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블랙요원 2
밤 9시 정각이 되자, 실내 조명이 모두 꺼졌다.
또한 출입문도 자동적으로 잠겼다.
외부 출입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허나 나에겐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무 장애가 되지 못했다.
두눈에 안력을 모으자, 내 두눈에서 횃불같은 광망이 솟구쳤다.
흡사 레이저 광선 같았다.
내 눈빛이 닿는 자리가 환해졌다.
형광등에 맞먹는 밝기였다.
바로 그때, 침대 옆의 벽면에서 갑자기 억수같은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탓일까.
내 방 전체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전락했고.
급기야는 내 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것도 훈련의 일환인 모양이었다.
나는 물이 목까지 차오른 실내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겼다.
그러기를 잠시 뒤.
실내의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5갑자를 바탕으로한 전신 대주천 덕분에 피부 호흡이 가능한 상태였다.
물속에서도 피부 호흡을 통해서 자유롭게 숨을 내쉴수 있었다.
물이 방안 전체를 장악하거나 말거나.
나에겐 아무 위협이 되지 못했다.
3분 정도가 지나자, 실내의 물이 바닥의 배수구를 통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직후,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훈련 교관 마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실내의 침대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자.
귀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 태연자약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마틴은 내 얼굴과 몸상태를 유심히 살핀 뒤, 장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인위적인 실내 홍수 따위로는 나에게 아무 위협이 안된다는 사실을 파악한 모양새였다.
"
늦은 밤.
CIA 트레이닝 센터에 슈마겔 인력개발 팀장이 나타났다.
그는 지하 2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강천의 훈련내용이 담긴 동영상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슈마겔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놈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체력과 스피드를 갖고 있어. 이런 인재가 왜, 육상 선수를 안하고 평범하게 사는 거지?"
슈마겔은 압도적인 스피드와 체력을 갖고 있는 강천이 육상계로 진출하지 않는 이유를 당최 알 수 없었다.
그 즈음, 마틴이 그의 면전에 나타났다.
그는 강천에 관해서 보고를 올렸다.
"놈은 400미터 트랙 100바퀴(40킬로)를 1시간 20분에 주파했습니다. 마라톤 세계 신기록에 버금가는 기록이죠. 그리고 2시간 동안 PT 체조를 했음에도 땀한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살다살다 그런 괴물같은 놈은 처음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동영상에 나온대로 놈은 실내가 물로 가득찼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3분 동안 수중에서 침착한 태도로 유영을 즐겼습니다."
슈마겔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마틴이 기다렸다는 듯 즉답했다.
"이강천은 최고의 현장 요원이 될 만한 자질이 충분합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만에 그리 판단하다니, 너무 섣부른 예측 아닌가?"
"아닙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습니다. 놈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체력과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심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장 요원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을 타고난 것입니다."
슈마겔은 마틴의 섣부른 예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훈련생들은 저마다의 잠재력이 있네. 그러니 너무 앞서나가지 말게."
"알겠습니다. 팀장님."
"내일 훈련 일정을 말해보게."
"극기주 훈련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극기주 훈련을 대폭 늘리고 싶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1주일로 예정된 극기주 훈련을 3주로 늘리고 싶습니다."
슈마겔이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마틴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물 속에서 3주일 동안 금식과 불수면(不睡眠)이 가능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강천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마틴은 실무교육 책임자였다.
결국 슈마겔은 그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3주일 동안의 금식과 불수면 훈련을 허용해 주었다.
*
다음날.
오전 7시에 식사를 끝마친 뒤.
본격적인 극기 훈련이 시작됐다.
마틴은 나를 지하 5층에 위치한 국제 규격의 수영장으로 이끌었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자마자 풀장 안으로 몸을 날렸다.
마틴은 풀장의 썬베드에 편한 자세로 앉은 채.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풀장 안에서 3주일 동안 극기 훈련을 진행한다."
그에게 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죠?"
"금식이다. 그리고 당연히 수면도 금지다."
"3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수면까지 못하는 건가요?"
"인간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차원이니까, 자신 없으면 포기해도 좋다."
나는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CIA 요원들 모두 이 훈련을 하는 겁니까?"
"모두 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거짓말 같은데요. 인간의 체력으로는 3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먹으면서 물 속에서 견디는 게 불가능 하잖아요?"
내 입바른 소리에, 그가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나만 특별히 3주일 동안 극기 훈련을 진행하는 건가요?"
마틴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제군은 내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내 명령을 거부할 경우, 그 즉시 퇴교 조치를 하겠다!"
결국 나는 그의 무지막지한 명령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내 입장에서 3주일 동안의 금식과 수면 금지 훈련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운기행공을 하면서 전신 대주천에 몰입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나는 두눈을 반쯤 감은 채.
물속에서 결가부좌를 틀었다.
수면의 높이는 60cm 내외라, 결가부좌를 틀어도 물이 어깨 부근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결가부좌를 하자마자 운기행공을 시작했고.
자동적으로 운행되는 전신 대주천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 탓일까.
나는 금세 무아지경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초월경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뒤로한 채.
무아지경 속을 오롯이 노닐 찰나.
마틴 교관의 거친 목소리가 귓전에 파고들었다.
"기상! 훈련병 이강천 기상!"
그제야 나는 무아지경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귀환했다.
눈을 번쩍 뜨자, 귀신을 목격한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마틴이 보였다.
그는 평온한 얼굴빛을 하고 있는 내가 신기한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정말 3주일 동안 반수면 상태를 지속한 건가?"
그에게 되물었다.
"벌써 3주일이 지났나요?"
마틴이 머리를 끄덕이며 나를 향해 경외심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자네처럼 괴물같은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
"별말씀을. 아무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럼 이제 물밖으로 나가도 되죠?"
그가 머리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물밖으로 몸을 날렸다.
수영장에서 3주일 동안 이어진 극기훈련을 순조롭게 끝마친 뒤.
뷔페 식당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3주일 동안 배를 비운 탓인지, 극심한 허기에 시달렸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마틴이 자신이 직접 스프를 나에게 배달해 주었다.
"위장을 부드럽게 달래야 탈이 안난다고."
그리 말하며 구석진 테이블로 나를 이끌었다.
그후로도 나는 마틴이 직접 배달해주는 음식들로 차분히 배를 채웠다.
마틴은 나를 많이 존경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내 능력에 진정으로 매료된 모양이었다.
그러했으니 자신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어린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이리라.
마틴의 지극한 서비스를 받으며 식당에서 배부르게 포식한 뒤.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훈련은 며칠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나는 3주일 동안의 극기 훈련을 포함해서 총 22일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제 정확히 5일 정도만 추가로 훈련을 진행하면 모든 과정이 끝날 예정이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찰나.
풍선 근육이 인상적인 슈마겔 인재개발 팀장이 내 방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자네의 체력과 인내력은 CIA의 전현직 요원을 통틀어서 역대 최고 레벨이더군."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CIA의 정식 요원으로 일해볼 생각이 없나?"
당연히 나는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단지 돈이 필요해서 인턴십에 참가했을 뿐이에요. 정보기관의 요원이 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진심인가?"
"네. 없어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대꾸하자, 풍선 근육 아저씨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잠시 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내 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다음날.
나는 60킬로에 육박하는 군장을 매고 훈련지 인근의 야산을 등반하고 있었다.
훈련지와 야산의 정상은 직선거리로 왕복 120킬로 안팎이었다.
나는 60킬로에 달하는 군장을 짊어졌음에도 별다른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5갑자에 육박하는 내공의 순기능이었다.
왕복 120킬로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한 탓일까.
마틴이 경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들어올렸다.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찬사를 받으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땀이 한방울도 안난 덕분에 샤워를 할 필요가 없었다.
냄새가 전혀 안났기 때문이다.
*
랭글리에 나타난 슈마겔은 CIA의 실무 총책임자인 레스터 부국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레스터 부국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노트북을 내밀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강천이 CIA 캠프에서 훈련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레스터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스피드와 체력, 그리고 인내심이 엄청난 친구로군. 이런 인재를 어디에서 구한 건가?"
"이즈마엘 전 부국장이 소개한 조지타운대의 재학생입니다."
슈마겔은 그리 대꾸한 뒤.
서류가방에서 한장의 서류를 꺼내서 레스터에게 내밀었다.
"이강천의 신상파일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레스터는 슈마겔이 건넨 강천의 신상파일에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 뒤.
"배경도 쓸만하고, 신체 능력과 인내력까지 겸비한 인재니까 자네가 책임지고 정규 요원으로 육성하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강천이 정규 요원이 되는 걸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벌 회장의 아들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레스터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뭔가?"
"보스가 직접 그 친구를 섭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 정도의 직위로는 말빨이 통하지 않는 건가?"
슈마겔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드디어 훈련 캠프를 퇴소하는 날이 밝아왔다.
나는 지난 4주일 동안 나름 열심히 훈련 일정을 소화했다.
그 덕분에 역대급 평점을 받으며 훈련소를 퇴소하게 되었다.
식당에서 오전 식사를 끝마친 뒤.
헬기 이착륙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찰나.
내 앞에 슈마겔 인재개발 팀장과 왜소한 체격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슈마겔이 나에게 노신사를 소개했다.
"CIA의 레스터 부국장일세. 인사를 하게."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레스터 노인네와 악수를 교환했다.
그런 탓일까.
레스터 영감이 나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잠시 자네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겠나?"
"그러죠."
"고맙군.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자고."
"예. 부국장님."
우리는 훈련 캠프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네 부친이 성진그룹의 이명석 회장인가?"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호구조사를 하는 이유가 뭐죠?"
그가 빙긋 웃으며 뜻 밖의 말을 꺼냈다.
"자네가 CIA의 정규 요원이 된다면, 성진그룹의 오너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겠네."
레스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CIA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서, 자네가 성진그룹의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내가 책임지고 도움을 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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