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최종병기는. 너무 늦게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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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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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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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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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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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의 밤

DUMMY

렝이 묘하게 생긴 석판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글자가 나타났다.

<제1차 강화>

[ 소요 시간 : 4시간 ]

“자, 들어가시지요.”“...”

어쩐지 께름직한 느낌이 든 레이웨이였지만 별수 없이 따랐다.

“그럼, 1시간 후에 뵙겠습니다.”




<사파이어웨어>라고 불리는 저택은 왕국에서 왕성 다음으로 크고 화려한 저택이며, 거대한 정원과 높고 튼튼한 2중 석벽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작은 요새라고도 될만한 장소였다.

중심 건물을 둘러싼 이 세계에선 아직 흔하지 않은 푸른색 벽돌의 수가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이곳은 푸른 대공 이피리스의 저택이었다.

북쪽의 5개 주, 북서쪽의 3개 주를 거느린 이 거대귀족은 세간의 소문에 의하면 왕국의 정규군과 버금갈 숫자의 거대 규모의 군세를 거느리며 사용인의 숫자가 어지간한 작은 마을의 인구수와 맞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왕 레니아 2세가 즉위한 후 이러한 거대귀족의 힘을 해체해 중앙 집권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왕의 의지로, 몇 년 전 있던 대규모 횡령 사건을 빌미로 이의 관련자인 대공 거느린 8개 주중 4개의 주의 지배권을 박탈했다. 크게 수입이 줄어든 대공은 군대와 사용인의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에 따라 체면도 크게 깎여나갔다.

이러한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개혁에도 귀족들의 반발이 말 이외의 수단을 동원하지 못한 이유는 강력한 마법사인 여왕과 그녀를 줄곧 따라다니는 그 눈엣가시 같은 평민기사의 존재였다. 여왕은 그에게 고귀한 자의 자격을 부여했으나 이피리스를 비롯한 귀족들은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평민은 곧 죽어도 평민이고 귀족은 곧 죽어도 귀족이다. 하물며 마법하나 쓸줄 모르는 천한 자에게 감히 귀족을 칭하게 하다니 그 어리석은 군주가 왕국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당장 끌어내려 국가의 위신을 상하게 한 죄로 참수한 뒤 자신과 같은 유능하고 고귀한 자가 이 나라의 영광을 이어가야 한다고 줄곧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 평민기사는 몇 달 전 전투에서 빈사 상태로 돌아왔고 어리석은 여왕은 그 평민 따위를 살리기 위해 극대한 마력을 소모했다.

막상 기회가 찾아오자 한동안 허둥지둥하느라 계획에 진척이 없었긴 했다.

입 달린 자가 하도 많아 그들의 입을 달래주느라 행동을 계획하기 어려웠다.

기회가 생기면 각자의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 싶어 안달 난 것은 이 나라 귀족들의 고질적인 정신병이었다. 때문에 몇 번이나 계획이 엎어지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것만큼은 모두의 생각이었기에, 가장 높은 귀족인 이피리스가 앞장서 다소의 강제력을 동원한 끝에 마침내 때가 왔다.

결의의 밤이라 이름 지은 이 결연하고 숭고한 밤의 사파이어웨어는 이 영광의 말단에라도 이름 올리고자 하는 수많은 고귀한 자들의 욕망, 아니 결의에 젖은 모임으로 시끌벅적했다.

“레필리스 공.”

이 계획을 위해 귀족들의 사병들을 강제적으로 모았다.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물에 넣은 휴지 정도의 협조성을 가진 이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이 나라에서 그 하찮은 평민기사 다음가는 영웅을 섭외했다.

레필리스는 한때 왕국 제일의 영웅이자 백전불패의 노장으로 이름 날렸던 명장이지만. 갑자기 등장한 괴물의 존재로 인해 공적도, 명성도, 지위도 밀렸다.

레이웨이를 인정하지 않는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 레필리스야 말로 참군인이고 참지휘관이었다. 건국 공신 가문의 후예인 고귀한 핏줄이자 가장 귀족스러운 군인이었으니까.

“네, 대공 각하.”

“그 천한 무마력 귀족...큭큭큭...영웅님은 아직 일어나지 못한 게 분명한게지?”

이곳에 모여있는 수많은 귀족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퍼져나갔다.

‘무마력 귀족’. 레이웨이의 멸칭 중 귀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고귀한 핏줄의 증거인 마력과 마법. 그 마력이 없는, 마법을 쓸 수 없는 그 점이야 말로 그 녀석이 천하다는 증거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야말로 그 녀석이 가진 지위가 지나침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 좋은 단어였다.

“네. 그 녀석의 저택 주변을 계속 감시하고 있지만, 그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그자의 무구 또한 몇 달째 같은 자리에 걸려있었습니다. 왕성 내부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이 왕도의 어디에도 없다면 그 고아 녀석이 있을 곳은 병원, 혹은 무덤밖에 더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호탕한, 이미 대의를 성공시킨듯한 웃음이 군중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왕속 마법사단의 동태는 어떠한가?”

“그 계집애 말씀이군요.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매일 마법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계집 단장 이외에는 경계해야 할 만큼 강한 마법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흥, 여왕보다 한참 약한 수준이라면 우리가 경계할 정도는 아니지. 마법이라면 그 종놈의 몸에서 나온 년보단 정통 귀족인 이쪽이 더 강하니까.”

왕의 직속 무력기구는 친위기사단 우리엘과 왕속 마법사단 가브리엘이 있다.

가브리엘의 단장 네레사는 일단은 귀족의 피를 받은 꼬맹이이긴 하나 귀족인 아버지가 메이드인 어머니를 강제로 범하여 태어난 사생아였다.

정통 귀족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고귀한 피 + 고귀한 피가 고귀한 피 + 천한 피보다 마법이 약할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암군 폐하는 어쩌고 계시는가?”

“그 녀석의 치료를 임한 후 마력량이 회복하지 못하신지 식사에 마력 포션을 계속 섭취하고 계십니다.”

“큭큭큭.”

“하온데, 각하.”

“아, 휴고 백작. 무슨 할말이라도?”

“그 암군 폐하는 살려드리지요.”

결코 대의를 위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 고귀한 자의 눈동자가 천한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이피리스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진작에 깨달았다.

“하지만, 휴고 백작. 그 여자는 머리는 나빠도 힘 하나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네. 원래는 말이야. 지금은 대치유마법의 발동으로 약해진 것뿐. 즐거운 일을 떠올리는 건 좋지만 목숨 아까운줄은 아셔야지.”

“아쉽군요...그렇다면 그 계집애 마법사라도...”

“정말 본능에 충실하신 분이군요.”

이피리스 등 뒤에 서있던 새빨간 로브를 입은 여자가 말했다.

짧은 머리에 언뜻 보면 어린 남자로도 보일 만큼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로브의 흉부 위로 그녀의 성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메디라 양, 그것이 아니라...”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색욕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주신 것. 창조주가 주신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은 피조물로서 정당한 권리라고요?”

“그...그런가.”

“하지만, 여왕님은 안 돼요. 왜냐면...”

그녀의 표정은 휴고의 표정과 닮은, 아니 그보다 더 노골적인 욕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꺼니까요.”

그 패기에 그 자리의 모두가 움찔했다.

“그...그런가.”

“그 외에는 마음대로 하시지요, 백작님.”

“그거 좋군.”

메디라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시금 색욕에 물든 짐승의 표정을 드러낸 휴고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음흉하게 웃었다.

“자, 잡담은 거기까지. 거사 후에 어찌 되든, 성공시키는 게 먼저니까, 방심하지는 마시오.”

“슬슬 시작해봅시다.”

이 거룩한 밤이 지나면 세상은 바로잡아지고 불결한 것들은 모두 사라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귀족들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단장님께선 아직 연락이 없으신가!”

우리엘의 부단장 로제라는 부관에게 다급히 물었다.

“아직 전서구가 날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귀족 녀석들의 음모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저녁 무렵부터 귀족 녀석들이 사파이어웨어에 모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도 진작 알아챘다. 이런 정보전이라면 단장인 레이웨이의 근육뇌보단 로제라쪽이 한 수위다.

하지만, 알아차린 것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 소식을 다급히 특정 인물의 위치를 찾는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전서구를 통해 단장에게 알렸다.

“우선 마법단장님께는 알려 즉시 그놈들의 예상 진격로에 대기하도록 했습니다만...”

“우리는 폐하의 곁으로 가야 한다. 지금 당장.”

마법단은 공격력은 우월하지만, 호위에는 불리한 면이 있다.

영창의 준비와 속사의 불가 등 공격 속도에 제한이 있을뿐더러 여차하면 호위 대상 대신 고기방패가 되어줄 만큼의 체력이나 방어력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위의 주 목적은 적의 제거가 아닌 호위 대상의 생존이니까.

“귀족 놈들은 아마 마법사를 대규모로 동원할 테니 저희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다. 분명 단장님께 소식이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그분만 오시면 그 승냥이들 따윈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단장님이 오실 때까지 버티는 거다! 오늘, 우리는 모두 폐하 대신 죽는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외치는 부단장의 말에 같은 믿음과 의지가 담긴 함성으로 화답하는 우리엘의 단원들. 동경했던 영웅이 지키고자 하는 인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자 하는 전사의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신속히 왕성으로 향했다.




리베른의 왕성은 세 방향의 대로와 그 사이의 모세혈관 같은 작은 거리로 둘러싸여있다.

리베른의 중앙군을 동원한다면 이 정도를 지키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중앙군의 장교는 모두 대귀족 집안 출신. 반역자들과 내통하거나 이미 반역의 물결에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장 믿을만한 무력 집단인 왕속 마법사단이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들에 다급히 도움을 청해 머릿수를 어느 정도는 채워둔 상태.

여왕에 대한 평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숫자만 갖춘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지금 쳐들어오는 반역자들의 군대는 오랜 세월 리베른의 외적과 도적들을 상대했던 베테랑 사병들.

중앙집권화가 완료되지 않은 리베른의 국방력의 빈자리를 채워왔던 이들이다.

주변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약한 군대라도 의지와 급조한 무기만 들고 있는 자경단과 비교하면 일당백이 가능한 정예군이다.

자경단의 희생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아무 의무가 없음에도 기꺼이 여왕을 지키고자 자원한 영웅들이다. 여왕의 신민을 함부로 사망케 하는 것은 여왕을 사망케 하는 것의 다음가는 대죄다, 자경단들에겐 미세한 골목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방어전만 치르게 했다.

나머지 대로 세 개를 지키는 것은 네레사가 이끄는 왕속 마법사단.

레이웨이가 자리를 비운 지금 여왕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력집단이다.

단장 네레사는 여왕이 있는 옥좌의 방 바로 위의 옥상에서 마법사단 각 단원들의 마력, 체력, 그리고 방어력을 채우는 거대한 마법진을 동시에 발동해 세 개의 대로를 모두 커버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대마법을 사용하거나 여왕이 있는 곳으로 즉시 전이할 수 있는 최선의 포지션을 선택한 것이다.

“레이웨이...빨리 와줘...”

그 녀석만 있다면, 아무걱정 할 필요 없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그동안 그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의지를 했던 거야... 그 빈 자리가 이렇게나 클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항상 고맙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를 혹사시키고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제대로 위로해줘야지.”

그녀는 미안한 감정과는 모순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품으며 몸을 살펴보는 것이다.

“만족해주겠지? 그야, 나는 왕국 최강의 미소녀니까 말이야. 최강의 미소녀가 위로해 주는 거니까 말이야!”



그 묘한 방에서 나온 레이웨이.

잠깐의 단잠을 잔 거 같은데...

“자, 기분은 어떠십니까?”

“...힘이 차오르고 있어.”

신체의 힘도 늘어났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력. 마력이 느껴져.”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 마력이 몸을 흐르고 있다는 느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영혼에 새롭게 차오른 뜨거운 느낌, 이것이 마력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 몇 가지의 사용법이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다.

“다행이네요. 다음 강화의 날짜를 알려드리죠.”

사기꾼이라면...하고 계속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자신을 실제로 강화시켜주었다.

의심했던 것이 다소 미안했다.

“자, 이제 밖으로 나가서 그 힘의 위력을 시험해보시죠.”

“시험할 수 있는 것인가?”

“저희가 준비한 건 아닙니다만, 때마침 그 기회를 주려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은 잠들어 계신 동안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왜 깨우지 않았지?”

“중단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요.”

그가 전한 편지에는...

“...그렇군.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나의 이 힘을 받아보고 싶어 안달난 녀석들이 있는 것 같군.”

레이웨이는 다급히 달려갔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장기말씨.”

그 뒷모습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는 루이 렝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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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의의 밤 24.08.03 14 0 13쪽
1 강해지고 싶어서 24.08.01 28 0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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