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정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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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수미르
그림/삽화
S수미르
작품등록일 :
2024.07.26 2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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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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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7. 쿠데타로 추대 된 절도사 2

DUMMY

제7화 (쿠데타로 추대 된 절도사 2)



청주성 곳곳에서 불이 타올랐다. 다시 초승달은 구름 속으로 숨었지만 청주성은 오히려 대낮처럼 환했다.


“불이야. 불이 났다!”


“곡물 저장소 문이 열렸다!”


“세정관(税政館)도 타올랐다!”


“보위군 병영이 무너졌다!”


“악질 토포관(討捕官)을 죽였다!”


곤 한 잠에 빠져 있던 청주성이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집집마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빼곡히 들창문을 열어본 백성들은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들을 이불 속에 몰아넣은 채 자신들도 꿩 마냥 대가리를 처박았다.


지금 밖에서 고함을 지르며 뛰는 건 모두 병사들. 성으로 침투한 친위군 마귀군단.


그들은 다섯 방향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놀라 성 내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옷도 갖춰 입지 못한 채 뛰쳐나왔지만, 불시에 날아든 칼과 창에 꿰뚫려 쓰러졌다. 재수 없는 병사들은 둔탁한 도끼에 머리가 형체도 없이 날아갔다.


겨우 사정을 알아차린 병사들은 아예 병영문을 잠그고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씨발. 봤어?”


“쉿! 숨도 쉬지 마.”


“맞지?”


“마귀 군단 아니면 누구겠냐? 이럴 때는 상황이 끝날 때까지 짱 박혀 있는 게 최고다. 설마, 우리 같은 졸때기들까지 죽이겠냐?”


“먼저 나갔던 놈들 비명 소리, 네 귀에는 안 들려?”


“생각 없이 나간 죄지. 내 이럴 줄 알았어.”


“뭐가?”


“병신아. 지금 옥사에 누가 갇혔는지 몰라?”


“···맞네. 사달이 난 게야.”


“당연하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를 찝쩍거린 탓이야. 미쳤어. 가만 있었으면 이 등이라고 갈텐데. 후희일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 거야.”


“에고, 문에 식탁이라도 받쳐라. 혹시라도 피에 절은 놈들, 들이닥칠라.”


“너, 진짜 병신이구나. 저들이 고함 치는 이유를 모르겠냐? 나오면 죽인다 이 소리다. 그냥 조용히 대가리 처박고 있어.”


혼란기를 살아온 병사들이다. 그 정도 눈치는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성 내를 활보하는 건 마귀군단 뿐이었다.


보위군이 오백이다. 이들은 모두 절도사부를 지킨다. 그리고 성 안을 방어하는 병사들이 삼천 명이나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들도 태반이 이정기와 전장을 누볐던 경험을 가진 병사들이다.설사 그렇지 않은 이들조차 후희일 절도사의 전횡에 질린 상황이었으니··· 자기 몸을 던져 마귀군단과 맞설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성이 뒤집어 졌지만, 그 중 가장 치열한 곳은 역시 절도사부(節度使府)였다.


여기 있는 호위군 오백 명은 후희일이 고르고 고른 정예였고 다른 병사들과 달리 높은 녹봉으로 충성심을 끌어올린 이들이다.


이 보위군은 몇 명의 지휘 장령을 제외하고는 전원 돌궐족(突厥族)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후희일 자신이 고구려 유민 출신이면서 같은 민족을 믿지 못한 탓이다. 등 뒤에 칼 맞을 짓을 많이 했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기에 그랬다.


절도사부의 정문 담장을 타고 넘은 오십 명의 마귀군단.


맞은 편에는 사백 명에 달하는 돌궐 보위군 병사들이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한결같이 살기에 들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온 소란과 이어진 피 냄새에 흥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살기 맨 앞에 버티고 선 사내 한 명.


창 한 자루 바닥에 꽂은 채 오연히 사방을 둘러보는 눈길이 서늘했다. 사백 명 보위군은 그 기세에 질려 추춤거리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달려 나올 생각을 못했다.


마치 장판교에서 장비가 백만 대군을 창 한 자루만 들고 홀로 막아선 모습이었다.


사내가 들고 있는 창은 일반적으로 대륙에서 사용하던 창과 조금 달랐다.


우선 길이가 짧다. 대륙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창은 보통 사람 신체의 두 배 정도다. 그러나 사내가 들고 있는 창은 1장 5척(약 3미터)으로 약간 짧았다.


거기다 창 날에는 깊은 혈조(血漕, 피가 흐르도록 파 놓은 홈)가 선명했다.


이것만 봐도 확연히 구분 된다. 고구려의 창이다.


아직 사내의 창 날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그 피에서 김이 물씬 올라왔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였다는 반증이다.


“후희일 절도사 나리. 나오기요.”


“무례하다! 누구길래 감히 평로치청 절도사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이냐?”


절도사부 내청을 지키는 사백 명의 보위군 장령이 앞으로 나서며 대꾸했다. 이정기에게 벌벌 떨었던 그 오 장령이다.


“지랄, 진짜 모르는 거이야? 아니면 알면서 쌩까는 거이야?”


“곽치우, 네가 호랑이 간이라도 씹은 것이냐? 썩 물러가라!”


“흐흐흐, 내 창이 말이디. 여즉 피가 고픈 모양이지비. 보라. 계속 떨리고 있슴메.”


“과, 곽치우 장령. 왜 이 난리를 치는 거냐? 날 밝거든 정식으로 청을 넣고 오든가 하지 않고.”


“임자, 오 장령. 그대도 나와 같은 고구려 사람 아님메?”


“그, 그렇다만······”


“개 자식아!"


갑자기 곽치우가 욕을 내 뱉자 오 장령이 움찔했다.


"그런 놈이 칠삭둥이 편에 찰싹 붙어서 주군을 해하는데 앞장서다니... 너는 오늘 꼭 내 내 손으로 둑여주갔어. 흐흐흐.”


까딱했으면 오줌을 지릴 뻔 했다. 저 아귀 같은 놈은··· 항우의 현생이라고 불리는 전장의 미친 호랑이 곽치우 아닌가.


“둑는 것도 조건이 있디. 곱게 둑을 생각 말라우야. 네 눈깔과 혀를 뽑아 죄를 물을 거이니까. 개 자식아!”


“···..!”


하고도 남을 놈이다. 오 장령은 부르르 떨었다.


“니들··· 그 대가리 숫자 믿고 있는 모양인디, 꿈을 깨줌세.”


곽치우는 말로 싸우는 이가 아니다. 그가 한 발 더 내딛자 뒤에서 화살을 재우고 기다리던 오십 명의 마귀군단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큭!”


“우왁!”


백발백중이다. 오십 명의 보위군이 휘뜩 뒤로 넘어갔다. 화살은 한결같이 이마 아니면 목에 박혀 들었다.


달리는 말 잔등에서도 십 중 구 할은 맞추는 기마민족이 고구려인이다. 하물며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움직이지 않는 표적을 맞추는 것 쯤이야 십 중 십 다 꿰뚫는다.


문제는 한 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화살은 연이어 날아갔다. 그때마다 절도사부 계단 위에 늘어서 있던 보위군은 여지없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다 둑이라. 내 말했지비. 여기서 한 놈도 살아가디 못한다고.”


곽치우도 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화살이 날아갈 때 이미 훌쩍 몸을 날려 단숨에 다섯 계단을 뛰어 올랐다.


창은 찌르기 위한 병기다. 그러나 곽치우는 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파창-


급히 그 창을 막으려던 보위군들의 칼과 창이 화약이 터지는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파편이 사방으로 날리며 거기에 맞아 자빠지는 병사들도 있었다.


“후희일!”


곽치우의 고함이 절도사부 내성을 쩌렁거리며 울렸다.


그러나 후희일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 장령은 곽치우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자 바로 몸을 날렸다. 뒤로.


그러면서 첫 열의 호위군 몇 명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이게 칼받이다. 아니, 곽치우의 창받이로 쓴 것이다.


“막아라! 여기는 절도사가 계신 곳이다. 뚫리면 끝장이다. 성내 병영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라!”


쾅! 쾅!


그 동안에도 곽치우는 서너 계단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가 가는 앞길이 마치 썰물처럼 열렸다.


앞 열이 무너지자 두 번째 열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몇몇 병사가 허겁지겁 창과 칼을 찔러 넣었지만, 바로 피를 토하고 넘어갔다.


막는 족족 창대가 부러지고 칼날이 날아가는 판이다. 그 파편에 또 주변 병사들이 꿰뚫려 죽어 나갔다. 인간이 감당할 힘이 아니었다.


가히 만부부당(萬夫不當)의 괴력이 아닐 수 없다.


“후희일!!”


또 한번 곽치우의 입에서 분노에 찬 고성이 터졌다. 오 장령은 급기야 절도사부 문 앞까지 밀렸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문살이 박살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늘어서 있던 병사들 역시 오 장령이 부수고 자빠진 문살을 밀치면서 안으로 도망쳤다.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저 피바다 속에 널부러진 병사와 같은 꼴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겨우 오십 명의 마귀군단과 곽치우 한 명에게 오백 명에 달하는 병력 중 태반이 죽고, 또 밀리고 밀려 대청 안으로 쫓긴 것이다.


“후희이일!!!”


세 번째 고함이 곽치우에게 터져 나왔다.


“이 개 만도 못한 새끼, 머리카락 보일지 모르니까네 꼭꼭 숨어 있으라. 내가 꼭 찾아서 네 피를 빨고 살을 씹어 먹어 주갔어.”


이 광경을 눈 앞에서 목도한 병사들은 진짜 무서웠다. 오금이 저렸다.


오 장령은 뒤로 넘어진 채 두 발을 미친 듯 놀렸다. 일어설 힘도 없었다. 이미 사타구니가 축축할 정도로 흠뻑 지린 상태다.


너무 급했다. 벌써 코 앞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창이 다가오고 있었다.


“과, 곽, 곽 장령.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절도사는 삼 층 누각의 비밀 공간에 숨어 있을 것이외다. 거긴 아무도 모르오. 살려만 주면 내가, 내가 다 고하리다. 살려 주시오.”


“고래? 쥐구멍이 따로 있다 이거이디?”


“헉, 헉. 그렇소. 아무리 불러도 절도사는 나오지 않을 거요. 그러다 잠잠해지면 비밀 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도망칠 거외다.”


“고래? 네 목숨하고 그 정보를 바꾸자 이거이네?”


“살려만 주시오. 나는 청주성을 떠나 겠소. 그리고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소. 약속하지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오 장령이 처절하게 곽치우의 다리를 붙잡고 사정했다. 지금 그는 절도사에 대한 충절따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이마에 닿은 창두의 느낌.


섬뜩하다.


이대로 조금만 힘을 줘도 푹 들어올 것이다.


“내래 말이디. 후희일같은 쥐새끼를 제일 싫어하지비. 그런데 말임메. 너같은 놈, 신의라고는 쥐뿔 만큼도 없는 버러지는 더 싫어야. 약속대로 해 줄 거이니 달게 받으라.”


오 장령의 바람은 헛된 희망이었다.


이마를 겨누고 있던 창두가 살짝 방향을 틀자 눈알 한쪽이 쑥 빠져 나왔다. 오 장령은 극심한 고통에 데굴데굴 구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조차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푹-


어느새 빼 들었는지 곽치우의 검이 어깨를 뚫고 빈청 바닥에 박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오 장령은 벌레처럼 몸을 비틀었다.


“좀 참으라. 내래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지비. 흐흐흐.”


곽치우는 창을 서서히 움직였다.


이번에는 반대 편 눈알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아아악!”


“어허, 가만 있으라. 아즉 니 혓바닥이 남았잖네?”


“이, 이, 이··· 마구니 보다 더 악독한 놈!”


“어! 우찌 알았슴둥? 내래 마귀군단 지휘 장령 맞지비.”


“아아아, 살려주시오. 제발... 이 꼴로도 상관없으니 목숨만 살려 주시오.”


“니가 후희일 똥구녕을 간질렀다는 거 모를 줄 알았지비?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다고. 네가 쏙싹거리는 바람에 후희일이 결행한 거이디. 이 버러지 새끼.”


후드득-


창날이 살짝 비틀리자 오 장령의 아래 위 이빨이 옥수수 알갱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입안은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사이로 곽치우의 손이 들어가더니 우드득 하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오 장령의 혓바닥이 길게 뽑혀 나왔다.


즉사다.


오 장령의 몸이 몇 번 푸들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내래 약속 지켰서야. 너무 서운케 생각 말라.”


***


“주군!”


“······”


“소장이 모시겠습니다. 일어나시지요.”


“송 장군. 오셨소?”


옥문이 열리는 동안 옥사 앞에 무르팍을 꿇은 노 장군을 애잔한 표정으로 보는 이정기.


송 장군은 그래서 더 서러웠다.


“크흑,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모두 소신 잘못이니 나중에 목을 치소서. 하오나 지금은 아니옵니다. 곽 장령이 따로 당부한 것이 있으니 우선, 몸을 일으키소서.’


“곽 장령은?”


“예, 절도사부로 갔사오이다.”


“몇이나 거느리고 갔소?”


“오십의 병사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오소서.”


“걱정은 무슨··· 후희일 절도사··· 후우! 살아있기를 기대할 수 없겠구려.”


“······”


“소장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나이다.”


“보나마나 이 모든 일을 꾸민 이는 따로 있을 터, 어디 있소?”


“······”


“나한테 미리 이번 사태를 직언하고, 또 치우에게도 언질한 이가 있었지요. 그 아이가 아니라면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이런 상황을 만들기 쉽지 않은 일, 어디 있습니까?”


주군이 이렇게 나오면 거짓을 아뢸 수 없다. 송 장군이 슬쩍 눈을 피하며 작게 고해 올렸다.


“네. 이 공자는 몸이 허약하여 함께 오지 못했습니다. 아마 노심초사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까 짐작하여이다.”


“곽 장령이 절도사부로 간 지 얼마나 되었소?”


“네. 주군. 두시진 전 곽 장령과 궁을 소지한 50명의 노병들이 따라 갔습니다. 그깟 허접한 보위군 오백 정도는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후우! 갑시다. 이것도 천명이라면 따라야지요.”


우지끈-


팔뚝보다 굵은 옥사의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더니 터져나갔다.


“작정한 이상 허리를 숙인 채 나갈 수는 없지 않겠소?”


이정기가 단숨에 통나무 옥사를 무너뜨린 것이다.


어쩌면 곽치우도 쉽사리 승부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용장에 맹장, 전장의 호랑이라 불리던 이정기답다.


그가 곧곧히 선 채 옥사를 나섰다.


대륙을 떨게 만든 영웅 이정기의 발걸음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역사상 병사들에 의해 추대 된 최초의 절도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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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한국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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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쿠데타로 추대 된 절도사 2 +4 24.08.07 852 28 14쪽
6 6. 쿠데타로 추대 된 절도사 1. +5 24.08.06 866 28 15쪽
5 5. 친위 쿠데타. +5 24.08.05 891 29 16쪽
4 4. 나는 장수다. +5 24.08.04 918 32 15쪽
3 3. 외골수 이정기의 기개. +5 24.08.03 956 31 15쪽
2 2. 지나간 역사, 묻힌 역사, 잊혀진 역사. +3 24.08.02 1,064 34 18쪽
1 1. 프롤로그 +13 24.08.02 1,304 3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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