장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말이었다.


시청률에 미쳐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것 따윈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자신만 바라보는 수십 명의 스태프를 위해서라면 백 번이고 그럴 수 있었지만···.


“피디로서 실격이네.”


시청률에 목숨을 걸기 전에 유민영은 피디였다.

백현호는 그런 피디의 기본 소양을 의심하고 있었다.


한동안 비를 맞고 서 있던 유민영이 고개를 들었다.


“힘내야지!”


패기 하나로 20대에 프로그램을 맡았다.

어리광 같은 건 진즉에 다 뗐다.

무너지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유민영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유민영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이건 오프닝에 쓰기 좋고···, 이건···.”


잠깐 그치는 듯 보이던 비가 다시금 쏟아졌지만, 유민영의 의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창 걷던 유민영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콰아아-!


“저기가 그 하천인가?”


유민영이 멍하니 하천을 바라봤다.

흙빛의 물줄기가 마치 성난 토룡(土龍)처럼 하천을 휘감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유민영이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이런 작은 동네에, 이렇게 위압감 넘치는 물줄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서트로 쓰기 아까울 정도네···.”


유민영의 카메라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녀도 출신만 따지자면 시골이었다.

옛날부터 비는 생명을 품고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그게 뭘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비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비단 자라는 초목이뿐만이 아니라 이런 하천에도.


사위를 집어삼킬 듯 파괴적이면서도 일정 범위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 자비로움···.


예능 피디 자리도 거절하고 이런 농촌 다큐멘터리를 맡은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런 장관을 카메라가 아닌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유민영은 피디이기 이전에 예술가이기도 했다.

고민하던 유민영이 가방에서 삼각대를 꺼냈다.


카메라를 땅에 박아 단단히 고정한 뒤, 유민영이 천천히 하천 근처로 다가갔다.


“······.”


백현호의 경고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후였다.

그저 모든 걸 휩쓸어버릴 듯 넘실거리는 거대한 생명력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하천에 다가서는 순간,


“어어?”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푹 꺼졌다.

눕혀진 풀로 덮여 미처 확인하지 못한 곳이었다.


* * *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친 줄 알았던 비가 어느덧 다시 쏟아지는 중이었다.

핸들을 집 방향으로 꺾으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설마.”


이런 폭우에는 도시보다 시골이 더 위험하다.

자당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비 오는 날 ‘자당천(慈棠川)’ 근처로는 얼씬도 안 했다.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니까.

다만, 언제나 사고를 치는 건 도시에서 온 놈들이었다.


“작년에 빠진 놈들도 서울에서 오지 않았나?”


유민영에게 가지 말라고 경고도 한 참이다.

설마 이런 날씨에, 굳이 자당천까지 기어갔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에이, 씨.”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쏟아지는 비를 뚫으며 자당천으로 향했다.

맑은 날에는 호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잠잠한데, 비만 오면 그렇게 지랄 맞은 하천이다.


처음에는 나도 멋있어 보였다.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몇이나 잡아먹었다는 것을 안 뒤로는 정이 뚝 떨어졌지만.


자전거를 몰아 자당천 근처로 들어섰다.

문득 비닐 덮인 무언가가 눈에 들어갔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끼익 멈춰 섰다.


“이거 카메라 아니야?”


가만 보니 전원도 켜져있고 방향도 자당천 쪽이었다.

의문을 품기도 전에 외마디 비명이 귀를 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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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3 - 심청이들 +16 24.07.26 9,552 220 12쪽
» 012 - 아가미 물약 +14 24.07.25 9,915 220 12쪽
11 011 - 무례한 피디 +13 24.07.24 10,470 226 12쪽
10 010 - 천만 원짜리 물약? +12 24.07.23 10,481 2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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