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무식하니 머리가 고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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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자
작품등록일 :
2024.07.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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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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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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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전부 힘에 찍어버렸다

DUMMY

남자들은 힘을 숭상한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는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게임 캐릭터를 선택할 때 성욕을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여자 캐릭터를 선택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육질에 양손무기를 들고 있는 남자 바바리안을 무시할 남자는 없다. 거의 모든 판타지 게임에서 예쁜 여자 캐릭터와 우람한 남자 캐릭터를 출시하는 것만 하더라도 남자에게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렇듯 나도 평범하게 판타지 게임을 하려고 했다. [왕의 기사]라는 판타지 게임은 중세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썰어버린 후 작위를 받아 기사가 되고 또 지휘관이 되어 중세 시대를 쓸어버리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캐릭터 외형을 선택하는데 폭이 좁아 예쁜 여자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좀 있었지만 나는 우람한 남캐를 만들고 싶었기에 상관 없었다.


처음에는 문신을 넣어서 바바리안을 만들까 했는데 [야만인의 문신: 평판-5, 사기+5]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그 계획은 폐기했다.


평판과 사기라는 요소는 둘 다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걸 선택하자면 평판이다.


평판은 의뢰를 완수했을 때 받을 금액, 고용비, 유지비 등 돈에 많은 영향을 주며 영입이나 설득과 같은 화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세 시대에 군사를 굴릴 돈이 없어서 일시적으로 고용하는 용병들을 사용했던 걸 보면 중세 판타지 게임인 '왕의 기사'에서도 돈에 영향을 주는 평판이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기도 중요하긴 하다. 병사들은 전투 중 일어나는 사건들로 사기가 떨어지거나 올라가게 되는데 사기가 0이 되면 병사들은 패주하고 전장에서 이탈한다. 전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패잔병을 모으는 것도 힘드니 사기가 중요한 건 맞다.


그러나 평판을 높여서 돈을 많이 벌고 병사들을 많이 고용한다면 더 잘 싸우고 이기게 될 테니 사기가 내려갈 일도 없다. 또 내가 평판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능력치>

힘: 14

인지력: 3

지구력: 3

민첩성: 3

지능: 1

매력: 3

운: 3


왕의 기사는 게임을 시작할 때 30의 능력치를 받게 되고 이를 7개의 분야에 배분해야 한다. 1은 인간의 한계점을 나쁜 방향으로 찍은 것이고 5가 인간의 평균 쯤 된다.


하지만 나는 게임에서라도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고 거의 모든 능력치를 힘에 배분했다. 지능을 제외한 능력치를 3이라도 찍은 것은 아예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지력이 3미만이면 검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 방향으로 휘두르는 것도 어렵게 된다. 민첩성이 3이하이면 달리기조차 불가능하기에 전장에 제대로 참여하는 것도 어렵다.


3의 수치를 가지고 있어도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게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연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지능은 왜 1이냐고? 힘 컨셉을 잡았는데 지능이 1이 아니라면 그게 힘 컨셉이 맞나? 자고로 몸이 좋으면 머리가 나쁜 법이다. 지능이 극도로 낮으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다른 능력치들이 3 이상이니 게임 플레이가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판은 지능에 영향을 받는다. 안 그래도 낮은 지능에 평판까지 깎아버리면 진짜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게 된다. 아예 병력 지휘가 어려우니 나 혼자서 수백 명을 썰어버려야 할 것이다.


한 명으로 수백 명을 죽이는 게 게임 속이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내 손목이 터널 증후군을 호소하며 휴직을 신청하겠지. 내일도 일을 나가야 되는 나는 손목에게 그런 혹사를 내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힘에 몰두한 능력치로 게임을 시작했고.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 숲 길 가운데 말을 탄 채 서있었다.


***


"주인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안부)"


내 옆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적당한 길이의 문장이었고 공손한 태도를 볼 때 아마 안부를 묻는 문장이겠지. 하지만 보통 안부를 묻는 말을 들으면 그 문장 전체를 해석하지 두 글자로 요약하지 않는다.


그런데 두 글자는 훨씬 넘는 길이의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해석되었을 때 단 두 글자의 단어로 나타났다.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보고 혼란에 빠졌다.


처음 듣는 언어였으나 아예 뜻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에 이제는 컨셉 플레이를 하려고만 해도 이세계로 잡아가 버리는 건가? 악랄한 게임 회사들 같으니라고. 자기들이 줄거리 만들기 어려우니 실험체를 넣어서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 오라는 거겠지.'


나는 트럭에 치여서, 소설에 악플을 달아서, 게임사에 민원을 넣어서 이세계로 전생하는 건 봤어도 게임을 시작하기만 해도 갑자기 전생해 버리는 건 듣지 못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늘에 성좌들이 반짝이거나 신의 계시가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이 육체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안부, 걱정)"


나는 두 글자가 네 글자가 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언젠가 저 글자도 늘어날 테고 그러면 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현상은 내가 지능을 1로 설정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뇌가 망가져서 제대로 된 언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겠지.


지능이 극도로 낮은데 단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건 다행이다. 적어도 개의 지능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개도 사람과 오래 살면 사람의 언어를 대충 이해할 수 있다.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하면 칭찬으로 알아듣고 꼬리를 흔들고 언성을 높이면 혼내는 것으로 알아듣고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이렇게 길게 할 수 있는 걸 보면 육신의 지능만 1이라 청각과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구린 컴퓨터에서는 사양이 높은 게임이 안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괜찮다. 아무 문제 없다.)"


나는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하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괜찮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진중한 목소리의 두 글자였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긍정의 의미를 표현했다.


"다행입니다. 이제 곧 가문의 영지를 벗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탈출)"


"...."


나는 탈출이라는 단어만 듣고 도대체 무슨 뜻인가 고민했다. 내가 게임을 막 켰다가 전생했으니 아마 지금은 게임의 도입부일 것이다.


게임의 도입부는 그 캐릭터의 출생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는 귀족의 서자를 선택했는데 귀족의 서자는 처음 시작할 때 가문에서 고용한 용병들과 싸우고 탈출하게 된다.


그러면 지금 용병이 나오는 건가?


-파스슥


"누구냐?!"


나의 충성스러운 하인은 숲에서 많은 풀들이 흔들리자 곧바로 검을 뽑으며 전방을 경계했다.


그러나 검을 든 사람을 우습게 아는지 풀숲에서 여러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어설픈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고 몇몇은 철판이나 금속 쪼가리를 그 위에 덧대어 방어력을 보강하고 있었다.


저 아이템들이 잘 기억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초반에 도적을 죽이면 주는 아이템들이고 저걸 팔아다가 보병과 궁수를 구성하는 게 게임의 초반 진행이기 때문이다. 느린 보병들이 사냥하기 쉬우니 걸어 다니는 도적을 계속 잡게 되고 게임 끝날 때까지 질리도록 보게 된다.


하지만 저들은 나의 목숨을 위협하려 온 적들이다. 칼을 직접 맞부딪히거나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나는 저들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신체는 평온했다. 지능이 너무 낮아서 인가?


"흐흐흐,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어."

"그래, 순순히 항복하면 편하게 죽여주지."

"뭐라?!"


하인은 분노했지만 그의 안색이 새파래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게 훤히 보였다. 뒤쪽에서도 수풀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용병 7명이 더 나타나 길을 막았다.


좁은 숲 길이니 저들을 뚫고 도망가려면 저들을 모두 죽이고 가는 수 밖에 없다. 게임에서는 잡몹으로 나오지만 직접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될 법도 한데.


-불끈


'피가 끓는데, 뭐지?'


내가 죽여본 것 중에 가장 큰 생물은 쥐 정도다. 시골에 내려갔는데 쥐가 뛰어다니길래 놀라서 발로 밟아 죽여버렸다. 아주 재빠른 쥐였지만 타이밍이 맞았는지 내 신발에 밟혔고 나는 생명체가 터지는 감각에 몸서리치며 그날 밤은 잠을 못 이뤘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를 죽인다고 생각하니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멍청한 뇌에 피가 몰리면서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다. 힘을 어떻게 써야 적들을 죽일 수 있는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살해 방법은 무술이라고 부르기엔 단조롭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고 이 육체는 죽여본 적이 있는 것 같으니 나는 이 육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히히힝!

"뭐, 뭐야!?"

"달려온다! 막아!"

"뭐, 어떻게 막으라고!?"


나는 허벅지를 조이며 말고삐를 당겼고 말은 내 뜻을 읽었는지 곧바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기세등등하게 나타났지만 솔직히 게임상으로 보면 무척 가소로웠다. 저런 보병들은 말 탄 캐릭터에 활과 장병기만 쥐어주면 몇십 명은 가뿐히 압살할 수 있다.


말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니 멀리 달려가서 헤드샷만 맞춰서 죽이고 장병기의 리치 차이를 이용해서 닿을랑 말랑 한 거리에서 휘둘러 죽이고.


그런데 내 육체가 선택한 방법은 무척 신기했다. 일단 내 손에는 장병기가 있었다. 할버드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워해머라고 불러야 할까 애매한 무기였다. 한쪽에는 도끼 다른 쪽에는 망치가 달린 무기다.


나는 이 워해머를 들어 올린 뒤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곧바로 내리쳤다.


-파삭!

"어.....?"

"커억?!"


사람의 머리가 수박 터지는 것처럼 박살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몸까지 부숴버려서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용병들 중 몇 명은 그 참혹한 모습에 넋이 나갔고 두 명은 말에 치여서 그대로 교통사고 당해버렸다. 그들을 쳐버린 것이 트럭이 아니니까 저들이 이세계 전생하는 일은 없겠지.


나는 용병들의 진을 돌파한 후 말고삐를 당겨 반 바퀴 돌아 다시 용병들이 뭉친 곳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사람은 의외로 단단하여 무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든다. 특히 단단한 머리는 웬만한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 공격은 아예 적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게임상에서 힘 14는 게임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수치가 아니다. 도적을 상대할 때 힘 10으로 시작하면 머리를 맞추면 1방, 몸통을 맞추면 2방에 죽일 수 있지만 갑옷을 입은 적 상대로는 머리를 맞춰도 1방에 못 죽인다.


그런데 한 방에 죽이니 나는 이 세상이 현실이라 게임과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면 게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리고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도, 도망쳐!"

"으아아...!"

"병신 같은 놈들아! 멈춰! 지금 등 돌리면 다 죽는다....으억?!"

"죽어라!"


내가 전장을 뒤흔들자 도적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도망치는 자들도 나왔다. 한 번에 큰 피해를 입거나 후방을 공격 받는 등의 사건이 일어나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패주하기도 한다. 특히 초반에 나오는 도적들은 사기가 높지 않아 몇 번 뒤흔들어주면 잘 도망친다.


대장을 따르는 몇몇은 뭉치려고 노력했지만 몇 명이 도망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미 승패는 결정 났다. 장창도 없으면서 귀족의 서자로 시작한 나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귀족의 서자로 시작할 때 가장 큰 이점은 말을 타고 있는 기병이라는 것이다. 다른 출발점은 대부분 보병으로 시작하는데 귀족의 서자는 적당한 장비와 말까지 주는 시작점을 가지고 있으니 컨트롤만 된다면 용병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


거기에 운이 좋았는지 사슬 갑옷에다가 장검, 방패까지 멀쩡한 것으로 몸에 차고 있었다. 나는 한손으로 워해머를 들고 다른 손으로 장검을 뽑았다.


"으오오오오!!!(죽여주마.)"

"흐익?!"

"괴, 괴물이다!"


이번에는 아주 짧은 단어, 죽음을 말하려고 했는데 내 육체는 낮고 웅장한 목소리로 전투의 함성을 내뱉었다.


내 전방의 몇몇은 내 전투의 함성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고 나머지는 패주하기 시작했다. 외침만으로도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니 앞으로도 자주 써먹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적들에게 돌격했고 이 땅에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두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무기를 휘둘렀다.


작가의말

힘으로 찍어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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