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준아, 엄마 말 들리니?"
"서준아, 아빠 말 들려?"
안 들린다. 그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 학교 끝나고 PC방 갈래?"
"좋지. 이따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들리지 않았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던 적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건 이렇게 풀면 된다."
분명 한 공간에 있었다. 그러나 한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난 그 누구하고 얘기를 나눴던 적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누군가 내 몸을 뒤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말을 걸 수 없었다.
스스로 나를 옭아매웠다.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지 못했다.
눈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맞추지 못했다.
나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아가지 못했다.
그 한 발짝이 그저 무겁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도 나아가고 싶었다.
다행이었던 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최근 국내 공황에서 첫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변종 바이러스.
호흡기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선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유일했던 방법도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중학생 이후로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나름 풍족하게 살았다.
그래서 친구는 없었지만 부모님 덕분에 살아가는 의미가 있었다. 부모님이란 존재가 정말 큰 존재였다.
그러나 큰 존재여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게 있었다. 대학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눈앞에서 소중한 걸 잃었다.
"여보....."
"....."
음주 운전.
트럭을 운전하던 사람이 음주 운전을 했다. 아빠는 음주 운전차에 치여 숨을 거두셨다.
비통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었다.
"여보.....흐흑....."
한 번도 울지 않으셨던 그 강인했던 엄마가 눈물을 보이셨다. 그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었다.
엄마의 비통함은 내 마음을 더 찢을 뿐이었다.
"서준아...엄마 너무 힘들다....."
"....."
취한 상태로 슬픔을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처음 봤다.
소주병은 점점 늘어났고 소주잔에 소주가 비워져 있지 않았다.
"서준아...너무 살기가 싫다....."
"....."
난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엄마의 비통함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서준아...너도 엄마랑 같이 갈까?"
"....."
"흐흑...아니다....."
-털썩!
차있던 소주잔은 드디어 비워졌다. 난 조용히 일어나 창 밖을 봤다. 오늘 따라 유난히 별이 빛났다.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난 그 말을 부정했다.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난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니까.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은 아니었나 보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내 볼을 간지럽힐 뿐이었다. 슬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시발...진짜 너무 싫어.....'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고개를 들어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고 했다.
'하아...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눈물이 멈추자 얼굴에 묻은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엄마를 봐라 봤다.
감겨진 눈 사이로 눈물이 보였다. 난 아빠를 잃었지만 엄마는 단 한 명 뿐인 연인을 잃은 거다.
늘 밝게 웃으셨던 분이 소주잔이 비워지지 않을 정도로 마셨다.
그것도 슬픔을 토해내면서.....
방에 들어가 이불을 꺼내 엄마 등에 덮었다. 그리고 난 조용히 베란다로 나갔다.
난 저 별들이 그냥 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도 안 춥네...'
-스르륵.
'짧은 시간이었다. 불행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난 과거가 싫다. 그러나 추억은 좋아한다. 머릿속에 남는 과거를 잊고 싶어했고 추억은 늘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리고 난 그 추억을 다시 그리워했고 지금 이 순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서준아, 놀이동산 오니까 어때? 좋지?"
"서준아, 이거 한 번 먹어볼까?"
"이야~우리 서준이 그림 잘 그리는데? 나중에 화가 하는 거 아니야?"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난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떨어졌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과거를 날려주는 것 같다.
'시작이 있다면 늘 끝은 존재한다...'
-쾅!
엄마 죄송해요...
난 뭘 좋아했지...내가 진심으로 좋아했었던 게 있었나.....
"서준아, 도 한 번 쳐볼까?"
'도?'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쳐본 기억.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울림이 느껴졌다.
"서준아, 이거 연주 한 번 해볼까?"
손끝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내 마음을 자극 시켰었다. 잠깐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제 와서 기억한 거다.
그 울림을 다시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김서준, 얼른 일어나. 학교 안 갈 거야?"
"그렇게 말로 깨우는 것보단 이렇게 몸을 흔들어서 깨워야지."
'아...이런 게 주마등인가.....'
잠깐만 주마등은 죽기 직전에 나타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뭔가 느껴졌다. 팔에서 사람의 피부가 느껴졌다. 딱딱하지만 따스하면서 포근한 느낌.
"드디어 일어났어? 얼른 일어나. 고등학생이라서 그런가 잠이 더 많아졌네."
"일어났어? 그럼 얼른 밥 먹어."
귀에서 뭐가 느껴졌다. 아니, 고막에서 한 번도 들리지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만 보고 어떤 목소리인지 예상만 했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자극 시켰다.
'설마.....'
-스르륵.
"드디어 눈을 떴네. 얼른 밥 먹어."
아빠.....
돌아왔다. 과거로.
아니.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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