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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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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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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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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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돈이 뭐길래

DUMMY

수완은 한켠에 놓여있는 단도를 집어 들고 멧돼지 앞에 섰다.


‘어떤 요리를 해야할까?’


이곳엔 사실상 조리도구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소금은 있어서 다행이야.’


수완은 산적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상당히 예민해져 있어.’


천상의 맛을 약속하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던 돼지 족발이 한순간에 역겹게 변해 토악질을 자아냈다. 아마 평생을 육식하지 않고 버텨낸 스님도 인내에 끈이 끊어졌을 거다.


수완이 두목에게 말했다.


“솥뚜껑이 있습니까?”


그 정돈 있겠지? 하지만 예상과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없다.”

“네?”

“솥은 있어. 하지만 뚜껑 까진 비싸서 사지 못했어.”

“...흠. 그럼 가능한, 두께가 얇으면서도 넓적한 돌판을 구해다 주십시오.”


산적이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때리려고 했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야? 엉?”

“씁! 아가리. 해줘.”


두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갈했다. 어지간히 먹고 싶은지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수완이 일 잘해 보이는 산적 둘을 가리켰다.


“거기.”

“우리?”

“그래, 이쪽을 파내라. 화로를 만들 거야.”


수완은 바람이 잘 통하는 적당한 곳을 골라 땅을 파내도록 지시했다.


“돌판이 오거든 깨끗하게 씻어서 불에 달구고 기다려라. 달궈지는 데 꽤 오래 걸릴 거야. 농땡이 피우면 알아서 해.”

“두목?”

“해줘라. 배고프다.”


일반인들은 숯불에 구워내는 고기가 최고라고 착각한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향긋한 숯 향이 고기 특유의 잡내를 가려주니까.


하지만 숩불직화로 제대로 요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불 조절이 쉽지 않기에 숯검댕이로 만들기 십상이다. 


반면, 돌판은 달구기가 어려워 그렇지, 한번 달궈지면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 어렵지 않게 최상의 고기 맛을 낼 수 있다.


‘괜히 솥뚜껑과 돌판을 양대 산맥으로 치는 게 아니지.’


그러는 동안 수완은 멧돼지를 반으로 갈라 정육에 들어갔다.


“으...”


전생의 주방에서는 피를 쫙 빼 부위별로 들어오는 원육만을 다뤘기에, 피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멧돼지의 비릿한 육향이 수완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후~ 후~


수완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능숙한 솜씨로 정육을 시작했다.


‘구조를 이해해야 쓰임도 이해할 수 있는 법.’


수완의 요리 스승의 지론을 떠올리며 칼날을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두목은 신기한 듯 물었다.


“솜씨가 제법이야? 객잔에서 보조일이라도 했나 보지?”

“보조? 주방장이었죠.”


수완이 코웃음을 쳤다.


“어린놈이 허세가 대단하네. 그래서 어떤 요리를 할 셈이지?”

“···”


수완은 대답 대신 구워낼 부위 분해에 몰두했다.


“어이, 내 말이 우습나?”

“기다려요. 다 끝나가니까.”


수완은 돼지 뱃살에서 성인 등짝만한 원육을 집어 들었다.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어 악조건 속에서도 깊은 풍미를 낼 수 있는 부위. 대한민국 최애 돼지고기.


바로 삼겹살 되시겠다!


“맛없으면 오늘부터 최수완이 아니라 삼수완이라고 부르시오.”


수완은 삼겹살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은 오돌뼈가 있는 부위를 잘라 돌판 앞으로 가져갔다.


물을 떨어트려 관찰했다.


‘충분히 달궈졌군.’


물방울이 퍼지지 않고 단단하게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증발하였다.


삼겹살을 굽기에 불판 최적 온도는 200~220도이다. 고깃집처럼 온도계가 있다면 좋겠으나,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니 경험을 살린 것이다.


수완은 미리 두툼하게 썰어 놓은 삼겹살 두 덩이를, 다른 한쪽에는 대파와 마늘을 올렸다.


치이익-


소낙비와 비슷한 기분 좋은 소리.


“오오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환호했다.


가장 먼저 구워낼 부분은 지방층과 콜라겐으로 이뤄진 껍데기. 자칫 제대로 익지 않으면 물컹는 식감이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


“다 된 건가?”


두목이 보챘다.


“아직.”


수완은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짧게 답했다.


치이익-


"다 익은 것 같은데?


덩어리 고기의 앞뒤 위아래, 사면 모두 노릇노릇해졌다. 수완은 돌판에 대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누구는 스테이크처럼 통으로 굽고 상온에서 레스팅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수완의 지론은 한입 크기로 잘라 모든 면을 노릇노릇 구워주는 조리법이 지방이 많은 삼겹살에는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도톰하지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삼겹살 육면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갔다. 


“이제 먹어도 되지? 응?!”


두목은 더 이상 참기 힘든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수완은 가장 잘 익은 두 점을 두목 앞에 밀어주고 오른팔을 백조처럼 만들어 그 위에 소금을 흘려 뿌려줬다.


팔뚝을 따라 흰 소금 알갱이가 흘러가 삼겹살에 안착했다. 다소 심심한 돼지고기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리라.


“오!!! 연출까지 화려하군. 냄새는 합격.”


두목은 침을 한번 꼴깍 삼켜 식도를 청소하고 꼬순내를 풍기는 한점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


눈은 커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씹는 걸 멈출 수 없다. 한 점의 고기는 다음을 부른다.


두목은 미식가라도 되는지 감평을 늘어놓았다.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해. 부드럽고 촉촉해! 어떻게 이런 맛이.”


두목이 두 번째 조각에 젓가락을 가져 대려 하자 수완은 같이 굽던 파를 올려주었다. 상추 같은 쌈 채소가 입을 씻어 줄 수 있으면 더 좋겠으나 여의치 않으니 구운 대파로 대신했다.


“오!!! 달다 달아!! 허허허 어떻게. 진짜 신기해.”


수완은 눈치 빠르게 백주를 가져와 한잔 따라주었다.


“크~ 완벽하군.”


두목은 입을 헤벌쭉 벌린 채 쉬지 않고 젓가락질했다. 어찌나 몰두했던지, 부하들이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바라보고 있는데도, 단 한 점도 주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치이익-!


수완은 고기가 끊길세라 다른 덩이를 올렸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돌판에 이질적인 붉은 빛이 올라오니 그제야 두목은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고 섰어? 너희들도 달려들어.”

“감사히 먹겠습니다. 형님.”


산적들은 너도나도 눈치 보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미쳤어! 진짜 같은 고기라고?”

“이렇게 맛난 고기를 오적이 놈이 망친 거야?”

“세상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죽여주랴. 에헤헤”


고기 다섯 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 구워. 더! 더!”


산적들은 연호했다.


그런데,


“오잉? 이 자식 어디 갔어. 사라졌는데요.”

“이 병신 같은 놈들, 그만 먹고 찾아!”


두목은 고함을 지르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4화. 돈이 뭐길래


혼란을 틈타 도망쳤다. 계획 하에 움직인 건 아니었지만, 기회가 보여 거의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그 상황에서 망설이면 고추 떼야지.’


이 산은 기이했다. 높이 올라 있는 건 분명했지만, 산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우거진 수풀, 들쭉날쭉한 바위 산과 가파른 언덕이 어찌나 많은지 잠시도 평지를 걷을 수 없었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덕분에 아직 들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쥐새끼 같은 놈 어디로 숨어든 거야.”

“잡히기만 해봐. 따먹어 버릴 거야.”


산적들의 욕지거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단검이라도 가져오길 잘했어.”


수완은 밤새도록 수풀을 헤치며 무작정 달렸다. 원칙은 단 하나, 산적들과 멀어진다. 이쪽으로 가다 사람 소리가 들리면 반대로 가고 반대로 가다 산적이 보이면 몸을 숨겼다.


그러나 포위를 뚫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산적들은 다수인데다가 지리까지 빠삭했으니 길이란 길은 모조리 틀어 막고 있었기 때문. 그 탓에 길이 아닌 곳으로만 갈 수 밖에 없었다.


“헉, 헉 물 한 모금 먹으면 소원이 없겠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체력이 소진해 머릿속이 멍해졌다. 산적에게 잡히는 것보다 탈수가 일어나 먼저 세상을 하직할 것 같았다.


졸졸졸~


마침 물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니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찾을 수 있었다.


“까오!!”


그대로 얼굴을 처박고 물을 마셨다. 전율이 느껴졌다.


꿀꺽꿀꺽


“으아~ 시원하다.”


오늘 마시는 두 번째 물.

머리가 띵해질 만큼 시원하다. 물배가 채워져 딱 붙었던 뱃가죽도 부풀었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뜨거워진 몸을 식히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때,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계곡을 따라가면...”


한때 유행했던 생존 TV쇼『 인간 대 자연 』, 거기서 보면 생존왕은 늘 물길을 따라 걸었고 그 끝에는 언제나 마을과 닿아있었다. 수완은 스스로가 기특해, 한쪽 볼을 톡톡 토닥였다.


‘넌 천재야! 후후’


한번 머리가 트이자 좁아진 시야도 트였다. 수완은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사방을 살피며 걸어갔다.


‘오!!!’


행운이 다시 한번 찾아온 걸까? 저 아래까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을 찾을 수 있었다. 수완은 자리에 납작 엎드려 어느 쪽으로 가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했다.


제법 형태를 갖추고 있는 마을, 말을 타고 다니는 군관들, 동이 트지 않았지만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는 농부들이 보인다.


아무리 산적이라 할지라도 마을까지 들어와서 칼부림을 벌이지는 않겠지.


“저쪽으로 움직이자.”


몸을 일으키려는 그 순간,


바스락 크음~


???

‘산적?’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었다. 수완은 전속력으로 달리기 위해 허벅다리 근육을 긴장시키고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그런데,


“꾸울 꾸울~”


거기엔 사람 눈 대신, 짐승의 푸른 눈빛이 희번덕였다. 수완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메, 멧돼지다.’


요리한 멧돼지에 두배쯤 되는 덩치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니는 공포감을 더했다. 상상력을 가미해 추정해보자면 어미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산적들보다 더한 위험이었다.


“착하지. 그대로 있어 줘.”


‘바위 아래로 몸을 구겨 넣자. 거기까지 쫒아오진 못하겠지.’


수완은 살금살금 소리 나지 않게 옆으로 움직였다.


커어엉~ 커어엉~


“어어. 조용히 갈께... 제발, 오지 마. 오면 이 아래로 뛰어내린다.”


수완이 멧돼지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성난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급기야 앞발로 땅을 긁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어떡하지. 젠장 망할 다리. 이번에도 움직여주지 않겠지.’


어이없게도 자살한 주제에 살고 싶었다.


두구 두구 두구~


멧돼지는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멧돼지가 성이 나면 호랑이보다 무섭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다. 마치 커다란 벽이 덮쳐 오는 듯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번 생도 지읏 같은 마무리구나...’


그때,


쉭-


꾸웨엑~~!


뭔가 긴 것이 쏜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멧돼지는 비틀거리며 울부짖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흑의를 입은 사내들이 나타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멧돼지에 목에 검을 쑤셔 박아 조용히 시켰다.


털썩.


딱딱딱딱... 딱!


수완은 턱을 달달 떨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올려다봤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산적에게 걸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역시나 얼굴에 칼자국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사내들, 수완은 그들이 산적이라 확신했다.


유일하게 흑의를 입지 않은 사내가 멧돼지의 숨통을 끊어낸 검으로 수완을 겨누며 말했다.


“목숨이 아깝거든, 당장 네 놈의 수괴에게 안내해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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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24.08.06 7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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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돈이 뭐길래 24.07.29 137 3 12쪽
2 2화. 돈이 뭐길래 24.07.29 192 3 11쪽
1 1화. 돈이 뭐길래 24.07.29 32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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