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삼거리 전쟁 (5)
45. 삼거리 전쟁 (5)
삼거리 전쟁.
이계인 이주 후 인천경찰청 산하 이계인 관리국 겸 이계인 종합 대응 경찰서가 있는 통칭 ‘삼거리’에서 오크 종족이 설립한 건설 기업 ‘적송’과 인천 조폭 청두파의 대규모 무력 충돌이 발발한 사건.
총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1세대들과 오크라는 종족 특성상, 당연히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어도.
결과로는 ‘시위’로 남았을 뿐.
경찰 개입은 없었다며 일축. 민간인들이야 나쁜 놈들끼리 서로 싸웠고 관계자들은 경찰에 잡혀간 것으로 알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불만이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주 후 이렇게까지 거리가 황폐해진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이때, 정부는 ‘대통합의 계절’을 시행하겠다 선언.
삼거리를 이계인과 인간 상호 평화 교류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며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거리 자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각종 마약 및 폭력 사건이 끊이질 않는 유흥과 향락의 거리로 변해버리긴 했지만.
“아무쪼록 그때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정우가 반장을 만나기 며칠 전.
유 팀장은 차혜정에게 말을 이었다.
“대통합의 계절이라는 명목을 만들기 위해 벼르고 있던 일부 정치인들에게 마치 짜고 친 것처럼 터진 조직 폭력배들 사이의 전쟁,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저 명목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표를 얻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부패했고 이 거리가 온갖 차별이 만연하고 서로 섞이지 못한 회색빛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이를 막으려던 자들도 경찰, 적송, 그리고 그사이에 한 명씩 있었다.
“나와, 반장 그리고······.”
“정산이군요.”
“그래요.”
물론 서로의 이해관계는 아주 달랐다.
정산은 정강을 아예 적송에서 밀어버리려고 했고. 반장은 무의미한 전쟁을 없애고 싶었으며. 유 팀장은 혈석 연구 결과가 아예 사라지길 바랐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어차피 명목만 필요한 것 아니었겠는가.
그저 청두파를 쓸어버릴 명분이.
“그래서 어떻게 되셨나요?”
“반장은 내게 정보를 넘겼다는 빌미를 잡혀 좌천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이세계 전담팀을 꾸릴 수 있었지만. 아, 또 물론 정산은 정강을 몰아냈었고요.”
뜻이 맞지 않았기에 당연하듯 서로 엇갈린 결과.
그 사이에서 정강은 정부의 대통합 사업의 건설권을 획득, 조직 폭력배에 불구하던 놈들을 대기업으로 키워버렸고 반장은 인력 사무소나 운영하는 처지가 됐다.
“저는 그 일에 일말의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계획했다.
‘벌목 사업’을.
“적송을 뿌리째로 흔들어 뽑아버리는 것이 이세계의 악의를 없애는 지름길일 테니까.”
청두파만 사라져선 안 된다.
아니, 사실 청두파는 불이 붙은 작은 폭탄일 뿐이지, 실제로 처리해야 할 건 이 사회를 좀먹는 암덩이 그 자체인 적송일 테니.
“그들을 그대로 둬선 안 됩니다. 지금 이 나라의 뒷세계를 통합하고 다른 나라까지 뻗어가는 이 부패를 멈출 수만 있다면······.”
오래 준비한 계획이었다.
오크들만의 기업인 그들의 안에 내부자를 심어 조폭이 아닌 기업 자체로 무너뜨리는 것.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면 통제하는 것.
오크를, 인간이.
“하지만 실패하셨죠.”
“······.”
하지만 차혜정의 말대로 지금이 바로 그 결과였다.
유 팀장은 정우를 뿌리로써 침투시키는 것에만 급급했고 결국 그를 잃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를 다 갖지 않았으니 이런 결과를 맞는 것도 당연하리라.
“···나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지금 그가 완전히 실패했더라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신은 할 수 있을 겁니다.”
유 팀장은 차혜정에게 희망을 보고 있었다.
“처음, 그리고 큰일까지. 그의 모든 것을 함께했고 신뢰 관계를 적립했으며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간. 차혜정 주임, 당신뿐일 겁니다.”
차혜정은 이 말을 듣고, 정우와 같이 생각했다.
실패한 상관이 또다시 바로 실패한 그 방법으로 정우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정우를 아무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건 대리님께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요?”
그 말에 유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가진 박경석의 녹음 파일을 건네 주며 말을 이었다.
“그의 이름은 정우입니다.”
차혜정은 녹음 파일을 건네 주는 그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림자가 반쯤 져서 정확히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치 폐수로에 뜬 기름방울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그럼, 이제 팀장님은 어쩌시려는 겁니까?”
약간의 원망이 담긴 목소리. 유 팀장은 자신이 미움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누군가는 오물을 뒤집어 써야죠.”
그는 그렇게 그림자, 더 깊은 아래로 들어갔다. 텅 빈 공간으로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장과 정우 씨가 함께 있을 때 정우 씨가 반장에게 너무 붙으면 전해주세요.”
또각-
“질투 나니까.”
차혜정은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주변 건물에 숨어 있다가 가는 게 좋을까요?”
“아서라, 경찰 놈들이 주변 통제를 안 하고 있을 것 같진 않아.”
“아, 또 단순 시위 정도로 가려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 또 이 거리에 묻을 생각일 테니.”
정답게 앉아 내일을 대비하고 있는 반장과 정우의 표정을 보니 그 의미가 이해가 갔다.
오물을 쓰겠다는 말의 의미를.
‘적이 필요해.’
개 둘이 서로 싸우고 있다가도 근처에 이리 한 마리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을 먹고 싸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 팀장은 지금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이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정우 대리님······.’
정우는 경찰일지, 아니면 깡패일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망설였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애매한 상태였으리라.
이 상태에서 만약, 유 팀장이 악역이 되어 이 이야기에서 퇴장하게 된다면.
‘아예 그쪽으로 갈 테니까.’
정우는 쉽게 선택하리라.
그렇게 적송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완전히 적송의 인간이 될 것이고 그 후엔 자신이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
“뭐해?”
그가 경찰 끄나풀이라는 약점을 쥐고 자신이, 그를 흔들기만 하면 될 테니까.
“아닙니다.”
“잘 들은 거 맞아?”
“예, 그럼 장비 챙겨서 내일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차혜정은 고깃집을 나섰다.
정우와 반장이 얘기를 끝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역할이 감시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러면 내일 봐.”
정우는 웃으며 차혜정을 보냈고.
“하아, 그래 한번 해보자 시발.”
열두 시.
그렇게 내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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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지나치게 한산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보였다.
“후우.”
차혜정이 마련해 준 장비를 몸에 두르고, 건물을 나섰다.
삼거리 쪽으로 향하다 보니 이우람이 어디선가 다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왜, 또 오줌이 존나게 마려웠어?”
“지랄은. 이거 좀 가져오느라.”
그는 상자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반장님이 그에게 따로 시킨 일의 정체였다.
“그 여자는?”
“이미 경찰서 내부에 있어. 우리가 뚫고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점점 더 누군가들이 따라 붙는 게 느껴졌다.
다들 박경석이 출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방향이긴 했지만, 또한 다른. 명확한 방향으로 걷는다.
“박경석을 친다.”
전쟁이 벌어지고 소란이 생겨 피 튀고 뼈가 부서지는 사이를 뚫고 경찰서 내부로 들어간다.
물론 그전에 정강이 보이면 정강을 죽인다.
하지만, 좀 더 좋은 건 역시 정강이 경찰서 내부까지 따라왔을 때 죽이는 거긴 하지.
‘단둘이 있을 때, 귓속말로.’
스킬을 써서라도 반드시.
“왔다.”
그렇게 인파를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 닿았다.
그들의 뒤로는 버스로 길을 막은 채였고, 왼쪽 거리엔 청두파가. 오른쪽 거리엔 적송의 오크들이 있었다.
“정강은 안 보이는데?”
“사장님은 나중에 오겠지, 시발.”
아직, 아직이다.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들어가는 편이 확실하다.
다 죽이고 치는 게 아니라면 이우람과 나 둘이서 충분할 테니까.
“후우.”
“왜 떨리냐?”
“여기까지 와서 무슨······ 넌? 반장님이랑 얘기는 했어?”
“반장님께선 정강 쪽 움직임을 보다가 따라붙으신다고 하셨다. 네 말 따라 자기가 어떻게든 경찰서 내부까지 데려갈 거라고.”
이런, 고깃집에서 살짝 언질하긴 했지만, 반장님께선 정강을 경찰서로 데려가는 역할인 모양이었다.
“그럼 충분하지.”
그렇다면 됐다.
반장님은 믿을 수 있으니, 박경석을 치고 정강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으면-
“아아.”
그때였다.
“박경석······.”
지나치게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그냥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처음 보는 실물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한 사내가 임시로 만든 부스 위로 올랐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경찰에 참고 조사를 나온 신분이기 때문에 그를 구속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깡패다 보니 수갑은 찬 모양이었다.
‘그래, 빼내기 전에는 일단 갇혀야 할 테니.’
경찰도 보는 눈이 두렵긴 했으리라.
그래서 이런 쇼를 부리는 거겠지.
그리고 그 쇼에 부응하듯 경찰에서 사전에 모은 기자들이 부스 아래에서 질문을 이었다.
“조직 청두파는 해산된 겁니까?”
“적송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해 자수하십니까?”
모두 허상뿐인 질문이었다.
나는 그 유치한 쇼에 더는 그 어떤 감상도 달고 싶지 않았기에 이우람을 툭 쳤다.
“가자, 여기서 나는 청두파 쪽으로, 너는 적송 쪽으로 붙어서 척하면서 들어가는 게 더 편할······.”
“아아.”
그때였다.
박경석은 마이크에 목만 쭉 뻗은 뒤 그 갈라진 음성으로 직접 말했다.
“다들 궁금한 것은 따로 있으실 텐데, 이상한 것만 물어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웅성거림이 멎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로 인해.
“제가 알아낸 혈석 제조법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
“혈석은, 이계인이 스킬을 사용할 때 죽이면 확실하게 채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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