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블랙요원 1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는 전 세계 첩보기관의 대명사인 CIA 본부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 곳에 중년의 백인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CIA의 슈마겔 인력개발 팀장이었다.
슈마겔은 헬스 트레이너를 연상케하는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며, 지하 3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흔히 말하는 화이트 요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탓인지 CIA의 신입 요원과 인턴들의 기초 교육을 전담하고 있었다.
슈마겔은 책상 위에 놓여진 인턴 후보자들의 신상파일에 시선을 모았다.
그는 총 35명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파일을 자세히 살폈고.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시선이 강천의 신상파일에 못 박힌 듯 고정되었다.
<국적: 한국>
<성별: 남성>
<이름: 이강천>
<나이: 21세>
<특기 사항: 6피트 3인치(193cm)의 큰 키와 강건한 육체를 갖고 있음.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 지금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 정외과 1학년에 재학중임. 스탠 하원의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사료됨>
<성진그룹 이명석 회장의 3남. 사생아로 알려짐. 생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이명석의 호적에 이름을 올림.>
<부친의 기업을 물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한국의 유력자들을 상대로한 정보 수집 업무에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사료됨>
<한국과 미국에 이렇다할 친구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됨. 친화력이 떨어짐. 도리어 그점이 정보 수집 업무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됨>
<협력자로 활용이 가능한 케이스로 사료됨>
슈마겔은 강천의 고화질 전신 사진에 시선을 집중했다.
"눈빛도 쓸만하고 체격도 좋군. 잘만 다듬으면 현장요원으로도 손색이 없겠는걸."
그는 강천의 건장한 체격과 사람의 폐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때문일까.
강천을 정식 요원으로 육성하고 싶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강인한 육체와 젊은 나이, 그리고 배경이 너무 좋았다.
슈마겔은 강천을 CIA의 현장요원 육성 트레이닝 캠프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모처로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
나는 한달 동안의 CIA의 인턴십에 참가하는 대가로 1만 5천달러(1,950만원)를 선금으로 받았다.
거의 2천만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엄청난 호조건이었다.
한달 동안 인턴십을 하는 대가 치고는 너무 고액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는 21세기 초인이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나를 위협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양복 정장을 차려입고 공항으로 갔다.
그 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행 항공기에 편한 마음으로 몸을 실었다.
그날 점심 무렵.
랭글리로 알려진 CIA 본부 건물로 들어설 찰나.
보안 요원이 내 앞을 막아세웠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에게 CIA 인력개발팀에서 보내온 인턴십 초대장을 건넸다.
보안요원은 내가 건넨 초대장을 확인한 뒤, 어딘가로 무전을 보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스테로이드를 다량 복용한 헬스 중독자 아저씨가 내 앞에 나타났다.
팔뚝에 혈관이 툭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약으로 만든 풍선 근육이 확실했다.
그는 내 위아래를 뚫어져라 살핀 뒤.
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와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서 지하 3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5평 정도였고, 분위기가 음침했다.
책상 맞은편에 놓여있는 의자에 내 멋대로 착석하자, 아저씨가 퉁명스런 어조를 내뱉었다.
"버릇이 없는 놈이군. 사무실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의자에 앉다니."
"그래서 내가 마음에 안드십니까?"
그리 반문하자, 아저씨가 비웃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모처럼 재밌는 놈을 만나는구나. 좋아. 마음에 든다. 배포가 있어."
그가 내 두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눈싸움을 하자고 수작을 거는 모양새였다.
나 역시 그의 눈을 직시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죠?"
그가 기다렸다는 듯 되물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타거나 서류를 복사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내 스타일이 아니죠. 하지만 저는 인턴이잖아요. 상관이 까라면 까야죠."
아저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
"야외활동이나 스포츠를 좋아하나?"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몸이 좋아보이는데, 헬스를 꾸준히 하는 건가?"
"네. 몸을 탄탄한 근육질로 만들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거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한달 동안 트레이닝 캠프에서 버티면, 추가로 1만 달러(1,300만원)를 더 지급할 용의가 있네."
"그 말이 정말인가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트레이닝 캠프에서 군대식으로 훈련을 받는 건가요?"
"극기 훈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될 걸세. 인간의 한계 체력을 테스트하는 거지."
내 입장에서 체력 테스트는 누워서 식은죽 먹기였다.
나는 지상최강의 육체를 갖고 있었다.
"좋습니다. 내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네요. 하하하...!"
내 입에서 절로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아저씨가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CIA의 트레이닝 캠프는 혹독하기로 유명한 곳이지. 각오를 단단히 하는게 좋을 거야."
"저는 보기보다 체력이 어마무시하게 좋거든요."
"자신만만한 모습이 보기 좋군. 하지만 중도에 퇴교하면 1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는 없던 일이 될 걸세."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아무 걱정 하지마십시오.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죠.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거든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저씨와 악수를 교환한 뒤, 간단한 통성명을 나눌 무렵.
사무실에 군복 차림의 남성이 나타났다.
슈마겔 아저씨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저 사람을 따라가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군복 차림의 남성을 따라나섰다.
군인 아저씨는 옥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옥상에는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헬기에 재빨리 몸을 실었다.
잠시 뒤
군인 아저씨와 나를 태운 헬기가 북쪽을 향해 날아올랐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비밀스런 장소가 시야에 포착됐다.
반경 30킬로에 달할 정도로 넓은 장소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전기 철조망이 둘러쳐진 상태였고, 무장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CIA의 훈련 캠프인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헬리콥터가 지상으로 급강하했고.
그러기를 잠시 뒤, 지상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군인 아저씨와 헬기에서 내려서자, 다른 군인 아저씨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훈련복과 군화가 들려있었다.
"오늘부터 훈련 시작이다. 3분 안에 훈련복으로 환복하고, 운동장 100바퀴를 돈다. 시작!"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청바지와 점퍼를 벗어던졌다.
훈련복과 군화를 재빨리 착용한 뒤, 아이폰과 사복을 훈련 교관에게 건넸다.
그 후, 400미터 트랙이 깔린 운동장을 나름 천천히 내달렸다.
나는 1킬로를 5초 이내에 주파할 수 있었다.
허나 내 능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런 탓으로 육상 선수들의 평균 속도에 비견되는 스피드로 트랙을 도는데 집중했고.
허나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마저도 많이 빠른 편에 속했다.
그런 탓일까.
내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모으고 있던 훈련 교관이,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400미터 트랙을 현역 육상 선수에 비견되는 속도로, 50바퀴 이상 돌았음에도.
내 스피드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그의 만면 가득 경악한 표정이 그려졌다.
400미터 트랙 100바퀴를 현역 선수를 능가하는 스피드로 완주한 까닭이다.
훈련교관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 당당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이제 뭘 하면 되죠?"
그가 질렸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 괴물같은 스피드와 체력에 진정으로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1시간 동안 휴식을 하고 수분을 보충하도록."
"식사는 언제 하죠?"
"저녁 식사는 7시에 있을 예정이다."
지금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려면 아직도 3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수분을 섭취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교관이 건네준 생수로 목을 축이며, 운동장의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다.
스탠드에 앉아서 주변을 살피자, 저 멀리에서 한무리의 훈련병들이 PT 체조를 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CIA에 지원한 사람들 같았다.
그들 대다수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PT 체조를 억지로 하고 있었다.
힘들어서 죽을 지경인 모양이었다.
훈련복이 땀에 찌들은 채.
그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억지로 흐느적거리며, PT 체조를 아주 힘겹게 하고 있었다.
CIA 요원들은 강인한 신체가 최우선인 모양이었다.
그러했으니 스파르타식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것이리라.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하며 스탠드에 등을 대고 팔자좋게 늘어졌다.
남들이 힘들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다.
1시간 뒤.
훈련 교관 마틴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PT 체조를 나에게 알려준 후, 냉정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2시간 동안 PT 체조를 한다. 시작!"
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만면 가득 떠올린 채.
PT 체조를 시작했다.
내 입장에서 PT 체조는 너무 쉬웠다.
허나 그런 속내를 꼭꼭 숨긴 채, 나름 열심히 PT 체조에 매진했다.
그 덕분일까.
금세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틴이 경악한 얼굴로 내 위아래를 쳐다봤다.
땀한방울 흘리지 않는 내 모습에 진심으로 놀란 모양이었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직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식당이 어디죠?"
그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 트레이닝 센터에는 지상 건축물이 없었다.
내부 시설은 모두 지하에 있는 모양이었다.
마틴을 따라서 지하로 내려가자, 넓은 실내 공간이 보였다.
숙소와 식당, 공용 샤워실, 화장실, 휴게실, 개인 사무실이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샤워도 하지 않고 곧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땀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은 탓에, 내 몸에서는 땀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샤워를 안해도 될 정도였다.
식당 시설은 훌륭한 수준이었다.
단백질 위주의 뷔페식당이었다.
나는 빈 쟁반 3개에 소고기 스테이크와 프라이드 치킨을 빼곡히 담았다.
그 후,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한 채 식사에 전념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속을 든든히 채운 뒤, 마틴을 따라서 내 숙소로 들어갔다.
내 숙소는 지하 4층이었다.
개인실이라 그런지 침대 하나와 책상, 옷을 수납할 수 있는 사물함이 전부였다.
마틴이 주의를 줬다.
"밤 9시가 지나면 문이 닫힌다. 대변과 소변을 그전에 해결하도록."
"만약 배탈 설사가 나면 방안에서 싸야 하나요?"
"그건 제군이 알아서 하도록."
"이것도 훈련의 일환인가요?"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는 대변과 소변을 보지 않았다.
노폐물이 자동적으로 체외로 기화되는 탓이었다.
전신 대주천의 순기능이었다.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내일 훈련 일정을 알려주십시오."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이유가 있나요?"
"제군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틴은 기계적으로 대꾸한 뒤,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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